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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50: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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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4·07·04
요즘은 군에 있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습니다. 간혹 전화를 걸기 때문에 편지를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훈련받는 기간에는 전화를 걸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가 몇 번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가 부모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따뜻한 정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더욱 반가웠던 것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입대하기 전에는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이 영 마땅치 않았고, 예배시간에 자주 조는 것도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대하여 이렇게 떨어져 있게 되니 서로가 귀한 줄을 더욱 알게 되었고, 하나님 믿는 신앙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본래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평소에는 이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늘 자식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분들인지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늘 부모 속을 썩이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지요.
이런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고 삽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도 듣지만 우리의 신앙이 형식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감사하자는 의미에서 지키는 절기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형식적이고 메마른 신앙으로 감사절을 지킨다면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습니까?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지도 못한 채 감사절을 형식적으로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형식에 빠진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과 감사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로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마음은 식어갔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형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마르고 형식적인 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상기시키고 계십니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네 하나님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바로를 치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들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의향을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3-6)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 맺는 것을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19:7-8)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은 이렇게 쌍방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을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언약에 동의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이 율법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되 단지 의무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을 지킬 때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제사
이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제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사는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흘리고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사는 특히 죄 사함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죄인된 우리의 딜렘마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하나님 백성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무슨 죄든지 이 제사를 통하여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제물을 드리므로 그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을 예표했던 것입니다.
제사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을 받게 하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감사를 나타내고,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제사는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믿음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의 타락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중요하고 의미 깊은 제사가 점점 형식에 치우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도 사라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헌신하겠다는 다짐도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사 드리는 것 자체가 귀찮게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당시 사람들이 제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7-8)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귀찮게 여겨서 마지못해 성의 없이 대충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9-10)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사를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매우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만유 주인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를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시며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제사가 전혀 필요치 않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9-11절) 하나님은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소와 수염소가 필요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시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짐승의 제물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생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람은 날마다 음식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그것들에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12-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섭취하시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가 없이도 완전하시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제사제도를 만드셨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마음을 보시고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아주셨으며, 그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가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에서 이러한 모든 것이 다 빠져버리고 형식만 남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제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
오늘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언제든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예배가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입니까? 우리는 본래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으며,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셨고,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적인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항상 감격과 감사로 뜨거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단지 형식적으로만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가증한 존재로 만들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며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셨습니까?
진정한 예배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14-15절)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범죄하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합니까? 우리는 지난날들을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이러한 감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에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까? 오늘 이후로 우리에게 이 감사가 식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예배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지키는 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더욱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결단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하고 결단한 것을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께 약속드린 것을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까?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예배에는 믿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환난을 당한 성도는 신실하고 뜨거운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끄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오늘 어려움 당하는 성도 여러분, 더욱 뜨거운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반드시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감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크게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은 군에 있는 아들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습니다. 간혹 전화를 걸기 때문에 편지를 쓰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훈련받는 기간에는 전화를 걸 수 없었기 때문에 편지가 몇 번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편지가 부모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따뜻한 정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더욱 반가웠던 것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입대하기 전에는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이 영 마땅치 않았고, 예배시간에 자주 조는 것도 안타깝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입대하여 이렇게 떨어져 있게 되니 서로가 귀한 줄을 더욱 알게 되었고, 하나님 믿는 신앙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본래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평소에는 이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늘 자식이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분들인지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늘 부모 속을 썩이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지요.
이런 일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하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망각하고 삽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말씀도 듣지만 우리의 신앙이 형식에 치우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도대체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망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감사하자는 의미에서 지키는 절기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형식적이고 메마른 신앙으로 감사절을 지킨다면 얼마나 잘못된 일이겠습니까?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지도 못한 채 감사절을 형식적으로 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형식에 빠진 우리를 돌아보게 하며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앙과 감사가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로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었습니다.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마음은 식어갔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형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마르고 형식적인 신앙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그들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상기시키고 계십니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7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네 하나님이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를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바로를 치시고 그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들과 특별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의향을 물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3-6)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 맺는 것을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모세가 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 앞에 진술하니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19:7-8)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은 이렇게 쌍방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을 정리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언약에 동의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이 율법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을 지키되 단지 의무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을 지킬 때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제사
이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제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사는 짐승을 죽여서 그 피를 흘리고 제물을 불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제사는 특히 죄 사함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죄인된 우리의 딜렘마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게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하나님 백성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무슨 죄든지 이 제사를 통하여 사함 받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사망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예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고 제물을 드리므로 그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을 예표했던 것입니다.
제사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을 받게 하며,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감사를 나타내고,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제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셨던 것입니다. 제사는 이렇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믿음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의 타락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 중요하고 의미 깊은 제사가 점점 형식에 치우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에 대한 감사도 사라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헌신하겠다는 다짐도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사 드리는 것 자체가 귀찮게 여겨지기까지 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당시 사람들이 제사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7-8)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귀찮게 여겨서 마지못해 성의 없이 대충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9-10)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사를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매우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만유 주인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를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시며 부족함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제사가 전혀 필요치 않으시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9-11절) 하나님은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소와 수염소가 필요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시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짐승의 제물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인간들처럼 생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지도 않으십니다. 사람은 날마다 음식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완전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그것들에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필요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12-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섭취하시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제사가 없이도 완전하시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제사제도를 만드셨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마음을 보시고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기쁘게 받아주셨으며, 그들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가 의미가 있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에서 이러한 모든 것이 다 빠져버리고 형식만 남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제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
오늘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언제든지 직접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거룩하신 하나님 보좌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예배가 얼마나 복되고 귀한 것입니까? 우리는 본래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으며,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셨고,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온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시고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적인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항상 감격과 감사로 뜨거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단지 형식적으로만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가증한 존재로 만들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며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진정한 감사와 감격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셨습니까?
진정한 예배
본문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14-15절)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에는 반드시 감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으며, 범죄하고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귀합니까? 우리는 지난날들을 오직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이러한 감사가 있어야만 합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에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까? 오늘 이후로 우리에게 이 감사가 식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예배에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지키는 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 더욱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결단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약속하고 결단한 것을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께 약속드린 것을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까? 이것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예배에는 믿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환난을 당한 성도는 신실하고 뜨거운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끄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오늘 어려움 당하는 성도 여러분, 더욱 뜨거운 믿음의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반드시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감사를 기쁘게 받으시고 크게 축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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