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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4요소 (시 37:22-29)
<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 한 통계에 의하면 약 50%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조차 없고, 40%의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알지 못하고, 오직 10%의 사람들만이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 중에서도 실제로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은 적다고 합니다. 결국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가야 할 길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목적 없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도 다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은 성경이 말하는 핵심주제이고 인생의 핵심주제입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축복의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아집니다. 또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찬란한 계획을 놓칩니다. 그처럼 두려움은 꿈과 비전의 성취를 막는 핵심 요소이고, 육신적인 질병을 가져다주는 최대 요소입니다. 만성 환자의 90%가 두려움 때문에 그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처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지만 두려움을 극복하면 축복을 향한 엄청난 인생 변화가 이뤄집니다. 어느 날, 다윗이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려고 갔습니다. 전쟁터에 가보니까 사울 왕과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골리앗 앞에서 40일 동안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삼상 17:11). 마침 다윗이 간 날에도 골리앗이 말로 위협하자 사람들은 다 도망쳤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려움을 물리쳤기에 결국 골리앗을 죽이고 칼로 그의 머리를 벨 수 있었습니다(삼상 17:52). 어떻게 두려움을 이깁니까? 다윗은 평소에 물맷돌로 맹수를 죽이는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그처럼 평소에 믿음의 준비를 하면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골리앗에게 큰소리도 치십시오. “골리앗! 너는 내 손에 박살이 날 것이다! 너는 내 앞에서 쓰러지고 내가 네 목을 벨 것이다.” 주님은 산에게도 명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다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막 11:23). 그처럼 두려움을 향해 물러가라고 명령하십시오. 말에는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두려움의 목을 베고 두려움을 물리치면 엄청난 인생 승진이 이뤄집니다.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면서 나라의 영웅이 되고,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자 다윗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가장 복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처럼 두려움을 이겨내면 그 다음에 준비된 축복은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결국 가장 불행한 삶은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가장 복된 삶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 축복된 삶을 사는 길 > 본문이 나오는 시편은 다윗이 노년에 지은 시편입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가장 복된 삶을 사는 몇 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 첫 구절인 22절과 마지막 구절인 29절에는 “복된 자는 땅을 차지한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축복과 영향력이 커지는 축복을 모두 포함하는 축복입니다. 그런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본문 23-2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이 구절은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지해도 넘어질 때가 있지만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그처럼 교회를 잘 다니고 열심히 봉사해도 실패와 어려움은 생기지만 그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축복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2차 대전 때, 나치의 수용소 벽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태양이 빛나지 않아도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외로워도 사랑이 존재함을 믿고, 당신이 침묵해도 당신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소리 없이 가장 멋진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결국 엄청난 절망을 엄청난 희망으로 바꾸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십시오. 어느 날,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왕후 이세벨의 보복에 관한 얘기를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시내 산의 한 동굴에서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왕상19:18). “엘리아야!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놓았다!” 그때 그는 ‘혼자’가 아님을 깨닫고 새롭게 일어섰습니다. 살다보면 어려움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영적 네비게이션입니다. 네비게이션은 다른 길로 가면 즉시 경로를 재탐색해서 새로운 길을 일러줍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그 상태에서 가장 선한 길로 새롭게 인도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그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십시오. 그러면 영혼의 심지에는 새로운 불이 붙고 꿈과 비전의 성취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2. 주기를 기뻐하십시오 본문 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 구절에서 ‘내가’는 다윗을 말합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목격했습니다. 그 사실은 의인은 결코 버림을 당하지 않고 그 자손이 먹을 것을 구걸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잘 믿으면 구걸하는 자가 되지 않고 주는 자가 될 수 있고, 주는 자가 되면 하나님이 더욱 축복을 주십니다. 초대교회 때 바나바는 자신의 밭을 팔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행 4:37). 그의 행위는 동료 교인들에게 큰 힘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하나님도 얼마니 기쁘게 보셨겠습니까? 그처럼 교회와 영혼을 위해 쓰인 돈은 내 수중을 떠나지만 결코 잃어버린 돈이 아니라 오히려 큰 의미에서는 저축되는 돈입니다. 오히려 혼자만을 위해 꼭꼭 숨겨둔 돈이 바로 잃어버린 돈입니다. 주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확증하고, 이웃의 신앙을 자라게 하고, 결국 자신과 자손이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후하게 주는 삶을 꿈꾸십시오. 저는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으로 한국에서 목회하는 최초의 목사이고, 저희 분당 샛별교회는 교단 소속의 최초의 교회입니다. 우리 교단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선교중심적인 교단이고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서는 한국의 장로교처럼 가장 큰 교단이고, 캐나다, 홍콩, 그리고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는 한국의 감리교처럼 중요 교단입니다. 게다가 건전한 복음주의 신학을 가진 교단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아서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희 선교연맹을 알리라는 특별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귀국해서 지난 19년 동안 교단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지금 조금씩 열매가 생기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미국 본부에서도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저희 교단의 게리 베네딕트 총재가 우리 교회를 방문했고 한국 사역에 대한 많은 비전과 감동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 저의 두 딸이 교단 대학인 나약 대학에 가면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딸들이 장학금을 받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형편이 되면 오히려 교단에 장학금을 주는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장학금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복된 일이지만 장학금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 훨씬 복된 일입니다. 그런 적극적인 복을 추구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장학금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교회를 옮깁니다. 그러나 그런 구걸적이고 소극적인 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장학기금을 내놓는 적극적인 복을 추구하십시오. 의인의 자손은 걸식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앞세워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고 열심히 베푸는 자가 되십시오. 그것이 현재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이고, 앞으로 하나님의 사랑 받을 표식입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군대에 가서 돼지를 기르는 곳에 배속되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돼지를 잘 길러서 맛있는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돼지를 기르다가 점점 돼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선임자가 엄청나게 야단쳤습니다. 왜냐하면 돼지를 사랑하니까 돼지가 살이 찌지 않고 오히려 살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사랑을 받으면 스트레스 살이 없어지면서 살이 빠진다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영적인 살이 빠집니다. 계속 돈을 쌓기만 하는 것은 사랑결핍증의 증거이고,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못한다는 외적인 증거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이제 많이 벌고, 많이 베푸십시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능력과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런 베풀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누구보다도 축복 받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3. 겸손하게 봉사하십시오 본문 26절에서 ‘은혜를 베푸는 삶’은 교회생활에서는 ‘봉사하는 삶’을 뜻합니다. 즉 교회를 위한 겸손한 봉사는 자손의 축복을 예비하는 가장 복된 요소입니다. 자유당 때 새문안 교회 한 집사는 교회에서 매일 종만 쳤습니다. 교인들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그가 죽자 한국의 유명한 사람들이 다 모이면서 교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사의 아들이 당시 장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최선을 다해 봉사하면 하나님은 자손의 축복으로 다 갚아주십니다. 결국 봉사는 ‘내가 하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것’입니다. 봉사하면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습니까? 어떤 권사는 10년 동안 새벽예배가 끝나면 본당의 종이를 줍고 의자를 정리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전에서 은밀하게 청소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처럼 봉사하는 삶은 무엇보다 복된 삶입니다. 구약 때는 봉사하고 싶어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사람과 하나님이 택한 사람만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한 가지 이상의 봉사는 반드시 하십시오. 교회봉사의 문제는 “할까? 말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잘할까?”의 문제입니다. 봉사하다 보면 가끔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다. 왜 불평과 원망이 생깁니까? 대개 보면 대가와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나 대가와 인정과 칭찬을 생각하며 봉사하는 것은 진정한 봉사가 아닙니다. 성도는 오히려 겸손하고 은밀한 봉사를 더욱 즐겨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더욱 뚜렷하게 보입니다. 특히 봉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봉사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봉사를 잘해도 그로 인해서 자만과 자랑에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이 봉사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봉사하십시오. 사실 믿음과 건강이 있으니 봉사할 수 있는 것이고, 마음이 겸손하니까 봉사가 기쁜 것입니다. 그처럼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봉사하는 것임을 알고 항상 봉사할 때마다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교회생활에서는 봉사를 쉬면 안 됩니다. 교회생활의 본질은 ‘봉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인은 어떤 봉사든지 한 가지 이상의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런 봉사가 없으면 항상 손님으로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가장 피부로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교회를 위해 봉사할 때입니다. 또한 교회생활의 진정한 행복을 느낄 때도 언제입니까? 바로 봉사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봉사하는 자에게 축복과 행복을 주십니다. 4. 축복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본문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을 끊어지리로다.” 살다 보면 하나님의 공의가 의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믿음 없는 저 사람이 저렇게 잘 되고 왜 나는 이렇게 힘든 것일까?”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를 사랑하십니다. 반드시 의는 의대로 심판하시고, 불의는 불의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살다 보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를 버리지 않고 영영히 보호해주십니다. 물론 너무 힘들면 그 사실이 의심이 됩니다. 그때는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이 상처를 덧나게 합니다. 특히 ‘내가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악인이 형통한 것’이 더 억울하고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상황을 그냥 침묵하며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기도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천 날 동안 매일 기도했는데 축복이 없다면 속은 상해도 그런 대로 견딜 만 합니다. 그러나 하루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잘된다는 소문을 들으면 믿음에 회의가 생기고 삶의 존재의미를 잃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약속이 잘 믿어지지 않고, 아무리 믿음의 선배가 위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이제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장 벼랑 끝에 몰리면 그런 상황을 허용하신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이 마음 깊이 배이게 되고 믿음의 뿌리가 흔들립니다. 단 한 발자국만 디딜 공간이 있어도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겠지만 벼랑 끝에서는 원망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를 위해서 믿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때는 좋은 줄 알았던 믿음도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그처럼 살다보면 죽는 것 외에는 길이 없는 때를 만납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 때문에 겪는 시련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의 고통은 그렇게 크지 않지만 큰 잘못이 없는데도 그런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사랑과 축복의 하나님에 대한 배반감이 생기면서 마음의 고통은 더욱 커집니다. 그때 믿음은 아수라장이 되고, 기도와 봉사에 대한 패배의식이 영혼을 더욱 짓누릅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하나님이 벼랑 끝에서 아예 벼랑 밑으로 매정하게 떠미십니다. 그런 상황을 작은 머리와 믿음으로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때 사람들은 대부분 원망합니다. “하나님! 정말 너무하세요. 어떻게 상황을 이렇게 만드시나요?” 그러나 그때도 본문의 다윗처럼 하나님은 성도를 버리지 않고 영원히 보호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믿음이 커지면 벼랑 끝에 몰린 것도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벼랑 끝에 몰린 것이 축복이 됩니까? 겉으로는 축복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것도 축복입니다. 그때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그것만큼 복된 일은 없습니다. 사실상 ‘거룩한 항복의 은혜’는 잘 나갈 때는 체험하기 힘듭니다. 그 은혜는 오직 벼랑 끝에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는 항복하지 않습니다. 그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나님은 벼랑 끝으로 모는 것입니다.< 거룩한 항복의 은혜 체험 >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의 주인공들과 영적인 거성들은 하나같이 벼랑 끝에서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사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체험하지 않으면 못합니다. 항복은 죽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사람은 죽을지언정 항복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벼랑 끝에서 항복을 받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항복한 사람에게 상상을 초월한 기막힌 은혜를 더해 주십니다. 승리의 주인공들은 우리와 성정이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빨리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항복했고, 직장을 잃고 항복했고, 건강을 잃고 항복했고, 사업이 망하고 항복한 사람들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항복하십시오. 거룩한 항복은 어떤 시련도 능가하는 축복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죽는 길이 사는 길이고, 낮아지는 길이 높아지는 길이고, 항복하는 길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체험하면 상상을 초월한 특별한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때 자손이 축복을 받고, 영향력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면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기도실로 향하십시오.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이 명품 인생입니다. 사방이 막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성경 앞에 변함없이 무릎을 꿇고 예배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들으며 변함없이 봉사하십시오. 그런 영혼처럼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영혼은 없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잠깐은 흔들리고, 푸념도 나오고, 갈등도 생기고, 분노도 생깁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진짜로 항복해보십시오. 서두르면 대개 사고가 나지만 빨리 서둘러도 좋은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빨리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체험하면 다윗이 체험한 은혜가 우리의 은혜가 되어 인생역전과 최종승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밤하늘도 파랗게 보입니다. 그러나 심미안보다 더 귀한 ‘영안’을 가진 사람에게는 밤하늘도 천국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어둔 밤에도 자세히 보면 별 하나는 보입니다. 그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의 자리를 찾고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경청하며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과 가능성의 별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제 자신의 축복의 가능성을 사장시키지 마십시오.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체험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살면 반드시 우리 가운데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제 거룩한 항복의 은혜를 체험하고 다윗처럼 넘어져도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은혜, 자손이 걸식하지 않고 베풀어주는 은혜, 영영히 가문이 축복을 받는 은혜의 주인공들이 되어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히 별처럼 빛나게 되기를 꿈꾸는 최고의 영적 부자들이 되십시오.ⓒ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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