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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0:35∼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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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사람의 최대 관심사는 잘 먹고 오래 사는 영생의 문제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주님께 영생의 문제를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할 수 있습니까."
주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하고 반문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건강 문제를 거론할 때 식이 요법, 에어로빅, 헬스 혹은 등산, 낚시, 운동 등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으로 풀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2,0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느냐, 성경을 그때의 시각으로만 앍고 마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고 계십니다. 율법사는 "믿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고 힘을 다 하고 뜻을 다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라고 100점 짜리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하였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오래 사는 비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알고만 있지 말고 그대로 행하라고 실천을 말했습니다.
이 율법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또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네 이웃은 누구입니까?" 할 때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성으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진 죽은 것을 버리고 가 버렸는데 사람 셋이 그 길을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 버렸고, 또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 버렸는데, 어떤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를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었습니다. 주막에 데리고 가 돌보아주며 주인에게 부탁하기를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다 부담할 테니 잘 좀 치료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럼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참된 이웃이 되겠습니까?
율법사는 대답하기를 자비를 베푼 자라고 했습니다.
"옳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천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지만 기름이 있어 상처를 싸매어 주고 돌보아 주었던 것입니다.
수십 년 예수를 믿어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교사가 되었지만 기름이 있는가 없는가, 제사장이 무엇이고 레위인이면 무엇합니까?
기름이 있어야 상처를 싸매 줍니다.
기독교인 백만 명이 넘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기름이 없으니 주변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늙어 가면 기름기가 빠져 음식을 먹어도 까칠까칠하고 어깨가 처지고 신발을 끌고 손끝이 떨립니다. 그래서 보약을 먹습니다. 보약을 먹으며 보신하면 몸은 좋아집니다. 육체는 보신할 줄 알면서 영혼은 기름기가 빠져도 됩니까?
기름과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9장 9절에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요," 히브리서 1장 9절에 "즐거움에 기름으로 내게 부었는데", 이사야 55장2절에 "너의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심을지라", 전도서 10장 19절에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므로 ", 전도서 9장 7절에 "너는 즐거움으로 네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3절에서는 예수께서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셨습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기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라."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상비약을 갖고 다닙니다. 대체로 기름과 포도주는 성도의 재물입니다.
출애굽기 29장 2절을 보면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은 모두 밀가루와 기름이 들어갔습니다. 제물에 기름이 들어갔습니다. 13절을 보면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취하여 단 위에 불사릅니다. 기름은 값진 재물이 되었습니다.
14절에서는 "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집 밖에서 불사르라"하였습니다.
어떤 것은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어떤 것은 집 밖에서 불살랐습니다. 값진 기름은 제단 위에서 향기로운 제물로 불사릅니다. 그러나 고기나 가죽이나 똥은 집 밖에서 태워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제단 위에 있는가 집 밖에 있는가에 따라 내가 기름진 제물인가 아니면 오물이나 똥이냐가 정해집니다.
22절에 보면 "또 너는 그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그 내장 아래 덮인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과 우편 넓적다리를 취하라"하였습니다.
19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을 봅시다.
"너는 다른 숫양을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어다. 너는 그 숫양을 잡고 r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그 아들들의 오른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단 위에 뿌리고 단 위의 피와 관유를 취하여 아론과 그 옷과 그 아들들과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 옷과 그 아들들과 그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제사장들이 위임식할 때에는 오른쪽 귀에 피를 바르고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피를 바르고 오른쪽 발가락에 피를 발랐습니다. 왼쪽이 아닙니다. 오른쪽에 바른 것은 불공평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감사하고 믿음을 가지고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오른쪽은 긍정입니다. 성공입니다. 왼편은 부정이고 실패입니다. 귀는 머리와 통해 있습니다. 손은 가슴과 통해 있습니다. 손은 가슴과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아론의 머리에 기름이 얼마나 흘렀는지 수염에 뚝뚝 떨어져 그것이 옷깃에까지 내려갔다고 합니다.
기름을 발라 제사장 위임식을 했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직분에 행하는 일입니다.
목사와 성직자를 만들 때 기름을 부어서 위임하고 성배를 하였는데 오늘날의 성직자나 제직들은 다른 불신자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름 부은 이 성직자의 입에서 무슨 거짓말이 나옵니까?
전에는 교인들이 뵙기만 해도 은혜스럽고, 보기만 해도 가까이 가 보고 싶은 성령이 충만한 얼굴이었는데 오늘은 모두가 추한 형상입니다. 기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사탄처럼 보이고 믿는 사람들이 모두 도깨비처럼 보입니다. 주여 기름이 있게 하소서. 기름이 돌게 하소서. 기름이 철철 넘치게 하소서.
기름이 몸 속에 뭉쳐 있으면 암 덩어리일 뿐입니다. 기름은 돌아야만 값진 보화입니다. 그런데 왜 기름이 한 쪽에 있습니까? 기름이 왜 지갑 속에만 들어 있습니까?
이것을 돌게 합시다. 활용합시다. 제사장과 레위인에게도 기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까워서 그냥 갔습니다. 그들은 위임식 때 기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 빠져 버리고 다시 채울 줄 몰랐습니다.
다시 미련한 다섯 처녀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기름이 없었기 때문에 쫓겨났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가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주님은 그래 떨어졌으면 할 수 없다 하지 않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포도주는 취하는데 뜻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취하는 것은 성령을 말합니다. 기름은 믿음이요 포도주는 성령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믿음과 성령이 있었습니다.
내 속에 믿음의 기름과 성령의 포도주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신분의 고하, 물질의 유무간에 문제없이 악한 마귀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기름과 포도주가 있나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안 받고 아벨의 제사는 받았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인 곡식만 드렸습니다. 곡식과 포도주를 곁들여서 드렸어야 합니다. 아벨은 양과 기름을 드렸습니다. 완전한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해 헌금을 바치지 않으면, 자기 의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왔다 갔다 출석만 한다면,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가인의 제사가 되기 쉽습니다. 마음이 가는데 물질이 갑니다. 왜 양만 드립니까? 기름도 같이 드려야 합니다. 왜 곡식만 드립니까? 포도주도 같이 드려야 합니다.
어떤 이는 헌금만 바치고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이것도 온전한 예배가 되지 않습니다. 물질이 가는 데에는 마음이 가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24절에 보면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케 하라" 말씀하시며 믿음 있는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즉 믿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는 영적 재산입니다. 아파트가 영적 재산이 아니고 고급 승용차가 영적 재산이 아니고 늘어나는 적금이 영적 재산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영적 재산은 믿음과 포도주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신분이 높지만 아무런 일도 행할 수 없었습니다. 피하여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기름과 포도주가 있었기에 가까이 갔습니다.
가까이 가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며 여기에 구제를 생각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구제한 것이 아닙니다. 강도 만난 사람에 전도한 것입니다.
전도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가고 싶어도 기름과 포도주가 없으면 못 갑니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기름과 포도주를 준비합시다. 구제가 아니라 구령에 힘을 써야 합니다.
강단에서 뜨거운 피가 나와야 하고 기름이 있는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내 속에 기름이 흘러 넘치기를 바랍니다. 이 기름으로 우리 옆에 쓰러져 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령하고 상처를 발라 주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처럼 내 속에 기름이 돌고 돌아 포도주와 같은 성령에 취해서 금년 한 해를 감당하기 바랍니다. 아멘.
(199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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