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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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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부활절
부활절의 유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이 살아나심으로 인해 그를 믿는 자들 역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이에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성탄절과 함께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기키고 있습니다. 소아시아를 중심한 동로마 교회들은 일찍이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이 지키던 큰 절기였던 유월절을 주님의 부활절로 변용하여 기념해 왔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유대의 종교력으로 니산월 14일에 지켜졌습니다. 그래서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주일과는 상관없이 유대력 니산월 14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 시기와는 달랐습니다. 동로마 교회가 유대의 종교력을 중요시한 반면 서로마 교회는 주일, 즉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요일을 주요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금요일에 일어났고 부활 사건은 안식일 다음날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막16:9, 눅24:1-7) 성경의 근거를 들어 서로마 교회는 부활절을 주일로 지킬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렇게 동,서로마 교회의 주장은 2-3세기까지도 부활절 시기에 대한 의견의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교회의 논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A.D.325년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ea) 회의에서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기간이어야 한다는 동로마 교회의 주장과, 반드시 주일이어야 한다는 서로마 교회의 주장을 다 수용시킨 절충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 부활절은 춘분(春分)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되 특정 일요일일 필요는 없다고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해결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동,서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월력의 차이로 인해 그 계산에 있어 심할 경우 5주씩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계산상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시 수정인이 나오게 되었는데, 결국 부활절은 유월절기와 연계시키지 않고 3월 21일로 고정되어 있는 춘분 이후에 오는 그 해의 14번째 일요일에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부활저은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의 금요일에 죽어 장사되신 주님은 삼일만인 일요일 곧 주일날에 스스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바 부활절은 이를 기념하는 주일날을 가리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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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이 살아나심으로 인해 그를 믿는 자들 역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이다. 이에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주님이 이땅에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함께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기키고 있다. 소아시아를 중심한 동로마 교회들은 일찍이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이 지키던 큰 절기였던 유월절을 주님의 부활절로 변용하여 니념해 왔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유월절은 유대의 종교력으로 니산월 14일에 지켜졌다. 그래서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주일과는 상관없이 유대력 니산월 14일이 되었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 시기와는 달랐다. 왜냐하면 동로마 교회가 유대의 종교력을 중요시한 반면 서로마 교회는 주일, 즉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요일을 주요시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금요일에 일어났고 부활 사건은 안식일 다음날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막 16:9; 눅 24:1-7). 이러한 성경의 근거에 의해 서로마 교회는 부활절을 주일로 지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동,서로마 교회의 주장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 2-3세기까지도 부활절 시기에 대한 의견의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교회의 논쟁의 불씨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A.D.325년 이러한 교회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ea)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기간이어야 한다는 동로마 교회의 주장과 반드시 주일이어야 한다는 서로마 교회의 주장을 다 수용시킨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부활절은 춘분(春分)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되 특정 일요일일 필요는 없다고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해결점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동,서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월력의 차이로 인해 그 계산에 있어 심할 경우 5주씩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계산상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시 수정인이 나오게 되었는데, 결국 부활절은 유월절기와 연계시키지 않고 3월 21일로 고정되어 있는 춘분 이후에 오는 그해의 14번째 일요일에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당시 동,서로마 교회의 호응 부복으로 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의 금요일에 죽어 장사되신 주님은 삼일만인 일요일 곧 주일날에 스스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바 부활절은 이를 기념하는 주일날을 가리킨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파스카'(Psacha)로 불렀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Passover)을 뜻하는 히브리어 '페사흐'( j s p )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구약의 초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 희생을 당한 사실에 근거하여 구약의 유월절을 예수의 부활 기념일로 변용시켜 기념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부활절을 의미하는 영어 '이스터'(Easter)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Eastre와 Ostara가 합성된 말로, 유럽의 튜튼족이 숭배한 새벽과 봄의 여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새벽은 어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봄은 새 생명이 겨울을 이기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각각 부활절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바 두 단어를 합성하여 부활절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실제 사건인 주의 부활과 승천은 결국 주님 안에서 우리 죄가 구속받고, 선과 악이 혼재된 이 불완전한 세상이 종결되는 세상 끝날에 우리도 부활하여 그 옛날 에덴 동산보다 더욱 좋은 새 낙원인 천국에서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복음의 진정성을 증겨해 주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성도는 죄로 오염된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 삶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세상 끝날, 즉 역사의 종말이 곧 있을 것이며 인간 모두는 일단 모두 부활하지만 영생과 영벌의 심판을 각각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라는 놀라운 역사적 비전을 갖는 것이다. 주의 부활은 실로 우리가 죽어도 살겠고, 살아도 영원한 천국에서 창조 당시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영원한 복락 속에서 살 것이라는 역동적 희망의 근원이다. 고로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 안에서 우리의 희망을 새로이 하자.
한편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Sabbath)로 지켰지만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께서 부활한 요일인 일요일을 예배드리는 주일날(Load's day)로 삼았기 때문에 신약시대에는 구약 안식일이 주일날로 바뀌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록들이 비교적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에 관련된 것이며 부활절의 기념과 그 행사에 대한 것은 유월절과 관련되어 잠깐 언급될 뿐이다(고전 5:7).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종교력으로 1월인 니산월 14일, 즉 유월절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이렇게 유월절이 부활절로 변용되어 기념된 것은, 예수의 부활이 유월절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출애굽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과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이 그 의미에 있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출 12:13).
전통적으로 소아시아 지역의 동로마 교회들의 성도들은 부활절에 양고기를 먹으면서 승리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일부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또한 부활 주일 이전의 월요일로부터 토요일까지 고난 주간의 행사로서 금식이 행해졌으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절에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애찬과 성찬을 나누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동로마 교회 뿐 아니라 서로마 교회에서도 행해진 것이었다.
한편 서로마 교회들이 어떻게 부활절을 기념했는지, 또 그 시기는 언제였는지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에서는 유월절에 기초해서 부활절을 기념하는 동로마 교회와는 달리 유대 전승에 근거한 부활절을 거부하며 보다 성경의 기록에 근거한, 로마 전승을 반영한 부활절을 기념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이유로 동,서로마 교회는 시기 문제에서부터도 합의를 보지는 못했으나, 이날을 성대하게 기념한 것은 일치하였다.
A.D.325년 니케아 회의 이후 오랜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부활절 시기의 문제가 동,서로마 교회에 합의가 이루어지자 이들 교회들은 부활절과 관련한 보다 다양한 해사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교회들은 부활절 전날 촛불을 밝히며 부활절 전야제 등을 거행하였다. 또한 이날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모세 오경과 주님의 수난 설화등을 낭독하였으며, 성유를 바르는 의식 맟 성찬을 행하였다. 하편 중세 기록에 의하면, 부활절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의 즐거운 축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 부활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의 문밖 외출을 금했다고도 한다.
이런한 부활절은 개신교 모든 교단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자신들 역시 영생의 부활에 동참하기를 기원하는 중요한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또한 이날 세례와 입교식, 그리고 성찬을 행하여 더욱 의미깊은 날로 삼기도 한다.
(1) 부활절 철야제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기 위한 부활절 주요 의식으로 성 토요일과 부활 주일 사이에 거행되었다. 히폴리투스가 지은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의하면 이때 교회에서는 세례식이 베풀어지고 성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이후에는 교회력의 발달로 그리스도께서 수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 금요일을 이날과 명확히 분리시켜 준수하게 되어, 성찬 등의 의식은 주로 그 이전에 행하고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중점을 두어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철야 예배가 토요일 오후, 토요일 아침 등으로 그 시간대가 변경되면서 사실상 철야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51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부활절 철야제가 부활되어 다시 지켜지고 있다.
(2) 부활절 연합 예배
우리 나라의 교회들은 새벽에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제 1회 부활절 예배는 1947년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터에서 거행됐는데, 이때 모인 신도는 1만 5천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부활절 연합 예배가 드려졌던 남산의 조선 신궁터는 과거 일제시대 때 신사 참배가 행해졌던 곳으로 해방 후 이곳에서 드린 부활절 연합 예배는 종교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실로 감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설교는 자로 교회의 한경직 목사가 맡았었다.
4회까지는 계속 남산에서 예배가 개최되었으나 6.25사변으로 인해 제 5회 연합 예배는 부산의 보수 공원에서, 제 7회 부활절 연합 예배는 부산 사범학교 뜰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1960년 이후에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분열로, 또다시 예방측 합동 교단이 별도로 예배를 드리게 되어 부활절 예배가 같은 날 세 장소에서 드려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78년에 와서야 재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별로 부활절 연합 예배가 거행되고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1975년부터 연합 예배의 장소가 여의도 광장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계속적으로 그곳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평소 교파를 달리하던 각 교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함께 모여 화목 제물이 되셨던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뜻있는 부활절 예배가 될 것이다.
(3) 촛불 행진
부활절 새벽 예배가 끝난 다음 행해지는 부활절 행사로 촛불 행진이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새 희망과 세상에 빛으로 이땅에 오사 이를 완성하시기 위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행사에 참가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주변을 돌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린다.
촛불 행진시에는 전도지 등을 미리 준비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근처에 있는 집의 대문 안에 넣어 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의 작은 행동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임을 인식하여 경건하게 행동하도록 한다. 또한 주위의 많은 가정이 잠들어 있을 때이므로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4) 부활절 달걀 나누기
부활절 달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껍질은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죄인의 대속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부활절에 부활절 달걀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때 이러한 행사가 우리 교회만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이웃에게도 부활절 달걀을 나누어 주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 출석을 게을리 했던 성도를 직접 찾아가 부활절 달걀을 선물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부활절 달걀과 관계된 부활절 놀이로는 날계란 찾기, 달걀 굴리기 등이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달걀이 상징하는 바를 알려주고 달걀과 관계되 동화나 이야기를 해주며 부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한다(3. 풍습 참조)
(5) 음악 예배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음악 예배가 드려진다. 부활절 음악 예배는 주로 부활절 저녁에 드려지며 부활절에 행해지는 음악예배로는 뮤지컬, 오페레타, 칸타타가 있다(성탄절,5. 주요행사 참조). 그중 부활절 칸타타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 예배 프로그램이다. 이밖에도 부활에 관계된 찬송들을 모아서 발표하거나 예배 순서에 부활절과 관계된 찬송을 많이 넣어서 진해할 수도 있다.
다른 행사 프로그램과 같이 부활절 음악 예배도 능숙한 운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돈독히 갖는 것이다. 부활절 예배를 통해 다시 한번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6) 성극 예배
성극 예배는 연극 형식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보통 예배와 같이 찬송과 기도, 묵도 등이 예배 순서에 포함되며 단지 설교 대신에 부활에 관계된 성극이 공연되는 예배이다. 성극 예배에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사신들이 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인식하여 진지한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극 예배에서는 부활절 설교 메시지가 성극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대사와 몸짓에 의해 전달되어지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예배가 아닌 다순한 '극'으로 격하되기 쉽다.
(7) 낭송극 예배
낭송극 예배는 성극 예배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예배는 성극 예배처럼 대사에 따른 행동이 없이 부활에 관계된 성경 본문이나 글을 낭독자들이 읽음으로써 예배가 진행되어진다. 낭송극 예배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드리는 예배임을 기억하여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극을 통해 낭송자 자신도 예배드리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8) 묵상 예배
묵상 예배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계된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묵상 예배 전에 예배실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여 고요한 가운데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불을 끄고 각자가 촛불을 들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묵상 예배는 찬양과 성경 낭독, 간단한 설교 말씀으로 꾸며지며 묵상할 내용을 그린 그림을 이용할 수도 있다. 묵상 예배시 선포되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련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베드로의 부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외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가상 칠언 등과 관련된 말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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