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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주는 유익

베드로전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372 추천 수 0 2010.02.14 23: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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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전1:6-9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 7. 28

지금까지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은 미국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인 강영우 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분은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종교 및 사회봉사 부문 자문위원에 발탁되기도 했고 부시 행정부에서 차관보 급에 올랐습니다. 그분은 앞을 볼 수 없는 장애인입니다. 선천성 장애인이 아니라 공을 차다 축구공에 맞아 실명되었습니다. 시련이 다가 온 것입니다. 그에게 시련은 그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이 장님이 된 것으로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고 누나가 과로로 쓰려져 돌아가셨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시련을 당하면 사람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잔깐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도 불구에 고아가 된 막막한 인생을 한탄하며 죽기를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수면제를 잔뜩 먹고 죽으려고 시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맹아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연세대학교를 맹인으로 처음 들어갔습니다. 생각을 바꾸기까지는 시간과 고통이 필요했지만 한번 생각을 바꾸자 목표를 정하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문과대학 차석으로 졸업하였습니다. 한국 최초로 미국 정규 유학의 길에 올랐고 피츠버그 대학에서 3년 8개월만에 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큰아들 진석이는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명문 듀크대학에서 안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둘째인 진영이는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듀크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미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분은 아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과 약속들을 함께 기억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앞을 못보는 장애자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재활을 통해 제게 주어진 시련과 역경을 축복으로 바꾸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고난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았고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한때 원망했던 하나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고난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애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이승리의 메시지를 학교와 교회에서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련이 다가옵니다. 예수 믿는다고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다고 시련의 비가 나만 비켜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에 태풍이 불면 예수 믿는 사람의 벼도 쓰러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시련을 당할 때 그 시련을 어떻게 대처하냐는 것입니다.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련을 유익하게 만드는 사람과 그 시련으로 쓰러지는 사람입니다. 강영우 박사 같은 분은 시련을 유익하게 만드신 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시련을 유익하게 만든 사람들입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이분들은 많은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으로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시련으로 오히려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신앙이라고 시련이 비켜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인이 다른 것은 시련을 당하되 그 시련을 유익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시련은 믿음을 연단하여 성숙하게 합니다(7).

현대어 번역에는 "이러한 시련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 것인가를 보고자 하는 시험에 불과합니다. 마치 금이 불에 정련되어 순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을 어찌 닳아 없어질 금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불과 같은 시련 속에서 연단을 받은 후에도 강한 믿음으로 남아 있을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많은 칭찬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 (벧전 1:7)"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시련이라는 단어는 순금과 가짜 금을 구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순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용광로에 넣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금만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순금을 만드십니다. 시련을 통해 순수해집니다. 시련을 통해 가치있는 존재가 됩니다. 마치 금광석을 제련하여 금을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순금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이나 마이트를 터뜨리며 금광석을 캐내어 제련소에서 큰 용광로 속에 넣어 정련을 합니다. 불을 가합니다. 그러면 순금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쓰시기 위해 우리를 시련이라는 과정을 통해 훈련시킵니다. 불순물을 제거합니다. 명예욕을 제거합니다. 세상에 매몰된 세상적 사고를 제거해 줍니다. 정욕, 탐욕, 이기심을 제거해 줍니다. 시기심을 제거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해 주십니다. 만약 모세에게 40년 광야 생활의 시련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그렇게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장인 집에서 처가살이 하면서 갖은 수모를 겪으며 양을 치면서 단련되었기 때문에 그가 그 백성들의 비난과 몰염치, 배은망덕을 잘 극복하며 그 많은 백성을 이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궁중에서만 살았다면 그 광야 생활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 그많은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그렇게 훌륭한 성군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을 보십시오. 억울한 옥살이입니다. 억울하게 형제들에게 인신매매되어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이 쓸만한 그릇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그런데고 그에게 계속된 시련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련을 겪으면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은 얼마나 어려운 시련을 만났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시련을 받습니다. 그는 시련의 과정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고백했습니다.
많은 그릇이 있지만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깨끗해진 순수한 그릇을 쓰기를 원합니다.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나무 그릇 등 여러 그릇이 있지만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기를 원합니다.(딤후 2:20) 우리는 시련을 통해 순수해지고, 시련을 통해 겸손해 지고, 시련을 통해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잃은 것 보기 때문에 절망합니다. 그러나 시련도 하나님의 도구라고 생각하면 그 하나님께서 시련을 통해 주실 것을 바라보면 우리는 기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합니다. 인생을 멀리보게 합니다.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킵니다. 넓게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하나님이 쓰실 만한 그릇을 만듭니다. 우리를 정결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련도 유익입니다.
주홍 글씨를 쓴 나다니엘 호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였지만 그는 면직당했습니다. 수심이 가득찬 모습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눈치를 채고 남편에게 펜과 잉크와 종이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렇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바빠서 글을 쓰지 못했으니 이젠 마음놓고 당신이 쓰고 싶은 긍를 써보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결국 실직이라는 시련이 그에게 불후의 명작 '주홍글씨'를 있게 했습니다.
소설가 스티븐슨은 결핵 말기의 시련을 통해 명작을 집필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평생 자신을 괴롭힌 만성두통이라는 시련을 가지고 인류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파스칼은 청년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힌 온몸의 통증이라는 시련을 이겨내고‘팡세’를 남겼습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의 시련 선교사 마틴은 폐결핵과 악전고투하며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는 류머티즘으로 고통을 겪으며 그림을 그렸고 구세군운동을 주도한 캐더린 부드는 “내 삶에 있어서 단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에 낙방하는 시련을 만난 사람입니다. 김활란 박사는 첩의 딸로 때어났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시련 앞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시련을 유익으로 사용한 사람들입니다.약1:2-4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2. 그리스도 앞에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얻게 합니다(7).

시련이라는 말 [페이라스모스]는 유혹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당시 의대생이 치르는 시험을 "시련"이라고 했답니다. 이 시련은 영어의 Test입니다. 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영광이 따라옵니다. 이 땅에서도 시련을 통과하면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주어지지만 시련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 살 때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 열심히 병사가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후에 주어지는 훈장이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계속적인 시련으로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더 튼 칭찬을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이 땅에서 받은 인정 그것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하늘 나라에 갈 때 잘했다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됩니다. 이 땅에서 시련의 연속일지라도 그날을 바라보는 삶을 산다면 시련은 나에게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선정주 시인이 있습니다. 목사이면서 시인입니다. 오래 전에 그 분 집을 찾아 갔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입니다. 너무 가난합니다. 집이 없어 일년에도 몇차례 씩 이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달과 아이라는 자신의 시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시를 제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시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숙제장에 달을 그리고/ 늦게 잠이 드는 아이/ 숙제장에 그린 달은/ 꿈속에 뜨지 않았다./ 아이의 꿈속에 뜬 달은/ 숙제장의 달이 아녔다/ 고향 노랠 부르라면/ 눈빛 굳어지는 아이/ 달은 대기에 침전 되어 떡방아 찧던/ 토끼 부부는 떠나고 살던집 폐허로/ 남아 그 수심띤 얼굴 이런밤 나는/ 고향이 있어 앓고 너는 고향이 없이 앓고/ 아이의 그린 그림에는/ 참외 나무에 열린다/ 이런밤 기도를 드린다는 것/ 죄를 짓는 일이다/ 일곱번 학교를 옮겨 졸업장을 탄/ 큰 놈은 고향도 동문도 없다/ 막내 딸 애는 4학년에 벌써/ 세 번이나 옮겨/ 또 전학을 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 밤 기도를 드린 다는 것/ 참 비범한 일이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시련의 연속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죄 때문에 받은 시련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려고 하다 받는 시련이라고면 우리 하나님께서 칭찬해 주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존귀와 영광을 얻을 날이 있습니다. 지금 존귀함 받지 못하고 지금 영광스런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하여도 존귀와 영광을 받을 날이 반듯이 있습니다.

에디슨이 66세 때 연구실에 불이 나서 진행 중이던 연구 자료가 모두 다 타 버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모두들 발을 구르고 안타까워했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답니다. "나는 이 잿더미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실수와 잘못을 깨끗이 불태우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적을 보여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결국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대로 놓아 두면 안되니까 말입니다.
진주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쩌다 조개의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은 조갯살 속에 박혀 고통을 줍니다. 그때 조개는‘nacre(진주층)’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어 모래알 주변을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그렇게 몇달 몇년이 흐르면 바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시련이 임할 때 주님 만나는 그날에 내가 칭찬과 존귀와 영광에 처할 값진 진주를 품었다고 생각하십시오. 내가 당하는 시련이 크면 클수록 내가 품고 있는 진주가 더 크고 값지겠다고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 죄로 당하는 시련을 기뻐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시련입니다. 믿음 생활 잘하려다고 믿음으로 살려다가 당하는 여러 가지 시험입니다. 다체로운 시험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벧전 4:12-14절을 보십시오. 그 당시는 예수 믿는 것 하나 때문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집과 전담을 잃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화형을 당하고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하늘 나라의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사에 빈민구제와 사랑을 실천하여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경건한 식스투스라는 감독이 있었답니다. 그는 당시의 발레리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순교의 길을 걸어갑니다. 그 교회의 수석 집사인 라우렌티우스가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면서 말합니다.“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데려가지 않습니까?”그러자 식스투스 감독이 대답합니다.“사랑하는 아들아, 너도 며칠 후면 나의 뒤를 따르게 되리라.” 며칠 후, 로마 시장은 라우렌티우스에게 교회의 전 재산을 국가에 상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는 재산을 정리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내세워 상납일을 며칠 미루고는 교회의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수천의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당에 그 사람들을 다 모집하였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날, 시장이 교회당에 올라오면서 보물을 요구하자 그는 예배당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소경, 벙어리, 걸인, 병자, 고아, 과부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그 무리들을 가리키며“교회의 보물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식스투스의 위대한 신앙을 본받은 라우렌티우스 집사는 로마 황제 앞에서 숯불로 달구어지는 수난 끝에 순교의 제물로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시련을 기쁘게 감당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이라는 시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델리마쿠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로마에는 검투가 유행했습니다. 그는 검투사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잔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검투를 끝장내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검투장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 무도한 검투는 끝낼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는 가슴을 찔려 죽으면서 외칩니다.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잔악 무도한 검투는 끝낼지어다." 그의 죽어가는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에 흥분이 사라졌습니다. 한 사람 두사람 떠나갔습니다. 그후 로마에서 검투 경기 살아졌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란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한 시대의 난제를 끝냈던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시련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시련을 당할 때 그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련이 주는 유익/벧전1:6-9/2002. 7. 28 김필곤 목사(열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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