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창27:1-13 |
---|---|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4·07·10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 최고, 최상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의지와 행위에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때도 역시 하나님의 뜻은 차질 없이 이루어집니다. 심지어는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도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나 거역할 때나 하나님의 뜻은 동일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뻐하신 뜻을 이루시면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단지 그 과정에서 불순종하는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련한 생각과 뜻을 꺾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27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약과 축복의 계승
아브라함의 집은 여느 다른 집안과는 달리 특별한 집안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놀라운 언약과 축복을 받았으나 그것이 그의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축복은 이삭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언약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삭은 그 축복을 다시 자기의 아들에게 물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중에 에서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축복은 마땅히 장자인 에서에게 이어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쌍둥이 아들이 리브가의 태속에 있을 때 이미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인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삭과 리브가에게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이삭의 축복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계승되어야 했습니다.
이삭의 실수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이 에서를 가만히 불러서 그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이삭은 야곱보다는 남자답고 믿음직한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에서야말로 자신의 뒤를 잇기에 손색이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에서는 들짐승을 사냥해 와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드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어느 모로 보나 에서가 맘에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서는 장자였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관습으로는 장자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는 두 아들이 리브가의 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태에 있는 쌍둥이 아들 중에서 작은 아들 야곱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는 불분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나 애매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했거나 잊어버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야곱이 맘에 들지 않고 에서가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를 가만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계획을 말해주었습니다. 지금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잡아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별미를 먹고 에서에게 축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늙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1-4절)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고, 자신의 족장권을 상속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공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왕위를 물려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이렇게 은밀하게 둘이서만 할 일이 아니라 온 집안 사람들이 다 모인 가운데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한 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축복해야 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아들은 막중한 사명감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믿음을 지키며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이 막중한 일을 에서와 단둘이서만 은밀하게 진행시키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이삭에게 이것은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났으나 자기의 생각을 고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실수를 자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맘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내 생각대로 고집하며 밀고 나갑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이 우선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 뜻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내 뜻과 고집을 꺾어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해야 합니다.
리브가의 실수
이삭이 에서를 불러 은밀하게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5절) 이삭이 에
서를 편애한 반면에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을 막기로 했습니다. 리브가는 어떻게 해서든지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들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이므로 당연히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불러 아버지와 에서의 계획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은 축복을 가로챌 또 다른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8-10절)
우리는 리브가에게서 놀랍게도 믿음과 죄악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더구나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저지하고자 했습니다. 남편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리브가의 실수였습니다. 리브가는 부정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실수가 많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방법, 부정하고 죄악된 방법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서 헌금도 많이 하고 좋은 일에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예물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목적이 선하다면 수단과 과정도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수단과 방법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야곱의 실수
어머니의 말을 들을 야곱은 두려워하면서 주저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일에 있어서 아버지를 속였다가는 어떤 저주를 받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11-12절)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그녀는 만일 그렇게 되면 모든 저주는 자기가 대신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13절)
야곱은 소심한 사람이어서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머니의 말대로 했습니다. 야곱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실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거절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악된 것인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은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실수하는 사람, 세우시는 하나님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은 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는 너무나도 중대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리브가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남편을 속였습니다. 야곱은 잘못된 것일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말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다시 세우시고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연약함과 죄와 실수를 능가하며, 결국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이렇게 실수를 했다면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때로 실수하고 넘어지고 범죄한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범죄한 것에 대해서는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 때문에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실수를 거듭했고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여전히 일으켜 세우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잃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당신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약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당신을 다시 한번 굳게 붙잡아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이렇게 실수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어김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실수와 불순종과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차질 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삭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방해하려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한다 해도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사용될 뿐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바로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래도 바로는 여전히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분노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두려워하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10번째 재앙이 내리고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자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낸 후에도 다시 마음이 강퍅해져서 광야로 나간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 가운데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뒤쫓아 들어온 바로와 그 군대는 바다에 멸하셨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대적과 발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어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했던 바로는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만방에 널리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한다 해도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십니다.
더 좋은 방법
이러한 사람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와 야곱의 부끄러운 일들을 통해서 이삭의 불순종을 저지시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리브가와 야곱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징계하셨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와 야곱은 이 일 때문에 큰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자기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알게 된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 아람에 있는 외가로 피신시켜야 했습니다. 야곱은 혈혈단신으로 낯설고 머나먼 곳으로 도망쳐야 했으며, 그 이후로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떠난 이후로 리브가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삭에게서 야곱에게로 계승되는 귀하고 복된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불행한 일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이었습니다. 이 일이 꼭 그렇게 이루어져야만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한 마음으로 순종했더라면 이 일은 하나님의 큰 축복 가운데서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그들도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당신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우리만 손해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고집과 감정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에게 최고, 최상의 삶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의지와 행위에 상관없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때도 역시 하나님의 뜻은 차질 없이 이루어집니다. 심지어는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도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거나 막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때나 거역할 때나 하나님의 뜻은 동일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기뻐하신 뜻을 이루시면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온전히 이루십니다. 단지 그 과정에서 불순종하는 우리는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방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련한 생각과 뜻을 꺾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27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약과 축복의 계승
아브라함의 집은 여느 다른 집안과는 달리 특별한 집안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놀라운 언약과 축복을 받았으나 그것이 그의 당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축복은 이삭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것과 똑같은 언약과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삭은 그 축복을 다시 자기의 아들에게 물려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습니다. 두 아들 중에 에서가 먼저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축복은 마땅히 장자인 에서에게 이어져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쌍둥이 아들이 리브가의 태속에 있을 때 이미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인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삭과 리브가에게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의하면 이삭의 축복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계승되어야 했습니다.
이삭의 실수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이 에서를 가만히 불러서 그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이삭은 야곱보다는 남자답고 믿음직한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에서야말로 자신의 뒤를 잇기에 손색이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구나 에서는 들짐승을 사냥해 와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드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어느 모로 보나 에서가 맘에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서는 장자였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관습으로는 장자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는 두 아들이 리브가의 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태에 있는 쌍둥이 아들 중에서 작은 아들 야곱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는 불분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나 애매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했거나 잊어버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는 야곱이 맘에 들지 않고 에서가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삭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를 가만히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계획을 말해주었습니다. 지금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잡아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별미를 먹고 에서에게 축복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늙어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1-4절)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고, 자신의 족장권을 상속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공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왕위를 물려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이렇게 은밀하게 둘이서만 할 일이 아니라 온 집안 사람들이 다 모인 가운데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한 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축복해야 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아들은 막중한 사명감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믿음을 지키며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의 사사로운 감정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이 막중한 일을 에서와 단둘이서만 은밀하게 진행시키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이삭에게 이것은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났으나 자기의 생각을 고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실수를 자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맘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내 생각대로 고집하며 밀고 나갑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생각이 우선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 뜻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내 뜻과 고집을 꺾어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복종해야 합니다.
리브가의 실수
이삭이 에서를 불러 은밀하게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이삭이 그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5절) 이삭이 에
서를 편애한 반면에 리브가는 야곱을 편애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을 막기로 했습니다. 리브가는 어떻게 해서든지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들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이므로 당연히 야곱이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불러 아버지와 에서의 계획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은 축복을 가로챌 또 다른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좇아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부친을 위하여 그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네가 그것을 가져 네 부친께 드려서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8-10절)
우리는 리브가에게서 놀랍게도 믿음과 죄악이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더구나 야곱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것을 저지하고자 했습니다. 남편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리브가의 실수였습니다. 리브가는 부정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실수가 많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방법, 부정하고 죄악된 방법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많이 벌어서 헌금도 많이 하고 좋은 일에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예물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목적이 선하다면 수단과 과정도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수단과 방법만을 사용해야 합니다.
야곱의 실수
어머니의 말을 들을 야곱은 두려워하면서 주저했습니다. 이렇게 중대한 일에 있어서 아버지를 속였다가는 어떤 저주를 받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그 모친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뵈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11-12절) 그러나 어머니 리브가의 태도는 단호했습니다. 그녀는 만일 그렇게 되면 모든 저주는 자기가 대신 받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13절)
야곱은 소심한 사람이어서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어머니의 말대로 했습니다. 야곱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실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런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 거절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악된 것인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은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실수하는 사람, 세우시는 하나님
이삭과 리브가와 야곱은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이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실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은 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물려주는 너무나도 중대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리브가는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여 남편을 속였습니다. 야곱은 잘못된 것일 줄 알면서도 어머니의 말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믿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은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다시 세우시고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의 연약함과 죄와 실수를 능가하며, 결국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이렇게 실수를 했다면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때로 실수하고 넘어지고 범죄한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범죄한 것에 대해서는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 때문에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실수를 거듭했고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여전히 일으켜 세우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잃지 말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당신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연약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당신을 다시 한번 굳게 붙잡아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흔들리지 않는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이렇게 실수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어김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실수와 불순종과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차질 없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결국 이삭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방해하려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악한 자들이 하나님을 대적한다 해도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사용될 뿐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바로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래도 바로는 여전히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분노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두려워하며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10번째 재앙이 내리고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자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낸 후에도 다시 마음이 강퍅해져서 광야로 나간 그들을 추격했습니다.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다 가운데로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뒤쫓아 들어온 바로와 그 군대는 바다에 멸하셨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로의 대적과 발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어김없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했던 바로는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만방에 널리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9:16)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을 행한다 해도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십니다.
더 좋은 방법
이러한 사람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은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와 야곱의 부끄러운 일들을 통해서 이삭의 불순종을 저지시키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리브가와 야곱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징계하셨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와 야곱은 이 일 때문에 큰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자기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챈 것을 알게 된 에서는 동생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 아람에 있는 외가로 피신시켜야 했습니다. 야곱은 혈혈단신으로 낯설고 머나먼 곳으로 도망쳐야 했으며, 그 이후로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야곱이 그렇게 떠난 이후로 리브가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엄청난 대가를 치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삭에게서 야곱에게로 계승되는 귀하고 복된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불행한 일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이었습니다. 이 일이 꼭 그렇게 이루어져야만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한 마음으로 순종했더라면 이 일은 하나님의 큰 축복 가운데서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그들도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당신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우리만 손해와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고집과 감정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