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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왕하23: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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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정용섭 목사 |
참고 : | http://dabia.net/xe/39357 |
2007.11.4.
구약성서 중에서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리는데, 다른 성서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됩니다. 이 신명기 법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평가하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통일왕국, 분열왕국에 이르는 전체 역사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왕들이 주요 대상입니다. 대다수의 왕들은 나쁜 평가를 받습니다. 여로보암과 아합 왕은 대표적입니다. 그들이 당대에는 왕이랍시고 큰소리 치고 떵떵거리면서 살았을지 모르지만 훗날 아주 혹독한 역사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은 왕들의 연대기에서 다윗은 예외에 속합니다. 그는 몇 가지 인간적인 잘못이 없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시아도 역시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왕하 22:1,2절에 따르면 그는 여덟 살에 왕이 되어 31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2절에 묘사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렇습니다. “그는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폈다. 모든 일을 태조 다윗을 본받아 한 발짝도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다윗에게 버금갈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했던 인문이 바로 요시아인데, 그의 업적은 종교개혁입니다.
요시아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요시아는 크게 충격을 받고 옷을 찢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역 대표자들인 장로들을 소집하고, 예언자, 사제, 모든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불러 모아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야훼의 명령을 따르기로 서약했습니다.(왕하 23:3) 그 뒤로 요시아는 종교개혁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이 왕하 23:4절 이하에 설명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혼합주의로 떨어진 야훼 신앙
첫째, 요시아는 야훼의 전 안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는 데 쓰던 모든 기구들을” 치우고 그것을 불살랐습니다. 둘째,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가짜 사제들과 우상을 예배하던 사람들을 그 직위에서 파면했습니다. 셋째,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산당들을 폐쇄조치 했습니다. 첫째는 우상과 관련된 기구들을 없앤 것이고, 둘째는 거기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파면시킨 것이며, 셋째는 지역의 산당을 없앤 것입니다. 이런 조치를 보면, 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과 전체 나라가 완전히 우상숭배에 찌든 것 같습니다.
야훼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기구들이 들어 있었다는 게 정말 이상합니다. 심지어 성전에 아세라 목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야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들이 바알과 해와 달, 성좌와 하늘의 별에게 제물을 살라 바쳤다고 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런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전문적인 종교인들이 나라 전체에 퍼져 있다고 하니, 그들의 상황이 어떤지 알만 합니다. 요즘 식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교회당에 부처상이 놓여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요. 교회당의 기도실에 점쟁이가 그린 부적이 붙여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요시아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의 모든 종교적인 행태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야훼 하나님 신앙이 크게 변질되고 오염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질렀구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전국 곳곳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주 천천히 그런 요소들이 그들의 신앙세계 안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변질과 왜곡은 천천히, 자신들도 모르는 중에 일어납니다. 요시아 시대의 야훼 신앙도 여전히 그런 과정 중에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야훼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한편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지요. 일종의 혼합주의입니다. 혼합주의는 신앙생활에서 아주 유용합니다. 속된 표현으로 알 먹고 꿩 먹는 식,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하는 식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야훼 하나님을 섬기면서 속으로는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복주의 신앙이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한국교회가 그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요시아 시대의 유대인들도 예루살렘 성전에 아세라 목상 세우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혼합주의로 흐르면 행동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렵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왜 이런 혼합주의로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을까요? 여기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성서의 관점만 전하겠습니다. 요시아가 종교개혁에 나서게 된 그 동기를 보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요시아는 성전에서 발견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크게 충격을 받아 종교개혁을 단호하게 실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기준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믿음은 순식간에 우상숭배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사실만 강조하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믿는 그 하나님이 바알인지 아세라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는다고 합니다. 비유적으로 한 말씀 드린다면, 구구단만 달달 외우면서 수학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신앙적 열정이 강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혼합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요시아 시대만이 아니라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그대로 증명되었습니다.
솔라 스크립투라
10월31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금부터 490년 전인 1517년 이 날에 비텐베르크 성당의 신부이자 그 대학교 신학교수이며 어거스틴 수도회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성당의 정문 위에 95개 조항의 신학 논제를 대자보 형식으로 내다걸었습니다. 그 뒤로 종교개혁의 불길이 유럽에 확산되면서 지난 1500년의 역사를 지난 로마 가톨릭교회와 구별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가자고 그런 개혁운동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그는 신학자였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신앙을 신학적으로 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뿐입니다. 그것을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이 잘 수습했다면 교회가 갈라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겠지요.
그 당시에 겉으로 크게 불거진 신앙적인 문제는 면죄부였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베드로 성당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연옥에 떨어진 가족과 조상을 위해서 면죄부를 매입하면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선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논리가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걸 남의 이야기로만 들으면 곤란합니다. 개신교회에서도 지금 서원헌금이라든지, 일천번제라든지 해서 이런 코미디 같은 종교행위가 없지 않습니다. 장로와 안수집사 직을 받기 위해서 일괄적으로 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명분이야 없지 않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사람들이니 임직을 받을 때 기념될만한, 예컨대 전자올갠 같은 걸 바치는 게 좋다는 겁니다. 5백 년 전 로마교황청이 행했던 면죄부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교회가 왜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일을 했을까요? 그것이 바로 마틴 루터의 신학이 말하려는 핵심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세 가지 슬로건을 그 토대로 합니다. 첫째는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총)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솔라 피데(오직 믿음)입니다.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세 번째는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서)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을 끌어가는 기준은 교회가 아니라 오직 성서라는 말씀입니다. 요시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엄격하고 총체적인 개혁을 실시했듯이 그로부터 2천년이 흐른 뒤에 마틴 루터는 다시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침으로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이 종교개혁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거꾸로 하나님의 말씀이 실종되거나 침묵하면 기독교가 아주 쉽게 혼합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루터가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친 이유는 그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전통이 지나치게 교회 중심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교회는 곧 성직자인 사제를 가리킵니다. 그 사제의 수장은 교황입니다. 그들은 성서와 교황의 칙령을 동일한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기는 합니다. 성서도 교회의 회의를 거쳐서 결정된 것이고, 그 종교회의는 바로 교황에 의해서 소집되고 결정되기 때문에 교황의 권위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에 관한 신학적 논쟁을 설교 시간에 반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교황의 칙령이 나름으로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루터 시대에 교황의 칙령에 따라 판매된 면죄부를 용납할 수는 없겠지요. 교황의 이름으로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에게 행한 종교재판과 마녀재판을 옹호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지금 로마가톨릭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교회, 성직자, 전통이 성서말씀보다 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되는 일들은 500년 전 루터 시대의 로마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개신교회에도 여전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오늘 우리 개신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의 습관과 전통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청중들의 종교적 감수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취급됩니다. 열린예배를 드리겠다는 취지로 한국교회 안에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경배와 찬양> 유의 예배에서는 말씀이 실종되고 사람들의 감수성만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배는 전형적인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동시에 신자들의 종교적 갈망을 만족시키겠다는 것이니까요.
오늘 한국교회에 가장 뿌리 깊은 혼합주의는 물질 만능주의입니다. 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물질 만능주의는 오늘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일종의 유사종교입니다. 저는 정치와 경제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겠습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부(富)를 삶의 핵심으로 선전하니까 그러려니 해야겠지요. 문제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일전에 서울의 모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기도만 잘 하면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1억원 십일조 헌금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이라고 한다면 결국 기독교 신앙은 처세술이 되고 말겠지요. 이런 신앙은 분명히 혼합주의입니다. 기독교를 자본주의와 혼합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혼합주의 특징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상을 차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죽음 다음에 천당을 가고 싶으니까 예수를 믿습니다. 살아있을 때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으니까 자본주의를 끌어들입니다. 이런 혼합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교회일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왜냐하면 민중들은 바로 이렇게 자기의 종교적 취향과 세속적 욕망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혼합주의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당장은 구미가 당기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받은 충격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 혼합주의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교회 지도자가 말하는 것만을 무조건 추종합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게 옳은가 하고 따라가기도 합니다. 요시야가 개혁을 추진하기 직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 왜 문제인지 몰랐듯이, 조금 눈치 챘다고 하더라도 감히 거기서 뛰쳐나올 수 없었듯이 이런 역사는 오늘도 반복됩니다. 이런 혼합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입니다. 요시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거기서 심각한 위기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충격을 받지 못한 채 신앙생활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서 혼합적인 신앙생활에 안주하고 말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에 관한 열성은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영적인 관심은 무뎌지고 대신 교회의 여러 행사에만 재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런데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신앙의 혼합주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5백 년 전 루터는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쳤습니다. 2천 6백 년 전 요시아는 율법 양피지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혼합주의라는 유혹으로부터 건져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마음을 쏟는 것이야말로 종교개혁의 시작이며, 마무리입니다.
구약성서 중에서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리는데, 다른 성서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됩니다. 이 신명기 법전의 가장 큰 특징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평가하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통일왕국, 분열왕국에 이르는 전체 역사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왕들이 주요 대상입니다. 대다수의 왕들은 나쁜 평가를 받습니다. 여로보암과 아합 왕은 대표적입니다. 그들이 당대에는 왕이랍시고 큰소리 치고 떵떵거리면서 살았을지 모르지만 훗날 아주 혹독한 역사적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은 왕들의 연대기에서 다윗은 예외에 속합니다. 그는 몇 가지 인간적인 잘못이 없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모범적인 왕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시아도 역시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왕하 22:1,2절에 따르면 그는 여덟 살에 왕이 되어 31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2절에 묘사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렇습니다. “그는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폈다. 모든 일을 태조 다윗을 본받아 한 발짝도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다윗에게 버금갈 정도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했던 인문이 바로 요시아인데, 그의 업적은 종교개혁입니다.
요시아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요시아는 크게 충격을 받고 옷을 찢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역 대표자들인 장로들을 소집하고, 예언자, 사제, 모든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불러 모아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야훼의 명령을 따르기로 서약했습니다.(왕하 23:3) 그 뒤로 요시아는 종교개혁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이 왕하 23:4절 이하에 설명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혼합주의로 떨어진 야훼 신앙
첫째, 요시아는 야훼의 전 안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별을 섬기는 데 쓰던 모든 기구들을” 치우고 그것을 불살랐습니다. 둘째,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가짜 사제들과 우상을 예배하던 사람들을 그 직위에서 파면했습니다. 셋째,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산당들을 폐쇄조치 했습니다. 첫째는 우상과 관련된 기구들을 없앤 것이고, 둘째는 거기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파면시킨 것이며, 셋째는 지역의 산당을 없앤 것입니다. 이런 조치를 보면, 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과 전체 나라가 완전히 우상숭배에 찌든 것 같습니다.
야훼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장소인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기구들이 들어 있었다는 게 정말 이상합니다. 심지어 성전에 아세라 목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야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들이 바알과 해와 달, 성좌와 하늘의 별에게 제물을 살라 바쳤다고 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런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전문적인 종교인들이 나라 전체에 퍼져 있다고 하니, 그들의 상황이 어떤지 알만 합니다. 요즘 식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교회당에 부처상이 놓여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요. 교회당의 기도실에 점쟁이가 그린 부적이 붙여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요시아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의 모든 종교적인 행태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야훼 하나님 신앙이 크게 변질되고 오염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질렀구나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전국 곳곳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주 천천히 그런 요소들이 그들의 신앙세계 안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변질과 왜곡은 천천히, 자신들도 모르는 중에 일어납니다. 요시아 시대의 야훼 신앙도 여전히 그런 과정 중에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야훼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한편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지요. 일종의 혼합주의입니다. 혼합주의는 신앙생활에서 아주 유용합니다. 속된 표현으로 알 먹고 꿩 먹는 식, 님도 보고 뽕도 따고 하는 식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는 야훼 하나님을 섬기면서 속으로는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기복주의 신앙이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한국교회가 그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듯이 요시아 시대의 유대인들도 예루살렘 성전에 아세라 목상 세우는 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혼합주의로 흐르면 행동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렵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왜 이런 혼합주의로 깊숙이 빠져들고 말았을까요? 여기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성서의 관점만 전하겠습니다. 요시아가 종교개혁에 나서게 된 그 동기를 보면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요시아는 성전에서 발견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크게 충격을 받아 종교개혁을 단호하게 실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훼 하나님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기준으로 제시되지 않으면 사람들의 믿음은 순식간에 우상숭배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즉 우리의 믿음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사실만 강조하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에 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이 믿는 그 하나님이 바알인지 아세라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는다고 합니다. 비유적으로 한 말씀 드린다면, 구구단만 달달 외우면서 수학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무리 신앙적 열정이 강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혼합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요시아 시대만이 아니라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그대로 증명되었습니다.
솔라 스크립투라
10월31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금부터 490년 전인 1517년 이 날에 비텐베르크 성당의 신부이자 그 대학교 신학교수이며 어거스틴 수도회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성당의 정문 위에 95개 조항의 신학 논제를 대자보 형식으로 내다걸었습니다. 그 뒤로 종교개혁의 불길이 유럽에 확산되면서 지난 1500년의 역사를 지난 로마 가톨릭교회와 구별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가자고 그런 개혁운동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그는 신학자였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신앙을 신학적으로 바르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뿐입니다. 그것을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이 잘 수습했다면 교회가 갈라지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겠지요.
그 당시에 겉으로 크게 불거진 신앙적인 문제는 면죄부였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베드로 성당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연옥에 떨어진 가족과 조상을 위해서 면죄부를 매입하면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선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논리가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걸 남의 이야기로만 들으면 곤란합니다. 개신교회에서도 지금 서원헌금이라든지, 일천번제라든지 해서 이런 코미디 같은 종교행위가 없지 않습니다. 장로와 안수집사 직을 받기 위해서 일괄적으로 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명분이야 없지 않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사람들이니 임직을 받을 때 기념될만한, 예컨대 전자올갠 같은 걸 바치는 게 좋다는 겁니다. 5백 년 전 로마교황청이 행했던 면죄부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교회가 왜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일을 했을까요? 그것이 바로 마틴 루터의 신학이 말하려는 핵심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세 가지 슬로건을 그 토대로 합니다. 첫째는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총)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주장입니다. 둘째는 솔라 피데(오직 믿음)입니다.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길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뿐이라는 주장입니다. 세 번째는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서)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을 끌어가는 기준은 교회가 아니라 오직 성서라는 말씀입니다. 요시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아 엄격하고 총체적인 개혁을 실시했듯이 그로부터 2천년이 흐른 뒤에 마틴 루터는 다시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침으로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습니다. 어느 시대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이 종교개혁의 중심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거꾸로 하나님의 말씀이 실종되거나 침묵하면 기독교가 아주 쉽게 혼합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루터가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친 이유는 그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앙전통이 지나치게 교회 중심으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의 교회는 곧 성직자인 사제를 가리킵니다. 그 사제의 수장은 교황입니다. 그들은 성서와 교황의 칙령을 동일한 권위로 받아들였습니다.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할 말이 많기는 합니다. 성서도 교회의 회의를 거쳐서 결정된 것이고, 그 종교회의는 바로 교황에 의해서 소집되고 결정되기 때문에 교황의 권위가 중요하다고 말입니다. 오늘 저는 이에 관한 신학적 논쟁을 설교 시간에 반복할 생각이 없습니다. 교황의 칙령이 나름으로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루터 시대에 교황의 칙령에 따라 판매된 면죄부를 용납할 수는 없겠지요. 교황의 이름으로 갈릴레이 같은 과학자들에게 행한 종교재판과 마녀재판을 옹호할 수는 없겠지요.
저는 지금 로마가톨릭을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교회, 성직자, 전통이 성서말씀보다 더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되는 일들은 500년 전 루터 시대의 로마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 개신교회에도 여전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오늘 우리 개신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회의 습관과 전통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예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청중들의 종교적 감수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취급됩니다. 열린예배를 드리겠다는 취지로 한국교회 안에 하나의 트렌드가 된 <경배와 찬양> 유의 예배에서는 말씀이 실종되고 사람들의 감수성만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배는 전형적인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동시에 신자들의 종교적 갈망을 만족시키겠다는 것이니까요.
오늘 한국교회에 가장 뿌리 깊은 혼합주의는 물질 만능주의입니다. 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물질 만능주의는 오늘 전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일종의 유사종교입니다. 저는 정치와 경제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겠습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부(富)를 삶의 핵심으로 선전하니까 그러려니 해야겠지요. 문제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일전에 서울의 모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말하는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기도만 잘 하면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1억원 십일조 헌금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이라고 한다면 결국 기독교 신앙은 처세술이 되고 말겠지요. 이런 신앙은 분명히 혼합주의입니다. 기독교를 자본주의와 혼합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혼합주의 특징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상을 차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죽음 다음에 천당을 가고 싶으니까 예수를 믿습니다. 살아있을 때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으니까 자본주의를 끌어들입니다. 이런 혼합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교회일수록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왜냐하면 민중들은 바로 이렇게 자기의 종교적 취향과 세속적 욕망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혼합주의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당장은 구미가 당기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모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받은 충격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문제는 무엇이 혼합주의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개의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교회 지도자가 말하는 것만을 무조건 추종합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게 옳은가 하고 따라가기도 합니다. 요시야가 개혁을 추진하기 직전까지 많은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이 왜 문제인지 몰랐듯이, 조금 눈치 챘다고 하더라도 감히 거기서 뛰쳐나올 수 없었듯이 이런 역사는 오늘도 반복됩니다. 이런 혼합주의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한 가지입니다. 요시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거기서 심각한 위기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충격을 받지 못한 채 신앙생활에 매달린다면 우리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서 혼합적인 신앙생활에 안주하고 말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성경에 관한 열성은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교회 성장을 위한 도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교회부흥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할 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날 수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영적인 관심은 무뎌지고 대신 교회의 여러 행사에만 재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런데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신앙의 혼합주의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5백 년 전 루터는 솔라 스크립투라를 외쳤습니다. 2천 6백 년 전 요시아는 율법 양피지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혼합주의라는 유혹으로부터 건져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마음을 쏟는 것이야말로 종교개혁의 시작이며, 마무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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