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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1: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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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4·10·30
요즘 뉴스를 보면 탈북자들이 매일같이 중국에 있는 대사관이나 영사관 등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는 탈북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출했는데,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체포되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어 비참한 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또 중국에 있는 동안 생계 대책도 전무하기 때문에 그들의 처지는 너무나도 절박하고 위험합니다. 지난주에는 은신처에 숨어 있던 62명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게 했을까요? 그것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입니다. 자유를 구속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유로운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한 세상을 갈망하게 되면, 더 이상 그곳에서 살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하란을 탈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탈출은 생명을 건 탈출이었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탈출이었습니다.
탈출하는 야곱
야곱은 하란에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4명이었고, 아들을 11명이나 낳았으며, 딸도 1명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의 모든 가족을 거느리고, 또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하란에서 탈출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왜, 무엇을 위해 거기서 탈출하고 있는 것일까요?
야곱이 하란에서 탈출하게 된 이유는 탈북자들처럼 자유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형의 축복을 가로채고 아버지 집에서 도망칠 때 비참하고 외롭고 두려운 마음으로 광야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자포자기한 상태로 잠이 들었던 야곱은 자기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기치고 도망하는 야곱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축복하시며 용기를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을 만난 것은 엄청난 체험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야곱과 함께 계셨습니다. 야곱은 너무나도 감격하고 감사하여 이제부터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된 삶을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란에 와서 20년 동안 살면서 전혀 그 서원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여 아들들을 낳고 돈버느라고 고단하고 정신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질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야곱은 이렇게 탈출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아내들과 자녀들과 많은 재산이 생겼지만 허전하고 갈급했습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영광과 은혜가 그리웠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을 전혀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늘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하란에서 그렇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탈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을 회복하기 위한 탈출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기 위한 탈출이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서원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기 위한 탈출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애굽을 탈출한 것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이렇게 하란을 떠난 것은 영광의 탈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소유를 거느리고
야곱은 하란에서 탈출할 때 그의 모든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약대들에게 태우고 그 얻은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 아람에서 얻은 짐승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비 이삭에게로 가려할새”(17-18절)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왜 야곱은 거추장스럽게 모든 가족들과 소유까지 다 이끌고 나갔을까요?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나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만이 아니라 야곱의 모든 가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야곱과 함께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섬겨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본받아야 할 훌륭한 점입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모든 가족이 믿고 구원받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까지 구원해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탈북자들도 요즘은 가족들을 다 데리고 북한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일에 어떻게 우리 가족을 제외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야곱이 그의 모든 가족을 거느리고 탈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양떼는 왜 모조리 이끌고 나갔을까요? 이 긴박한 상황에서도 야곱은 왜 그의 소유를 포기하지 못했을까요? 그가 워낙 물질에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야곱은 그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결코 빼앗길 수 없었고 당연히 거느리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몸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돌아가서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족과 소유를 다 거느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섬기는 차원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물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참된 신앙은 주일에 나와서 한 시간 예배드리고 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영적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몰래 도망침
야곱은 하란에서 떠날 때 미리 치밀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간 틈을 이용해서 모든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몰래 떠났습니다.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고하지 않고 가만히 떠났더라”(19-20절) 양치는 사람들에게 양털 깎는 일은 농사하는 사람들이 추수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들은 양털을 깎을 때 모두가 함께 모여 잔치를 열면서 몇날 며칠 동안 그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이 몰래 떠난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이렇게 몰래 도망치듯 떠났을까요? 그것은 떳떳치 못한 일이 아닐까요?
야곱이 이렇게 몰래 떠났다고 해서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라반의 소유를 부당하게 가지고 나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만일 야곱이 라반에게 떠날 것을 미리 말했더라면 라반이 야곱을 곱게 보내주었을까요? 라반은 결코 야곱을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란을 떠나려면 이렇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빠져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저것 다 생각하고 예의 차리고 의리 지키고 하다가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주일마다 친구나 친척들 결혼식이 있는데 어떻게 예배를 제대로 참석할 수가 있겠습니까? 술 마시러 나오라고, 놀러가자고 불러내면서 안 나오면 인연을 끊겠다고 협박을 해대는데 어떻게 믿음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직장에서도 주일에 친목행사니 단합대회를 한다고 나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때로는 과거에 큰 신세를 졌던 사람들을 외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야곱처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까운 사람들을 배신하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친한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죄에서 떠날 수 있고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 품안에 있는 영광과 능력과 축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돈 때문에, 친구 때문에, 일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들 때문에, 차마 그들을 배신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들에게 배신자가 되더라도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당신이 살고 그들도 살릴 수 있습니다. 돈이나 체면이나 의리나 명예나 예의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가장 귀한 것이 달린 문제입니다. 오늘 당신에게 모든 것을 뿌리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결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추격하는 라반
야곱이 도망친 지 사흘이 지나서야 라반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반은 자기가 야곱에게 잘못했던 일들은 생각지도 않고 야곱이 자기를 속인 것에 분노했습니다. 가장 먼저 라반은 자기 재산을 자세히 점검했습니다. 다행히도 재산은 다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가장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던 드라빔이 없어졌습니다. 이 드라빔은 일종의 우상인데, 라반은 그것을 가정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매우 화가 났습니다. 그는 급히 추격대를 편성해서 야곱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7일 동안 추격한 끝에 결국 야곱을 따라잡았습니다.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7일 길을 쫓아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23절)
하란에서 길르앗까지는 약 400km쯤 됩니다. 야곱이 그 많은 가족들과 가축들을 거느리고 7일 동안 그렇게 멀리 갔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도망 쳤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런데 라반이 왜 이렇게 야곱을 추격해왔을까요? 20년 동안 부려먹었으면 그냥 도망치도록 내버려 둘만도 하지 않았을까요? 라반은 야곱을 영원한 자기의 종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야곱을 평생 부려먹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망을 치자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며 그렇게 맹렬히 추격해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빠져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할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방해와 위협이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교회 가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고 하면 믿음 좋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고 욕을 합니다. 친척들이나 집안에서는 더 큰 고역을 치러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빠져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할 때 사탄은 세상 모든 것을 동원해서 우리를 대적하며 위협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로 주님께서 일찍이 말씀해주신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는 절대로 그들을 보낼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며 두렵게 위협했습니다. 때로는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영광스럽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홍해 앞에 당도했을 때 바로는 애굽의 기병대를 거느리고 맹렬하게 추격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두려워하며 아우성을 쳐댔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두렵고 기가 막힐 일들은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 이런 적대와 위협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이제는 정말 믿음으로 살아보아야겠다고 결단하면 그 순간부터 어려움이 생깁니다.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닥쳐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즉시 주님께서 개입해오시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에 우리 하나님보다 강한 자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한 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우리를 반드시 도우시며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의 개입
라반이 분노하여 맹렬한 기세로 야곱을 추격해왔을 때 하나님께서 라반을 제지하셨습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24절)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감격스럽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 설교를 준비할 때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며 붙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부모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되면 즉시 개입하여 도와주십니다.
라반은 완전무장을 하고 야곱을 추격해왔습니다. 야곱을 다시 잡아가거나 그의 소유를 다 빼앗을 심산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는 라반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이 일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조금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엄하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을 조금도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할 때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결단할 때 온 세상이 나를 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절대로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성도를 막는 자는 하나님의 손에 박살이 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내보지 않겠다고 버티던 바로 때문에 애굽은 온통 초토화되고 장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을 추격했던 바로는 그의 군대와 함께 홍해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우리 교회는 봉사할 분들이 부족해서 한 사람이 많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이 많아서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몇 가지 일을 겸해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침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해서 찬양대, 중고등부 교사, 저녁 찬양 예배까지 쉬지 않고 봉사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모처럼 쉬는 날인데, 주일에 평일보다 더 힘들게 봉사한 것입니다. 목사로서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저러다가 지쳐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인 집사님한테 가만히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집사님이 교회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런데 충격적인 대답을 들었습니다. “제 남편은 이제야 살 것 같다고 한답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교회를 정하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봉사도 맘껏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편하게 지내던 때가 오히려 답답하고 불편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돈이 좀 넉넉하면 만족할 것 같습니까? 좋은 직장만 생기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까? 더 크고 좋은 집이 생기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그것을 다 얻어도 우리의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것을 먼저 얻은 다음에 신앙생활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영영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결단한 후에 시험과 환난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시고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단호하게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로 결단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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