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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261 추천 수 0 2010.02.08 21:2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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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4~1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9. 4. 26. 주일 4부 설교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주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저렇게 베푼 사랑을 우리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가슴에 안겨 주실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은 나누면 받는 사람도 행복하고 나눠주는 사람도 행복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사명을 주셨으니 우리 끝까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하지 않습니다.

<서론>
오늘 저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이 사람아, 우리 오늘 목욕하러 가자” 그런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아냐 나는 몸에 때가 너무 많아서 부끄러워 갈 수가 없어. 때를 좀 씻고 깨끗하게 하고 난 다음에 목욕 가겠다.” 그러면 뭐라고 그 친구가 대답하겠습니까? “야 이 사람아, 때가 있기 때문에 목욕탕에 가는 것이지 때가 없으면 목욕탕에 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로 한 말인데 “이 사람아 교회 같이 나가자!” “나는 죄가 많아서 교회 나갈 수가 없어.” “죄가 있기 때문에 교회 나가는 거야. 죄가 없으면 교회 나갈 필요 없지 않느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일본이 낳은 최고의 전도자요 저술가요 자선사업가인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는 기생첩의 아들로 태어나 말할 수 없는 구박과 천대를 받았었습니다. 소년 시절에 그의 성격은 비뚤어지고 어두웠습니다. 게다가 폐병 3기로 얼마 더 살지 못한다고 진단을 받았었습니다. 그는 어느 겨울 오후에 담장 밑에 혼자 앉아 햇빛을 받고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북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면서 “예수를 믿으세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라며 그에게 전도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전도자를 붙잡고 물었습니다. “나 같이 가난하고 병들고 천한 기생의 자식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럼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감동해서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신학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유명한 박애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 몸에 때가 있으니까 목욕탕에 가는 것 같이,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와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본론>
1. 의원은 병든 사람에게 필요함
예수님께서 한번은 세관을 지나가는데 세리 마태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세리를 “나를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리 마태가 기뻐서 뛰어나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식사를 대접하는데 세상이 다 아는 건달들, 죄인들이 함께 모여서 고함을 치고 박수를 치고 웃고 하면서 식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항상 비난하고 공격하던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이 예수님 제자들 보고 “쯧쯧쯧. 네 선생 꼬라지 좋다. 세상에 세리 마태하고 저 죄인들, 건달들하고 모여 가지고서 함께 웃고 농담하고 잡담하고 밥 먹고 이것이 네 선생이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왜 세리를 미워했느냐. 로마가 유대를 다스리기 때문에 세금을 갈취해 갔습니다. 이러므로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유대인들 동포들의 삶을 괴롭게 했습니다. 세금을 갈취할 뿐 아니라 자기들 몫도 빼앗아가기 때문에 민족적 원수요, 유대인의 원수였었습니다. 세리 다음에는 유대민족은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런 세리, 백주 대낮의 집에 예수님이 가서 건달들하고 같이 식사를 하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9장 9절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0-11)
예수님이 그 말씀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소용없고 병든 자에게야 소용이 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성경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호세아서에 있는 말씀인데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고 율법적인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 보면 한 부자가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 재산을 상속 받아서 집을 떠나 멀리 가서 창기와 탕진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흉년이 드니까 먹을 것이 없어 거지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남루한 옷을 입고 거지가 되어 올데 갈데 없으니까 빈손 들고 아버지께로 와서 “아버지, 이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니 날품팔이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때 아버지가 반기며 그 아들을 끌어 앉고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아들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송아지를 잡아서 이웃 사람을 청해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밤늦게 밭에서 돌아온 형이 그 잔치한 이야기를 듣고 그 사연을 알고 난 다음에 화가 나서 집에 안 들어 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서 “얘~ 집에 들어오너라!” “아버지,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창기와 다 낭비하고 난 다음 저렇게 거지가 되어 돌아오는데 그를 환영합니까?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한테 충성하고 아버지 집을 떠난 적이 없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어서 친구와 함께 먹게 안했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저 아이는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게 아버지의 마음과 형제의 마음이 다른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탕자가 되어서 탕진가산하고 빈손 들고 오더라도 건강한 몸으로 온 것을 기뻐해서 용서하고 긍휼을 베풉니다만 형제만 되어도 율법을 요구합니다. “마땅히 죄를 받아야지. 마땅히 고통을 당해야지. 왜 고통 없이 받아들이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기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하는 것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받기를 원하시지 율법으로 여러분을 치리하기를 원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태와 같은 흉악한 유대인의 원수요 죄인도 구원해서 제자로 삼았었습니다.

2.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
또한 우리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어느 곳에 가든지 세상이 다 아는 죄인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지나가야만 했다고 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로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강제로 안가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마리아로 지나가다가 낮 12시에 해가 쨍쨍 비취고 땀이 나고 더운 때 우물가에 앉아서 누구를 기다립니다. 제자들은 다 밥 사먹으러 시내에 들어갔는데 예수님은 누구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물동이를 이고 그 물가에 나옵니다. 그 여인은 아침에 물 길러 나오지 않고 저녁에 물 길러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가 다 아는 추한 여자입니다. 여러번 시집을 가고 여러번 남편을 바꾸고 음란하고 방탕한 여자로써 소문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같이 교제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귀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그는 대낮에 아무도 우물가에 오지 않을 때 물 길러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그 사마리아에서 악명 높은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여자가 우물물에 와서 물을 기르면서 예수님을 본체만체 합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으로 취급하고 개 취급을 해서 상대를 안 합니다. 그런데 더구나 여자 죄인을 예수님께서 “여자여, 나에게 물을 좀 주시오!” 말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깜짝 놀라서 “당신 유대인으로써 어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합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이며 물 좀 달라하는 분이 누군 줄 알았더라면 네가 구하였을 것이요, 내가 생수를 네가 주었으리라” “하하하..” 웃으면서 여자가 “이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압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준 우물로써 그 자녀들이 여기서 다 물을 마셨는데 당신은 물풀 두레박도 없고 그릇도 없으면서 무슨 생수를 내게 준다는 말입니까?” 그랬더니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이 물을 마시면 또 목말라서 또 물 기르러 오지!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가 되어서 목마르지 아니하다.” 하니까 그러니까 이 여자가 눈이 둥그레 지면서 “그래요? 그러면 그 물 나도 좀 주시옵소서. 다시 물 길러 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말을 붙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러면 남편을 데리고 함께 오너라!” 그러니까 여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나는 남편이 없어요.” “맞았어. 당신은 남편 5명이 있었어. 5번 이혼을 했어. 6번째는 오다가다 우연히 만난 남자하고 살고 있어.” 여자가 화들짝 놀랬습니다. “아~ 이제 보니까 선지자이군요? 나의 생애를 환히 들여다보는 선지자군요?” 그리고 난 다음에는 곧장 종교 예배 처소 논쟁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여자가 가로되 “우리 조상들은 이 사마리아산에서 예배를 드릴 때가 있다고 하는데 당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니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
그 말을 들으니까 상당히 어렵단 말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의식과 형식이 아니라 신령과 마음을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찾는다고 하니까 그 여자가 “아휴 너무 어렵습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온다고 듣고 있는데 그 메시아가 오면 그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알려 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여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내가 바로 그 그리스도다!” 그러자 성령이 역사해서 이 여자의 눈이 확 열렸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동이를 던져 놓고 시내로 뛰어 들어가서 온 동네방네 고함을 쳤습니다. “나의 생애를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다 보고 말하는 사람 와 있는데 이 분이 메시아가 아니냐?” 사마리아 동리 사람들이 떼를 지어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붙잡아 며칠 거하게 하고 예수님 말씀을 듣고 온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가지는 귀한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제일 손꼽는 죄인을 건져 내어서 그에게 참된 행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행복이라는 것은 남편을 바꾼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집을 바꾼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많이 가진다고 오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마음속에 생수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 생수는 예수님 이외에는 줄 수가 없습니다.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그 자서전에 카리비안 섬에 있을 때의 일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그 섬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이 빌리 그래함 부부를 점심에 초대했는데 그분은 75세가 되는 노인이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무엇을 말할 듯 말할 듯 하면서 말을 안 해요. 그러다 식사를 다 마치고 편안히 안락의자에 앉아 가지고서 그 하는 말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 나는 75세요. 카리비안에서 제일 큰 부자입니다. 멋진 요트가 있어서 어디를 가든지 그 요트를 타고서 바다 위를 달릴 수가 있으며 자가용 비행기가 있어서 어디든지 날아 갈 수 있고, 자가용 헬리콥터가 있어서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나는 도무지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늘 비참합니다. 마음에 고통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물질이 행복을 줄줄 알고 평생 물질 모으려고 애를 썼는데 이렇게 돈이 행복을 주지 못할 줄을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다음 그날 오후에 그 지역을 방문하는데 75세 먹은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 보고 말하기를 “목사님, 저는 저 앞에 돈 2만원도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으니 그 행복과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두 사람 노인이 다같이 75세였는데 한 사람은 돈은 많이 가지고 자가용 비행기, 헬리콥터에 보트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극히 불행했으나 한 사람은 단돈 2만원도 없으면서도 그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이 넘친 것은 행복이란 마음에서 넘쳐 나오는 것이지 환경에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아름다운 환경을 꾸며 주는 것은 좋습니다. 환경이 편안하고 안락하고 아름다우면 좋지요. 그러나 그것이 영구적인 행복을 갖다 주지는 못합니다. 영구적인 행복은 마음속에 예수님이 들어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도저히 마음에 안정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껍데기인데 알맹이인 하나님이 들어오셔야 완전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알맹이이신 하나님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계셔야 비로소 마음에 평안과 안정이 있어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업을 해도 기쁘고 즐겁고 가치가 있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없는 삶은 사는 것 같으나 헛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과 조건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구합니다만 참된 행복은 물질이나 돈과 같은 외적인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가지고 있는 소유물이라는 것은 언제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지나가요. 어제 우리 대학로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러 갈 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비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춥지도 않습니다. 춥고 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지나갔습니다. 또 다른 기후가 왔습니다. 인생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인생생활에 춥고 바람 불고 고통스러운 때가 항상 계속 하느냐면 그것은 잠시 있다가 지나가고 또 평안하고 행복하고 좋을 때도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일은 항상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떠한 형편에 있는지 마음속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죄인에 대한 주님의 사랑
죄인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란 참 끝이 없습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5장 4절로 7절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이 광막한 우주에 오직 오아시스는 지구밖에 없습니다. 물이 있고 공기가 있고 산천초목이 있고 사람이 사는 지구밖에 오아시스가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은 사람을 심어 놓고 천국 백성을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 백성이 한 사람이라도 수가 많아지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죽으면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속사람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세상에서도 하나님 없었는데 저 세상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이 없는 어둡고 캄캄한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 이 땅에서도 마음에 빛과 평안을 가질 뿐 아니라 육신을 벗어버릴 때 빛과 평안한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많은 자손들이 빛과 평안을 얻어서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말씀한 것입니다. 양 100마리를 돌보는 사람이 99마리가 평안이 우리에 있는데 1마리를 잃었습니다. 아 어지간한 것 같으면 “99마리가 있으니 1마리쯤은 잃어버려도 상관없다. 잊어버리자!” 그렇게 할 것 아닙니까? 혹시 1마리 찾으러 갔다가 99마리를 우리에서 도둑놈이 와서 훔쳐 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99마리로써 만족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99마리 우리에 있으니 그대로 두고 1마리를 찾아 산과 들로 헤매다가 찾으면 그를 목에 걸치고 기뻐 돌아와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베풀고 잃었던 양을 찾았다고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그렇게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뭘 가지고 기뻐하시겠습니까? 회개하고 주님께 두손 들고 들어오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 하나님이 좋아하십니까? 아닙니다. 깨어지고 회개하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님께 의지하고 나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왔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잘 믿고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을 찾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자, 하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버림받은 자, 잃어버린 자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찾으러 오셨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보십시오. 어지간하면 십자가에서 주님 내려와서 왔을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이 세상에 사람을 죽이는데 가장 흉악한 형틀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을 박고 높이 공중에 매달아 놓는데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빈혈이 되고, 탈수가 되고, 몸의 고통과 괴로움은 극에 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유혹을 또 했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옆에 있는 강도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그러면 우리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라!”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양무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죄를 대신 갚아야 되기 때문에 우리에 대한 사랑이 자기 고통보다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 억센 고통을 몸부림 치고 참으면서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주님께서는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바로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예수님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우니까 “아! 하나님이 날 버리셨다. 이제 나는 나조차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그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는 십자가에서 내려오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아, 내가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정의로워서 구원 받았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데 그것으로 갚을 수가 있습니까? 죄의 빚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예수님이 생명을 바쳐야 우리 죄의 빚을 갚을 정도로 우리 죄가 심각한데 예수님이 생명을 바쳐서 그 피로써 우리 죄를 청산한 그 이외에는 우리의 죄를 청산할 수가 없고 하나님은 이 예수 보혈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고 오직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4절에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작은 자 어린 아이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를 하나님 원하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찾아 기뻐 넘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나오는 사람을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 것입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나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므로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나는 우리 집안을 보면 제가 17살에 폐병 걸려서 예수를 믿게 되었었습니다. 제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 아버지, 어머님이 예수님을 믿으시고 우리 9형제간이 예수를 믿고 그 다음에 일가친척들이 예수를 믿어서 전 가족이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진실로 그리스도가 들어와서 구원을 베풀면 그 구원은 누룩과 같이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전파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더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이 더 예수를 믿게 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박수를 치고 너털웃음을 웃으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만 구원 받았으면 되었지 뭐 다른 사람에게 구태여 전도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느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 이 한사람도 제가 예수님을 전도해서 회개 시키고 주께로 인도했으면 아버지께서 무릎을 치시면서 “잘했다. 착하다. 정말 잘했다. 정말 나를 기쁘게 했다. 참 귀하다.”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엇으로 기쁘게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말했었습니다.
몇 년 전에 고고학계를 흥분시키며 세계가 떠들썩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한 무덤에서 원형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미라 한 구가 나왔는데 그 미라는 3천 년된 미라입니다. 바짝 마른 미라인데 3천 년이 되었는데 그 손에 씨앗이 잡혀 있습니다. 그 씨앗이 3천 년 동안 미라의 손에서 바짝 말랐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이 씨앗이 과연 살아 있느냐? 없느냐?” 여러 가지 토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의 농부 한 사람이 “그것 토론할 필요 어디 있느냐? 심어보면 알지 않느냐? 심어서 물주고 햇빛 비춰 보면 알지 않느냐?” 그래서 그것을 심어서 물을 주고 햇빛을 비취니까 3천년 동안 미라의 손에 말라있던 그 씨가 70%가 다 싹이 나서 돋아났어요. 물을 주지 않고 햇빛을 비취지 않으니까 말라빠져 있었지 물을 주고 햇빛을 주니까 생명이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들도 그리스도가 햇빛처럼 비추고 성령의 생명력이 오지 아니하면 말라서 죽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빛을 비취고 성령의 생수가 들어오면 다 살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천 년 동안 죽은 미라의 손에 있었던 씨앗에서는 생명의 싹이 나올 수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마음에 빛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생수를 받아서 살아 일어난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
과거, 중국에 전도를 많이 하는 ‘송전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름이 송전도가 아니라 하도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외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사람 이름을 ‘송전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가 딸 둘, 아들 하나를 낳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습니다. 사람들이 다 애도했습니다.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지는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버지도 없는 고아가 된 자녀들을 축복해서 그 큰 딸은 송경령은 중국의 국부라고 부르는 손문 선생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딸 송미령은 장개석 총통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인 송자문은 재정장관이 되어 한 때 송전도의 자녀 3남매가 중국 전역을 통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셔서 그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습니까? 여러분이 이웃을 전도하여 구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만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축복으로 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고는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서 심으면 하나님이 축복으로 거두고 하나님의 진노를 심으면 나중에 형벌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영혼구원에 힘쓴 사람은 천국의 상급이 클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구원 받은 자가 함께 모여 주님을 예배한 후에 흩어 나갈 때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전도한다고 무슨 기적이 일어나겠느냐? 하와이에서 제가 집회를 하는데 나를 호텔에서 집회 장소로 왔다갔다 운전을 해주는 교회 부목사가 있었습니다. 잘생긴 남자였습니다. 그가 나보고 하는 말이 “목사님, 노방전도가 참 필요합니다.” 그래서 “왜요?” 그러니까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마약중독자가 되어서 대학을 마쳐도 마약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마약밀매업자가 되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걸어가는데 길거리에서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전도를 하고 전도지를 나눠줘요. 나는 ‘미친놈들 지랄한다.’ 그렇게 말하고서 전도지 한 장 중에 받아서 포켓에 구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왔다가 옷을 정리하면서 그 전도지를 침대 곁에 던져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내가 마약주사를 너무 많이 맞아가지고서 그냥 죽게 되었습니다. 숨이 턱에 차고 심장이 뛰고 완전히 정신이 혼미해지고 죽게 되어서 큰일 났습니다.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벌벌 기어가서 내버려 놓은 그 전도지를 읽으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 나올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전도지를 가슴에 안고 ‘하나님이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회개하고 나오니 이 마약환자를 불쌍히 여기사 살려 주시옵소서.’ 고함을 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마음이 가라앉고 몸이 가라앉고 평안하게 되어서 예수를 믿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가 구원을 받아 신학교에 공부해서 졸업을 하고 하와이에 마약촌이 있어서 그 마약촌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내려와서 전도하다가 한 여대생이 마약에 걸려서 마약촌에 있는 것을 건져서 결혼해서 아내를 삼고 교회 목회를 하기 시작해서 그날 나를 차에 데리고 왔다갔다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그 사람이 전도지를 내게 줄 때 내가 받아서 포켓에 구겨 넣었을 때 그 전도지 한 장이 나에게 하늘나라를 갖다 줄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러나 그 전도지가 내게는 하늘나라를 갖다 주는 전도지가 되고 말았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그냥 가방을 들고 다니지 마시고 전도지 몇 장씩은 꼭 넣고 다니면서 옆에 앉아 무료히 계시는 분이 있으면 전도지를 전달해 주십시오. 봐도 좋고 안 봐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오면 보게 되고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을 그렇게 바라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면서도 한명의 강도의 구원에 심령을 기울였습니다. 얼마나 내가 지금 아픕니까? 너무나 아파서 견딜 수가 없는 그 지경인데도 옆에 있는 죄인이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라도 죄인이 회개하면 주님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아, 나는 죄가 많아서 구원 못 받는다. 너 같은 죄인은 주님이 돌아봐 주지 않는다.” 아니올시다. 여러분, 구원은 죄인이 있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구주로 오신 것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구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이면 구주로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몸에 때가 많기 때문에 목욕탕이 성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에 때가 없으면 목욕탕 성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이 예수를 믿고 죄가 많을수록 더 예수를 믿어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스스로 마귀가 와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는다.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이 미워하신다.” 그런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사탄아 물러가라!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하나님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살려 주신다.” 또 흉악한 죄인들에게도 언제나 희망을 주십시오. “당신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같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주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당신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 손든 그대로 나오십시오. 주님이 구원해 주시고 성령으로 그 다음부터 교화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 하늘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주님께서 재림하십니다. 주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으로 우리를 옮기시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예수님은 하늘나라 백성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전도해서 더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고 구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드리십시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누가 우리에게 전도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우리도 또 전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하셨습니다.
듣지 않고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잠에 빠져서 전도하지 않고
자체적인 예배 형식에만 붙잡혀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우리를 도와 주셔서 성령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나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이 활활 타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속에 전도해야 되겠다는 열심히 생겨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전도의 횃불이 높이 솟아오르게 도와주시옵소서.
온 한국과 세계를 전도의 불바다로 만들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힘과 능으로는 되지 않사오니 하나님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임하여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이 우리 마음을 붙잡아서 전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열정을 가지고 전도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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