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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0:2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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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다사다난했던 1991년도 다 가고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덧없이 흐르는 세월을 돌이켜보면 되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자꾸 늙어 가고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92년 새해를 즈음하여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살아왔던가를 돌이켜보며 앞으로의 지표를 삼고자 합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 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하셨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표준이요, 목적이요, 방향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라"말씀하셨습니다.
'살던지 죽던지 먹던지 마시던지 앉던지 서던지 깨던지’이것이 사도 바울의 사관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삶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던가, 아니면 나의 영광을 위하여 살며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지는 아니했는지 돌이켜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짧은 생애에 과연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챈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주님의 짧은 생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향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고난의 잔을 받으면서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 잔이 그냥 지나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으로는 그 잔이 지나가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다 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게바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한이 있었지만 독신으로 지냈고, 교회에 먹고 쓸 것을 요구할 권한도 있었지만 손수 천막을 만들며 전도했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익을 계산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살았습니까? 육신의 편함을 생각하기 앞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 가는 이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내가 배불리 먹음으로 인해 헐벗고 굶주림 속에 있는 이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를 위해 일꾼 되고 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만족해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한 해 동안 살면서 거치는 자가 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했습니다.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헬라인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헬라인은 이방인을 말합니다. 헬라인은 이교도를 말합니다. 헬라인은 불신자를 말합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헬라인들이 있습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불신자들에게 한 해 동안 얼마나 걸림돌이 되었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전도를 하다 보면 언짢은 말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불신자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 남의 돈을 빌려 가고 갚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요, 부도내고 모르겠다 오리발 내미는 자가 집사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으려고 하다가도 그 사람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가슴이 몹시 아픕니다.
물론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의 대표도 아니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는 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런 사람보다는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신자가 더 많이 있으며 그 사람도 예수 믿기 전에는 더 나빴을지도 모른다고 설명을 합니다. 사람만 바라보면 상처받기 쉬우니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마음이 아픕니다.
행여나 지난 한 해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신앙 없는 이웃 사람들에게 그릇된 인상을 심어 주지 아니했는지, 내 실수로 인해 천국의 길을 막고 전도의 문을 닫지는 아니했는지, 뒤돌아보며 반성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신자들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주님 앞에 하나 된 형제요 제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지니라"했습니다.
"유대인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유대인은 선민입니다. 이스라엘 선민입니다. 즉,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믿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신자에게 거치는 자가 될 뿐 아니라, 믿는 성도들끼리도 사탄의 장벽을 만들어 놓고, 함정을 만들어 놓고, 벽을 두텁게 만들고,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간질하며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항상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거치는 자가 되지 아니했습니까? 지난 한 해동안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아니했습니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동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누구든지 나를 믿은 이 소자 중하나를 실족케 하면 걸림돌이 되며,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금년에 구역 식구 중 나 때문에 실족한 사람은 없습니까? 없다 해도 나 때문에 믿음의 형제가 상처를 받았다면 거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거치는 자가 되지 않았는지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나로 인해 교회가 부흥하지 못할 망정 나 때문에 교회의 부흥이 중단되지는 않았는가? 나로 인해 교회가 은혜롭고 화목하지 못할 망정 나로 인해 교회가 시험과 혼란이 오지 않았는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에 눈이 어두운 몇몇 장사꾼들과 이들을 이용하고 있던 제사장들로 인해서 주님은 채찍을 드셨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거치는 걸림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벨을 쳐 처음 살인자가 된 가인이 그러했습니다. 바로와 애굽 병정들이 그러했습니다. 모세를 대적한 애굽의 순사들이 그러했습니다. 광야 제사장 생활을 할 때 여호와가 명하시지 않은 불로 분향하다가 불로 심판 받은 나답과 아비후가 거침돌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분당의 책임자로 땅이 갈라져 250명과 함께 죽은 고라당의 당수와 그 당에 합세한 나당과 아비랑이 그러했습니다. 바알 우상 숭배의 원흉이요, 개에게 죽임을 당했던 아합과 그의 간부 이세벨이 거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난을 피해 잠시 피난하던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조롱하다가 나중에 처형당한 시므이가 걸림돌이었습니다. 여리고 함락시 전리물을 감추었다가 돌무덤 가에 죽임을 당한 아간이 바로 걸림돌이었습니다. 야곱과 피라의 다섯째 아들로 우상 숭배하다 저주받아 하늘 나라 입국 명단에서 빠진 단지파가 바로 거치는 자였습니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의 총리 대신으로 모르드개와 유대 교인들을 다 죽이려고 획책했던 하만이 바로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걸림돌이요, 탐욕에 물든 숙사 발람이 바로 거치는 자였습니다. 신약에 명한 가롯 유다가 걸림돌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걸림돌이요, 바울의 동역자로 이차 여행 때 변절하고 세상으로 떠나간 데마가 거치는 자였고, 에메드리오가 거치는 자였습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예수를 불공평하게 법정에 내세워 죽게 했던 빌라도가 거치는 자입니다. 헤롯왕이 거치는 자였고, 헤로디아와 살로메가 세레 요한의 목을 구하므로 그들도 거치는 자였습니다. 어떤 부자 청년이 거침돌이었습니다. 물질이 거침돌이었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기름이 없어 거침돌이었습니다. 유대인 중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가들의 고집이 거침돌이었습니다. 요한 3서에서 악한 말로 바울 일행을 비난하고, 형제들을 푸대접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교회에서 내쫓은 이오드레베가 바로 걸림돌이었습니다. 좋은 일인 줄 알면서도 자기는 하지 않고, 다른 분들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좋은 일을 하는 것에 배 아파하는 사람이 거침돌입니다. 우리는 축복 받는 일이라면 절대로 남에게 양보하지 맙시다.
거치는 자로 있다가 순종하는 자, 요나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오네시모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걸림돌 노릇을 많이 했습니까?
허나 깨닫는 것이 은혜요, 깨닫고 돌아서면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반성하며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새해에도 되풀이하겠습니까?
한 해를 돌이켜 반성하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새 믿음, 새로운 결단과 각오를 가지고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주의 십자가 병정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심을 가지십시오.
한 청년이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군대에서 많이 힘들 줄 안다. 하지만 강물에 비춰진 달이 누군가의 돌로 일그러진다고 해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존재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그곳에 너를 보내 주신 하나님의 뜻을 마음속에 품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의 사랑과 성경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어디서나 승리하는 내 친구가 되길 바란다."
파문으로 인해 물에 비친 달빛이 뒤틀린다고 해서, 하늘에 떠 있는 달 자체가 뒤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믿음의 영적 성장을 가져다 주시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을 산 교훈으로 삼기 바랍니다.
계획했던 일이 실행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그러나 그것이 종결이 아닙니다. 주님은 뒤에 서서 가만히 미소지으며 일어나라, 하고 말해 주십니다. 뒤돌아 볼 때 미소지으며 격려해 주시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돌아가는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평탄한 길도 있습니다. 고난이 올지라도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계시하시고 깨닫게 하시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늘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거치는 자는 본인도 피곤하고 다른 분에게도 어려움을 일으킵니다. 하나님 앞에 거치는 생각, 걸림돌과 같은 부정적인 사고 방식에 젖어 있으며, 살기를 주저하고 그냥 될 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낙심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다시금 용기를 가지십시오. 주님은 내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마지막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누구의 유익을 위하여 살았는지 돌이켜 생각해 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았을 것입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려 일할 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돌이켜보면 실은 남과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기를 위해 살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이가 "직업을 위해서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예수 위해서 직장생활 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정녕 예수 믿음으로 내 직업에 얼마만큼의 이익이 나오는가를 먼저 따지기 쉽습니다. 내 직업과 내 개인 사이에 믿음을 두고 치밀하게 이해득실을 계산하여 손해로 기울면 단호하게 헌금을 줄입니다. 참석 횟수를 줄입니다. 받은 직분도 거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일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더 잘 믿을까를 따지며, 예수 믿는 것이 주업이고 자기 직업은 부업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고, 눈동자처럼 지켜주심을 새해에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199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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