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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6:1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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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
이번주 뉴스위크지에 "돈은 죽음보다 강하다? "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 돈은 피보다 진하고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고 합니다. 돈에 대해 이런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권력과 폭력, 즉 모든 정치의 진앙지가 돈이고 전쟁은 늘 돈 때문에 일어나고 언제나 돈으로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돈은 모든 것이고 돈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교회에서도 돈 이야기하면 긴장합니다. 시사저널을 보니 "핏발 선 한탕 심리 돈 독 오른 정선 가지노, 대박 찾다 쪽박 찬‘환자’들, 지자체, 판돈에 목숨 걸다, 아태재단 계좌 샅샅이 뒤져라." 등의 글이 실려있었습니다.
전국에 한탕주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액 당첨금을 건 복권과 인터넷 도박은 허황된 일확천금 욕망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신문은 어떻습니까?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들의 처참한 모습이 어느 지면을 보아도 널려있습니다.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은 없다." 지나치게 집착하는 욕심, 탐욕의 노예가 되면 세상을 더럽게 만들고 자신이 불행해 집니다. 인간 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탐욕이란 무엇입니까?
탐욕은 일반적으로 남에게 속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정의합니다. 어거스틴은 탐심을 설명하기를 '충족한 것보다 우리가 더욱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충분한 것을 가지고도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탐심은 '타바(tabah)'라는 말로 "악한 소유, 또는 불법적인 욕심"을 의미합니다. 이 탐심은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십계명에서는 탐심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십계명을 범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죄가 탐욕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탐욕이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이 부모를 바로 공경하지 못하게 하고, 살인하게 하고, 간음하게 하고, 도적질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이 탐심은 결국 우리가 사는 가정과 사회를 무덤처럼 만들어 버리게 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인격을 파괴해 버립니다. 행복을 빼앗아가게 합니다. 유명한 문호 단테에 의하면 탐욕이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지적했습니다. 돈에 탐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타락하고, 어떤 권력이라도 부패하며, 어떤 나라라도 멸망으로 치닫게 되어 있습니다.
청교도 에스겔 흡킨스는 이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포로로 만드는가를 4단계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첫째 단계는 죄가 우리 안에 형태를 갖추기 전에 악한 생각 또는 죄의 싹이 움트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이러한 악한 생각을 채워줄 대상이 나타날 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부패한 육욕적인 세력과 죄악으로 눈이 멀고 마지막 단계는 탐욕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멸망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탐욕의 포로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쌓다, 섬기다, 구하다"라는 문맥을 통하여 세가지 방법을 찾아 보기를 원합니다.
1.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여야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19-23).
1)돈을 땅에 쌓는데 초점을 두면 탐욕의 포로가 됩니다.
돈이라는 것이 죄일까요? 부자가 되는 것이 죄일까요?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을 막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돈이라는 것은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사용자에 따라 칼과 같이 선하게도 악하게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부자였습니다. 그들이 부자라는 한가지 이유로 정죄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한 형태이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듯이 다 돈 잘 벌 수는 없는 것입니다. 탈라트입니다. 잘 개발하여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좋은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좋은 차를 탈 수 있습니다. 질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식들로 부터도 대접을 받습니다. 여행을 다닐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좋은 옷도 입을 수 있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돈이 악입니까? 하나님이 돈이 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이라는 말입니다. 탐욕을 가지는 것이 악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것에 집착하고 쌓아 놓는데 있는 것입니다. 땅에 쌓아 놓는 돈이라는 것은
(1) 불안정하고 유동적입니다.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도적질 해 갑니다.(19). 좀이라는 것은 옷에 기생하여 옷감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동록이라는 것은 금속을 부식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제물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람에 의해 빼앗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지극히 유동적이고 불완전합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주가가 폭락하면 금방 돈의 가치는 반으로 1/3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나는 몇 억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금방 몇 천만원이 날라갑니다. 가족들이 여행하다 사고가 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날라가 버립니다.
(2)탐욕은 우리의 관점을 흐리게 합니다. 눈을 흐리게 합니다.
돈으로 눈이 흐려지면 고칠 약이 없습니다.(21-23). 돈이 모든 것을 가려버립니다. 사람을 왜곡되게 봅니다. 세상을 흐리게 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2)돈을 하늘에 쌓아 놓는데 초점을 맞출 때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돈은 하늘에 쌓아 놓아야 합니다.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은 20절에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하나님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하늘에 쌓아 놓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은 탐욕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 사람을 구제 하기 위해 돈을 쌓는 사람,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을 쌓아 놓는 사람, 교회를 건축하고 선교를 하기 위해 돈을 쌓아 놓는 사람 결코 탐욕의 노예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돈버는 은사도 받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청부가 되어야 합니다. 왜요 하늘에 쌓아 놓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말입니다. 쌓은 목적이 세금을 많이 내기 위해, 직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가난한 이웃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쌓는 것 다 하늘에 쌓아 놓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부자였다는 록펠러도 한 때는 탐욕의 사람이었습니다. 가혹하게 직원들을 부렸습니다. 한 번은 신문기자가 인터뷰하면서 "당신은 참 부자인데 당신이 축적한 이 모든 재물로 당신은 만족하십니까?"라고 했답니다. 그 때 록펠러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록펠러가 대답하기를 "조금만 더."라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쌓기에 급급한 그가 변하였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 사기 당하고 빚독촉에 시달려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가난의 한 때문에 미국 석유 90%를 차지하고도 만족하지 못하여 노동자를 심하게 착취하고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등으로 의사는 죽음을 준비할 것을 선언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 기도하는 중에 더 파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석유 부자가 되었고 질병에서 치유받아 인생이 변했습니다. 땅에 쌓는 인생인 아니라 하늘에 쌓는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백만평이 넘는 12개 대학을 건립하였습니다. 그가 세운 대학 중에 시카코대학은 지금까지 노벨상 52명을 배출한 명문대학입니다. 그가 일평생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렸다고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요.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돈이기 때문에 대학 교회 어디에도 내가 돈을 내어 지은 대학이나 교회라고 쓰지 말라고 당부하였답니다. 그런데 유독 이름을 남긴 교회가 한 곳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에 세워진 록펠러 처치입니다. 아내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아내를 천국에 보내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교회를 세우고 헌당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경제부 기자가 록펠러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36년 동안 세계 제 일의 부자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때 그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물려 주신 것은 십일조 신앙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 8살 때 이제 너 혼자 주일학교에 가라고 보내면서 손에 일주일 쓸 용돈 20센트를 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좋아하는 아들에게 단호하게 그 중 2센트는 너의 것이 아니야 하나님의 것이야 하나님께 드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중에는 십일조만 관리하는 직원 40명을 별도로 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 망하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에 쌓는 사람 결코 이 땅에서 망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땅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늘 나라도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고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 때 돈이 축복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 후에 까지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땅에 쌓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 탐욕으로 연결되면 그 돈과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꼭 필요한 돈은 땅에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이상의 돈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데 써야 합니다.
2. 돈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24-
1)돈을 섬기면 탐욕의 포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돈 아니면 하나님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자 택일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돈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탐욕이라는 호르몬으로 움직이는 제도요 체제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물사관입니다. 존 화이트(John White)는 "공산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을 하고 한편 자본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쟈끄 엘룰(Jascque Ellul)은 '돈은 아무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라고 했습니다. 돈은 절대 군림자입니다. 돈 앞에 사족을 못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름다운 여성도 돈 앞에는 굴복하고 섬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는 돈의 권세 앞에 줄을 서게 됩니다. 예술도, 공부도 이제 이념보다는 돈 순서로 되어져 가는 경향합니다. 돈지 행복을 보장하고 미래를 보장하고 인생을 보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은 경건하게 생각합니다.
부부도 돈 말할 때는 다른 방으로 가서 속삭입니다. 돈의 세력을 무서워합니다. 심지어 돈 앞에서 교회마저 무릎을 꿇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돈이 정신을 지배합니다. 가치관을 마음대로 주무릅니다. 칼 막스는 돈의 위력을 말합니다. '나는 못생긴 사람인데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돈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흐르는 돈은 인간 내면의 저수지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돈을 보물이라고 하고 맘몬이라고 하여 마치 하나님과 견주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을 보아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쌓고 기대고 섬기고 싶은 것이 인간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탐욕의 노예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재물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고 편리하게 해줄 것이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돈이 나로 하여금 프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돈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돈의 위력을 보이기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돈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땅에 쌓아 논 돈이 내 평생에 나를 따르니니 내가 호화로운 집에서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돈을 섬깁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할 것같지만 반드시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돈이 주인이 되어 있으면 돈의 속성상 탐욕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탐욕의 끝은 파멸이 오게 됩니다.
2)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이 계서 우리를 주장하시면 우리는 탐욕의 노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분이 누구십니까?(32)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누구십니까?(26)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는 어떤 경우든 탐욕의 노예는 되지 않습니다. 탐심의 노예가 되면 물질을 우리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우리를 소유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물질의 주인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탐심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참으로 부요해 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배부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가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한 시대 부자로 살았던 다윗이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 18:1-3)"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돈을 쌓아 보았지만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40년 동안 입법 사법 행정을 손위 쥐고 각종 부귀 영화를 누려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진정 탐욕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굉장히 부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테레사 수녀에게 뭐 좀 도와드릴 것이 있습니까? 뭐가 필요하십니까?를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테레사 수녀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저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합니다."
3. 먹을 것 입을 것만 구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31-34)
1)먹을 것 입을 것만 구하면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먹을 것 마시것 입을 것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당연히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머리 둘 곳도 없이 나물이나 먹고 물만 마시고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불교가 아닙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잘못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그릇된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존재보다 소유에 집중된 인생을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릭 프롬은 인간을 소유형의 인간(having mode)과 존재형의 인간(being mode)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더 많은 것을 소유(to hav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존재(to b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소유보다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먹고 사는 것 문제 해결하려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다. 예수 안믿도 먹고 사는 것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식물들도 동물들도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부자되기 위한 목표로 위해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예외없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지 않고 늘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착하는 생활태도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불의를 행합니다. 그저 무엇을 하던 잘먹고 잘사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탐욕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치 않고 스스로 염려와 근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신앙성장을 가로 막습니다. 여러가지 유혹과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아담과 하와의 탐욕, 아간의 탐욕,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탐욕 결국 비참하게 됩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의 돈 재물의 탐욕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가룟유다는 탐심 때문에 스승을 팔고 목 메달아 죽었습니다.
2)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6절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좀더 질 좋은 삶이란 소유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안한 삶은 소유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가 많다고 다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돈으로 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집을 지을 수는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돈으로 식욕까지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달콤한 잠까지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훌륭한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돈은 사실 그 누구도 부하게 만든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하시면서,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세계를 구합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거룩한 소원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을 빼내려면 깨끗한 물을 계속 집어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우리가 탐욕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려면 삶의 현장에서 우선 순위 문제가 명확해야 합니다. 돈과 하나님, 의로운 방법과 불의한 방법,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선택해야 할 현장에서 먼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택함으로 설령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 예견된다하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선택하여 망할 것 같아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는 선하게 살으면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선하게 살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세상이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적 방법을 택하면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잘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가 이 땅에서 회복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무기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실현될 때 다 같이 부자로 사는 가정 부자로 사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 행복하고 진정 삶의 질이 높은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굶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다른 것은 보장해 주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미국 헐리우드(Holywood)에서는 배우들이 모여 조찬을 함께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들은 명사를 초청해서 간단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한번은 절세 미인 한 사람이 주빈으로 초청됐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국의 유명 주간지 "라이프(Life)에 의해 그 나라의 10대 미녀의 한 사람으로 뽑힌자로서 최고의 출연료를 받는 자였습니다. 그녀는 마이크 앞에 나아와 인사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나는 드디어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러자 환호성이 오르고 휘파람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고 박수가 터지더니, 한 사람이 묻기를 : "아니, 그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가 누구란 말이요?"라고 하자 그 미모의 여인은 조용히 대답했답니다 : "나는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회중은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자기는 헐리우드의 인기 배우직을 버리고, 자기의 나머지 생애를 예수님께 바치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녀는 어는 젊은 목사와 결혼한 후 선교지로 떠났습니다.그녀의 이름은 콜린 타운센드 에반스(Colleen Townsend Evans)였습니다. 한번은 빌리그래함 (Billy Graham) 목사가 런던에서 이들 부부와 조찬을 같이 하면서 물었답니다 : "콜린씨, 당신이 취한 그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 "나는 지금의 위치를 헐리우드의 가장 인기 있는 배우의 자리와도, 영국 여왕의 자리와도, 미합중국 대통령의 자리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은 놀라우시고 희안한 분이시니까요...." 탐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우리 주님 모시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하여 일평생 간구하면 사는 길입니다.
쌓기는 하나님의 나라에, 섬기는 대상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돈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될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구하는 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조금이나마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탐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마태복음 6:19-34/김필곤 목사(2002년 4월 21일 대예배)
요컨대 돈은 모든 것이고 돈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교회에서도 돈 이야기하면 긴장합니다. 시사저널을 보니 "핏발 선 한탕 심리 돈 독 오른 정선 가지노, 대박 찾다 쪽박 찬‘환자’들, 지자체, 판돈에 목숨 걸다, 아태재단 계좌 샅샅이 뒤져라." 등의 글이 실려있었습니다.
전국에 한탕주의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액 당첨금을 건 복권과 인터넷 도박은 허황된 일확천금 욕망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신문은 어떻습니까?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들의 처참한 모습이 어느 지면을 보아도 널려있습니다. 백만장자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세상에 돈이라는 우상보다 사람을 더 타락시키는 우상은 없다." 지나치게 집착하는 욕심, 탐욕의 노예가 되면 세상을 더럽게 만들고 자신이 불행해 집니다. 인간 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탐욕이란 무엇입니까?
탐욕은 일반적으로 남에게 속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라고 정의합니다. 어거스틴은 탐심을 설명하기를 '충족한 것보다 우리가 더욱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충분한 것을 가지고도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탐심은 '타바(tabah)'라는 말로 "악한 소유, 또는 불법적인 욕심"을 의미합니다. 이 탐심은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십계명에서는 탐심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십계명을 범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죄가 탐욕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탐욕이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탐욕이 부모를 바로 공경하지 못하게 하고, 살인하게 하고, 간음하게 하고, 도적질하게 하고, 거짓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이 탐심은 결국 우리가 사는 가정과 사회를 무덤처럼 만들어 버리게 합니다. 자신의 건강과 인격을 파괴해 버립니다. 행복을 빼앗아가게 합니다. 유명한 문호 단테에 의하면 탐욕이란 '꺾을 수 없는 원수'라고 지적했습니다. 돈에 탐심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타락하고, 어떤 권력이라도 부패하며, 어떤 나라라도 멸망으로 치닫게 되어 있습니다.
청교도 에스겔 흡킨스는 이 탐욕이 어떻게 인간을 포로로 만드는가를 4단계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첫째 단계는 죄가 우리 안에 형태를 갖추기 전에 악한 생각 또는 죄의 싹이 움트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는 이러한 악한 생각을 채워줄 대상이 나타날 때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부패한 육욕적인 세력과 죄악으로 눈이 멀고 마지막 단계는 탐욕의 포로가 되어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멸망의 단계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탐욕의 포로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쌓다, 섬기다, 구하다"라는 문맥을 통하여 세가지 방법을 찾아 보기를 원합니다.
1.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여야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19-23).
1)돈을 땅에 쌓는데 초점을 두면 탐욕의 포로가 됩니다.
돈이라는 것이 죄일까요? 부자가 되는 것이 죄일까요? 성경은 부자가 되는 것을 막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돈이라는 것은 가치 중립적인 것입니다. 사용자에 따라 칼과 같이 선하게도 악하게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부자였습니다. 그들이 부자라는 한가지 이유로 정죄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한 형태이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듯이 다 돈 잘 벌 수는 없는 것입니다. 탈라트입니다. 잘 개발하여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잠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질이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좋은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여름에 시원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좋은 차를 탈 수 있습니다. 질병에서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자식들로 부터도 대접을 받습니다. 여행을 다닐 수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습니다. 좋은 옷도 입을 수 있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노후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돈이 악입니까? 하나님이 돈이 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이라는 말입니다. 탐욕을 가지는 것이 악이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그것에 집착하고 쌓아 놓는데 있는 것입니다. 땅에 쌓아 놓는 돈이라는 것은
(1) 불안정하고 유동적입니다.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둑이 도적질 해 갑니다.(19). 좀이라는 것은 옷에 기생하여 옷감을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동록이라는 것은 금속을 부식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제물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람에 의해 빼앗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라는 것은 지극히 유동적이고 불완전합니다. 금리가 떨어지면 주가가 폭락하면 금방 돈의 가치는 반으로 1/3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나는 몇 억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가 금방 몇 천만원이 날라갑니다. 가족들이 여행하다 사고가 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날라가 버립니다.
(2)탐욕은 우리의 관점을 흐리게 합니다. 눈을 흐리게 합니다.
돈으로 눈이 흐려지면 고칠 약이 없습니다.(21-23). 돈이 모든 것을 가려버립니다. 사람을 왜곡되게 봅니다. 세상을 흐리게 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2)돈을 하늘에 쌓아 놓는데 초점을 맞출 때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돈은 하늘에 쌓아 놓아야 합니다.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은 20절에 보십시오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하나님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하늘에 쌓아 놓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은 탐욕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 사람을 구제 하기 위해 돈을 쌓는 사람,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을 쌓아 놓는 사람, 교회를 건축하고 선교를 하기 위해 돈을 쌓아 놓는 사람 결코 탐욕의 노예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돈버는 은사도 받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아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청부가 되어야 합니다. 왜요 하늘에 쌓아 놓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말입니다. 쌓은 목적이 세금을 많이 내기 위해, 직원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가난한 이웃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쌓는 것 다 하늘에 쌓아 놓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부자였다는 록펠러도 한 때는 탐욕의 사람이었습니다. 가혹하게 직원들을 부렸습니다. 한 번은 신문기자가 인터뷰하면서 "당신은 참 부자인데 당신이 축적한 이 모든 재물로 당신은 만족하십니까?"라고 했답니다. 그 때 록펠러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록펠러가 대답하기를 "조금만 더."라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쌓기에 급급한 그가 변하였습니다.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다 사기 당하고 빚독촉에 시달려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가난의 한 때문에 미국 석유 90%를 차지하고도 만족하지 못하여 노동자를 심하게 착취하고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등으로 의사는 죽음을 준비할 것을 선언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일어나 기도하는 중에 더 파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석유 부자가 되었고 질병에서 치유받아 인생이 변했습니다. 땅에 쌓는 인생인 아니라 하늘에 쌓는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백만평이 넘는 12개 대학을 건립하였습니다. 그가 세운 대학 중에 시카코대학은 지금까지 노벨상 52명을 배출한 명문대학입니다. 그가 일평생 4928개의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드렸다고합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어느 곳에도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 돈은 내 돈이 아니요.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돈이기 때문에 대학 교회 어디에도 내가 돈을 내어 지은 대학이나 교회라고 쓰지 말라고 당부하였답니다. 그런데 유독 이름을 남긴 교회가 한 곳있습니다. 시카고 대학에 세워진 록펠러 처치입니다. 아내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아내를 천국에 보내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교회를 세우고 헌당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경제부 기자가 록펠러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36년 동안 세계 제 일의 부자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 때 그는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물려 주신 것은 십일조 신앙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 8살 때 이제 너 혼자 주일학교에 가라고 보내면서 손에 일주일 쓸 용돈 20센트를 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좋아하는 아들에게 단호하게 그 중 2센트는 너의 것이 아니야 하나님의 것이야 하나님께 드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중에는 십일조만 관리하는 직원 40명을 별도로 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 망하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에 쌓는 사람 결코 이 땅에서 망하지 않습니다. 성공의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치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땅만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늘 나라도 있습니다.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고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살 때 돈이 축복이 되고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 후에 까지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땅에 쌓아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 탐욕으로 연결되면 그 돈과 함께 망하는 것입니다. 꼭 필요한 돈은 땅에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이상의 돈은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데 써야 합니다.
2. 돈을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야 탐욕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24-
1)돈을 섬기면 탐욕의 포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은 돈 아니면 하나님을 섬길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자 택일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돈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탐욕이라는 호르몬으로 움직이는 제도요 체제입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물사관입니다. 존 화이트(John White)는 "공산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을 하고 한편 자본주의 유물론은 돈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다 같은 말입니다 쟈끄 엘룰(Jascque Ellul)은 '돈은 아무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라고 했습니다. 돈은 절대 군림자입니다. 돈 앞에 사족을 못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름다운 여성도 돈 앞에는 굴복하고 섬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는 돈의 권세 앞에 줄을 서게 됩니다. 예술도, 공부도 이제 이념보다는 돈 순서로 되어져 가는 경향합니다. 돈지 행복을 보장하고 미래를 보장하고 인생을 보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돈은 경건하게 생각합니다.
부부도 돈 말할 때는 다른 방으로 가서 속삭입니다. 돈의 세력을 무서워합니다. 심지어 돈 앞에서 교회마저 무릎을 꿇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돈이 정신을 지배합니다. 가치관을 마음대로 주무릅니다. 칼 막스는 돈의 위력을 말합니다. '나는 못생긴 사람인데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돈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흐르는 돈은 인간 내면의 저수지에서 결코 넘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돈을 보물이라고 하고 맘몬이라고 하여 마치 하나님과 견주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을 보아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쌓고 기대고 섬기고 싶은 것이 인간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탐욕의 노예가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재물이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고 편리하게 해줄 것이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돈이 나로 하여금 프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돈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돈의 위력을 보이기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돈이 나와 함께 하심이라... 땅에 쌓아 논 돈이 내 평생에 나를 따르니니 내가 호화로운 집에서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을 섬기듯 돈을 섬깁니다. 그러나 재물이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할 것같지만 반드시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돈이 주인이 되어 있으면 돈의 속성상 탐욕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탐욕의 끝은 파멸이 오게 됩니다.
2)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이 계서 우리를 주장하시면 우리는 탐욕의 노예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아시는 분이 누구십니까?(32)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 누구십니까?(26)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는 어떤 경우든 탐욕의 노예는 되지 않습니다. 탐심의 노예가 되면 물질을 우리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우리를 소유로 삼아버리는 것입니다. 물질의 주인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탐심으로부터 해방되려면 참으로 부요해 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배부른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가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한 시대 부자로 살았던 다윗이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시 18:1-3)"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돈을 쌓아 보았지만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40년 동안 입법 사법 행정을 손위 쥐고 각종 부귀 영화를 누려본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진정 탐욕의 노예로부터 벗어나 부자가 되는 길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굉장히 부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테레사 수녀에게 뭐 좀 도와드릴 것이 있습니까? 뭐가 필요하십니까?를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테레사 수녀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저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합니다."
3. 먹을 것 입을 것만 구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31-34)
1)먹을 것 입을 것만 구하면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먹을 것 마시것 입을 것 생각하는 것이 죄입니까? 아닙니다. 당연히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저 머리 둘 곳도 없이 나물이나 먹고 물만 마시고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불교가 아닙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잘못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그릇된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존재보다 소유에 집중된 인생을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에릭 프롬은 인간을 소유형의 인간(having mode)과 존재형의 인간(being mode)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소유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더 많은 것을 소유(to hav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존재형의 인간이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인간답게 존재(to be)하는데 두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소유보다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먹고 사는 것 문제 해결하려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다. 예수 안믿도 먹고 사는 것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식물들도 동물들도 기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부자되기 위한 목표로 위해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예외없이 탐욕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생각하지 않고 늘 먹고 마시는 것에만 집착하는 생활태도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불의를 행합니다. 그저 무엇을 하던 잘먹고 잘사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탐욕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치 않고 스스로 염려와 근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신앙성장을 가로 막습니다. 여러가지 유혹과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아담과 하와의 탐욕, 아간의 탐욕,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탐욕 결국 비참하게 됩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의 돈 재물의 탐욕 때문에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가룟유다는 탐심 때문에 스승을 팔고 목 메달아 죽었습니다.
2)우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6절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좀더 질 좋은 삶이란 소유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편안한 삶은 소유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유가 많다고 다 행복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돈으로 할 수 없습니다. 돈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우리가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집을 지을 수는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살 수는 있지만 돈으로 식욕까지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 수 있지만 돈으로 달콤한 잠까지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훌륭한 정치가였던 세네카는 "돈은 사실 그 누구도 부하게 만든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하시면서,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세계를 구합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거룩한 소원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을 빼내려면 깨끗한 물을 계속 집어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우리가 탐욕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려면 삶의 현장에서 우선 순위 문제가 명확해야 합니다. 돈과 하나님, 의로운 방법과 불의한 방법,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를 선택해야 할 현장에서 먼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택함으로 설령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 예견된다하여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선택하여 망할 것 같아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는 선하게 살으면 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선하게 살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세상이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적 방법을 택하면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잘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가 이 땅에서 회복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무기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실현될 때 다 같이 부자로 사는 가정 부자로 사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 행복하고 진정 삶의 질이 높은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굶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살면 다른 것은 보장해 주십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미국 헐리우드(Holywood)에서는 배우들이 모여 조찬을 함께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들은 명사를 초청해서 간단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한번은 절세 미인 한 사람이 주빈으로 초청됐다고 합니다. 그녀는 미국의 유명 주간지 "라이프(Life)에 의해 그 나라의 10대 미녀의 한 사람으로 뽑힌자로서 최고의 출연료를 받는 자였습니다. 그녀는 마이크 앞에 나아와 인사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습니다 :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나는 드디어 사랑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러자 환호성이 오르고 휘파람 소리가 여기 저기서 나고 박수가 터지더니, 한 사람이 묻기를 : "아니, 그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가 누구란 말이요?"라고 하자 그 미모의 여인은 조용히 대답했답니다 : "나는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회중은 갑자기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여인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자기는 헐리우드의 인기 배우직을 버리고, 자기의 나머지 생애를 예수님께 바치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후 그녀는 어는 젊은 목사와 결혼한 후 선교지로 떠났습니다.그녀의 이름은 콜린 타운센드 에반스(Colleen Townsend Evans)였습니다. 한번은 빌리그래함 (Billy Graham) 목사가 런던에서 이들 부부와 조찬을 같이 하면서 물었답니다 : "콜린씨, 당신이 취한 그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 "나는 지금의 위치를 헐리우드의 가장 인기 있는 배우의 자리와도, 영국 여왕의 자리와도, 미합중국 대통령의 자리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 주님은 놀라우시고 희안한 분이시니까요...." 탐욕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우리 주님 모시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하여 일평생 간구하면 사는 길입니다.
쌓기는 하나님의 나라에, 섬기는 대상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돈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될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구하는 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조금이나마 탐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탐욕으로부터 해방되는 길/마태복음 6:19-34/김필곤 목사(2002년 4월 21일 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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