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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갈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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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4. 5. 성찬(종려)주일 4부 설교 |
<서론>
오늘 저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겨우 몇 사람의 성도가 모인 중에 김수미라는 자매님이 교회 출석했습니다. 일찌감치 청춘과부가 되어서 외아들을 기르는 자매님인데 행상을 하고 있었어요. 전도를 받아서 교회 나와서 예수를 믿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어요. 주일날 교회 나오고 새벽기도 나오고 철야기도도 하고 열심히 행상을 해서 사는데 한 1년쯤 신앙이 상당히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찾아와서 날보고 “전도사님, 이제 그만 믿을까 합니다.” “무슨 말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에 고통이 없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어서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이 늙어서 자식 다 키워놓고 할 일없을 때 다시 교회 나오겠으니 오늘 작별인사를 하렵니다.” “아니 무슨 이유로 그렇습니까?”하니까 “부끄럽지만은 행상을 하자면 거짓말을 해야 됩니다. 물건 값을 비싸게 주고 사서 싸게 판다고 말하고 물건도 좋지 않은 것을 좋은 물건이라고 과장을 해서 팔아야 되는데 옛날에는 그렇게 해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집에 오면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나와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하고 난 다음에 나와서 또 그 짓을 합니다. 또 회개하고 또 그 짓을 하고 자꾸 그럴 바에야 내가 안 믿는 것이 낫지 이런 위선적인 생활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즐겁더니 이제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자마자 우리 안에서 육과 영의 전쟁이 일어나는 체험을 다 갖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육만 살았으니까 영이 없으니까 전쟁이 안 일어나지요. 그러나 내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이 부활했기 때문에 영혼이 하나님이 섬기려 나가는데 육체는 마귀와 세상을 따라 나가려고 하니까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내가 나의 주인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산 것은 내 영이 죽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저항력이 없어서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자 영혼이 살아 일어나서 겉 사람 즉 육체의 사람과 주권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육체적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영적인 사람이 주권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그것을 로마서 7장 14절로 24절에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 선생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 개인의 생애 속에 체험한 체험담인 것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내 겉사람은 세상과 마귀를 좋아해서 따라간다. 이 두 사람이 내 속에서 맹렬한 싸움을 하고 있으니 그가 갈라져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것입니다.
어느 알콜 중독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아무리 술을 먹지 않으려고 마음으로 노력하고 결심해도 술의 엄청난 유혹과 무자비한 욕망을 이길 수가 없다.” 제가 불광동에서 유화문씨라고 함경북도 북청에서 피난 온 분인데 10년 동안 알콜 중독자로써 한시도 빼지 않고 술을 먹습니다. 그가 지나가면 술독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난 다음 그와 저와 석달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석달을 기도해도 그는 교회 따라 나와서 기도를 하니 술맛이 더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절대 자기 힘으로 술을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석 달 이후에 하나님 성령이 역사하니까 아주 짐승처럼 꿀꿀 거리면서 기절을 해서 쓰러져 있어요. 그래서 부인이 빨리 집에 와서 도와 달라고 해서 가니까 꿀꿀꿀 돼지같이 꿀꿀 거리면서 아주 눈을 뒤집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고 안수해 주고 나니 잠이 드는 것을 보고 왔는데 그 하루만에 깨끗이 알콜 중독에서 놓여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안돼요.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돼요. 하나님이 역사해야 알콜 중독에서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약으로 인한 약물 중독자도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나는 마약의 악마적인 요구를 나의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의지로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내 인생은 마약의 노예이며 노리개입니다.” 마약하는 사람, 마약의 노리개요, 노예인 것입니다. 그 악마적인 요청에 이겨낼 수 없습니다. 도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에 잡혀 놓으면 가산 다 탕진하고 부모, 형제, 자식도 눈에 안보입니다.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그 욕구에 도저히 대항해서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몇 해 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중 5명 가운데 1명이 알콜 중독자이고 마약 중독자 수가 무려 30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하는 것이니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최근 일어나는 살인 사건 가운데 남자의 85%, 여자의 38%가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말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재정신이 아닌 가운데 사람을 죽였어요. 술과 마약은 처음엔 쾌감을 주나 그 후에는 양심을 마비시키고 인격을 중독 시켜 인생을 결국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런 일은 우리 육신이 죄와 마귀의 종 된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한 몸 안에 있는 두 주인
우리 안에 첫 주인인 우리 육신이 죄와 마귀의 종으로 태어나 살았기 때문에 죄와 마귀에게 끌리는 데로 끌려가서 그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둘째 주인이 생겼습니다.
구원받은 신령한 사람, 의와 예수님의 종 된 사람이 태어났어요. 죄의 무덤에 잠겨 있다가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해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몸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어요. 육신이 첫째 주인이었는데 얼토당토않게 영혼이라는 다른 주인이 생겨나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살아났지요.
로마서 6장 6절로 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와 함께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속사람이 일어나서 의롭다함을 입고 주님을 따라서 살겠다고 하니까 겉사람이 가만히 있습니까? 반발을 하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끝이 없는 싸움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해놓고 난 다음에 믿고 나니까 마음에 굉장한 갈등만 있더라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속사람은 희망이 생기고 꿈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넘쳐나서 참 기쁘지만 겉사람은 굉장히 고통스럽거든요. 세상과 마귀와 세상 쾌락과 세상 친구들과 이 사람들의 세상을 끌고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대적하니까 굉장히 육의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란 끝없는 싸움
처음 신앙인은 거듭나서 천국인이 되었으나 반은 육의 사람이고 마귀와 죄를 따라가고 반은 영적 사람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 내 몸이 반쪽이 났어요. 그리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로 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자, 죽이고 살리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육신 따라가면 영은 죽는다. 영이 살려면 육신은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일어나는 싸움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 살벌한 싸움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찡그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서로 엉켜서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영과 육이 끊임없이 레슬링 시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평안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전개되는 성령과 악령의 다툼은 끝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 5절로 6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은 자꾸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영화 보니 참 좋더라. 술 마시니 좋더라. 도박하니 좋더라. 음란하고 방탕하니 좋더라. 세상 쾌락을 찾아가니 좋더라. 그리 따라가라. 오늘 주일인데 그리 친구들하고 놀러가라. 교회가지 마라.” 그런 생각을 자꾸 줍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은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고 죄에서 놓여나서 거듭났으니 성령이 마음속에 계시니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예배드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말씀 읽고 기도해야 된다.”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붙고 마음이 요란스러우니까 바울선생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의 힘으로 건져낼 수 없는 것입니다. 영과 육의 치열한 싸움, 마귀와 성령과의 치열한 싸움이 우리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인디언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한 일을 가르쳤습니다. 노인이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 싸움은 너무나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 체하고 자신의 거짓 자아를 나타낸단다. 그러나 다른 놈은 선한 늑대로써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 같은 싸움이 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도 살아가면서 이 두 마리의 늑대가 너희 속에서 끊임없이 싸운단다.” 그러니까 손자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할아버지 그러면 어느 늑대가 이깁니까?” 그래서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면서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아주 현명한 대답입니다. 어느 늑대가 이기느냐. 나쁜 놈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그 힘을 얻어 가지고 나쁜 놈의 늑대가 이기고 좋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좋은 늑대가 힘을 얻어서 나쁜 늑대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육에 자꾸 양식을 먹입니다. 육을 따라서 세상을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고 술 취하고 방종하고 방탕하면 육을 자꾸 키워주는 것이 되는 것인데 육이 힘을 내어서 영을 뒤엎어 버리지요.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고 성도와 교통이 많아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을 자꾸 먹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 힘을 얻어 가지고서 육을 눌러 버리고 육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편을 먹여 주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전개되는 선과 악, 성령과 악령의 다툼으로 인한 끝없는 싸움은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싸움으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육과 영이 각각 50% 정도 차지하면 꽤 자란 성도지요. 육이 한 50%, 영이 한 50% 싸우면 근사근사한 싸움이 되면 그래도 꽤 자란 성도인 것입니다. 영이 한 70% 하면 꽤 장성한 성도가 되지요. 물론 100% 영이 점령하면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100% 거하면 완전한 승리가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영이 점점 자라고 육을 자꾸 죽이고 성령이 우리 마음을 더 점령하고 악령을 자꾸 쫓아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으로 변화되는 것이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로 21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렇게 되면 100%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겠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다. 이정도 되면 육이 꼼작 못합니다. 세상과 마귀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내가 사는 것이 세상도 있고 하늘나라도 있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 육도 있고 영도 있고 그렇게 되면 끊임없는 투쟁과 마음에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회개하고 그 다음날 또 그 죄짓고 또 회개하고 그 죄짓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냐면 마귀가 와서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너는 천당 못 간다.” 그래서 낙심해서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히 죄는 용서함 받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싸움은 성결의 싸움인 것입니다. 얼마나 더 거룩하게 되느냐. 30%, 70%, 100% 거룩하게 되는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전쟁은 예수님이 전쟁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영원히 다 갚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빚은 다 청산 되었으니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은 받아 나았지만은 구원받은 다음에 성결하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결한 싸움이 바로 육과 영의 싸움이요, 마귀와 성령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결하게 되면 될수록 우리 신앙이 자라고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주님과 더 가까이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육이 강하고 영이 약할수록 하늘나라 가면 주님께로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영광도 광채도 적게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구원은 받아 놓았으니까 그 구원을 받아 놓은 터전 위에서 우리는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해도 좋아요. 천 번, 만 번 회개해도 좋아요. 회개를 자꾸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므로 우리가 서서히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회개하고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있느냐? 자꾸 죄짓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이 주인이 마음에 되기까지 항상 우리가 투쟁을 해야 되는 것인데 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을 때 영적으로는 우리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정욕과 탐심이 우리에게 일어나서 우리를 휘어잡을 때 우리는 도저히 못 이긴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보면 내용적으로 벌써 정욕과 탐심은 이빨 빠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심하고 싸우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협박을 하고 공갈을 하고 고함을 치지만 실상은 이빨 빠진 호랑이인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십자가를 가지고서 대결하면 이미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 나는 십자가에서 내 자신을 못 박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언제나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하면 그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요사이 봄이 오는 것 보십시오. 봄이 다 왔는가 하면은 또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오는가 하면 또 봄이 오고 꽃이 피는가 하면 또 눈이 오고 눈이 오는가 하면 또 단비가 내리고 왔다갔다 왔다갔다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봄이 오고 겨울은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한번 주님께 은혜 받아서 굉장히 행복했으나 또 죄를 짓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그 다음 또 회개하고 일어나면 또 신앙이 자랐다가 또 쓰러지고 그런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부흥사였던 시카고의 미국 D.L.무디 목사도 그가 처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고 다니고 했다가 그 다음 세월이 흘러가니까 신앙이 다 식어져 버리고 세상으로 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서 또 기도하고 성령을 받으면 된다고 그래서 기도를 산에 가서 산 기도를 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성령을 받고 난 다음 또 믿음이 살아서 아주 불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도 얼마 세월이 지나니까 식어 버렸습니다. 또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D.L. 무디 목사님은 말하기를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신앙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탄식하셨다가 어느 선배 목사님이 “네가 음식을 먹지 아니하면 아무리 신체가 튼튼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음식을 먹어야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너는 신앙인으로 거듭났지만 음식을 안 먹는다. 성경을 먹어야 힘을 얻어서 마귀와 싸워서 이기지 성경을 안 먹으니까 약해지지 않느냐.”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양식이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의 양식인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성찬을 부지런히 떼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성찬을 등한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입니다. 카톨릭교에서는 말씀은 등한이 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성찬은 매주일 떼니까 성찬의 양식을 먹습니다. 성찬이 영적 양식이에요. 이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가 여러분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서 영적으로 살아나게 하고 말씀을 읽어야 영적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강하게 되려면 반드시 말씀을 읽고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말씀을 읽고 성찬에 참여하면 영양이 튼튼해져서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암환자가 죽는 것은 대다수 영양실조가 되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암이 걸려서 아프니까 이제 나는 죽는다고 낙심해서 밥을 안 먹습니다. 입맛도 떨어지고 하니까. 기운이 빠지니까 저항력을 잃어버리고 암이 공격해서 죽지요. 모든 병이 결국은 영양실조로 저항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병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강제로라도 먹고 억지로라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투쟁하고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에 힘이 있어야 저항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은 읽기 싫어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몰라도 읽어야 돼요. 창세기, 출애굽기는 좀 쉬운데 레위기에 들어가면 제사예식에 대해서 읽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무조건하고 읽어 놓으면 그 글자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성실하게 성경을 읽고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찬에 참여해서 성찬을 엄숙하게 받아 들이면 영양실조가 안 되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점령한 나의 삶을 하나하나 예수님께 내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일 처음에는 내가 나를 점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예수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점점 우리를 점령해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육체와 성령 예수님과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성찬을 떼고 성령이 충만해지면 하나님 편에 서서 힘이 생기기 때문에 점점 육체인 나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주인인 내가 예수님의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이제 내가 주장하고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께서 살아서 주님이 내 주인이 되고 나는 주님을 섬기는 일꾼이요 머슴이요 시종이요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이제는 나는 죽은 자요, 예수님이 부활해 사셨으므로 예수님이 내 속에서 주인으로 살게 된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여러분의 현실은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에 예수님이 살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알고 마귀에게 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게 믿음을 강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속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아들 예수님이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살면 자기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산 우리를 점령했으니까 얼마나 우리를 돌보아 주시겠습니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언제나 자기 전에 창문가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가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것이지요. 내 일생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하나님 것이지요. 오늘 이 하룻밤이 내 밤입니까? 하나님 밤입니까? 하나님 것이지요. 그러면 나 안심하고 잘랍니다.” 우주가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돼요. 인생이 내 삶이면 내가 걱정해야 돼요. 자고 깨는 것이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돼요. 그러나 내가 아닌 예수님이 마음에 점령하면 예수님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짐을 야훼께 맡겨라. 그리하면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내가 책임을 다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인이 안 되면 예수님이 주인이 되면 예수님께 짐을 다 맡기면 예수님이 맡아서 능력으로 주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짖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모르고 오늘 내 주위에 일어날 일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겨 놓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한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점령한 나의 삶을 하나도 없이 예수님께 내어 놓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면 주인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은 당신의 소유물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의로움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보혈로 다 용서하고 의로움을 주님께서 가지고서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모든 더러움을 다 씻어 버리고 성령으로 거룩함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우리의 병과 연약을 다 청산해 버리고 치료와 건강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모든 저주의 가시채와 엉겅퀴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속에 주인으로 들어올 때는 죽어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영생복락 천국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인생이 얼마나 보배로워지는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영이 죽고 난 다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도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가 되고 추함의 노예가 되고 질병의 노예가 되고 저주와 가난의 노예가 되고 멸망과 지옥의 노예가 되어서 비참하게 삽니다. 오늘 사람들은 나는 부자라 내가 부족함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그것은 겉으로 잠시 있다 사라지는 물질적인 부자요, 영으로는 헐벗고 가난하고 눈멀고 귀멀고 벙어리 되고 절망에 처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어오면 이것이 다 달라져 버리고 말아요.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 들어오는 태양처럼 빛을 비취며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치료를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영생 복락 천국을 주시고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2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택이 뭡니까?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3~5) 이게 하나님의 은택이니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다 청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병을 다 치료해 버리는 것입니다. 소원을 일으켜 주시고 파멸을 멸하여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동안에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고난이 다가와도 예수님이 그 고난을 다 변하여 선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냐 칼이랴 죽음이랴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는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승리자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인을 우리가 확실히 모시는 생활이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성자일수록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하고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이 상급을 받았을 때 기자가 물었었습니다. “일평생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는 죄 덩어리요. 죄밖에 지은 것이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처럼 겸손하고 거룩하고 착하게 사는 분이 자기 일생은 죄 덩어리라고 말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깊을수록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말하며, 자기는 죄 덩어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적당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나쁘지 않다고 그럽니다. “내가 뭐 그리 나쁘냐?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사는데..” 그리고 고약한 사람은 “내가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지 누가 바르게 사느냐? 내가 사는 것이 바르게 산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을 들어볼 때 자기가 올바르게 살았다. 자기가 바르게 살았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고약한 놈인 줄 아십시오. 그러나 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봐서 나 다른 사람보다 별로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처럼 산다고 하면 그것 중간쯤 나쁜 사람인줄 알고 교회 열심히 나오는 장로님, 권사님, 목사님이 나는 죄 덩어리입니다. 나는 죄밖에 없어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삽니다. 그러면 신령한 사람인줄 아십시오. 겸손하고 자기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죄 가운데서 어머니 뱃속에 잉태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죄를 우리에게 상속으로 주었었습니다. 아담의 피를 받은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원죄를 걸머지고 태어나서 일평생을 살면서 지은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죄 덩어리요, 우리의 힘으로 절대로 씻고 씻어도 정결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오면 청산해 버리지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 죄를 걸머지고 하나도 없이 고통을 통해서 다 청산해 버리고 내가 다 갚았다고 하고 세상을 뜨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죽어서 무덤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죄를 다 털어 버리고 감옥에서 나와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밖에는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게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조금이라도 거기에 보태고 빼려고 하면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해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우리의 싸움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인지 영적인 사람이 구원을 아직 받지 않은 육적인 사람과 끊임없이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이미 이겨놓은 싸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육을 데리고서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꾸 달려드는 것입니다. 한평생에 육을 입고 사는 이상 육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고 성도와 교제를 하고 성찬 떼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영을 자꾸 먹여서 영이 자라서 육체를 눌러 버리고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우찌무라 간조는 “결심”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심, 또 결심, 결심을 하는 것은 결심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결심, 결심, 결심을 하는데도 아무리 결심을 해도 결심은 다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으로 결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의지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 십자가를 통해서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이 와서 붙들어 주어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결심을 해도 또 그 결심은 깨어집니다. 또 결심을 해도 또 깨어지는 것입니다. 안하는 것보다 낮지만 그러나 자꾸 깨어지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간이지만 우리가 힘이 없으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는데 알콜 중독자가 자기 힘으로 알콜 중독에서 놓여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오시면 놓아주고 아편 중독자가 자기 힘으로 아편에서 놓여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오시면 도와주시고 도박광이 자기 힘으로 도박에서 놓여나지 못합니다. 제가 젊을 때 목포에 가서 부흥회를 했는데 헌금 거둘 때 집사님 한분이 헌금통을 가지고 나오는데 열손가락이 다 없어요. 몽당손이에요. 그래서 내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저 집사님은 열손가락이 다 없이 몽당손입니까?” “목사님 말도 마십시오. 저 사람은 목포가 다 아는 도박꾼입니다. 도박을 해서 살림을 탕진하고 형제들 살림까지 다 탕진하고 형제들이 모여 가지고서 그 작두에다가 손을 넣어 가지고 잘라 버렸습니다. 붕대를 감아서 나을 때를 기다리니 낫고 나니까 그 몽당손으로 도박을 합니다. 그래서 부인보고 돈 안 빌려 온다고 늘 부인을 때리는데 부인이 교회 와서 숨어 있다가 잡혀서 무등산으로 끌고 올라가서 그 산에서 바위 위에서 밀어 내려고 옷도 내가 도박하는데 써야 되겠다고 옷도 벗어라. 옷을 다 빨게 벗겨 버리고 할 말 있으면 마지막 말하고서 내가 널 밀어 버리겠다. 그런데 내가 한번 기도하고 가겠다고..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 사람에게 시집와서 나는 예수님 구원 받았으나 이 사람은 도박의 종이 되어서 이렇게 폐인이 되었는데 구원 받지 못하게 하고 가는 것이 한입니다. 하나님 나는 죽지만 내 마지막 기도를 들어서 이 사람이 구원받아 새사람이 되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뭐가 바스락 하더랍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기도 다했으니까 날 밀어 내리십시오. 그러니까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자기 몽당손가락을 또 깨물어서 깨었어요. 피를 흘리면서 울면서 하는 말이 여보 당신 기도를 들으니까 내 마음이 녹아진다. 내 힘으로 도박을 없앨 수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당신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내가 살아나겠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부인이 남편을 안고 바위 위에서 기도를 하고 교회를 데려와서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하고 깨끗이 도박에서 해방 되어가지고서 그 교회 집사가 되었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박이 형제들이 모여서 손가락을 다 잘라 버려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되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기도해야 돼요. 아침에도 기도해야 되고 점심때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하나님 성령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거룩하게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 주셔서 성령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분량이 충분히 자란 성도가 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되신 만큼 참 평안과 기쁨과 천국의 소망과 확신이 들어오고 마귀와 죽음에 대한 담대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마음속에 충만히 거하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우리 마음속에 끝없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초신자 때는 싸움이 더 맹렬하나 점점 신앙이 자라면 싸움에 일방적인 승리를 하기 때문에 점점 더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말씀을 먹고 성찬을 떼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를 통해서 육의 사람, 마귀의 사람을 다 이겨 버리고 성령의 사람, 영의 사람, 속사람이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저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해서 겨우 몇 사람의 성도가 모인 중에 김수미라는 자매님이 교회 출석했습니다. 일찌감치 청춘과부가 되어서 외아들을 기르는 자매님인데 행상을 하고 있었어요. 전도를 받아서 교회 나와서 예수를 믿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어요. 주일날 교회 나오고 새벽기도 나오고 철야기도도 하고 열심히 행상을 해서 사는데 한 1년쯤 신앙이 상당히 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찾아와서 날보고 “전도사님, 이제 그만 믿을까 합니다.” “무슨 말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내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음에 고통이 없었는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하루도 쉬지 않고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이 있어서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이 늙어서 자식 다 키워놓고 할 일없을 때 다시 교회 나오겠으니 오늘 작별인사를 하렵니다.” “아니 무슨 이유로 그렇습니까?”하니까 “부끄럽지만은 행상을 하자면 거짓말을 해야 됩니다. 물건 값을 비싸게 주고 사서 싸게 판다고 말하고 물건도 좋지 않은 것을 좋은 물건이라고 과장을 해서 팔아야 되는데 옛날에는 그렇게 해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집에 오면 양심에 가책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나와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하고 난 다음에 나와서 또 그 짓을 합니다. 또 회개하고 또 그 짓을 하고 자꾸 그럴 바에야 내가 안 믿는 것이 낫지 이런 위선적인 생활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즐겁더니 이제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자마자 우리 안에서 육과 영의 전쟁이 일어나는 체험을 다 갖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육만 살았으니까 영이 없으니까 전쟁이 안 일어나지요. 그러나 내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이 부활했기 때문에 영혼이 하나님이 섬기려 나가는데 육체는 마귀와 세상을 따라 나가려고 하니까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내가 나의 주인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산 것은 내 영이 죽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저항력이 없어서 내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자 영혼이 살아 일어나서 겉 사람 즉 육체의 사람과 주권 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육체적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영적인 사람이 주권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그것을 로마서 7장 14절로 24절에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 선생이 기록한 것입니다. 그 개인의 생애 속에 체험한 체험담인 것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내 겉사람은 세상과 마귀를 좋아해서 따라간다. 이 두 사람이 내 속에서 맹렬한 싸움을 하고 있으니 그가 갈라져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한 것입니다.
어느 알콜 중독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아무리 술을 먹지 않으려고 마음으로 노력하고 결심해도 술의 엄청난 유혹과 무자비한 욕망을 이길 수가 없다.” 제가 불광동에서 유화문씨라고 함경북도 북청에서 피난 온 분인데 10년 동안 알콜 중독자로써 한시도 빼지 않고 술을 먹습니다. 그가 지나가면 술독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난 다음 그와 저와 석달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석달을 기도해도 그는 교회 따라 나와서 기도를 하니 술맛이 더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절대 자기 힘으로 술을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석 달 이후에 하나님 성령이 역사하니까 아주 짐승처럼 꿀꿀 거리면서 기절을 해서 쓰러져 있어요. 그래서 부인이 빨리 집에 와서 도와 달라고 해서 가니까 꿀꿀꿀 돼지같이 꿀꿀 거리면서 아주 눈을 뒤집고 몸부림을 치는 것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고 안수해 주고 나니 잠이 드는 것을 보고 왔는데 그 하루만에 깨끗이 알콜 중독에서 놓여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안돼요.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돼요. 하나님이 역사해야 알콜 중독에서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약으로 인한 약물 중독자도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나는 마약의 악마적인 요구를 나의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의지로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내 인생은 마약의 노예이며 노리개입니다.” 마약하는 사람, 마약의 노리개요, 노예인 것입니다. 그 악마적인 요청에 이겨낼 수 없습니다. 도박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박에 잡혀 놓으면 가산 다 탕진하고 부모, 형제, 자식도 눈에 안보입니다.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그 욕구에 도저히 대항해서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몇 해 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중 5명 가운데 1명이 알콜 중독자이고 마약 중독자 수가 무려 30만 명 이상이 된다고 하는 것이니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많습니까? 최근 일어나는 살인 사건 가운데 남자의 85%, 여자의 38%가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말했습니다. 술에 취해서 재정신이 아닌 가운데 사람을 죽였어요. 술과 마약은 처음엔 쾌감을 주나 그 후에는 양심을 마비시키고 인격을 중독 시켜 인생을 결국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이런 일은 우리 육신이 죄와 마귀의 종 된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론>
1. 한 몸 안에 있는 두 주인
우리 안에 첫 주인인 우리 육신이 죄와 마귀의 종으로 태어나 살았기 때문에 죄와 마귀에게 끌리는 데로 끌려가서 그 쇠사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둘째 주인이 생겼습니다.
구원받은 신령한 사람, 의와 예수님의 종 된 사람이 태어났어요. 죄의 무덤에 잠겨 있다가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해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몸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왔어요. 육신이 첫째 주인이었는데 얼토당토않게 영혼이라는 다른 주인이 생겨나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영원히 살아났지요.
로마서 6장 6절로 7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와 함께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속사람이 일어나서 의롭다함을 입고 주님을 따라서 살겠다고 하니까 겉사람이 가만히 있습니까? 반발을 하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끝이 없는 싸움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해놓고 난 다음에 믿고 나니까 마음에 굉장한 갈등만 있더라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속사람은 희망이 생기고 꿈이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넘쳐나서 참 기쁘지만 겉사람은 굉장히 고통스럽거든요. 세상과 마귀와 세상 쾌락과 세상 친구들과 이 사람들의 세상을 끌고 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대적하니까 굉장히 육의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란 끝없는 싸움
처음 신앙인은 거듭나서 천국인이 되었으나 반은 육의 사람이고 마귀와 죄를 따라가고 반은 영적 사람 그리스도의 의와 성령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 내 몸이 반쪽이 났어요. 그리고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로 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자, 죽이고 살리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육신 따라가면 영은 죽는다. 영이 살려면 육신은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 일어나는 싸움은 보통 싸움이 아니라 살벌한 싸움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찡그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슬링 선수들이 서로 엉켜서 밀고 당기고 하는 것은 누구든지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영과 육이 끊임없이 레슬링 시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평안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전개되는 성령과 악령의 다툼은 끝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 5절로 6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은 자꾸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영화 보니 참 좋더라. 술 마시니 좋더라. 도박하니 좋더라. 음란하고 방탕하니 좋더라. 세상 쾌락을 찾아가니 좋더라. 그리 따라가라. 오늘 주일인데 그리 친구들하고 놀러가라. 교회가지 마라.” 그런 생각을 자꾸 줍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은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고 죄에서 놓여나서 거듭났으니 성령이 마음속에 계시니 하나님 말씀을 따라 예배드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말씀 읽고 기도해야 된다.”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싸움이 붙고 마음이 요란스러우니까 바울선생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의 힘으로 건져낼 수 없는 것입니다. 영과 육의 치열한 싸움, 마귀와 성령과의 치열한 싸움이 우리 속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인디언 노인이 손자에게 삶에 대한 일을 가르쳤습니다. 노인이 손자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마음속에서는 늘 싸움이 일어난단다. 그 싸움은 너무나 끔찍한 싸움이어서 마치 두 마리 늑대가 싸우는 것과 같단다. 하나는 악마 같은 놈인데 분노,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교만, 분개, 자기연민, 죄의식, 열등감, 거짓, 허영, 잘난 체하고 자신의 거짓 자아를 나타낸단다. 그러나 다른 놈은 선한 늑대로써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선의, 고요함, 겸손함, 동정심,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를 나타낸단다. 이 같은 싸움이 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너도 살아가면서 이 두 마리의 늑대가 너희 속에서 끊임없이 싸운단다.” 그러니까 손자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할아버지 그러면 어느 늑대가 이깁니까?” 그래서 할아버지가 싱긋 웃으면서 “그거야 네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지!” 아주 현명한 대답입니다. 어느 늑대가 이기느냐. 나쁜 놈의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그 힘을 얻어 가지고 나쁜 놈의 늑대가 이기고 좋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좋은 늑대가 힘을 얻어서 나쁜 늑대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육에 자꾸 양식을 먹입니다. 육을 따라서 세상을 따라가고 쾌락을 따라가고 술 취하고 방종하고 방탕하면 육을 자꾸 키워주는 것이 되는 것인데 육이 힘을 내어서 영을 뒤엎어 버리지요.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고 성도와 교통이 많아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면 영을 자꾸 먹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이 힘을 얻어 가지고서 육을 눌러 버리고 육을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편을 먹여 주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전개되는 선과 악, 성령과 악령의 다툼으로 인한 끝없는 싸움은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싸움으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던 것입니다.
육과 영이 각각 50% 정도 차지하면 꽤 자란 성도지요. 육이 한 50%, 영이 한 50% 싸우면 근사근사한 싸움이 되면 그래도 꽤 자란 성도인 것입니다. 영이 한 70% 하면 꽤 장성한 성도가 되지요. 물론 100% 영이 점령하면 그리스도가 내 마음에 100% 거하면 완전한 승리가 되지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영이 점점 자라고 육을 자꾸 죽이고 성령이 우리 마음을 더 점령하고 악령을 자꾸 쫓아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으로 변화되는 것이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로 21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렇게 되면 100% 성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겠다.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다. 이정도 되면 육이 꼼작 못합니다. 세상과 마귀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고 내가 사는 것이 세상도 있고 하늘나라도 있고 내가 존재하는 것이 육도 있고 영도 있고 그렇게 되면 끊임없는 투쟁과 마음에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회개하고 그 다음날 또 그 죄짓고 또 회개하고 그 죄짓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냐면 마귀가 와서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너는 천당 못 간다.” 그래서 낙심해서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단 예수를 믿음으로 영원히 죄는 용서함 받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싸움은 성결의 싸움인 것입니다. 얼마나 더 거룩하게 되느냐. 30%, 70%, 100% 거룩하게 되는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전쟁은 예수님이 전쟁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영원히 다 갚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빚은 다 청산 되었으니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은 받아 나았지만은 구원받은 다음에 성결하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결한 싸움이 바로 육과 영의 싸움이요, 마귀와 성령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결하게 되면 될수록 우리 신앙이 자라고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주님과 더 가까이 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육이 강하고 영이 약할수록 하늘나라 가면 주님께로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영광도 광채도 적게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구원은 받아 놓았으니까 그 구원을 받아 놓은 터전 위에서 우리는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해도 좋아요. 천 번, 만 번 회개해도 좋아요. 회개를 자꾸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므로 우리가 서서히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회개하고 더 이상 회개할 필요가 있느냐? 자꾸 죄짓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이 주인이 마음에 되기까지 항상 우리가 투쟁을 해야 되는 것인데 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을 때 영적으로는 우리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정욕과 탐심이 우리에게 일어나서 우리를 휘어잡을 때 우리는 도저히 못 이긴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보면 내용적으로 벌써 정욕과 탐심은 이빨 빠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심하고 싸우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협박을 하고 공갈을 하고 고함을 치지만 실상은 이빨 빠진 호랑이인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십자가를 가지고서 대결하면 이미 십자가의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 나는 십자가에서 내 자신을 못 박고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언제나 십자가를 걸머지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하면 그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요사이 봄이 오는 것 보십시오. 봄이 다 왔는가 하면은 또 겨울이 오고 또 겨울이 오는가 하면 또 봄이 오고 꽃이 피는가 하면 또 눈이 오고 눈이 오는가 하면 또 단비가 내리고 왔다갔다 왔다갔다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봄이 오고 겨울은 물러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한번 주님께 은혜 받아서 굉장히 행복했으나 또 죄를 짓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그 다음 또 회개하고 일어나면 또 신앙이 자랐다가 또 쓰러지고 그런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부흥사였던 시카고의 미국 D.L.무디 목사도 그가 처음 예수 믿고 난 다음에 굉장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고 다니고 했다가 그 다음 세월이 흘러가니까 신앙이 다 식어져 버리고 세상으로 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서 또 기도하고 성령을 받으면 된다고 그래서 기도를 산에 가서 산 기도를 하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성령을 받고 난 다음 또 믿음이 살아서 아주 불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것도 얼마 세월이 지나니까 식어 버렸습니다. 또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D.L. 무디 목사님은 말하기를 “나는 버림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신앙을 유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탄식하셨다가 어느 선배 목사님이 “네가 음식을 먹지 아니하면 아무리 신체가 튼튼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음식을 먹어야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너는 신앙인으로 거듭났지만 음식을 안 먹는다. 성경을 먹어야 힘을 얻어서 마귀와 싸워서 이기지 성경을 안 먹으니까 약해지지 않느냐.”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양식이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의 양식인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성찬을 부지런히 떼야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에서는 성찬을 등한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영양실조에 걸리는 것입니다. 카톨릭교에서는 말씀은 등한이 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성찬은 매주일 떼니까 성찬의 양식을 먹습니다. 성찬이 영적 양식이에요. 이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가 여러분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서 영적으로 살아나게 하고 말씀을 읽어야 영적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강하게 되려면 반드시 말씀을 읽고 성찬에 참여해야 되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말씀을 읽고 성찬에 참여하면 영양이 튼튼해져서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암환자가 죽는 것은 대다수 영양실조가 되어서 죽는다고 합니다. 암이 걸려서 아프니까 이제 나는 죽는다고 낙심해서 밥을 안 먹습니다. 입맛도 떨어지고 하니까. 기운이 빠지니까 저항력을 잃어버리고 암이 공격해서 죽지요. 모든 병이 결국은 영양실조로 저항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병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강제로라도 먹고 억지로라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투쟁하고도 먹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에 힘이 있어야 저항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성경은 읽기 싫어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몰라도 읽어야 돼요. 창세기, 출애굽기는 좀 쉬운데 레위기에 들어가면 제사예식에 대해서 읽는 것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무조건하고 읽어 놓으면 그 글자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성실하게 성경을 읽고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성찬에 참여해서 성찬을 엄숙하게 받아 들이면 영양실조가 안 되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삶을 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점령한 나의 삶을 하나하나 예수님께 내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일 처음에는 내가 나를 점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예수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점점 우리를 점령해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육체와 성령 예수님과 싸움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성찬을 떼고 성령이 충만해지면 하나님 편에 서서 힘이 생기기 때문에 점점 육체인 나를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주인인 내가 예수님의 종이요 시종이요, 머슴이요 일꾼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이제 내가 주장하고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께서 살아서 주님이 내 주인이 되고 나는 주님을 섬기는 일꾼이요 머슴이요 시종이요 종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혀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이제는 나는 죽은 자요, 예수님이 부활해 사셨으므로 예수님이 내 속에서 주인으로 살게 된 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여러분의 현실은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에 예수님이 살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알고 마귀에게 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게 믿음을 강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속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아들 예수님이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살면 자기 피를 흘려서 값 주고 산 우리를 점령했으니까 얼마나 우리를 돌보아 주시겠습니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언제나 자기 전에 창문가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하늘과 땅과 우주가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것이지요. 내 일생이 내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까? 하나님 것이지요. 오늘 이 하룻밤이 내 밤입니까? 하나님 밤입니까? 하나님 것이지요. 그러면 나 안심하고 잘랍니다.” 우주가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돼요. 인생이 내 삶이면 내가 걱정해야 돼요. 자고 깨는 것이 내 것이면 내가 걱정해야 돼요. 그러나 내가 아닌 예수님이 마음에 점령하면 예수님이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짐을 야훼께 맡겨라. 그리하면 너를 돌보시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내가 책임을 다 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인이 안 되면 예수님이 주인이 되면 예수님께 짐을 다 맡기면 예수님이 맡아서 능력으로 주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르짖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리라. 우리는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일도 모르고 오늘 내 주위에 일어날 일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겨 놓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한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점령한 나의 삶을 하나도 없이 예수님께 내어 놓는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면 주인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은 당신의 소유물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의로움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보혈로 다 용서하고 의로움을 주님께서 가지고서 우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모든 더러움을 다 씻어 버리고 성령으로 거룩함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우리의 병과 연약을 다 청산해 버리고 치료와 건강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는 모든 저주의 가시채와 엉겅퀴를 제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속에 주인으로 들어올 때는 죽어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사망과 음부를 멸하시고 영생복락 천국을 가지고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인생이 얼마나 보배로워지는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영이 죽고 난 다음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도 잃어버리고 죄의 노예가 되고 추함의 노예가 되고 질병의 노예가 되고 저주와 가난의 노예가 되고 멸망과 지옥의 노예가 되어서 비참하게 삽니다. 오늘 사람들은 나는 부자라 내가 부족함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그것은 겉으로 잠시 있다 사라지는 물질적인 부자요, 영으로는 헐벗고 가난하고 눈멀고 귀멀고 벙어리 되고 절망에 처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어오면 이것이 다 달라져 버리고 말아요.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 들어오는 태양처럼 빛을 비취며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고 거룩함을 주시고 치료를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주시고 영생 복락 천국을 주시고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시편 103편 1절로 2절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은택이 뭡니까?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3:3~5) 이게 하나님의 은택이니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다 청소해 버리는 것입니다. 병을 다 치료해 버리는 것입니다. 소원을 일으켜 주시고 파멸을 멸하여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동안에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과 고난이 다가와도 예수님이 그 고난을 다 변하여 선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냐 칼이랴 죽음이랴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는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승리자 예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주인을 우리가 확실히 모시는 생활이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합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성자일수록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하고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이 상급을 받았을 때 기자가 물었었습니다. “일평생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나는 죄 덩어리요. 죄밖에 지은 것이 없습니다.” 한경직 목사처럼 겸손하고 거룩하고 착하게 사는 분이 자기 일생은 죄 덩어리라고 말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깊을수록 도덕적으로 겸손하게 말하며, 자기는 죄 덩어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적당하게 나쁜 사람은 자신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별로 나쁘지 않다고 그럽니다. “내가 뭐 그리 나쁘냐? 다른 사람도 다 이렇게 사는데..” 그리고 고약한 사람은 “내가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지 누가 바르게 사느냐? 내가 사는 것이 바르게 산다.” 그러므로 사람의 말을 들어볼 때 자기가 올바르게 살았다. 자기가 바르게 살았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고약한 놈인 줄 아십시오. 그러나 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 봐서 나 다른 사람보다 별로 나쁘지 않다. 다른 사람처럼 산다고 하면 그것 중간쯤 나쁜 사람인줄 알고 교회 열심히 나오는 장로님, 권사님, 목사님이 나는 죄 덩어리입니다. 나는 죄밖에 없어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삽니다. 그러면 신령한 사람인줄 아십시오. 겸손하고 자기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죄 가운데서 어머니 뱃속에 잉태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죄를 우리에게 상속으로 주었었습니다. 아담의 피를 받은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원죄를 걸머지고 태어나서 일평생을 살면서 지은 것은 죄밖에 없습니다. 죄 덩어리요, 우리의 힘으로 절대로 씻고 씻어도 정결하게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오면 청산해 버리지요.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갈보리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내 죄를 걸머지고 하나도 없이 고통을 통해서 다 청산해 버리고 내가 다 갚았다고 하고 세상을 뜨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죽어서 무덤의 감옥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죄를 다 털어 버리고 감옥에서 나와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밖에는 우리를 용서하고 의롭게 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조금이라도 거기에 보태고 빼려고 하면은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해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 구원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우리의 싸움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인지 영적인 사람이 구원을 아직 받지 않은 육적인 사람과 끊임없이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이미 이겨놓은 싸움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육을 데리고서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꾸 달려드는 것입니다. 한평생에 육을 입고 사는 이상 육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고 성도와 교제를 하고 성찬 떼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영을 자꾸 먹여서 영이 자라서 육체를 눌러 버리고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우찌무라 간조는 “결심”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심, 또 결심, 결심을 하는 것은 결심을 깨뜨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결심, 결심, 결심을 하는데도 아무리 결심을 해도 결심은 다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으로 결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의지할 따름입니다.” 하나님께 십자가를 통해서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이 와서 붙들어 주어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결심을 해도 또 그 결심은 깨어집니다. 또 결심을 해도 또 깨어지는 것입니다. 안하는 것보다 낮지만 그러나 자꾸 깨어지면 낙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간이지만 우리가 힘이 없으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는데 알콜 중독자가 자기 힘으로 알콜 중독에서 놓여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오시면 놓아주고 아편 중독자가 자기 힘으로 아편에서 놓여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오시면 도와주시고 도박광이 자기 힘으로 도박에서 놓여나지 못합니다. 제가 젊을 때 목포에 가서 부흥회를 했는데 헌금 거둘 때 집사님 한분이 헌금통을 가지고 나오는데 열손가락이 다 없어요. 몽당손이에요. 그래서 내가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저 집사님은 열손가락이 다 없이 몽당손입니까?” “목사님 말도 마십시오. 저 사람은 목포가 다 아는 도박꾼입니다. 도박을 해서 살림을 탕진하고 형제들 살림까지 다 탕진하고 형제들이 모여 가지고서 그 작두에다가 손을 넣어 가지고 잘라 버렸습니다. 붕대를 감아서 나을 때를 기다리니 낫고 나니까 그 몽당손으로 도박을 합니다. 그래서 부인보고 돈 안 빌려 온다고 늘 부인을 때리는데 부인이 교회 와서 숨어 있다가 잡혀서 무등산으로 끌고 올라가서 그 산에서 바위 위에서 밀어 내려고 옷도 내가 도박하는데 써야 되겠다고 옷도 벗어라. 옷을 다 빨게 벗겨 버리고 할 말 있으면 마지막 말하고서 내가 널 밀어 버리겠다. 그런데 내가 한번 기도하고 가겠다고..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 사람에게 시집와서 나는 예수님 구원 받았으나 이 사람은 도박의 종이 되어서 이렇게 폐인이 되었는데 구원 받지 못하게 하고 가는 것이 한입니다. 하나님 나는 죽지만 내 마지막 기도를 들어서 이 사람이 구원받아 새사람이 되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뭐가 바스락 하더랍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기도 다했으니까 날 밀어 내리십시오. 그러니까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자기 몽당손가락을 또 깨물어서 깨었어요. 피를 흘리면서 울면서 하는 말이 여보 당신 기도를 들으니까 내 마음이 녹아진다. 내 힘으로 도박을 없앨 수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 당신이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면 내가 살아나겠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부인이 남편을 안고 바위 위에서 기도를 하고 교회를 데려와서 철야기도하고 금식기도하고 깨끗이 도박에서 해방 되어가지고서 그 교회 집사가 되었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도박이 형제들이 모여서 손가락을 다 잘라 버려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되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믿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해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기도해야 돼요. 아침에도 기도해야 되고 점심때도 오후에도 저녁에도 하나님 성령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거룩하게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 주셔서 성령은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분량이 충분히 자란 성도가 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면 되신 만큼 참 평안과 기쁨과 천국의 소망과 확신이 들어오고 마귀와 죽음에 대한 담대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마음속에 충만히 거하게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같이 고개 숙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우리 마음속에 끝없는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초신자 때는 싸움이 더 맹렬하나 점점 신앙이 자라면 싸움에 일방적인 승리를 하기 때문에 점점 더 평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말씀을 먹고 성찬을 떼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를 통해서 육의 사람, 마귀의 사람을 다 이겨 버리고 성령의 사람, 영의 사람, 속사람이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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