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90200495.jpg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원리

책을 읽으면서 밑줄 부은 부분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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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열매를 맺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죄를 지었지만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를 믿는 자들은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이제는 모든 문제가 다 끝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믿는 것, 주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한 것,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결혼식은 끝이 아니고 결혼생활의 시작인 것처럼 주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의 믿음생활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주님과의 동거와 동행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은 인간이 사망의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비결입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놀랍고 엄청난 이 원리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히 배우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우리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열매맺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 스스로 독립 자존이 가능하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지만, 독립적인 생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 생명의 근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빛을 받고 빛을 낼 수 는 있지만 빛의 근원은 아닙니다. 달이 햇볕을 통하여 빛을 받고 빛을 반사하듯이 인간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빛을 받고 빛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며 스스로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이 기초가 분명하다면, 이것이 이해가 되었다면 당신은 열매맺는 삶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춘 것이 됩니다.

3. 연결이 생명입니다.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 곧 의인은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그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악인과 의인의 구별은 열매로 인하여 결정됩니다. 어떤 사람이 참 신자인가, 아닌가의 문제도 그 사람의 신앙 경력이나 지식 등의 외적인 요소가 아니고 그가 삶에서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 가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항상 뿌리가 물과 닿아 있는 것 -말씀 자신이신 하나님과 충분히 교제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열매의 비결은 행위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고 '관계'의 문제입니다. 바른 연결, 바른 관계가 있을 때 열매는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4 열매의 비결은 연결입니다.

뿌리를 물이 끊어지지 않는 수원지에 둔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에 있지만 사람의 뿌리는 심령 깊은 곳에 있습니다. 그 마음 중심의 뿌리가 항상 주님을 향하고 있는 사람, 항상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험하고 어둡고 악하고 강퍅한 세대에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은총과 기쁨과 영광의 세계를 경험하고 누리며 그 기쁨의 열매를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5. 나무는 사람에 대한 비유입니다.

사람은 나무와 같은 존재입니다. 나무는 뿌리에서 물을 구함으로 살 수 있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나무의 뿌리는 물을 찾아서 계속 여기저기 움직입니다. 가뭄이 심한 때에도 뿌리는 물이 있는 곳을 찾아서 처절한 탐색을 해 나갑니다.
사람은 뿌리인 얼굴을 통해서, 얼굴을 하나님께 향하는 것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얼굴에, 그 영혼에 하늘의 빛을 받으면, 주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얻으면 사람은 살 수 있습니다. 나무가 좋은 과실을 맺듯이 사람은 그 영광의 임재 속에서 아름다운 과실을 맺게 됩니다. 연결은 생명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6. 주님과의 연결

주님과의 연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주안에 거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그렇게 믿으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구체적인 고백이나 행위가 필요한 것일까요?
어느 날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내 팔을 양쪽으로 크게 벌리며 한 놈씩 나의 팔을 붙들게 했습니다. "자.. 아빠의 팔을 붙들어보렴.. 기분이 어때?"
"와... 아빠의 팔을 꼭 잡고 있으니 재미있어요. 기분이 좋아요" 나와 평소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나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신이 나서 외쳤습니다.
이렇게 그저 단순하게 주님께 매달려 있기만 한다면, 주님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곱 살 먹은 아이도 알 수 있는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진리인데, 너무 쉽기 때문에 쉽게 믿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7.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컴퓨터로 작업을 하다가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나는 이 때 낙심하거나 좌절할까요? 아닙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연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연결선을 확인하고 다시 제자리에 분명히 꽂아줍니다. 그러면 다시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문제는 연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전원에 제대로 연결이 되어 있을 때는 주님의 열매를 맺으며 마음이 기쁘고 생기가 넘치며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면, 프로그램을 잘 가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실패했을 때, 넘어졌을 때, 죄를 지었을 때 너무 깊이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 나는 지금 그리스도와의 연결이 분명하지 않구나'하고 진단을 한 후에 주님께로 나아가서 '오, 주님.. 죄송합니다. 잠깐 연결이 끊어졌군요. 저에게 다시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 순간 연결은 다시 회복되며 우리는 풍성함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8. 주님은 모든 아름다움과 풍성함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한 열매를 구하십니다. 그것은 예수의 열매입니다. 예수의 인격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탁월한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은 훌륭하고 잘나보아야 거기서 거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예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는 오직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아직도 기독교 안에는 그저 착하게 살고 열심히 봉사를 하면 천국에 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가 생명인 것을 모르며 예수와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며 날마다 시마다 분마다 초마다 예수로 살아야 하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를 붙드십시오. 예수를 구하십시오. 오직 예수로 사십시오.

9. 가장 큰 악은 단절과 독립입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생명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은 바로 사망입니다.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사망이 작동하기 시작하며 많은 사망의 열매들을 맺게 됩니다. 주님의 오심은 바로 그 연결을 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인식하여야 합니다. 끊어짐은 재앙이며 죽음이며 저주이며, 연결은 생명이고 회복이고 은총이며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연결된 삶,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놀라운 은총이며 축복의 근원인 것입니다.

10.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생명과 연결됨 .

어떻게 하면 주님과 연결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단순하고 쉬우면서 우리의 삶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비결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마디로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삶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대상을 움직이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11 무시로 성령 안에서 주를 붙듦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다니며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일단 교회를 벗어나면 평소의 삶에서는 거의 주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기도를 드릴 때에만 주님을 의식하고 대화를 나누며 평소에 주님을 의식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아주 급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보기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통제 속에 있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시간이라는 요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육체의 생명과 시간은 무한한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시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주를 기억하며 그의 임재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모든 시간에, 모든 순간에 주를 의식하며 주를 부르며 그 임재 가운데 있는 것, 이것은 생명의 원리이며 연결을 위한 중요한 원리입니다. 

12. 쉬지 말고 기도한다는 의미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모든 삶의 순간에 주님을 의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배를 드릴 때만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의 힘을 의지하고 그 음성과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이것이 바로 항상 기도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13. 주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은 잘하게 됩니다. 공부에 전혀 취미가 없고 집중력이 약한 학생이 게임을 할 때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누구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며 유능하게 됩니다. 즐기는 자는 그것이 무엇이든 하루종일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는 사람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어덯게 하루종일 주님을 바라보며 그의 임재 가운데 거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주님의 임재의 기쁨을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주를 즐기는 것, 주님의 기쁨을 아는 것, 주님과 교제를 즐거워하는 것... 그것으로 주님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즐기지 않는 것은 유지할 수 없습니다. 즐기지 않는 것은 의무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즐기며 기도를 즐길 수 있습니다.

14. 인생의 중심

어떤 사람이 무엇을 얻었을 때 가장 기뻐하며 무엇을 잃었을 때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가를 안다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의 중심입니다.
생명을 알고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을 때에 고통을 느낍니다. 이들은 잠시만 주님과 단절되었다고 느껴져도 아주 허무하고 비참하게 느낍니다. 생명을 알고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통해서만 기쁨을 느끼며 주님의 임재를 잃어버렸을 때에 가장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애매한 신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주님을 이용할 뿐 주님 자신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감격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로 인하여 기뻐하거나 괴로워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기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잃었을 때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들은 신앙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입니다.

15.  선악과의 삶

지식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은 지식을 통하여 선한 일을 하지만, 악한 사람은 지식과 지혜를 통하여 더욱 더 악한 짓을 합니다. 멍청한 사람은 남을 속이지 못합니다. 지혜롭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과 욕망을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해서 유혹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할 때 그 논리는 그럴 듯 한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마음이 답답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선악과의 후유증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논리는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전혀 옳지 않으며 마음 속에서는 불안하고 답답하며 편안하지 않은 것입니다. 묘한 궤변으로 책임을 상대방에게 지우고 자신은 벗어나려고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 해도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은혜 가운데 있지 않은 모든 자연인은 머리로 살고 논리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16  생명나무의 삶

생명이란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있습니다. 머리가 죽으면 뇌사일 뿐이지만 심장이 멎으면 그 순간부터 몸은 썩기 시작합니다. 생명은 가슴에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머리가 죽지 않고 가슴이 죽습니다. 영감이 살아있는 사람은 죄를 짓거나 악한 말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에 속한 말에는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습니다. 그것은 듣는 자의 심령을 편안하고 시원하게 합니다. 논리는 생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에 이르는 길이 아닙니다. 생명은 가슴 속 깊은 곳, 심령의 세계로부터 옵니다. 심령을 통해서 감동하시는 주의 영은 항상 우리 마음속의 깊은 동기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양심을 민감하게 하셔서 그의 인도를 받게 하십니다. 어떤 생각이나 말이 논리적으로 옳아 보여도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없다면 그러한 말이나 생각은 멈추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며 생명의 풍성함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17. 머리로 살지 말고 가슴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서 생명나무의 경험을 하고 주님의 내적인 인도와 감동을 따라 살게 되면 점차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생명나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평화와 기쁨을 얻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려면 머리로 살지 말고 가슴으로 살아야 합니다. 깊은 심령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양심을 따라 살고 감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단순한 교리와 지식만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말이 옳아도 생명의 충만함,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부족하다면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18.  선악과의 삶과 생명나무의 삶

선악과의 삶은 생명과 끊어진 단절된 삶이며 머리와 논리의 삶입니다. 모든 논리와 판단의 근거는 옳고 그름입니다. 어떤 사람을 비판할 때도 그가 옳지 않으며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단절되었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가 생명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고 다만 그는 틀렸다고 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삶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충분한가를 가장 먼저 봅니다. 그가 옳은가 그른가를 보지 않고 그가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봅니다. 

 선악과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독립되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의 능력을 아주 중시합니다. 특히 지혜와 지식을 가장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많은 지식을 얻는 것, 명분대의 학벌을 가지는 것, 그런 것들이 삶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여깁니다. 아이가 성품이나 자세에 문제가 있어도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좋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녀를 키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도록 그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기고 가르칩니다.

선악과에 속한 삶은 근원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쫓깁니다. 항상 근심 걱정이 끊이지 않으며 세상의 작은 소문에도 전전긍긍하며 두려워 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삶은 항상 근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평화와 기쁨이 가득합니다. 비록 환경적으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상하게 깊은 속에서 평강의 물결이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선악과에 속한 삶에는 항상 불만족이 있습니다. 항상 속이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으므로 무엇인가에 중독이 되기 쉽습니다. 음식을 지나치게 탐하는 탐식의 문제에 빠진다든지, 각종 탐욕, 게임 중독, 컴퓨터 중독, 심지어 연애중독, 사람중독에 이르기까지 무엇에든 빠집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삶에는 항상 평안과 만족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명예나 보이는 것들, 의식주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내면의 깊은 속에서 항상 만족감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근원과 연결된 사람은 항상 천국의 보화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지금은 가진 것이 없어도 필요한 상황이 오면 주님께서 항상 그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깊은 속으로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선악과에는 항상 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만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고 선악과의 삶을 사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연합되지 못하고 분리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배아파하며 비방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삶은 이와 반대로 주님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는 삶입니다. 생명나무의 뿌리를 통해서 주님과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주를 사랑하는 모든 다른 가지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비교와 경쟁, 시기와 질투가 없습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의 지혜와 재능과 성공으로 인하여 순수하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선악과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고 다른 이들과 분리되었으므로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고 싶고 낫게 보이려는 속성을 가집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점점 더 의견이 많고 분쟁이 많고 피곤해지고 외로워집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오직 주님을 드러내고 높이는 것을 원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의 높임과 존경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자가 되는 것을 꿈속에서라도 싫어합니다.

선악과에 속한 사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자기의 속성에 맞거나 기질에 맞는 사람을 지나치게 높이고 우상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탁월함을 가지고 있을 때 그를 지나치게 대단하게 생각하며 따르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뀌거나 그 대상에게 실망을 하면 반대로 그 대상을 강력하게 공격하기도 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자기를 높이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사람을 높이는 것도 싫어합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과 탁월한 것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높이지 않고 그 사람을 사용하시는 주님을 높이며 영광을 돌립니다

선악과에 속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죄와 비난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의가 있기 때문에 자기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함부로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의 잘못이나 죄에 대해서도 너그럽습니다. 이들은 죄를 미워하지만 사람을 정죄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기본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선악과에 속한 사람은 넘어지고 실패할 때마다 지나치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 하고 낙담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기본적인 한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실망은 기본적으로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별로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알며 자기의 한계를 압니다. 넘어지고 나면 그는 '내가 원래 이렇지...'하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생명이 없음을 알며 오직 주님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잠시 주님을 놓친 것이 실패의 원인인 것을 압니다.

선악과의 사람은 생명과 능력의 근원에서 분리되어 있으므로 스스로 잘 하려고 항상 긴장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인생 자체에 쉼이 없고 항상 피곤합니다. 이들에게는 항상 염려거리, 근심거리가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도 아주 힘들게 합니다. 항상 안식이 없기 때문에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안식을 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그러한 날은 오지 않습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항상 능력의 근원으로서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기 때문에 자기 힘과 지혜를 의뢰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안식 상태에 있습니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겉으로는 바쁘게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지만 속에는 안식이 있습니다. 이들은 쉽게 영감을 얻으며 지혜의 근원이신 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와 착상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하늘의 힘을 통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일도 쉽게 하게 됩니다.

선악과에 속한 사람은 항상 긴장되고 지친 삶을 살기 때문에 보상을 위하여 여러 가지 육체적인 안락과 위로를 구하게 됩니다. 이들은 영혼의 세계와 끊어져 있기 때문에 영혼으로부터 오는 내적인 기쁨을 알지 못하며 육적이고 본능적인 쾌락을 즐기면서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주를 바라보고 구하며 항상 예배의 삶을 살기 때문에 영혼의 희락과 만족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세상의 잡다한 오락이나 육체의 본능적인 쾌락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주님 자신이 기쁨이고 위로이므로 다른 위로가 별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악과의 삶은 주님과 분리된 삶이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삽니다. 말로는 주를 위한다고 하는 이들도 실제의 삶에서는 자기의 기분을 건드리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이들에 대해서 화를 내고 상처를 받으며 자기 기분과 만족을 위해서 삽니다. 섬기는 것보다 접대를 받고 편하게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항상 주님을 놓치지 않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자기에게 주어진 재능과 달란트를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기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마음이 항상 있습니다.

선악과에 속한 삶에는 온갖 사망의 열매들이 가득합니다. 패역함이 있으며 음란함이 있으며 더러움, 거짓, 교만함 등 각종 사악함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으며 항상 남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비판합니다. 그것은 생명과 단절되어 있는 삶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것은 빛이 없는 어두움이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의 삶에는 아름다운 과실이 충만합니다. 그는 생명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순전한 기쁨이 있으며 속에서 사랑이 자연스럽게 샘솟습니다. 깊은 속에 평화로움이 있습니다. 이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생명나무에 속한 사람은 항상 안정된 삶을 누립니다. 예수님의 인격이 나타남으로 항상 겸손함이 우러납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 예배하고 싶은 마음과 감동이 항상 일어납니다.

선악과는 근원과 단절되어 스스로의 힘과 지혜와 논리로 사는 삶이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고 힘이 듭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도 고생만 할 뿐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 인간의 노력과 탁월함에 의지하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며 불가능한 삶인지 알게 됩니다.
생명나무의 삶은 깊은 곳에 근원을 두며 인도 받는 삶입니다. 그것은 항상 주님을 붙들고 내면의 감동으로 이끌림을 받는 삶입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쉬운 삶입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삶이며, 범사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며, 의지하는 삶이며, 기도하는 삶이며, 예배하는 삶입니다. 

32. 열매와 생명의 열매는 다릅니다.

열매는 단순히 겉에서 보기에 아름다워 보이는 삶과 행위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열매는 그리스도를 통과한 것이며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열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그 근원이 다른 것입니다.
열매란 사람, 섬김, 헌신, 희생 등 삶에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주의 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면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거기에는 천국의 임재와 역사가 없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 중에서도 삶이 향기롭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맺은 것은 생명의 열매가 아니고 그냥 열매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충만함이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33 새로운 법칙

죄와 싸워서 이기기 어려운 것은 죄와 사망이 하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 안에서 역사 하는 한 법칙입니다. 누구나 육으로 살면 죄와 사망의 법칙 아래 거하게 됩니다. 법칙과는 싸우기 어렵습니다. 법칙은 인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죄와 사망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지 육의 힘으로 억지로 싸워서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로마서 8:2절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참 놀랍고 아름다운 것은 '생명과 성령의 역사'가 법이라는 것입니다. 법은 법으로써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저절로 열매를 맺고 저절로 죄를 이기게 되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운받을 수 있을까요? 그 조건은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34. 주님은 생명의 양식입니다.

일제 시대 때 열심히 전도를 하다가 경찰에 붙들려 고초를 겪던 어느 목사는 아무리 때려도 예수를 부르는 것을 그치지 않자 그 이유를 묻는 경찰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안에는 온통 예수가 가득해서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예수가 나온다. 그러니 약하게 때리면 약하게 <예수!>가 나오고 세개 때리면 세개 <예수!> 나온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삶이 되어야 합니다. 즐거워도 예수, 슬퍼도 예수, 외로워도 예수, 행복해도 예수... 온통 우리 안에는 예수로 가득해서 언제어디서나 예수가 나오고 예수가 역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35. 오직 예수의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를 부르고 구하며 예수에게 붙어있는 것입니다. 오직 가지로서 나무에 붙어있을 때 그 나무 안에서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오직 예수께 속한 사람이 되십시오. 잘 난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께 붙어있는 가지가 되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자연히 예수의 열매는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36. 생명과 연결된 삶과 죄의 문제

죄는 하나님의 영을 소멸시킵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영원히 깨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교제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주의 영을 마셔도, 주의 이름을 불러도 말씀을 읽어도 우리는 아무것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막혀 있는 죄의 문제를 처리하기 전에는 말입니다.

37.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혈기를 부리고 악한 말을 하고 남을 쉽게 미워하고 비난하며 비판하며 거짓말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남에게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주면서도 태연하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실제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가 없습니다. 그는 피상적으로만 주님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약해서 넘어지는 것과 죄 짓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정원 목사

38. 주님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언행과 생각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빛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살펴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소멸하는 언행이나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적어도 해가 지기 전까지는 내버려야 합니다.
무엇이 주님을 부르는데 방해가 되는지... 무엇이, 어떤 죄가 당신의 심장을 답답하게 하는지... 그것을 묵상하고 찾으십시오. 결단코 죄에 대해서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의 방안에 계시는, 당신의 내부에 계시는 그분의 눈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의식해야 주의 깊은 임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39. 감각이 살아나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달콤함이 있습니다. 영광과 거룩함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과 세상의 육적 쾌락은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타락하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살아나야 합니다. 더 간절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의 생명도 주 안에서 더욱 충만해질 것입니다.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영광과 거룩함에 잠겨들게 될 것입니다.

40. 생명의 연결을 견고하게 하는 것

생명의 연결을 견고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은 바로 실패의 경험입니다. 100마리의 양 중에서 우리를 벗어난 한 마리의 양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른 멀쩡한 양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때 혼자서 산길을 헤매던 그 띨띨한 양은, 목자를 그렇게 수고하게 만들었던 그 정신 없는 양은 아마 그 후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목자를 따라갔을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길을 잘 잃고 사고뭉치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다시는 목자를 떠나서 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패와 절망은 우리가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확증해 줍니다.

41. 생명의 연결이 어려운 사람들

그것은 좋은 여건, 좋은 환경의 사람, 배부른 사람, 자신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교만한 이들... 자신의 신앙이 옳고 좋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생명의 근원을 지속적으로 사모하고 붙들기 어렵습니다.
오직 비천하고 낮은 자, 스스로 어쩔 수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오직 유일한 방법으로 간절하게 주님께 매달리는 자들만이 간절히 주를 부르며 구할 수 있습니다. "오, 주님... 제발 저를 붙들어 주세요. 주님이 떠나시면 저는 끝장입니다."

42. 도구가 아닌 근원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으면서,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주님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주님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주님과 멀리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대상은 기도도 아니고 말씀도 아니고 예배도 아니며 바로 주님입니다. 기도도 말씀도 주님을 붙잡는 도구이며 주님 자신은 아닙니다. 기도를 붙잡지 말고 기도의 주인이신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도구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을 부르십시오. 오직 주님의 나무에 연결되기를 구하십시오.

43 선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인간은 선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타락의 후유증이며 선악과를 먹은 후유증입니다. 속으로 누구나 자신이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진리를 방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유감스럽게도 평생을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던 권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물으면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가겠지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아직도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함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갈망을 가져야 하며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가지고 있으나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원치 않는 악이 속에서 계속 나오고 선은 잘 나오지 않습니다.

44.선악과에는 섞임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선과 악이 섞여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선하고,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선하고 어느 정도 악합니다. 선도 생명이 아니며 악도 생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생명이신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길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사람은 악을 행해도 괴롭고 선을 행해도 괴롭습니다. 무엇을 해도 만족이 없고 괴롭습니다. 고행을 해도 괴롭고 쾌락을 즐기며 살아도 괴롭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도를 닦아도 괴롭고 출세를 해도 괴롭고 탐욕적으로 살아도 괴롭습니다. 생명나무를 발견하기 전까지 인간은 고통과 번민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45. 선악과에는 꾸밈이 있습니다.

 여자가 뱀의 유혹을 받아 그 나무 열매를 보았을 때 그것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선악과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내면에는 죽음이 가득하지만 그 외면은 아주 매력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자연도 이러한 원리를 보여줍니다. 독이 있는 버섯은 아름답게 생겼습니다. 독뱀도 아름답고 날씬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꾸밉니다. 말도 꾸미고 마음도 꾸밉니다. 음식도 보기 좋고 맛있게 보이려고 꾸며서 많은 이들이 탐식이 생겨 비만이 되고 질병을 얻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외적 꾸밈을 거절해야 합니다. 아담하고 검소한 옷을 입고 소박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삶을 통해 그 내면의 향기를 드러내야 합니다. 내면이 죽고 공허한 사람일수록 바깥에서 만족을 구하기 때문에 멋을 내고 외면을 가꾸는 것입니다.

46 순결함이 생명을 풍성하게 합니다.

오늘날 신앙에, 교회에 생명을 제한하는 많은 혼합이 있습니다. 많은 선악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생명의 열매를 맺지 못하여 하늘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혼탁하고 어두운 영적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결함으로 주를 갈망하고 주를 붙잡고 알아 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은 주님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으며 생명에 속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새 포도주의 맛을 알고 누리고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47. 생명의 근원은 오직 주님입니다.

그것을 붙잡는 삶이 바로 생명나무의 삶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맺는 삶입니다. 그 삶의 방식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연결된 삶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쉬지 않고 기억하며 항상 주님의 임재와 지배 속에서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항상 주를 의식하는 삶이며 항상 기도하는 삶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뢰하지 않고 스스로의 재능과 힘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