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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5:16-3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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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5·02·04
창세기를 강해하는 설교자들이 대부분 본문을 건너뜁니다. 별로 중요한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36장에는 에서 자손의 족보가 지루하게 나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7장부터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설교자들이 37장으로 넘어갑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특별히 단기 선교팀을 파송하는 일을 앞에 두고 보니 본문을 생략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36장에 나오는 에서 자손의 족보와 선교라는 주제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말씀을 주십니다. 이렇게 창세기를 강해해온 지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주일 밤에는 고린도전서에 이어 고린도후서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출애굽기, 민수기, 룻기, 마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빌립보서, 야고보서, 히브리서 등을 꾸준히 강해해왔습니다. 특별히 인간적인 계산을 가지고 설교본문을 선정하지 않고 성경을 계속해서 강해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꼭 필요하고 적절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그것을 더욱 강하게 느낍니다. 건너뛰려고 했던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라헬의 죽음
라헬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처음 하란에 가서 라헬은 만난 후 야곱은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 7년이 수일 같이 지나갔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7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창29:20)
야곱에게는 아내가 4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는 라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라헬은 오랫동안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을 낳았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더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언니 레아는 아들을 여섯 명이나 낳았고 몸종들도 모두 아들을 둘씩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겨우 요셉이라는 아들 하나를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라헬이 마침내 다시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 때 라헬은 아들을 낳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우상을 도적질해온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것은 라헬이 우상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라반은 야곱이 도망친 후 자기의 드라빔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을 추격해온 라반은 왜 자기의 신을 훔쳐갔느냐고 야곱을 다그쳤습니다. 그 때 야곱은 자기 가족 중에서 누구든지 그것을 훔친 자가 있다면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창31:32상)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훔친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라헬이 아들을 낳다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이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라헬은 용모가 아름답고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인간적인 질투와 시기가 심했고 독점욕이 무척이나 강했습니다. 그녀가 남편을 독차지하고 아들을 낳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라헬이 아버지의 우상을 훔쳐온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라헬은 남편의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 곤고하고 갈등이 심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니와 몸종들이 다 아들을 낳을 때 라헬만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라헬을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둘째 아들을 낳다가 이렇게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라헬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내 힘과 욕심대로 살려고 하면 삶이 곤고해지고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성도의 사는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르우벤의 수치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로서 큰 기대 속에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말년에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르우벤이 뛰어나고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창49:3) 그러나 그에게는 인내심과 경건한 성품이 부족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르우벤의 결정적인 범죄와 실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22절) 그 결과 르우벤은 많은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도다”(창49:4)
야곱은 장자 르우벤의 죄악을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르우벤의 장자권과 그 축복은 유다와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지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대상5:1-2)
장자의 축복은 유다에게로 돌아갔고,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왕의 지파가 되었고, 요셉은 그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이스라엘의 지파가 되어 두 지파를 이루었습니다. 만일 르우벤이 그런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그 모든 축복이 그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고도 형통하고 복 받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범죄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되지만 순종하는 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자를 징벌하시지만 믿음으로 살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당신에게는 두려움이 되기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주를 극복하는 길
라헬의 죽음과 르우벤의 수치를 보면서 우리는 죄가 그들의 삶에 미친 치명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죄 때문에 불행해졌고, 죄 때문에 축복과 특권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사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자격이나 조건도 필요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여부에 따라 하나님 백성의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과 저주가 순종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28:1-6, 15-19)
그런데 라헬이나 르우벤처럼 한번 범죄하면 그것으로 모든 축복을 잃어버리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라헬이나 르우벤이 범죄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한 대로 다 갚으시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큰 축복을 잃어버린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범죄하면 다시는 그것을 회복할 길이 없을까요? 얼마든지 회복할 길이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한 적이 있으며,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고, 바울은 악독한 핍박자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큰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을 받을 수가 있었을까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의 저주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얼마든지 용서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복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우리는 성경에서 다윗과 베드로가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자주 범죄하고 넘어집니다. 우리 중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르우벤과 라헬의 경우를 보면 두려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다윗과 베드로의 경우는 늘 넘어지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남모르는 죄가 있습니까? 아직도 버리지 못한 죄가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당신의 삶이 곤고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 앞에 내어놓도록 하십시오. 철저하게 회개하되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없던 일로 해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아들들
23-27절에는 야곱의 12아들이 그 어머니들과 함께 나열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4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사실 이런 일부다체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적인 관습을 따른 것으로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레아에게서 르우벤과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여섯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라헬에게서는 요셉과 베냐민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의 여종 빌하에게서는 단과 납달리를, 레아의 여종 실바에게서는 갓과 아셀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12명의 아들을 낳았고, 이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온 가족을 이끌고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던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야곱이 아들들과 함께 이삭에게 돌아온 것은 노쇠한 족장 이삭에게 마지막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죽은 후 에서와 야곱은 함께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20여 년 전에 에서가 별렀던 야곱에게 복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에서의 자손들
36장에는 에서의 자손들이 길게 언급되어 있는데, 이 족보는 하나님께서 에서를 어떻게 축복하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족속이 되었습니다. 에서의 후손은 이처럼 크게 번성했는데, 반면에 앞에서 언급된 야곱의 자손들은 아직 미미했습니다. 이것은 가인의 자손이 셋의 자손보다 빨리 번성했으며, 이스마엘의 자손이 이삭의 자손보다 빨리 번성한 것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세상 백성이 하나님 백성보다 빨리 번성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세상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때로는 하나님 백성을 대적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처럼 하나님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족속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은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 백성들로 하여금 세상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19:5-6) 그러므로 세상 백성들은 하나님 백성들의 대적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대상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처음부터 우리에게 세계선교의 비전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오면 훨씬 분명해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창세기 36장의 족보를 보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듭니다. 성경에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족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온 세계에 퍼져 살고 있는 족속들은 성경에 언급된 것보다 훨씬 많고 복잡합니다. 지금 세계에는 63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그 중 신구교가 약 20억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종족 중에서 미전도 종족만도 8천여 종족이 있다고 합니다. 43억의 인구와 그 중에서도 8천여 미전도 종족들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비전을 가슴에 품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이 사명을 평생토록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단기 선교팀을 파송하는 것도 이 사명의 일환입니다. 이번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과 비전을 깨달아서 세계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명이 아니라면 벌써 천국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연의 사명은 소홀히 하고 세상에 빠져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목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이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며, 성도 개개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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