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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월드컵

고린도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686 추천 수 0 2010.02.14 23: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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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9:24-27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6.2
세계인의 공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요즈음 국가 대표 선수들의 예선전 성적이 좋아지자 히딩크 감독에 대한 칭찬이 자자합니다. 앞으로 성적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히딩크 감독의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유머를 보니까 앞으로 히딩크 감독이 어떻게 될까를 써 놓았습니다. 어이 없이 일승도 못거두고 16강 실패할 때는 또다시 온갖 비난이 쏟아지며... 역시 우리는 안돼 하는 자괴감과 함께 냄비 언론의 히딩크 죽이기가 나올 것이고 히딩크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쓸쓸히 고국 오렌지의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차범근 감독에 대한 찬사가 얼마나 자자했습니까? 컴퓨터를 이용한 치밀한 작전 어쩌고 저쩌고 그러다 지니까 98월드컵 도중 해임되는 치욕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히딩크도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16강에 오를때는 많은 국민들이 열광하며 히딩크 귀화설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그러나 한국인들의 가슴에 엄청난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히딩크는 자랑스럽게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8강에 오르면 이미 5천만에 해당하는 히딩크 스토커가 양산되어 히딩크는 강제로 귀화당하게 되고 한글로 된 히딩크 위인전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4강에 오르면 히딩크는 정몽준과 함께 축구당을 만들어 정계에 진출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결승에 오르면 전국 방방 곡에 히딩크 동상이 세워지고 히딩크 당이 생겨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온 국민이 히딩크 생각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국가대표 선수가 우승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히딩크 교라도 만들어지고 히딩크가 교주가 될까요? 승리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고 황홀한 일입니다. 지난해 우승팀인 프랑스를 이기 세네갈은 어제(토요일) 얼마나 기쁜지 하루 휴교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마치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 하는 자(24)", "이기기를 다투는 자(25)" "다름질 하기를(26)" "허공을을 치는 것(26)"이라는 말로 신앙 생활을 마라톤 경기, 권투 시합 등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월드컵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의 신앙 경주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

1.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26) 향방없는(육상) 허공(권투)

월드컵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골문을 향하여 공을 차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골문에 골을 집어 넣는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골문을 향해 전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육상 경기하는 사람 역시 분명한 목적지가 있는 것입니다. 권투를 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허공을 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지점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 시에는 이스티미안 경기가 매 3년 마다 있었다고 합니다. 주요 경기는 경마, 경주, 권투 등이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마라톤과 권투의 예를 들어 운동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6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목표가 분명치 못한 운동 선수는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아테네를 향하여 달려가야 할 사람이 스파르타를 향하여 달려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믓 사람들을 유익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단연 목적의식이 분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를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창 12:1-2)"
모세를 부를 때 목표를 주고 부르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10)" 요셉에게 꿈을 주십니다. 바울을 부를 때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 9:15)"라고 말씀합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대영제국과 대결하여 승리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막대한 돈, 막강한 무기, 철저한 군사조직을 가진 영국 정부를 간디가 이긴 것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설정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대영제국이 물러간 후에 말했답니다. “목표의 힘은 군사력의 힘보다 강한 것입니다. 조직적인 정신력은 조직적인 군사력보다 위대한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로버트 클필톤은 세상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여덟명의 영적 지도자를 연구하여 [초점이 있는 삶]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는 밝히기를 그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삶에는 초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경영학 용어에 목표경영 ( Management by objectives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동경영'이라는 개념과 비교하는 용어입니다. 기업도 마구잡이식 경영이 아니라 목표 경영을 해야 효율성있는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표의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목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정력과 노력을 한 푯대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1961년 케네디가 미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무렵 미국과 소련이 인공위성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은 뒤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케네디는 취임에 즈음하여 "60년대 후반기까지는 인류를 달에 도착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이 계획은 거의 가능성이나 전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도 "빨라야 1995년 경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 보다 25년이나 앞당겨 1969년 7월 21일, 달에 인류가 최초로 그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은 인생 살이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합니다. 버스나 기차, 비행기, 배가 달릴 때는 목표가 뚜렷이 정해져 있습니다. 목표 없이 이곳 저곳 자유롭게 다닌다면 연료도 떨어지고 결국은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사람도 목표가 없는 생활을 하게 되면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치면서 살다가 상처는 상처대로 받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에 휩쓸려 줏대 없이 떠돌다가 무의미하게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월드컵에서 승리하려면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하여야 합니다. 가정을 꾸려가는데도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될 대로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참으로 명문가정을 만들어야 하겠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양육하는데도, 공부하는데도, 사업하는데도, 신앙 생활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는데, 기도하는데, 전도하는데, 봉사하는데 헌신하는데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에만 목표를 세우지 말고 무엇보다 하늘나라의 상급 받는 일에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불과 몇 일이면 시들어 없어질 나뭇잎 월계관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경기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썩지않고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경기하는 사람들입니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썩지 않은 면류관(고전9:25), 의의 면류관(딤후4:8), 생명의 면류관(약1:12,계2:10), 영광의 면류관(벧전5:4), 기쁨의 면류관(살전2:19)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끝이 날 날이 있습니다. 모든 생성된 것은 다 소멸될 날이 있습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약 4:14)" 이 땅에 잠시 사는 것입니다. 너무나 세상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원히 승리의 찬가를 부를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집 아니네 저 천국 없으면 나 어떻하라고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야 " 이런 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히12:2) 목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자기 나름으로는 열심히 신앙경주를 한다고 하기는 했는데 정작 예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 되겠습니까?(27)

2. 승리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야 합니다(24).

프랑스와 세네갈의 경기에서 지게 된 원인을 대부분 지단의 결장과 상대를 너무나 과소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피파 랭큉 1위이고 세네갈은 42위입니다. 서열 대단한 것 아닙니다.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 잘하는 사람도 한 달간만 놀면 바로 표가 납니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전력 투구해야지 적당히 해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개인기를 최대한 발휘해야 합니다. 팀웍을 최대한 살려야 합니다. 처음부터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신앙 생활을 마라톤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 "다름질 하기를(26)" 이라는 비유의 말씀은 단거리경주 뿐만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을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라톤은 한가한 경기가 아닙니다. 머리로 계산하는 경기가 아닙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야 할 경기입니다. 41.19 키로미터를 최선을 다하여 뛰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한 주 두 주, 1년 2년 반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면 내 생명을 다하는 마지날 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꾸준히 자신의 속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잠시도 방관해서는 않됩니다. 적력 투구를 해야 합니다. 경기를 하는 동안에는 잠시도 방심할 수가 없습니다. 자만할 수가 없습니다.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태만할 수가 없습니다. 잠시라도 방심했다 가는 지는 겁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산다면 결코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얼마나 있는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모두가 최고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최선을 다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틴 채플이라는 교회당의 천정 벽화를 손수 그리고 있었답니다. 그 천정은 까마득히 높았기 때문에 그 아래에서는 사실 천정의 모습이 한 눈에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답니다. 그래도 그는 이 천정의 벽에 가까이 붙어서 선 하나 하나를 정성을 다해서 그리고 있었답니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친구 한 사람이 "여보게, 여기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그냥 적당히 해두고 내려오게나."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천정에서 그 친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답니다. "여보게, 이 그림을 다 그린 후에 이 그림의 성과가 어느 정도인가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자네겠지." "맞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는 한 나는 최선 이하로 일할 수는 없네."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는 하나님이 알고 자신이 압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사업을 하여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여도, 기도를 하여도, 전도를 하여도, 봉사를 하여도, 가정생활을 하여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달란트를 최대한 개발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는데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한나를 보십시오. 아이를 낳지 못하자 포기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합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삼상1장 12절 이하를 보십시오. "오래, 입술만 동할 정도로, 술취한 여인으로 오해 받을 정도로, 심정을 통하여"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 이하에 나오는 귀신들린 딸을 고치기 위한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십시오.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침묵합니다. 제자들이 방해합니다. 개취급합니다. 포기합니까? 아닙니다. "주여 도우소서"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경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유명한 사람은 여호수아일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열심 대단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아침 일찍부터 준비합니다. 성경을 찾아 보세요(수3:1, 6:12; 7:16; 8:10) 신앙의 월드컵에서 우리가 이기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적당히 하면 사단에게 넘어집니다. 음식이 썩는 것은 차때가 아닙니다. 더울 때가 아닙니다. 미지근할 때 썩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자식으로, 아내로, 남편으로, 직장인으로, 국민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3. 절제하여야 합니다(25.27).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올림픽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서 선수들은 최소한 10개월 동안 예비훈련을 받아야 했고, 경기 시작 30일 전에 경기장에 집합하여 엄격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조건을 채우지 못하는 자는 경기할 자격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격을 선별하는 이유는 자기 마음대로 경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의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경기에서 이기고자 하는 자는 자신을 관리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급 스러운 것이 있다하여도 버려야 합니다. 몸을 무겁게 할 수 없습니다. 좋은 시계도 벗어 놓고 뛰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25절 읽어 보겠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는 것입니다. 승리에 방해 되는 것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든 아무리 값진 것이든 아무리 길들여진 것이든 버릴 것 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승리를 방해하는 무거운 짐들 우리 주님께 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것 계속 지고 가면 결국 실패합니다.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까?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것과 얽매이기 쉬원 죄를 벗어버리고"(히12:1) 라고 한대로 죄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편기자는 "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시68:19) 라고 했고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라고 했습니다.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요1:29) 무거운 죄짐을 맡길때 주님은 우리의 신앙경주를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찬송가: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363장 1절)"

무거운 짐 가지고 즐기지 마시고 다 주님께 맡겨 놓으면 우리의 가정의 짐, 우리의 신앙의 짐, 우리의 인생의 짐 주님께서 맡아 주시고 신앙의 월드컵에서 가볍게 승리하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절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무엇입니까?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관리해야 합니다. 기분을 다스려야 합니다. 자신의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반응을 자제해야 합니다. 자신의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27절 내 몸을 처서 복종시킨다는 것은 '노예를 길들인다'라는 뜻입니다. 내 몸을 길들여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다스리는 거예요. 신앙의 경지에서 승리자는 자기를 이긴 자입니다. 운동 선수가 궁극적으로 자신과 싸움에서 이겨야 하듯이 신앙 경기에서는 상대가 밖에 있는 것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싸움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본능이라 해도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자고 싶은 것 다 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서는 경기에 절대로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삼손은 큰 용사였으나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여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유다가 머리가 나빠 실패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돈이 없어 망한 것 아닙니다. 자신의 탐욕을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롯의 아내가 떠나지 않아서 소금 기둥이 된 것이 아닙니다. 호기심을 절제하지 못해서입니다. 단호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자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승리할 수 없습니다. J. 홀은 "절제는 모든 미덕의 진주 고리를 꿰뚫고 흐르는 명주실이다."라고 했습니다. W. 고텔은 "절제는 만족의 어머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자제력입니다. 잠언 25장 28절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정신에 절제하는 힘을 갖지 못하면 벽이 파괴되어 적을 방어할 수 없는 성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16장 32절에서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계속적으로 절제 운동을 실천해 왔습니다. 초기선교사들은 기독교의 사회구원적 측면에서 절제운동을 함께 펼쳤습니다. 초기 한국교인들의 생활강령 7개조는 예배, 안식일, 효도, 순결, 인가귀도, 근면 정직, 술 도박 아편의 금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절제운동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실천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절제의 덕을 보여야 합니다. 지식도 절제되어야 합니다. 생각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고 끝까지 가면 안됩니다. 베드로는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벧후1:6)고 했습니다. 이러한 절제는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계시면서 나를 다스리실 때에 순종하면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성령의 열매 맨 끝에 왔다고 해서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도 희락도 화평도 오래 참음도 자비도 양선도 충성도 온유도 절제의 덕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참 가치가 있습니다.

신앙의 월드컵/고전9:24-27/2002.6.2 김필곤 목사(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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