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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야고보서 우제돈 목사............... 조회 수 2709 추천 수 0 2010.02.20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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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약4:13∼17 
설교자 : 우제돈 목사 
참고 : 상원교회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작품 주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어느 행인이 맹수의 추격을 받아 낭떠러지의 낙락장송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큰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나무 위에서 흰쥐와 검은 쥐가, 자기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를 쏠고 있었습니다. 위에는 맹수요, 아래는 뱀이요, 줄기에는 낮과 밤을 상징하는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그의 생명을 단축케 하니,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모습이라 했습니다.
  주님은 야고보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하고 물었습니다. 괴테는 ‘인생은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버너드 쇼는 ‘인생은 괴로움’이라고 했으며, 영국의 세익스피어는 ‘사람의 인생은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우리의 생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우리는 나면서부터 죽어 가는 존재입니다. 일회용 샴푸나 면도날과 같은 소모품입니다. 우리는 나자마자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죽기 위하여 크고, 죽기 위하여 늙고, 죽기 위하여 아귀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무실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남자의 인생은 기차와 같다.
  20대에는 정거장마다 멈춰서고, 30대에는 도시의 정거장에만 선다.
  40대에는 논스톱으로 달리고, 50대에는 정거장이 아닌 곳에도 선다.
  60대에는 철길이 아닌 곳에 서있다. 움직이지 않은 채로.

  또 여자의 인생은 세계와 같다.
  20대에는 아프리카처럼 미개척지이고, 30대에는 인도처럼 조금은 신비롭다.
  40대에는 미국처럼 기교적이고, 50대에는 유럽처럼 황폐하다.
  60대에는 시베리아처럼 황막하다. 아무도 그곳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사람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7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한 살은 임금님. 모두 떠받든다.
  두 살은 돼지. 진창에서 뛰논다.
  열 살은 염소. 장난이 심해 날뛰며 뛰논다.
  열여덟 살은 말. 힘을 뽐내려 한다.
  결혼 후엔 당나귀. 가정이란 짐을 지고 터벅거린다.
  중년은 개. 여러 사람의 도움을 청하며 헤맨다.
  노년은 원숭이. 어린애 같아지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옛부터 내려오는 시조에 "느는 주름 막대로 막고 오는 백발 가시로 치렀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조 때의 시인 김수장은 터럭은 희었어도 마음은 푸르러서 "꽃은 날 보고 티없이 반기는데, 각시네 무슨 탓으로 눈 흘김은 어찜이뇨"했고 우암 송시열 선생은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하여 사람의 늙음을 탄식했으며, 작자 미상의 시조 가운데서도 "말 없는 청산이요 태 없는 유수로다, 값없는 청풍이요 임자 없는 명월이라, 이 중에 병 없는 몸이 분별 없이 늙으리라"고 짧은 인생 속에서 덧없이 늙어 가는 자신의 나이를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우리 생명은 허황 된 것입니다. 허된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의 하나는 새로 만든 궁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곧 죽었습니다. 소위 급살맞아 죽은 것입니다. 또 로마의 법왕 아드리안은 파리 한 마리가 목에 걸려 질식해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집정관 한 사람은 자기 집 현관에서 발을 헛디뎌 그것이 병이 되어 죽었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접싯물에 빠져 죽는 파리 목숨과 같은 것이 우리의 덧없는 인생이라 할진대, 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모릅니다.
  목숨이라고 말하지요. 목숨, 목숨이 뭡니까? 목에 숨이 통하는 것은 살았다는 증거요, 이것이 끊어지면 죽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하품을 잘하고 어른들은 한숨을 잘 쉽니다. 즉, 어린아이들은 시간이 안 가서 몸부림을 치지만, 어른들은 하루가 십 분 지나가는 것처럼 너무 빨라 한숨을 쉬며 돌아보아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욥은 우리 인생에 대하여 "나의 날이 체부보다 더 빠르다"고 했고 ‘아침의 풀’같다고 했으며, 이사야는 ‘그림자’같다고 했고 ‘연기’와 같다 했고 또 ‘물거품’같다고 했고 ‘베틀의 북’같다고 했고 ‘하룻밤 자고 가는 행인’과 같다고 했습니다. 덧없는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셋째, 언제 죽을 지 내일을 모르고 사는 존재가 우리의 생명입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것처럼 호령하던 권세가도 금방 시신으로 변하는 꼴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여기서 지금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가 앞으로 백년 안에는 반드시 세상을 뜨고 말 겁니다. 항우 장사나 한 고조나 권력과 세도를 부리는 영웅호걸도  자기의 죽음을 거스를 재간이 없습니다. 내일이 우리 앞에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넷째,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저 세상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일컬어 극락이요, 지옥이요, 혹은 연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분명히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예수를 잘 믿고 영감 있는 신앙 생활을 하신 이의 영혼은 천당에 영생 복락이요, 악한 일을 한 자의 결국은 지옥의 영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영원을 사모하는 영적인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섯째,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은 피조물입니다. 만물을 만드신 마지막 날 인간을 만드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고로 우리의 몸을 가지고 죄를 지을 수 없고 훼손할 수 없고 타락에 빠질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우리는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됩니다. 악한 일을 하지 아니해서만 의인이 아닙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아니한 그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꼭 명심하면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십대에는 걸어가는 것 같고, 이십대에는 버스 타고 가는 것 같고, 삼십대에는 기차 타고 가는 것 같고, 사십대에는 비행기 타고 가는 것 같고, 육·칠십 대에는 인공 위성 타고 가는 것 같이 세월이 빠릅니다. 누구든지 거울 들여다보고 자기의 늙어 가는 모습을 보고 한탄치 아니한 분들이 없을 것입니다.
  추석 명절을 즈음하여 조상을 찾아 성묘하는 것도 좋지만, 명절을 당했을 때 주님은 어떻게 하였는가 생각해 봅시다. 주님께서는 성전에 가셔서 예배드렸습니다.
죽은 이의 무덤 앞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산해진미 앞에서 배를 불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제 생명의 바른 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행을 쌓는 일임을 돌이켜 생각합니다. 한숨쉬며 후회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깨달았다면 앞으로 얼마를 더 살든지 남은 여생 보람 있게 살다가 주를 위해 죽겠다는 각오가 오늘 있기를 바랍니다. 육십 환갑에 신학의 문을 두드리는 분이 계시고, 병상에 계시는 분이 새로 성경을 읽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모두 포도원 속에 들어와 일하는 일꾼들입니다. 어떤 이는 아침 일곱 시부터 들어와 일하였고, 혹은 열 시부터, 혹은 점심때가 지나서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문 닫기 한 시간 전에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저 일을 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면, 하나님은 그 한 시간을 하루 일 한 사람의 품삯과 같게 쳐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믿음의 생활을 합시다.
  지금까지 덧없이 허송세월 해왔던 지난날의 과오를 돌이켜 후회만 하고 있지 말고, 후회는 회개로, 회개는 결단으로, 나아가 주 앞에 남은 이 한 시간 열심히 충성 봉사하여 하나님의 칭찬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199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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