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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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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2. 8. 주일 4부 설교 (원로목사님) |
<서론>
오늘 저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나 주님의 종들이 우리가 복을 구하면 “아~ 저 기복신앙자다. 기복신앙자다.” 손가락질합니다. 저는 그 손가락질을 50년 동안 받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저는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외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복을 준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반응이 시큰둥한 때가 많습니다. 기복신앙이다. 기복신앙의 기도를 하지 말라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복을 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윗도, 솔로몬도 복을 구하고 또 구한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복을 구하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동기에서 복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그 복을 받아서 내 정욕으로 서려고 할 때 나쁜 것이지 복을 받아서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이웃과 사랑과 행복을 나누기 위하여 구하면 구하는 당사자들도 복되게 되고 하나님이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복을 잃은 아담
첫째로, 아담과 하와는 복이 충만한 에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쓰레기통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빈민굴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낙원에서 만들었습니다. 상함도 해함도 염려도 근심도 불안도 없는 아주 평화롭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곳에 아담과 하와를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꾐에 빠져서 자기도 하나님처럼 절대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너무 복된 환경에서 너무 좋으니까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와가 말했습니다. “동산의 실과를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아니라! 네가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기를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내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 선한 일 하고 저 나쁜 일 하지 말라. 그 말이 아니고 내가 보아서 선하면 내가 하고 내가 나쁘면 내가 안한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하나님과 동등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그런 고약한 꾐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절대주권자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되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도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부터는 결코 행복이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들어오면 모든 것을 내가 움켜쥐려고 하고 그 결과로 다가오는 것은 사망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전쟁과 전쟁소문이 이렇게 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이렇게 많은 것은 욕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욕심을 채울 수 없으니까 강도도 되고 도둑놈도 되고 사기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잉태하면 곧 얼마 안 있으면 죄가 다가오고 죄가 다가오면 그 다음부터 사망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절망이 뒤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통치권을 내가 빼앗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 중에도 거대한 욕심인 것입니다. 지음을 받은 자가 지은 자를 동등하게 여기고, 지음을 받은 자가 지음을 주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면 같이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한 집안에 어른이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집안에 언제나 분란이 끝나지 않습니다. 한 나라에 다스리는 대통령이 두 명이 있으면 나라가 두 쪽이 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에 하나님은 한분이 계시지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의 통치권 밖으로 쫓겨나면 저주와 죽음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저주와 고통과 죽음은 하나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만사형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통치권 밖으로 나가면 그때부터는 저주가 따르는 것입니다.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괴로움과 고통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복을 잃은 인류 문명
둘째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문명은 복을 잃어버린 문명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수고가 많아지자 시날 광야로 옮겨와서 그 넓은 들에서 서로 말했었습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야훼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시더라” (창 11:3~5)
이게 바로 타락한 아담 자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홍수로 다 죽고 하나님께 정의로운 노아만 살았는데 노아 후손들도 태어나자마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서 말하기를 탑을 높이 쌓아서 “하나님 보좌와 같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름을 내자. 아~ 우리가 탑을 쌓아서 하늘 꼭대기에 닿겠다. 그것 자랑스럽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자. 다시 홍수가 오더라도 우리를 멸하지 못하게 하자”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대항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자든지 하든지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로써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내가 지혜롭고 총명해서 성공했다. 그러면 벌써 요점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성공하고 축복을 받았다. 내가 지위가 높아지면 하나님의 은혜로 지위가 높아졌다. 내가 어떤 일에 승리를 하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를 했다. 언제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문을 닫으면 열자가 없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된 것”(시 127:1~2)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들어 건방진 소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훼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야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6-9)
이 노아의 후손들이 모여서 시날 땅에서 바벨탑을 쌓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가 내려가자고 그랬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한분이시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가 하나의 하나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가 내려가자”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내려가서 사람들이 하는 행실을 보자” 그러니 종족도 하나요, 언어가 하나고 사상이 하나이니까 거침없이 성을 쌓아 올라가는데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돔을 흐트러 버리기 위해서 언어를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영어가 나오고 독일어가 나오고 프랑스 말이 나오고 중국어가 나오고 한국말이 나오고 일본말이 나와서 위에서 “벽돌 올려라!” 그러면 여기서는 물을 올리고 “물을 올리라”고 하면 모래를 올리고 철근을 올리라고 하면 그때는 철근 없었지만.. “시멘트를 올리라”고 하면 시멘트 대신해서 역청 대신해 진흙을 올리고 말이 안 통합니다. 말이 안통하면 같이 일할 수가 없어요. 말이 안 통하면 서로 살수가 없어요. 오늘날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서 결혼하기 전에 오래 사귀어서 마음이 통하는가, 말이 통하는지 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상대방의 미모를 보고 상대방의 재산을 보고 거기에 현혹 되어서 결혼하고 나면 결혼하고 결혼생활 속에서 전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답답하지 그지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헤어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말을 흐트러지게 하므로 노아의 후손들이 성 쌓는 일을 그치고 각각 흩어져 나가 버린 것입니다. 시날 광야 바벨탑에서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정식 도전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탑을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자. 하나님 없애 버리고 우리 이름을 내자. 하나님은 없다. 요사이 20세기, 21세기 문명이 바로 그렇습니다. 영국에서는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인생을 즐기라는 광고를 버스에 붙여서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나님은 없으니 우리 중심으로 우리 마음대로 살자는 운동이 바로 오늘 소이 말하는 신(新)신학운동이요, 계몽운동인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사상에 들어가서 하나님 없는 문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합니까?
이사야 14장 13절로 14절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리를 펴고 하나님의 북국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겠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과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서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과 꼭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적인 문화를 만들자. 문명을 만들자. 그것이 오늘날 세계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등진 오늘의 인류는 정말 재앙에 동참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승승장구하고 잘 될 줄 압니까? 하나님 없는 세계는 역사를 볼 때 피의 전쟁입니다. 항상 죽이고, 죽고, 뺏고, 빼앗기고, 몸부림치는 고통 속에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한 번도 평화로운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과 역병에 시달렸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 밖에 있으면 모든 것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 마귀의 손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오늘 하나님 없이 자기 스스로 샘의 웅덩이를 파는 사람은 터진 웅덩이라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권력도 하나님 없는 재물도 하나님 없는 인간의 행복도 다 터진 우물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순식간에 빠져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리고 계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 앞에 높이는 것은 멸망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여객선으로 2천 300명의 승객을 태운 ‘타이타닉호’가 유유히 영국에서 떠나서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통제소에서 무전이 왔어요. “빙산이 떠내려 오니까 조심하라!” 그래서 선장이 하는 말이 “이 배가 얼마나 잘 지었다고 빙산 같은 것에 겁을 내나? 하나님도 이 배는 침몰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큰 소리 하고 가다가 빙산에 부딪쳐서 배가 파선되었습니다. 사람들 대다수가 죽었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튼튼한 배를 만들었으니 하나님조차도 이 배는 침몰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등진 인류 문명을 빌리는데 결국 재앙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 배는 파선되고 침몰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의 유명한 케네디 가문을 생각해 봅니다. 조지프 케네디는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술 밀매와 헐리우드 영화 사업으로 돈을 벌게 되어 가문을 크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일을 통해 이룬 그 명성과 전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술을 팔고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고 세상을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한 곳으로 인도하는 선두적 역할을 해서 돈을 벌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만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큰아들 조지프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 때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고, 둘째 아들은 40대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바로 존 F. 케네디입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공립학교에 걸려 있는 십계명을 모두 떼도록 했습니다. 또한 신앙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아침마다 기도로 시작하던 전통을 없애버렸습니다. 승승장구의 인기가도를 달리는 듯 하던 그는 결국 오스왈드라는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셋째 아들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 출마를 해서 유세 중에 L.A. 엠베서더 호텔에서 암살 당했습니다. 딸은 정신병으로 지금도 유랑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큰 아들은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됐지만 부인과 함께 대서양에 있는 섬에 놀러 가다가 자신이 운전하던 자가용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었습니다.
케네디 가문의 아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는 테드 케네디 일 뿐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식들이 줄줄이 침몰하는 비극을 지켜본 그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술 팔아 남의 가정을 파괴시킨 죄 값으로 이렇게 됐다. 내가 술 팔아서 수많은 가정을 파멸시킨 그 죄 값으로 자식들이 다 이렇게 비명횡사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복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을 하면 결코 온전한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과 명예는 있는 것 같으나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3.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셋째로,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또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인본주의로 나간 사람에게는 가는 곳마다 안 되고 못되고 망했습니다만 오래 볼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직접 주권을 행사해서 하나님 백성을 만들려고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야훼께서” 하나님이 직접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지어서 에덴동산에 두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을 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도 홍수에서 건져서 살려 주었는데, 하나님 주권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불러서 주권적 행사를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택해서 불렀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셨습니까? 하나님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주님의 주권을 믿고 순종하고 따라가면 가문이 팽창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잘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샘물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이라는 것은 재물입니다. 내가 너의 가문을 창대케 하고 너에게 재물을 주고 그 다음에는 형통의 복을 약속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축복을 받을 것이라. 마음에 평안과 육신의 건강과 생활의 안정, 형통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문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의 재물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에게 마음에 참 행복을 가져올 수 있게 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4. 불순종할 때 화를 당하고 순종할 때 복이 임함
하나님의 주권에 불순종할 때 화를 당하고 회개하고 순종할 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이 딱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26절로 28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道)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까? 복과 저주가 분명합니다. 주권자, 유일한 주권자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등지고 돈을 신으로 섬기든지 권력을 신으로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면 저주를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복이 넘치는 곳도 있고 저주가 넘치는 곳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너는 복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어서 네가 가는 곳마다 복덩어리다. 들에 가면 들이 복이 오고 집에 오면 집이 복이 오고 짐승을 기르면 짐승들이 복을 받고 복덩어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여러분, 주의 종들이 가정에 심방해 와주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주의 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복 받은 사람이니까 그가 들어오는 집에 복이 같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요셉이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왔을 때 10년 동안에 그 보디발의 집이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있을 동안에 감방에 갇혀 죄수들이 다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자 7년 기근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등진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로 9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기도할 때 나라가 임하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나에게 임하여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내가 나를 못 다스립니다. 세상이 나를 못 다스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한 대로 해주시옵소서. 이게 겸손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천만에. 하나님이 왜 여러분 보좌관으로 도와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스리러 오시지 도와주러 오지 않습니다. 많은 우리가 자꾸 하나님 내가 이 일을 하오니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말고 “하나님,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이 같이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서 따라 가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이 세상에 나올 때 삶의 길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모두 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다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 다 목사가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일생에 정해놓은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서 순종하고 살면 그 길에 형통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12절에 “야훼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복을 받겠다고 성경에 말한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될지라도 구라파 미국이 일류 국가가 된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에 일류 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 구라파도 미국도 하나님을 떠나고 있으니까 일류 국가의 자리에서 밀려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이 무엇이든지가 뭡니까? 영혼의 문제, 사업의 문제, 생활의 문제, 건강의 문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생활에 밀접히 관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느냐. 붙어 있지 않느냐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살았다 하나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는 말을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아브라함이 성자가 되어서 하나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많이 불순종하고 불신앙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장 회개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해야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섬기면서 살아갈 동안에 내가 잘못했으면 회개하면 복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를 안 하고 내가 잘났다고 자꾸 고집을 하면 벌을 받지만 엎드려 회개하면 긍휼함을 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받으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순종하고 나가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모두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과 같이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는 자로 미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부르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셨으면 내게 올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서 마음 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것이지 내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있어 예수 믿게 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을 열어 주셔서 감화 감동을 주셔서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한 것같이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믿고 나가면 많이 실패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어려운 일도 당하겠지만 결과로 하나님이 붙들어 주어서 아브라함이 큰 복의 근원이 된 것처럼 여러분도 복의 근원이 되고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제가 금덩어리 하나를 주는데 여러분이 “이 금덩어리를 쌓아 갈 신문지 쪽지 하나 주십시오” 하면 금덩어리를 드린 제가 신문지 조각 안주겠습니까? 예수님은 은이나 금으로 말할 수 없는 귀한 보배인데 이 보배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에 모시고 있으면 그 마음에 모시고 있는 몸과 생활과 가정에 하나님이 복달라고 하는데 복 안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니 하나님의 인도에 절대 순종하고 절대 믿음으로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주권으로 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므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믿고 따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를 믿고 주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따라가는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사오니 모두 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화를 받지 말고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주를 받지 말고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님께서 모든 백성들을 품에 품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히 채우시고 모두 다 광야에서 살지 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저는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나 주님의 종들이 우리가 복을 구하면 “아~ 저 기복신앙자다. 기복신앙자다.” 손가락질합니다. 저는 그 손가락질을 50년 동안 받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저는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외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복을 준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면 반응이 시큰둥한 때가 많습니다. 기복신앙이다. 기복신앙의 기도를 하지 말라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복을 구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윗도, 솔로몬도 복을 구하고 또 구한대로 복을 받았습니다.
복을 구하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잘못된 동기에서 복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나쁜 것입니다. 그 복을 받아서 내 정욕으로 서려고 할 때 나쁜 것이지 복을 받아서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이웃과 사랑과 행복을 나누기 위하여 구하면 구하는 당사자들도 복되게 되고 하나님이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복을 잃은 아담
첫째로, 아담과 하와는 복이 충만한 에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쓰레기통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빈민굴에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낙원에서 만들었습니다. 상함도 해함도 염려도 근심도 불안도 없는 아주 평화롭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곳에 아담과 하와를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꾐에 빠져서 자기도 하나님처럼 절대 통치자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너무 복된 환경에서 너무 좋으니까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더냐?” 하와가 말했습니다. “동산의 실과를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아니라! 네가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알기를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내 스스로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 선한 일 하고 저 나쁜 일 하지 말라. 그 말이 아니고 내가 보아서 선하면 내가 하고 내가 나쁘면 내가 안한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하나님과 동등 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그런 고약한 꾐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절대주권자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되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도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부터는 결코 행복이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이 들어오면 모든 것을 내가 움켜쥐려고 하고 그 결과로 다가오는 것은 사망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전쟁과 전쟁소문이 이렇게 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이렇게 많은 것은 욕심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욕심을 채울 수 없으니까 강도도 되고 도둑놈도 되고 사기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잉태하면 곧 얼마 안 있으면 죄가 다가오고 죄가 다가오면 그 다음부터 사망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낭패와 실망과 저주와 절망이 뒤따라 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통치권을 내가 빼앗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 중에도 거대한 욕심인 것입니다. 지음을 받은 자가 지은 자를 동등하게 여기고, 지음을 받은 자가 지음을 주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되면 같이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한 집안에 어른이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집안에 언제나 분란이 끝나지 않습니다. 한 나라에 다스리는 대통령이 두 명이 있으면 나라가 두 쪽이 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주에 하나님은 한분이 계시지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의 통치권 밖으로 쫓겨나면 저주와 죽음의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저주와 고통과 죽음은 하나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만사형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통치권 밖으로 나가면 그때부터는 저주가 따르는 것입니다.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괴로움과 고통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복을 잃은 인류 문명
둘째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문명은 복을 잃어버린 문명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수고가 많아지자 시날 광야로 옮겨와서 그 넓은 들에서 서로 말했었습니다.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야훼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시더라” (창 11:3~5)
이게 바로 타락한 아담 자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홍수로 다 죽고 하나님께 정의로운 노아만 살았는데 노아 후손들도 태어나자마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서 말하기를 탑을 높이 쌓아서 “하나님 보좌와 같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름을 내자. 아~ 우리가 탑을 쌓아서 하늘 꼭대기에 닿겠다. 그것 자랑스럽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자. 다시 홍수가 오더라도 우리를 멸하지 못하게 하자”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대항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자든지 하든지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로써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내가 지혜롭고 총명해서 성공했다. 그러면 벌써 요점이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성공하고 축복을 받았다. 내가 지위가 높아지면 하나님의 은혜로 지위가 높아졌다. 내가 어떤 일에 승리를 하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를 했다. 언제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찬미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문을 닫으면 열자가 없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야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된 것”(시 127:1~2)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는 것입니다. 절대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들어 건방진 소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훼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야훼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야훼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6-9)
이 노아의 후손들이 모여서 시날 땅에서 바벨탑을 쌓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가 내려가자고 그랬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한분이시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가 하나의 하나님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가 내려가자” 말씀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내려가서 사람들이 하는 행실을 보자” 그러니 종족도 하나요, 언어가 하나고 사상이 하나이니까 거침없이 성을 쌓아 올라가는데 막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돔을 흐트러 버리기 위해서 언어를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영어가 나오고 독일어가 나오고 프랑스 말이 나오고 중국어가 나오고 한국말이 나오고 일본말이 나와서 위에서 “벽돌 올려라!” 그러면 여기서는 물을 올리고 “물을 올리라”고 하면 모래를 올리고 철근을 올리라고 하면 그때는 철근 없었지만.. “시멘트를 올리라”고 하면 시멘트 대신해서 역청 대신해 진흙을 올리고 말이 안 통합니다. 말이 안통하면 같이 일할 수가 없어요. 말이 안 통하면 서로 살수가 없어요. 오늘날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서 결혼하기 전에 오래 사귀어서 마음이 통하는가, 말이 통하는지 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상대방의 미모를 보고 상대방의 재산을 보고 거기에 현혹 되어서 결혼하고 나면 결혼하고 결혼생활 속에서 전혀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답답하지 그지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헤어지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말을 흐트러지게 하므로 노아의 후손들이 성 쌓는 일을 그치고 각각 흩어져 나가 버린 것입니다. 시날 광야 바벨탑에서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정식 도전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탑을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고 우리 이름을 내자. 하나님 없애 버리고 우리 이름을 내자. 하나님은 없다. 요사이 20세기, 21세기 문명이 바로 그렇습니다. 영국에서는 하나님은 안 계신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인생을 즐기라는 광고를 버스에 붙여서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나님은 없으니 우리 중심으로 우리 마음대로 살자는 운동이 바로 오늘 소이 말하는 신(新)신학운동이요, 계몽운동인 것입니다. 인본주의적 사상에 들어가서 하나님 없는 문명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고 말합니까?
이사야 14장 13절로 14절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뭇 별 위에 자리를 펴고 하나님의 북국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겠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과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서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과 꼭 한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적인 문화를 만들자. 문명을 만들자. 그것이 오늘날 세계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등진 오늘의 인류는 정말 재앙에 동참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승승장구하고 잘 될 줄 압니까? 하나님 없는 세계는 역사를 볼 때 피의 전쟁입니다. 항상 죽이고, 죽고, 뺏고, 빼앗기고, 몸부림치는 고통 속에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한 번도 평화로운 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과 역병에 시달렸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권 밖에 있으면 모든 것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 마귀의 손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오늘 하나님 없이 자기 스스로 샘의 웅덩이를 파는 사람은 터진 웅덩이라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권력도 하나님 없는 재물도 하나님 없는 인간의 행복도 다 터진 우물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순식간에 빠져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져 버리고 계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잠언서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 앞에 높이는 것은 멸망의 앞잡이인 것입니다.
세계 최대의 여객선으로 2천 300명의 승객을 태운 ‘타이타닉호’가 유유히 영국에서 떠나서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통제소에서 무전이 왔어요. “빙산이 떠내려 오니까 조심하라!” 그래서 선장이 하는 말이 “이 배가 얼마나 잘 지었다고 빙산 같은 것에 겁을 내나? 하나님도 이 배는 침몰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큰 소리 하고 가다가 빙산에 부딪쳐서 배가 파선되었습니다. 사람들 대다수가 죽었습니다. 인간의 교만은 그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튼튼한 배를 만들었으니 하나님조차도 이 배는 침몰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등진 인류 문명을 빌리는데 결국 재앙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그 배는 파선되고 침몰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미국의 유명한 케네디 가문을 생각해 봅니다. 조지프 케네디는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술 밀매와 헐리우드 영화 사업으로 돈을 벌게 되어 가문을 크게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일을 통해 이룬 그 명성과 전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술을 팔고 헐리우드 영화를 만들고 세상을 술 취하고 방탕하고 음란한 곳으로 인도하는 선두적 역할을 해서 돈을 벌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만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큰아들 조지프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 때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었고, 둘째 아들은 40대에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바로 존 F. 케네디입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공립학교에 걸려 있는 십계명을 모두 떼도록 했습니다. 또한 신앙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아침마다 기도로 시작하던 전통을 없애버렸습니다. 승승장구의 인기가도를 달리는 듯 하던 그는 결국 오스왈드라는 청년이 쏜 총탄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셋째 아들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 출마를 해서 유세 중에 L.A. 엠베서더 호텔에서 암살 당했습니다. 딸은 정신병으로 지금도 유랑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큰 아들은 연방하원의원으로 당선됐지만 부인과 함께 대서양에 있는 섬에 놀러 가다가 자신이 운전하던 자가용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었습니다.
케네디 가문의 아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는 테드 케네디 일 뿐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식들이 줄줄이 침몰하는 비극을 지켜본 그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술 팔아 남의 가정을 파괴시킨 죄 값으로 이렇게 됐다. 내가 술 팔아서 수많은 가정을 파멸시킨 그 죄 값으로 자식들이 다 이렇게 비명횡사하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복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을 하면 결코 온전한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성공과 명예는 있는 것 같으나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은 것입니다.
3.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셋째로,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 또 보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인본주의로 나간 사람에게는 가는 곳마다 안 되고 못되고 망했습니다만 오래 볼 수가 없어서 하나님이 직접 주권을 행사해서 하나님 백성을 만들려고 결심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 1절로 3절에 “야훼께서” 하나님이 직접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지어서 에덴동산에 두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을 했습니다. 노아의 후손들도 홍수에서 건져서 살려 주었는데, 하나님 주권을 배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불러서 주권적 행사를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택해서 불렀었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실 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셨습니까? 하나님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주님의 주권을 믿고 순종하고 따라가면 가문이 팽창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잘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샘물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이라는 것은 재물입니다. 내가 너의 가문을 창대케 하고 너에게 재물을 주고 그 다음에는 형통의 복을 약속한 것입니다. 모든 일에 축복을 받을 것이라. 마음에 평안과 육신의 건강과 생활의 안정, 형통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문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의 재물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에게 마음에 참 행복을 가져올 수 있게 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4. 불순종할 때 화를 당하고 순종할 때 복이 임함
하나님의 주권에 불순종할 때 화를 당하고 회개하고 순종할 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는 길과 죽는 길이 딱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11장 26절로 28절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道)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야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까? 복과 저주가 분명합니다. 주권자, 유일한 주권자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등지고 돈을 신으로 섬기든지 권력을 신으로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면 저주를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복이 넘치는 곳도 있고 저주가 넘치는 곳도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너는 복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어서 네가 가는 곳마다 복덩어리다. 들에 가면 들이 복이 오고 집에 오면 집이 복이 오고 짐승을 기르면 짐승들이 복을 받고 복덩어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여러분, 주의 종들이 가정에 심방해 와주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주의 종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복 받은 사람이니까 그가 들어오는 집에 복이 같이 따라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요셉이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왔을 때 10년 동안에 그 보디발의 집이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있을 동안에 감방에 갇혀 죄수들이 다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자 7년 기근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등진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로 9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기도할 때 나라가 임하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나에게 임하여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내가 나를 못 다스립니다. 세상이 나를 못 다스립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께서 계획한 대로 해주시옵소서. 이게 겸손한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천만에. 하나님이 왜 여러분 보좌관으로 도와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을 다스리러 오시지 도와주러 오지 않습니다. 많은 우리가 자꾸 하나님 내가 이 일을 하오니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지 말고 “하나님,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아닙니까?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옵소서.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이 같이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서 따라 가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이 세상에 나올 때 삶의 길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모두 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다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 다 목사가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일생에 정해놓은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서 순종하고 살면 그 길에 형통하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12절에 “야훼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나를 믿는 백성은 복을 받겠다고 성경에 말한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게 될지라도 구라파 미국이 일류 국가가 된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에 일류 국가가 된 것입니다. 이제 구라파도 미국도 하나님을 떠나고 있으니까 일류 국가의 자리에서 밀려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이 무엇이든지가 뭡니까? 영혼의 문제, 사업의 문제, 생활의 문제, 건강의 문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생활에 밀접히 관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느냐. 붙어 있지 않느냐가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고 믿고 순종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살았다 하나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는 말을 성경에서 읽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아브라함이 성자가 되어서 하나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많이 불순종하고 불신앙해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곧장 회개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나간 것입니다. 여러분 완전해야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섬기면서 살아갈 동안에 내가 잘못했으면 회개하면 복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를 안 하고 내가 잘났다고 자꾸 고집을 하면 벌을 받지만 엎드려 회개하면 긍휼함을 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받으며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순종하고 나가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모두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과 같이 여러분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는 자로 미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부르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셨으면 내게 올 자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서 마음 문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것이지 내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있어 예수 믿게 된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을 열어 주셔서 감화 감동을 주셔서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한 것같이 여러분도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믿고 나가면 많이 실패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고 어려운 일도 당하겠지만 결과로 하나님이 붙들어 주어서 아브라함이 큰 복의 근원이 된 것처럼 여러분도 복의 근원이 되고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제가 금덩어리 하나를 주는데 여러분이 “이 금덩어리를 쌓아 갈 신문지 쪽지 하나 주십시오” 하면 금덩어리를 드린 제가 신문지 조각 안주겠습니까? 예수님은 은이나 금으로 말할 수 없는 귀한 보배인데 이 보배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에 모시고 있으면 그 마음에 모시고 있는 몸과 생활과 가정에 하나님이 복달라고 하는데 복 안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니 하나님의 인도에 절대 순종하고 절대 믿음으로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주권으로 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를 부르셨으므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믿고 따라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성령으로 인을 쳐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를 믿고 주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따라가는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사오니 모두 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화를 받지 말고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주를 받지 말고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주님께서 모든 백성들을 품에 품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히 채우시고 모두 다 광야에서 살지 말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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