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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27:3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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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4·07·26
사람에게 가장 힘들고 상처가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는 것입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거나 입사 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거절당하는 일들입니다. 특히 그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거절을 당하게 될 때, 누군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거절당하게 될 때는 그만큼 더 큰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하나님께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거절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거절을 당했을 때 가인은 자기의 잘못된 것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분노하며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무조건 다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중에는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아주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너의 예배는 받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예배드리는 태도와 마음을 볼 때 과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우리의 예배를 거절하셨다면 우리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기쁘게 받아주실까요? 그 날에 하나님께 거절당하게 된다면 더 이상 기회도 소망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거절당한 사람은 가차 없이 지옥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접을 받고 상급 받는 것을 보면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더욱 믿음으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거절당하는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거절당하는 에서를 보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이삭
리브가의 음모에 따라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가 에서에게 축복한 줄 알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에서가 돌아왔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30절) 우리는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냥했겠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서둘러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져갔습니다.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31절)
이삭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는 방금 이삭에게 축복했습니다. 좀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철저하게 확인했습니다. 손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에서가 들어와서 음식을 먹고 축복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때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33절)
왜 이삭이 이렇게 심히 크게 떨었을까요? 야곱에게 속은 것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삭이 아들에게 축복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할 수 있는 일중에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물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들을 축복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을 고집했습니다. 이삭은 이렇게 자기 뜻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아들 에서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속아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이렇게 속는 것을 보시고도 가만히 내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내버려두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이삭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이삭은 심히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 때 이삭이 어떻게 했습니까? 속은 것을 알았지만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처음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된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비록 처음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막으시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 것을 알았을 때는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으실 때
이러한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심히 크게 두려워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에게 갑자기 큰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갑자기 자녀에게 병이 나서 큰 고통을 당하게 되기도 하고, 사업에 심각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며, 도둑이 들어서 귀중품을 털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평소에도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그것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일들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는 심히 큰 두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신 것이구나!” 여기 계신 성도들 중에 이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범죄한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전도가 유망한 왕자였던 모세는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 일이 탄로나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미디안에서 그는 이드로의 장녀 십보라와 결혼했습니다. 애굽의 왕자에서 살인한 도망자로 전락한 모세가 처가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이렇게 40년을 지냈는데, 그 기간은 하나님께서 그를 연단하시고 준비시키신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러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장 중요한 할례를 아들들에게 행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를 죽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지도자가 될 모세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십보라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린 것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처가살이를 하던 모세는 십보라의 주장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자 십보라는 그것이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즉시 아들들에게 할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경고를 잘 깨닫고 있습니까? 솔로몬은 우리에게 곤고한 일이 닥칠 때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7:14상)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순종할 때 곤고한 일을 보내사 경고하십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곤고한 일을 주실 때 우리는 두려워하면서 속히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경고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울며 축복을 구하는 에서
이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게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속은 줄 알았지만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33절)
그러나 에서는 자기의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기 때문에 이것은 무효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아버지가 자기에게도 축복해주어야 한다고 떼를 썼습니다.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도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34절) 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자기의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36절)
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순간 에서도 마땅히 이삭처럼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축복해달라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졸라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6-17) 에서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저주하는 이삭
에서는 울면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울면서 자기에게도 복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에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39-40절) 이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주었던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에서는 처음부터 이렇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한 말을 자세히 보면 이것이 꼭 저주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저주 속에는 에서가 복을 받는 길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 복을 받는 길은 아우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택하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서는 야곱을 통해서만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축복이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만일 그가 이것을 인정하고 아우를 섬겼더라면 야곱이 받은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마엘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때까지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삭이 태어나자 이스마엘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져버렸습니다. 아들이 없을 때는 종에게서 낳은 아들도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처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종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 점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그 결과 이스마엘은 자기 어머니 하갈과 함께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스마엘이 이삭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랑했더라면 함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과 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만일 에서가 기꺼이 멍에를 맸더라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생애는 억지로 멍에를 매다가 결국은 그것을 떨쳐버리는 생애였습니다. 이것은 큰 불행입니다. 오늘도 억지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가장 힘들고 상처가 되는 것은 누군가에게 거절을 당하는 것입니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거나 입사 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거절당하는 일들입니다. 특히 그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거절을 당하게 될 때, 누군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거절당하게 될 때는 그만큼 더 큰 고통과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하나님께 거절당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아벨의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거절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거절을 당했을 때 가인은 자기의 잘못된 것을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분노하며 동생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무조건 다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중에는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아주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너의 예배는 받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당신이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예배드리는 태도와 마음을 볼 때 과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 우리의 예배를 거절하셨다면 우리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기쁘게 받아주실까요? 그 날에 하나님께 거절당하게 된다면 더 이상 기회도 소망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거절당한 사람은 가차 없이 지옥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접을 받고 상급 받는 것을 보면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더욱 믿음으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거절당하는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거절당하는 에서를 보게 됩니다.
두려워하는 이삭
리브가의 음모에 따라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가 에서에게 축복한 줄 알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 에서가 돌아왔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30절) 우리는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사냥했겠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서둘러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가져갔습니다.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비에게로 가지고 가서 가로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31절)
이삭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는 방금 이삭에게 축복했습니다. 좀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철저하게 확인했습니다. 손도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에서가 들어와서 음식을 먹고 축복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때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33절)
왜 이삭이 이렇게 심히 크게 떨었을까요? 야곱에게 속은 것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이삭이 아들에게 축복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삭이 할 수 있는 일중에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아버지가 아들을 축복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물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들을 축복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을 고집했습니다. 이삭은 이렇게 자기 뜻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아들 에서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완전히 속은 것입니다. 속아서 에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축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이렇게 속는 것을 보시고도 가만히 내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내버려두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이삭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이삭은 심히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 때 이삭이 어떻게 했습니까? 속은 것을 알았지만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처음 작정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된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비록 처음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막으시고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신 것을 알았을 때는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래도 이삭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으실 때
이러한 일은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우리도 이삭처럼 심히 크게 두려워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대로 고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에게 갑자기 큰 어려움이 닥쳐옵니다. 갑자기 자녀에게 병이 나서 큰 고통을 당하게 되기도 하고, 사업에 심각한 어려움이 찾아오기도 하며, 도둑이 들어서 귀중품을 털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평소에도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그것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한 일들을 당할 때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생각납니다.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는 심히 큰 두려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신 것이구나!” 여기 계신 성도들 중에 이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범죄한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즉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전도가 유망한 왕자였던 모세는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 일이 탄로나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미디안에서 그는 이드로의 장녀 십보라와 결혼했습니다. 애굽의 왕자에서 살인한 도망자로 전락한 모세가 처가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이렇게 40년을 지냈는데, 그 기간은 하나님께서 그를 연단하시고 준비시키신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러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장 중요한 할례를 아들들에게 행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를 죽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자요 지도자가 될 모세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십보라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린 것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처가살이를 하던 모세는 십보라의 주장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하시자 십보라는 그것이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즉시 아들들에게 할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경고를 잘 깨닫고 있습니까? 솔로몬은 우리에게 곤고한 일이 닥칠 때 생각하라고 말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7:14상)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순종할 때 곤고한 일을 보내사 경고하십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곤고한 일을 주실 때 우리는 두려워하면서 속히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경고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울며 축복을 구하는 에서
이삭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게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속은 줄 알았지만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33절)
그러나 에서는 자기의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기 때문에 이것은 무효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아버지가 자기에게도 축복해주어야 한다고 떼를 썼습니다.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도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 하소서”(34절) 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자기의 것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36절)
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순간 에서도 마땅히 이삭처럼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도 축복해달라고 울면서 아버지에게 졸라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신약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6-17) 에서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저주하는 이삭
에서는 울면서 회개한 것이 아니라 울면서 자기에게도 복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이삭은 에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39-40절) 이것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주었던 축복은 다른 사람에게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 하나밖에 없는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에서는 처음부터 이렇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한 말을 자세히 보면 이것이 꼭 저주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저주 속에는 에서가 복을 받는 길이 들어 있습니다. 그가 복을 받는 길은 아우를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생 야곱을 택하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서는 야곱을 통해서만 복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신 축복이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만일 그가 이것을 인정하고 아우를 섬겼더라면 야곱이 받은 축복을 함께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마엘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때까지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삭이 태어나자 이스마엘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져버렸습니다. 아들이 없을 때는 종에게서 낳은 아들도 상속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처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종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아무런 권리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 점이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괴롭혔습니다. 그 결과 이스마엘은 자기 어머니 하갈과 함께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만일 이스마엘이 이삭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랑했더라면 함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과 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만일 에서가 기꺼이 멍에를 맸더라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의 생애는 억지로 멍에를 매다가 결국은 그것을 떨쳐버리는 생애였습니다. 이것은 큰 불행입니다. 오늘도 억지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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