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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17: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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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9. 9. 20. 주일 4부설교 |
여러분의 기도가 우리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오늘도 눈물을 흘리고 외롭고 고독하고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파함과 동시에 다른 면으로 사랑과 행복을 이 지상에서 나누는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 복음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축복을 우리가 전할 뿐 아니라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나누어 가지도록 전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랑과 행복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 주시고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옆에 있는 분들에게 “주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기면 살고 지면 망한다” 이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광야에 도달했는데 광야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편안한 곳이 아닙니다. 메마르고 공기는 건조하고 길은 험하고 먹을 양식은 없고 물은 없고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 르비딤이라는 한 곳에 왔을 때 백성들이 다 낙심을 했어요.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말렉이 그 근처에 있다가 이스라엘이 오는 것을 듣고 무장을 하고 기다리다가 공격해 왔습니다. 아말렉은 잘 먹고 훈련되고 최신 무기를 무장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오니까 순식간에 전멸하게 되었어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으나 아말렉에 의해서 광야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군인들을 동원해서 가서 싸워라.” 너저리하고 훈련도 안되고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혹은 삽을 들고 혹은 굉이를 들고 나가서 싸우는데 상대가 됩니까? 그러나 그 이튿날 모세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전쟁터를 내려다 보면서 손을 들었습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엄청난 능력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천을, 두 사람이 만명을 쫒을 수 있는 힘이 그 몸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질풍같이 쳐들어가서 아말렉을 치는데 초계같이 아말렉이 쫓겨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팔이 너무 아파서 팔을 내리고 기도를 쉬니까 아말렉이 도로 힘을 얻고 이스라엘은 모두 다 힘이 다 빠지고 녹초가 되어서 아말렉에게 또 짓밟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팔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지고, 올리면 이기고 내리면 지고... 참 큰일났습니다. 그러다가 아론과 훌이 돌을 하나 가지고 와서 그 위에 모세를 앉히고 한쪽 팔은 아론, 다른쪽 팔은 훌이 들어서 해질때까지 내려오지 않게 하니 계속해서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아말렉은 모두 다 물리쳐지고 멸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도생활에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마귀와 싸울 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마귀의 진을 물리치지만 기도를 그치면 마귀가 도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 기도하면 또 마귀를 물리치고 기도 안하면 또 마귀가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한번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면 끝까지를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런 간증을 적은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가 굉장히 아픈 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병명도 잘 모르는데 입에서 피를 토하고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이 순서를 정해가지고서 24시간 병원에 와서 한사람씩 기도를 해요. 그런데 중보기도를 하면 그렇게 고통스럽던 고통이 싹 사라지다가 중보기도를 그치면 고통이 또 말할 수없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주일날일 때 다 교회 나간다고 사람들이 못오게 되자 그날은 반초죽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프더랍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예배를 마치고 또 중보기도를 와서 해주니까 또 아픈 것이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이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을 그는 실제 생활에 체험했다고 그 책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을 때도 모세의 중보기도가 계속 되는 한 아말렉은 패하고 물러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에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 앞에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중보기도가 온 가족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하신 것처럼 구역예배가 그렇게 좋은 것은 구역에 소수의 인원이 모여서 서로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함께 중보기도를 해주면 굉장한 능력과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의 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많은 일중에 우리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 못받습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자식들인 우리들에게 무엇을 주지 않겠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중요성을 알아야 될 것은 기도하므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쳐서 물리쳤지 무장의 힘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론>
1. 우리들의 아말렉과 우리의 무기
우리들도 이 광야를 지나는 것,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우리 죄악에서 나와서 이 세상 광야를 지나서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도 르비딤과 같은 우리 삶속에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아말렉이 우리를 쳐들어 오는 것입니가? 제일 중요한 것이 죄의 아말렉이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죄가 우리 주위에 쳐들어와서 유혹을 하고 우리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자꾸 죄에 넘어지니까 그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께 보혈로 깨끗함을 입고 난 다음에 또 나가서 또 죄짓고 또 깨끗함을 입고 난 다음에 또 죄짓고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는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죄의 아말렉에 늘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죄의 아말렉에 이길 수 있는 힘, 예수님의 보혈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 앞에서 보혈의 능력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를 지으면 마귀의 수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오면 마귀는 쫓겨 나가고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보혈 앞에 있어야 죄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 큰 불이 났어요. 화염이 충천하고 무서운 속도로 바람을 타고 불이 붙어 오는데 그 평온에 있던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칠 수가 없어요. 그 불길에 안타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가 포켓트에서 라이터를 끄집어 내어서 불을 켜서 자기 주변의 풀에 불을 붙였습니다. 맞불이 붙었습니다. 불은 저쪽에서 붙어 오는데 자기가 붙은 불이 또 붙어 나가니까 자기는 불이 타버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불이 바다처럼 불어왔으나 자기에게는 안오는 것은 자기 주위는 벌써 불이 타 버렸기 때문에 탈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못들어 왔어요. 죄는 큰 평온의 불같이 우리를 침범해 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있으면 이미 그 죄가 다 멸하여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다 멸해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죄가 아무리 강하게 오더라도 십자가 밑에 와서는 꿈쩍도 할 수가 없습니다. 죄가 힘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항상 십자가를 의지하고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면 우리는 죄악의 아말렉에서 넉넉히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떤 아말렉이 있느냐. 세속의 유혹과 마귀의 아말렉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유혹이 많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이 굉장히 많습니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이 유혹을 이겨내기가 굉장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혹과 이 마귀의 아말렉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못이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힘이 약하여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는 항상 넘어지고 대항을 못하니 어떻게 합니까?” 탄식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내서 항상 우리와 같이 있게 하신 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혜사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하고 같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숨을 쉬고 계시는 것처럼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씻어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속과 마귀의 유혹이 오면 언제나 예수 이름으로 대결하고 “보혜사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저와 같이 계시니 성령님이 나를 위해서 싸워 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안구하면 성령께서 안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러 나갈 때마다 “성령님 같이 나갑시다. 성령님이 오늘 설교자시고 나는 돕는자에 불과합니다. 함께 나갑시다.” 그렇게 하면 성령께서 항상 같이 계셔서 기름부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 부탁도 안하고 혼자 나가면 아무 힘도 없고 능도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그 권력이 뺏긴 것이기 때문에 대결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모든 영웅호걸들을 사로잡았던 절세미인으로 유명합니다. 하루는 지조가 있기로 유명한 벽계수가 황진이에게 꼼짝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허~ 나는 황진이 열 명을 갖다 놓아도 꼼짝 안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것을 증명해 주겠다고 말을 타고 황진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 송도로 가서 지조가 대단한 벽계수가 보름 밝은 달 아래 아름다운 자태로 시를 읊조리는 황진이의 모습에 넋이 빠져서 말에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큰소리 못합니다. 유혹과 세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피해야지 대면을 해서 싸우겠다고 하면은 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항상 세속의 유혹과 마귀를 성령께 의지해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는 이 세상 세속의 유혹과 마귀가 틈만 있으면 우리를 공격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무기는 성령님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성도들과 오늘 신약시대 성도들이 뭐가 다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씻음을 받고 성령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특별한 사람 이외에는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성령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도우시는 성령이 와 계신 것을 모릅니다. 성령은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성령이 계신 것을 모르고 의지하지 않으므로 성령이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성령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면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다가오는 아말렉은 질병의 아말렉입니다.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생활이 병드는 것입니다. 참 병은 고약합니다. 어느 가정에 모두 다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병이 있어도 병이 있는 것입니다. 병 때문에 고생을 하고 약을 먹고 병원에 치료를 해도 잘 치료가 안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사람들이 마음에 병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병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병이 들어와서 얼마 있지 않다가 낫거나 쫓겨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는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뭐가 연약합니까? 어디가 연약합니까? 주님이 바로 2천년 전에 그 연약한 것을 친히 대신 담당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병을 짊어져 주셨습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러 가기 전에 엄청난 매를 맞았습니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선지피가 흘렀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참았습니다. 성경에는 야훼께서 저로 고난을 당하게 하시므로 우리의 질병을 당하게 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질병을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병을 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이 병은 이미 정복된 것이다. 이 병의 아말렉은 이미 멸망 받은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그렇게 할 때 그 저주에서 병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저주의 아말렉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저주라는 것이 항상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들판을 걷는 것과 같이 우리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자꾸 납니다. 어떤 집에도 한 두가지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저주가 있습니다. 이 저주를 우리가 극복하고 이기고 나가야지 저주에 짓눌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를 이길 수 있는 이유도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바라보고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느낌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요동치 않고 서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 다함께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축복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주 받을 리가 없어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여러분, 에덴에서 쫓겨난 여러분이 받고 사는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저주받은 사람만이 못 박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은바 되사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다 그 마음속에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고난 당한 것을 헛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독수리 중에는 "뱀잡이 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독수리가 있습니다. 이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다가 뱀이 기어가는 것을 보면 쏜살같이 내려와서 그 뱀을 쪼아서 잡아 먹습니다. 그렇게 속도가 빠른 독수리인데 사자와 호랑이에게 쉽게 잡혀 먹습니다. 일단 땅에 내려와서 뱀을 먹다가 사자나 호랑이가 오면은 날라 올라가면 되는데 나는 것을 잊어 버려요. 땅에 내렸으니 못나는줄 알고 그냥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잡아 먹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낭패가 다가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네가 누구냐?” “아무것 아닙니다.” 천만에요. “네가 누구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었다는 말이냐?”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주는 나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저주야 물러갈지어다.” 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병의 아말렉이 쳐들어 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치료를 위해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무기로 싸워야 합니다. 저주의 아말렉이 다가왔을 때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모든 병과 저주의 아말렉을 내어 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우리의 적들에 대해서 십자가를 의지하고 저항을 해야 돼요. 그냥 항복하고 두손들고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손 들고 항복하지만 우리의 원수들 앞에서 두손 들고 항복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의지하고 저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말렉이 죽음과 지옥의 아말렉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다가오잖아요.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고 한참 좋을 때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죽음이 올 것을 생각 안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지나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요? 뻔하지 않습니까? 지옥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죽음과 무의 아말렉이 오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엄청난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안죽는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육신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나고 지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만 있지 사망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을 걸머지고 음부에 내려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므로 사망과 음부를 멸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활의 생명만 넘쳐나는 것입니다.
2. 아말렉과 싸우는 우리의 전쟁터
이경복 씨가 쓴「마음의 문을 여는 100가지 물음」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성공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강하고 두뇌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다. 즉 자연, 생명, 사랑, 지혜에 튼튼하게 내린 생각의 뿌리가 행복의 뿌리이다.” 그 사람 지혜가 있고 총명이 있고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집에 살고 그러므로 행복하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에 지조가 있어야 돼요. 마음에 뿌리가 튼튼해야 돼요.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잘 자라나듯이 사람의 생각의 뿌리가 튼튼해야 강건하고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세속과 병과 저주와 죽음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는 무엇보다도 생각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단호히 물리치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나는 승리한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우리 아말렉에 대결하면 이길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아말렉과 싸울 때 생각이 올바러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차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바라봄의 법칙과 꿈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동서남북으로 바라보았으니까 가나안 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았으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가서 패가망신했습니다. 바라봄의 차이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가슴속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바라봄 그 꿈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따라서 여러분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아말렉과 싸워서 이기려면 항상 마음속에 바라봄을 올바르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승리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 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는 그러한 삶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허~ 지 꼬락서니에 뭘 바라본다 말이야? 여러분 아무리 현재 꼬락서니가 형편없어도 바라봄의 법칙은 그 사람을 그 바라보는 목적으로 끌고가는 것입니다. 현재 내 상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고개를 들어 높이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하거나 바라보는 것에 더 넘치도록 우리 주님께서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그림은 고양이가 쭈그리고 앉아 자신보다 두 배도 더 큰 호랑이를 노려보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꿈을 꿀 때는 크게 꾸라.”(When you dream, dream big.) 큰 호랑이 앞에 어림도 없으나 자기 몸을 크게 만들어서 호랑이에게 크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꿈을 그냥 꿀바에야 크게 꾸라. 꿈은 크게 꾸고 시작은 조그마하게 시작하라. 꿈은 크게 꾸고 시작은 적게 시작. 그러면 그 적은 것이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꿈을 크게 꾸고 시작도 크게 하면 빚을 내가지고서 자기 힘이 아닌 다른 사람 힘을 끌어서 하려면 망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꿈은 크게 꾸고 시작은 적게 하면 주님이 같이 계셔서 그 조금 시작한 것을 창대하게 창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게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아말렉과 싸우는 우리의 전쟁터에는“바라봄의 법칙”을 늘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아말렉은 우리에게 환경과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라보게 함으로 우리를 낙심시키고 희망찬 꿈을 꾸지 못하도록 합니다. 늘 현실을 봐라. 지금 네 형편을 봐라. 너는 죽게 되었지 않느냐. 너는 망하게 되었지 않느냐. 마귀는 항상 어두움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사망과 음부에서 건져주신 우리 구주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내게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동서남북 주위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위에서 오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81편 10절에“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입을 넓게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아말렉과 싸울 때는 여러분 마음에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겠다고 결심을 해야 믿음이 생기지요. 가만히 있는데 믿음이 자연적으로 마음속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꾸짖은 것은 믿음을 크게 가질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적게 가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있는데도 안사용하니까 없는 것처럼 했으므로 꾸짖은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아주 우리가 입이 벙벙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우리가 보기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잖아요. 우리의 생활에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할 수 있거든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하나님 앞에 하느냐. 하나님 앞에서는 할수 있거든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마라. 그냥 해달라고 믿으라. 얼마나 우리에게 강력하게 담대하게 말씀해 주시는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성경 말씀은 믿음의 씨앗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말씀을 마음속에 묵상하고 심고 말씀위에 서면 믿음이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아말렉과 싸울 때는 우리말이 살아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되지 죽은 말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베스트 셀러 작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는 그의 책「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컴퓨터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일과 관련된 정보와 지시를 제공하거나, 이미 제공했던 것을 지워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을 할 때 우리 두뇌도 그와 비슷한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나는 된다라고 생각하면 미래를 성공으로 이끌어갈 모든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은연중에 나는 실패한다. 나는 망한다. 그렇게 입력을 하면 내 인생 전체의 기구가 실패하는 쪽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어떤 말을 주입하느냐. 이것이 우리 전체가 가는 방향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말렉과 싸울 때 우리의 말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싸움에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이고 살아 있는 말이 우리를 아말렉을 물리치고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바로 여러분의 혀입니다. 남의 혀도 아니에요. 여러분이 죽고 사는 것이 요 혀에 달렸습니다. 이 혀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살고 혀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꾸중을 할때도 지독한 꾸중을 하지 마십시오.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격려를 해주면 생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혀라는 것은 그냥 우리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우리 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혀를 올바르게 사용하여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3. 아말렉과 싸울 때 우리의 마음가짐
우리가 아말렉과 싸울 때는 절대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고 마음에 뒤로 물러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마귀와 싸울 때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끝까지 싸워야 됩니다. 인내를 하고 싸우면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성령님과 말씀에 의지할 것입니다. 내 힘을 의지하면 안돼요. 나의 힘은 얼마 안돼요. 성령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루 이틀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께 의지하면 여러분이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삼손 지나가라합니다. 굉장한 힘이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므로 성령과 말씀만 있으면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여러분에게 떠나가지 않게 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이 성령께 늘 의지해서 또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 Wiersbe) 는「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라는 자신의 책에서 한 남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한 소년이 여동생과 함께 산 길을 오르는데, 그 길이 매우 험하고 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동생이 돌에 걸려서 자꾸 넘어져요. 그래서 “오빠, 너무 돌이 많아서 걸음을 걸을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빠가 하는 말이 “걸림돌은 딛고 올라서라고 있는거야. 걸려서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돌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돌을 하나하나 딛고 일어서라” 그렇게 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인생을 걸어가는데 걸림돌이 많습니다. 왜 내 인생은 걸림돌이 많느냐. 불평하지 말고 하나하나 딛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걸림돌을 딛고 또 일어서고 또 딛고 일어서라.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한 걸리돌이 오면 그것을 디디고 일어서면 또 다른 돌이 오면 또 그것을 디디고 일어서고 인생은 이러한 과정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말씀을 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트루먼(Truman, Harry Shippe) 대통령이 그의 고향에서 대통령 탄생을 기념하여 세운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기뻐한 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아저씨는 우리 만할 때 무엇을 했나요, 반장을 했나요?” 트루먼이 “아니다, 나는 너희 만할 때 아주 볼품이 없었단다. 운동도 못하고 안경을 벗고는 책도 읽지 못했단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되었나요?” “나는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그리고 내 뒤에서 밀어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믿었지. 나는 빌립보서 4장 1절에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이 말씀을 굳게 믿었단다. 그리고 일단 믿기 시작하면 밀고 나갔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까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아말렉과 싸울 때 성령님과 말씀을 굳게 믿고 성령님과 말씀에 의지하여 밀고 나가면 우리는 어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넉넉히 이기고 말 것인 것입니다. 모은 일에 오래 인내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이 와요. 아무리 믿음이 강한자도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믿지 말고 믿음의 동지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역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한 것은 많은 신자들이 모여서 서로 도와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혼자서 누우면 춥거니와 둘이가 누우면 따뜻합니다. 그와 같이 내 혼자서 낙심이 될 때는 다른 분이 같이 기도를 해주면 다시 용기와 힘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데 세상에 있는 것보다 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고 참고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참고 이기고 있으면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고난은 여러분에게 큰 고통같이 보이지만은 그 반면에 강력한 신앙과 튼튼한 인격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한 장인이 최상의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질 좋은 나무를 구하려고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나는 바이올린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수목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추운 지역 한계선에서 나무 한 토막을 발견했는데 그 나무는 옹이가 많고, 이리저리 뒤틀린 나무였습니다. 너무나 추위에 고통을 많이 당한 나무라 뒤틀려 있었습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산꼭대기에서 부는 황량한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다 보니 그 모양이 곧지 않았지만 단단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어 소리를 내보니,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어떤 바이올린보다 훌륭한 소리가 울렸다고 말합니다. 또한, 땅 속에 묻혀 있는 석탄이 그대로 있으면 시커먼 석탄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섭씨 550도에서 750톤의 무게로 압력을 받게 되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시커먼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서는 굉장한 온도와 압력을 받으면 그렇게 다이아몬드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아말렉과 싸우며 모진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련과 고통이 크다고 해도 낙심치 말고 오래 참고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찬란한 미래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됩니다. 기도가 우리의 모든 삶을 도와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이 다가왔을 때 혼자 싸우지 말고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건져주고 우리가 간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한다고 키를 한자나 더 크게 할 수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검은머리가 흰머리가 되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염려를 주께 맡겨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염려와 근심을 맡겨 버리면 주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마음에 평강을 갖기를 늘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예수 믿으면서 해야 될 것은 항상 우리는 기적에 의지해서 산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니까 기적을 체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본남편과 사는 한국부인은 일본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남자하고 사는 외국여자는 한국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인생들은 하나님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데 기적이 안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욥기 5장 9절에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살 때는 기도하고 구하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기적을 나타내 주실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을 깍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아들과 함께 무엇을 안주시겠어요?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믿고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조그만 다른 것을 구하는데 허락 안 해줄 턱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너무 하나님 앞에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탈인 것입니다. 우리의 적 아말렉과 매일 싸움에서 우리는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면 우리가 망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겨야 돼요. 야훼 닛시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의 깃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겼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말렉에 졌으면 가나안 땅에 못들어갑니다.
<결론>
우리도 천국까지 가는 동안에 이 아말렉과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지면 망합니다. 지면 죽습니다. 우리는 죄의 아말렉, 유혹과 마귀의 아말렉, 질병의 아말렉, 저주의 아말렉, 죽음의 아말렉을 대결하여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길수 있는 무장을 해주셨습니다. 그 보혈과 그 성령과 그 말씀과 그 믿음과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패배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꿈을 꾸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믿음을 갖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승리한다고 긍정적으로 믿고 말하고 인내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기적은 여러분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아말렉의 공격을 받습니다.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사람은 거짓말입니다. 항상 아말렉에 둘러쌓여 있지만 우리는 아말렉과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과 보혈의 능력과 하나님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 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항상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기면 살고 지면 망한다” 이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광야에 도달했는데 광야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편안한 곳이 아닙니다. 메마르고 공기는 건조하고 길은 험하고 먹을 양식은 없고 물은 없고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 르비딤이라는 한 곳에 왔을 때 백성들이 다 낙심을 했어요.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말렉이 그 근처에 있다가 이스라엘이 오는 것을 듣고 무장을 하고 기다리다가 공격해 왔습니다. 아말렉은 잘 먹고 훈련되고 최신 무기를 무장해서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오니까 순식간에 전멸하게 되었어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으나 아말렉에 의해서 광야에서 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군인들을 동원해서 가서 싸워라.” 너저리하고 훈련도 안되고 무기도 없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혹은 삽을 들고 혹은 굉이를 들고 나가서 싸우는데 상대가 됩니까? 그러나 그 이튿날 모세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전쟁터를 내려다 보면서 손을 들었습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엄청난 능력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임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천을, 두 사람이 만명을 쫒을 수 있는 힘이 그 몸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질풍같이 쳐들어가서 아말렉을 치는데 초계같이 아말렉이 쫓겨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팔이 너무 아파서 팔을 내리고 기도를 쉬니까 아말렉이 도로 힘을 얻고 이스라엘은 모두 다 힘이 다 빠지고 녹초가 되어서 아말렉에게 또 짓밟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팔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내리면 지고, 올리면 이기고 내리면 지고... 참 큰일났습니다. 그러다가 아론과 훌이 돌을 하나 가지고 와서 그 위에 모세를 앉히고 한쪽 팔은 아론, 다른쪽 팔은 훌이 들어서 해질때까지 내려오지 않게 하니 계속해서 주님의 능력이 임하여서 아말렉은 모두 다 물리쳐지고 멸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기도생활에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마귀와 싸울 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마귀의 진을 물리치지만 기도를 그치면 마귀가 도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 기도하면 또 마귀를 물리치고 기도 안하면 또 마귀가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한번 우리가 마귀와 싸울 때면 끝까지를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런 간증을 적은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가 굉장히 아픈 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병명도 잘 모르는데 입에서 피를 토하고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교인들이 순서를 정해가지고서 24시간 병원에 와서 한사람씩 기도를 해요. 그런데 중보기도를 하면 그렇게 고통스럽던 고통이 싹 사라지다가 중보기도를 그치면 고통이 또 말할 수없이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주일날일 때 다 교회 나간다고 사람들이 못오게 되자 그날은 반초죽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프더랍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예배를 마치고 또 중보기도를 와서 해주니까 또 아픈 것이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이렇게 중요한가 하는 것을 그는 실제 생활에 체험했다고 그 책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말렉의 공격을 받았을 때도 모세의 중보기도가 계속 되는 한 아말렉은 패하고 물러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정에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 앞에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면 그 중보기도가 온 가족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다”고 하신 것처럼 구역예배가 그렇게 좋은 것은 구역에 소수의 인원이 모여서 서로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함께 중보기도를 해주면 굉장한 능력과 힘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도의 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많은 일중에 우리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응답 못받습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자식들인 우리들에게 무엇을 주지 않겠습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중요성을 알아야 될 것은 기도하므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쳐서 물리쳤지 무장의 힘으로 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론>
1. 우리들의 아말렉과 우리의 무기
우리들도 이 광야를 지나는 것,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우리 죄악에서 나와서 이 세상 광야를 지나서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도 르비딤과 같은 우리 삶속에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아말렉이 우리를 쳐들어 오는 것입니가? 제일 중요한 것이 죄의 아말렉이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죄가 우리 주위에 쳐들어와서 유혹을 하고 우리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자꾸 죄에 넘어지니까 그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께 보혈로 깨끗함을 입고 난 다음에 또 나가서 또 죄짓고 또 깨끗함을 입고 난 다음에 또 죄짓고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는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죄의 아말렉에 늘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죄의 아말렉에 이길 수 있는 힘, 예수님의 보혈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 앞에서 보혈의 능력을 주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죄를 지으면 마귀의 수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오면 마귀는 쫓겨 나가고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보혈 앞에 있어야 죄를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 큰 불이 났어요. 화염이 충천하고 무서운 속도로 바람을 타고 불이 붙어 오는데 그 평온에 있던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도망칠 수가 없어요. 그 불길에 안타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가 포켓트에서 라이터를 끄집어 내어서 불을 켜서 자기 주변의 풀에 불을 붙였습니다. 맞불이 붙었습니다. 불은 저쪽에서 붙어 오는데 자기가 붙은 불이 또 붙어 나가니까 자기는 불이 타버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큰 불이 바다처럼 불어왔으나 자기에게는 안오는 것은 자기 주위는 벌써 불이 타 버렸기 때문에 탈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못들어 왔어요. 죄는 큰 평온의 불같이 우리를 침범해 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있으면 이미 그 죄가 다 멸하여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다 멸해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죄가 아무리 강하게 오더라도 십자가 밑에 와서는 꿈쩍도 할 수가 없습니다. 죄가 힘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이 세상에 살 동안에 항상 십자가를 의지하고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면 우리는 죄악의 아말렉에서 넉넉히 이기고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어떤 아말렉이 있느냐. 세속의 유혹과 마귀의 아말렉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유혹이 많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이 굉장히 많습니다. 더구나 젊은이들은 이 유혹을 이겨내기가 굉장히 힘이 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혹과 이 마귀의 아말렉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우리 힘으로 못이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힘이 약하여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는 항상 넘어지고 대항을 못하니 어떻게 합니까?” 탄식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보내서 항상 우리와 같이 있게 하신 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혜사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하고 같이 계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숨을 쉬고 계시는 것처럼 보혜사 성령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마귀를 이기기 위해서는 보혜사 성령님을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씻어지고 거룩하게 되고 의롭다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속과 마귀의 유혹이 오면 언제나 예수 이름으로 대결하고 “보혜사 성령이여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저와 같이 계시니 성령님이 나를 위해서 싸워 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안구하면 성령께서 안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도와달라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도 항상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러 나갈 때마다 “성령님 같이 나갑시다. 성령님이 오늘 설교자시고 나는 돕는자에 불과합니다. 함께 나갑시다.” 그렇게 하면 성령께서 항상 같이 계셔서 기름부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 부탁도 안하고 혼자 나가면 아무 힘도 없고 능도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귀는 이미 십자가에서 그 권력이 뺏긴 것이기 때문에 대결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유혹을 이기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능력에 있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유명한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모든 영웅호걸들을 사로잡았던 절세미인으로 유명합니다. 하루는 지조가 있기로 유명한 벽계수가 황진이에게 꼼짝 못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허~ 나는 황진이 열 명을 갖다 놓아도 꼼짝 안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것을 증명해 주겠다고 말을 타고 황진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 송도로 가서 지조가 대단한 벽계수가 보름 밝은 달 아래 아름다운 자태로 시를 읊조리는 황진이의 모습에 넋이 빠져서 말에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큰소리 못합니다. 유혹과 세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피해야지 대면을 해서 싸우겠다고 하면은 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항상 세속의 유혹과 마귀를 성령께 의지해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는 이 세상 세속의 유혹과 마귀가 틈만 있으면 우리를 공격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무기는 성령님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성도들과 오늘 신약시대 성도들이 뭐가 다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씻음을 받고 성령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은 특별한 사람 이외에는 성령을 모시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성령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도우시는 성령이 와 계신 것을 모릅니다. 성령은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성령이 계신 것을 모르고 의지하지 않으므로 성령이 역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성령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면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다가오는 아말렉은 질병의 아말렉입니다.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생활이 병드는 것입니다. 참 병은 고약합니다. 어느 가정에 모두 다 건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병이 있어도 병이 있는 것입니다. 병 때문에 고생을 하고 약을 먹고 병원에 치료를 해도 잘 치료가 안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사람들이 마음에 병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병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병이 들어와서 얼마 있지 않다가 낫거나 쫓겨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이사야는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 병을 짊어지겠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뭐가 연약합니까? 어디가 연약합니까? 주님이 바로 2천년 전에 그 연약한 것을 친히 대신 담당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병을 짊어져 주셨습니다. 이 사실만 알아도 우리 마음속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러 가기 전에 엄청난 매를 맞았습니다.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가고 선지피가 흘렀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참았습니다. 성경에는 야훼께서 저로 고난을 당하게 하시므로 우리의 질병을 당하게 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질병을 청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병을 저항해야 되는 것입니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서도 이 병은 이미 정복된 것이다. 이 병의 아말렉은 이미 멸망 받은 것이다.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그렇게 할 때 그 저주에서 병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저주의 아말렉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저주라는 것이 항상 다가오는 것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들판을 걷는 것과 같이 우리 삶에 가시와 엉겅퀴가 자꾸 납니다. 어떤 집에도 한 두가지 걱정과 근심이 있습니다. 저주가 있습니다. 이 저주를 우리가 극복하고 이기고 나가야지 저주에 짓눌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를 이길 수 있는 이유도 성경말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바라보고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느낌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말씀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요동치 않고 서면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우리 다함께 읽어 보십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을 위해서 예수님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축복받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저주 받을 리가 없어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자손인 여러분, 에덴에서 쫓겨난 여러분이 받고 사는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저주받은 사람만이 못 박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은바 되사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다 그 마음속에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고난 당한 것을 헛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독수리 중에는 "뱀잡이 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독수리가 있습니다. 이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다가 뱀이 기어가는 것을 보면 쏜살같이 내려와서 그 뱀을 쪼아서 잡아 먹습니다. 그렇게 속도가 빠른 독수리인데 사자와 호랑이에게 쉽게 잡혀 먹습니다. 일단 땅에 내려와서 뱀을 먹다가 사자나 호랑이가 오면은 날라 올라가면 되는데 나는 것을 잊어 버려요. 땅에 내렸으니 못나는줄 알고 그냥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잡아 먹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질병이나 낭패가 다가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네가 누구냐?” “아무것 아닙니다.” 천만에요. “네가 누구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었다는 말이냐?” “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저주는 나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저주야 물러갈지어다.” 대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병의 아말렉이 쳐들어 왔을 때 우리는 우리의 치료를 위해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무기로 싸워야 합니다. 저주의 아말렉이 다가왔을 때에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모든 병과 저주의 아말렉을 내어 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우리의 적들에 대해서 십자가를 의지하고 저항을 해야 돼요. 그냥 항복하고 두손들고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두손 들고 항복하지만 우리의 원수들 앞에서 두손 들고 항복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의지하고 저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말렉이 죽음과 지옥의 아말렉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다가오잖아요.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누리고 한참 좋을 때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죽음이 올 것을 생각 안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지나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요? 뻔하지 않습니까? 지옥으로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죽음과 무의 아말렉이 오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엄청난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안죽는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육신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나고 지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생명만 있지 사망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을 걸머지고 음부에 내려갔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므로 사망과 음부를 멸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부활의 생명만 넘쳐나는 것입니다.
2. 아말렉과 싸우는 우리의 전쟁터
이경복 씨가 쓴「마음의 문을 여는 100가지 물음」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끝까지 성공하여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강하고 두뇌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다. 즉 자연, 생명, 사랑, 지혜에 튼튼하게 내린 생각의 뿌리가 행복의 뿌리이다.” 그 사람 지혜가 있고 총명이 있고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집에 살고 그러므로 행복하다. 그렇지 않아요. 마음에 지조가 있어야 돼요. 마음에 뿌리가 튼튼해야 돼요.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잘 자라나듯이 사람의 생각의 뿌리가 튼튼해야 강건하고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세속과 병과 저주와 죽음도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는 무엇보다도 생각에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단호히 물리치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나는 승리한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우리 아말렉에 대결하면 이길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아말렉과 싸울 때 생각이 올바러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희망차야 되는 것입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바라봄의 법칙과 꿈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동서남북으로 바라보았으니까 가나안 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았으니까 소돔과 고모라에 내려가서 패가망신했습니다. 바라봄의 차이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가슴속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바라봄 그 꿈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따라서 여러분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아말렉과 싸워서 이기려면 항상 마음속에 바라봄을 올바르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승리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 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줄지라도 꾸지 않는다는 그러한 삶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허~ 지 꼬락서니에 뭘 바라본다 말이야? 여러분 아무리 현재 꼬락서니가 형편없어도 바라봄의 법칙은 그 사람을 그 바라보는 목적으로 끌고가는 것입니다. 현재 내 상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고개를 들어 높이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한 것입니다.
구하거나 바라보는 것에 더 넘치도록 우리 주님께서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그림은 고양이가 쭈그리고 앉아 자신보다 두 배도 더 큰 호랑이를 노려보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꿈을 꿀 때는 크게 꾸라.”(When you dream, dream big.) 큰 호랑이 앞에 어림도 없으나 자기 몸을 크게 만들어서 호랑이에게 크게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꿈을 그냥 꿀바에야 크게 꾸라. 꿈은 크게 꾸고 시작은 조그마하게 시작하라. 꿈은 크게 꾸고 시작은 적게 시작. 그러면 그 적은 것이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꿈을 크게 꾸고 시작도 크게 하면 빚을 내가지고서 자기 힘이 아닌 다른 사람 힘을 끌어서 하려면 망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꿈은 크게 꾸고 시작은 적게 하면 주님이 같이 계셔서 그 조금 시작한 것을 창대하게 창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게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아말렉과 싸우는 우리의 전쟁터에는“바라봄의 법칙”을 늘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 아말렉은 우리에게 환경과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바라보게 함으로 우리를 낙심시키고 희망찬 꿈을 꾸지 못하도록 합니다. 늘 현실을 봐라. 지금 네 형편을 봐라. 너는 죽게 되었지 않느냐. 너는 망하게 되었지 않느냐. 마귀는 항상 어두움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사망과 음부에서 건져주신 우리 구주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움은 내게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동서남북 주위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위에서 오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때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경 시편 81편 10절에“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우리는 입을 넓게 열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아말렉과 싸울 때는 여러분 마음에 믿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믿겠다고 결심을 해야 믿음이 생기지요. 가만히 있는데 믿음이 자연적으로 마음속에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꾸짖은 것은 믿음을 크게 가질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적게 가진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여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있는데도 안사용하니까 없는 것처럼 했으므로 꾸짖은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아주 우리가 입이 벙벙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우리가 보기에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잖아요. 우리의 생활에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할 수 있거든 그런 소리를 어떻게 하나님 앞에 하느냐. 하나님 앞에서는 할수 있거든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지마라. 그냥 해달라고 믿으라. 얼마나 우리에게 강력하게 담대하게 말씀해 주시는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성경 말씀은 믿음의 씨앗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 때문에 말씀을 마음속에 묵상하고 심고 말씀위에 서면 믿음이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아말렉과 싸울 때는 우리말이 살아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되지 죽은 말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몇 해 전부터 베스트 셀러 작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는 그의 책「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컴퓨터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이루기 위해서는 그 일과 관련된 정보와 지시를 제공하거나, 이미 제공했던 것을 지워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을 할 때 우리 두뇌도 그와 비슷한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나는 된다라고 생각하면 미래를 성공으로 이끌어갈 모든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은연중에 나는 실패한다. 나는 망한다. 그렇게 입력을 하면 내 인생 전체의 기구가 실패하는 쪽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어떤 말을 주입하느냐. 이것이 우리 전체가 가는 방향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말렉과 싸울 때 우리의 말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싸움에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이고 살아 있는 말이 우리를 아말렉을 물리치고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바로 여러분의 혀입니다. 남의 혀도 아니에요. 여러분이 죽고 사는 것이 요 혀에 달렸습니다. 이 혀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살고 혀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꾸중을 할때도 지독한 꾸중을 하지 마십시오.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격려를 해주면 생명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혀라는 것은 그냥 우리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우리 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혀를 올바르게 사용하여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3. 아말렉과 싸울 때 우리의 마음가짐
우리가 아말렉과 싸울 때는 절대 뒤로 물러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고 마음에 뒤로 물러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로 38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마귀와 싸울 때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끝까지 싸워야 됩니다. 인내를 하고 싸우면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성령님과 말씀에 의지할 것입니다. 내 힘을 의지하면 안돼요. 나의 힘은 얼마 안돼요. 성령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루 이틀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께 의지하면 여러분이 굉장한 힘이 있습니다. 삼손 지나가라합니다. 굉장한 힘이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므로 성령과 말씀만 있으면 여러분 우리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여러분에게 떠나가지 않게 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이 성령께 늘 의지해서 또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 Wiersbe) 는「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라는 자신의 책에서 한 남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한 소년이 여동생과 함께 산 길을 오르는데, 그 길이 매우 험하고 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동생이 돌에 걸려서 자꾸 넘어져요. 그래서 “오빠, 너무 돌이 많아서 걸음을 걸을수가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빠가 하는 말이 “걸림돌은 딛고 올라서라고 있는거야. 걸려서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돌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돌을 하나하나 딛고 일어서라” 그렇게 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인생을 걸어가는데 걸림돌이 많습니다. 왜 내 인생은 걸림돌이 많느냐. 불평하지 말고 하나하나 딛고 일어서라는 것입니다. 걸림돌을 딛고 또 일어서고 또 딛고 일어서라.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한 걸리돌이 오면 그것을 디디고 일어서면 또 다른 돌이 오면 또 그것을 디디고 일어서고 인생은 이러한 과정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말씀을 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트루먼(Truman, Harry Shippe) 대통령이 그의 고향에서 대통령 탄생을 기념하여 세운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기뻐한 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대통령 아저씨는 우리 만할 때 무엇을 했나요, 반장을 했나요?” 트루먼이 “아니다, 나는 너희 만할 때 아주 볼품이 없었단다. 운동도 못하고 안경을 벗고는 책도 읽지 못했단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되었나요?” “나는 매일 성경을 읽었단다. 그리고 내 뒤에서 밀어주시는 하나님의 힘을 믿었지. 나는 빌립보서 4장 1절에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이 말씀을 굳게 믿었단다. 그리고 일단 믿기 시작하면 밀고 나갔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까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도 아말렉과 싸울 때 성령님과 말씀을 굳게 믿고 성령님과 말씀에 의지하여 밀고 나가면 우리는 어떤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넉넉히 이기고 말 것인 것입니다. 모은 일에 오래 인내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낙심이 와요. 아무리 믿음이 강한자도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믿지 말고 믿음의 동지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역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한 것은 많은 신자들이 모여서 서로 도와주기 때문인 것입니다. 혼자서 누우면 춥거니와 둘이가 누우면 따뜻합니다. 그와 같이 내 혼자서 낙심이 될 때는 다른 분이 같이 기도를 해주면 다시 용기와 힘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데 세상에 있는 것보다 크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고 참고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가 참고 이기고 있으면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고난은 여러분에게 큰 고통같이 보이지만은 그 반면에 강력한 신앙과 튼튼한 인격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한 장인이 최상의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질 좋은 나무를 구하려고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나는 바이올린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수목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추운 지역 한계선에서 나무 한 토막을 발견했는데 그 나무는 옹이가 많고, 이리저리 뒤틀린 나무였습니다. 너무나 추위에 고통을 많이 당한 나무라 뒤틀려 있었습니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산꼭대기에서 부는 황량한 비바람을 맞으며 자라다 보니 그 모양이 곧지 않았지만 단단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그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들어 소리를 내보니,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어떤 바이올린보다 훌륭한 소리가 울렸다고 말합니다. 또한, 땅 속에 묻혀 있는 석탄이 그대로 있으면 시커먼 석탄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섭씨 550도에서 750톤의 무게로 압력을 받게 되면 아름다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시커먼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서는 굉장한 온도와 압력을 받으면 그렇게 다이아몬드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아말렉과 싸우며 모진 시련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련과 고통이 크다고 해도 낙심치 말고 오래 참고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찬란한 미래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 앞에 간구하는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됩니다. 기도가 우리의 모든 삶을 도와주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이 다가왔을 때 혼자 싸우지 말고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건져주고 우리가 간증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한다고 키를 한자나 더 크게 할 수 없습니다. 염려한다고 검은머리가 흰머리가 되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서 염려를 주께 맡겨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간구로 주님께 염려와 근심을 맡겨 버리면 주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께 맡기고 마음에 평강을 갖기를 늘 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예수 믿으면서 해야 될 것은 항상 우리는 기적에 의지해서 산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사니까 기적을 체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본남편과 사는 한국부인은 일본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남자하고 사는 외국여자는 한국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인생들은 하나님이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데 기적이 안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욥기 5장 9절에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이 큰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살 때는 기도하고 구하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기적을 나타내 주실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을 깍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아들과 함께 무엇을 안주시겠어요?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믿고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조그만 다른 것을 구하는데 허락 안 해줄 턱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너무 하나님 앞에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탈인 것입니다. 우리의 적 아말렉과 매일 싸움에서 우리는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면 우리가 망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겨야 돼요. 야훼 닛시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의 깃발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이겼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말렉에 졌으면 가나안 땅에 못들어갑니다.
<결론>
우리도 천국까지 가는 동안에 이 아말렉과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지면 망합니다. 지면 죽습니다. 우리는 죄의 아말렉, 유혹과 마귀의 아말렉, 질병의 아말렉, 저주의 아말렉, 죽음의 아말렉을 대결하여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길수 있는 무장을 해주셨습니다. 그 보혈과 그 성령과 그 말씀과 그 믿음과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패배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꿈을 꾸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믿음을 갖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승리한다고 긍정적으로 믿고 말하고 인내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기적은 여러분 위해서 반드시 하나님이 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 기도드리겠습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항상 아말렉의 공격을 받습니다.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사람은 거짓말입니다. 항상 아말렉에 둘러쌓여 있지만 우리는 아말렉과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과 말씀과 보혈의 능력과 하나님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고 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항상 기적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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