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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와 예외자

역대상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160 추천 수 0 2010.03.21 23:30:28
.........
성경본문 : 대상15:25-29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 

20021208

 

아마존, 「뉴욕타임스」 자기계발 분야 5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이 있습니다.l '자아'라는 책입니다. 필립 맥그로라는 사람이 지은 책입니다. 의사였지만 그만 두고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해서 인생 전략가이자 법심리학자, 철학 박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가 행복하지도, 성공하지도, 단 한 번의 삶의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는 이유는 참된 자아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책에서 그는 인간의 자아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아이들 실험으로 예를 들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을 실험 대상으로 파랑새 반과 노랑새 반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파랑새 반 아이들에게 이번 학년은 도전해볼 만한 것으로 그들의 재능을 십분 활용하기만 하면 진도는 더 빨리 나아갈 것이라는 말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노랑새 반 이이들에게는 주어진 과제물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4개월 동안만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노랑새 집단 아이들은 힘들게 견뎌나갔으며, 어려움으로 인해 심각한 낭패감과 자기 비하의 모습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10년 뒤 연구자들이 이 아이들을 다시 관찰해보니 노랑새 집단의 아이들은 파랑새 집단 아이들에 비해 여전히 시험 성적이 매우 낮았고, 운동과 음악 같은 활동에서도 성취도가 떨어졌으며, 위법 행위도 더 많았고 지능 검사에서도 현저하게 낮은 점수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아상을 어떻게 갖는냐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신의 자아 상을 갖는데 영향을 준 사람은 대부분 5명 이내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다시 자아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실험 결과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을 자원한 학생들에게 물체가 거꾸로 보이는 안경을 쓰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책상에 부딪히기도 하고, 강의실을 옮겨 다니는 중에 모퉁이를 향해 걸어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그들의 뇌가 이러한 왜곡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주일이 거의 다 지났을 무렵 학생들은 거의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그 안경이 생활에 어떤 지장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실험처럼 우리가 실체를 완전하게 왜곡시키는 그런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지각하는 것에 빨리 적응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아개념이 왜곡된 생각에 토대를 두고도 세상을 완전히 거꾸로 보며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도 우리가 어떤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세상을 검게도 노랗게도 빨갛게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우리는 잘못된 자아관이 얼마나 인생에 커다란 피해를 주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70년 만에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광경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법궤를 다시 예루살렘에 모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말하면 국무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그는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모든 장수로 더불어 이 일을 의논하였습니다(대상 13:1). 국민 투표에 붙였습니다. 온 회중과도 합의했습니다(대상 13:2-4).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뺀 3만 명의 정예를 모았습니다(삼하 6:1). 전국의 유명한 악사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거국적이고 거족적인 행사였습니다. 새 왕의 등극과 함께 전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법궤) 중심으로 뭉쳐지는 대동단결의 장면입니다. 전 이스라엘의 중심이 그 법궤 앞으로 집결되었습니다. 다윗이 법궤가 들어 올 때 춤을 추었습니다. 70년 만에 들어온 법궤이니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단강을 가를 때,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맨 앞에 나아갔던 능력의 법궤입니다. 다윗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온 백성이 이일로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한 사람만 예외가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다윗의 아내 미갈이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입니다. 왜곡된 자아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기쁜날 다윗을 비난하다가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고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가나안 땅을 행해 가는데 아이성에서 죽어버린 아간과 그의 가족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예루살렘에서 성령 충만을 받아 행복한 삶을 사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처럼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축복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수혜자가 되고 예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1. 방관자가 되지 말고 참여자가 됩시다.
1)본문
(1)미갈은 방관자가 되었습니다(29).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온 백성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70년 만에 들어오는 법궤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행사입니까? 미갈은 다윗의 아내입니다. 대통령 부인입니다. 왕이 참여하는데 이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미갈은 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미갈은 창으로 내다 보고 있습니다.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참여하는 것과 구경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2)다윗은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참여를 합니다. 당시 왕입니다.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가 직접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소극적 참여자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참여합니다. 다윗이 직접 오벳에돔의 집에 갑니다(25). 왕이 가지 않고 명령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다윗이 베 에봇 옷을 입고 참여합니다(27). 예배를 드립니다(26). 왕이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춤을 추며 뛰어 놀았다고 했습니다(29).
2) 우리는 방관자가 될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방관자와 참여자는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무엇을 하든지 방관자, 구경꾼이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데도 구경꾼으로 남으로 법궤에 참여하는 자들이 받는 그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회복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합니다. 예배를 구경하고 기도 구경하고, 봉사 구경하고, 전도구경하면 구경꾼 신자로 전락될 뿐입니다. 운동경기나 영화는 구경꾼이 필요하지만 교회는 구경꾼이 필요한 곳이 아닙니다. 교인은 모두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주인입니다. 예배 구경자가 아닙니다. 내가 예배 드리는 자입니다. 봉사 구경자가 아닙니다. 내가 봉사자입니다. 그 일에 참여하여 누리는 놀라운 은혜의 혜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단강이 막혀 있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법궤가 앞에 갑니다. 그곳에 백성들이 참여합니다. 요단강이 갈라지는 현장에 서게 됩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의 법궤가 앞에 갑니다. 귀 뒤를 백성들이 따라갑니다. 참여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체험을 하게됩니다. 참여하기는 참여하되 즐겁게 참여하여야 합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일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벧에돔의 집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데 즐거움으로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즐거움으로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여자가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참여자에게 어떤 일이든 즐거움이 있습니다. 성가대를 봉사할 때도 억지로 하면 안됩니다. 즐겁게 봉사해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돕습니다. 26절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예배에 참여할 때도 즐거움으로 사업을 할 때도 즐거움으로 봉사할 때도 즐거움으로 참여하여 전도를 할 때도 즐거움으로 공부할 때도 즐거움으로 참여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의 복을 받는 인생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비판자가 되지 말고 함께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1) 본문:
(1) 미갈은 비판자가 되었습니다.(29)
다윗의 뛰어 노는 것을 보고 심중에 업신여겼습니다. 그는 참여하지 않고 구경하다가 남편이 하는 모습을 보고 비판합니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것입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다윗이 자기 식구들에게 복을 빌어 주려고 돌아 오자 사울의 딸 미갈이 나가 다윗을 맞으며 말하였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 체통이 참 볼만하더군요. 건달처럼 신하들의 여편네들보는 앞에서 몸을 온통 드러내시다니." (삼하 6:20)"
왕이 되어 베옷 즉 평민의 복장을 하다니 체면이 무엇이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체신 머리 없게 왕이 춤을 추다니 비판했습니다. 왕을 생각해서 한 것은 아닙니다. 자기 자존심입니다. 자기 체면입니다. 비갈의 비난은 단순히 다윗을 비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비난한 것입니다. 방관자, 구경꾼이 가질 수 있는 시각입니다. 구경 꾼은 비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다윗은 격려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자는 다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들어오니까 어떻게 합니까? 좋아 기뻐 춤을 춥니다(29).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26). 사무엘하 6장 17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주도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법궤를 메고 온 사람만 아니라 모든 백성을 축복합니다(18). 그리고 백성에게 떡을 나누어 줍니다(19). 자기 가족도 축복합니다(20). 이것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백성들도 다 함께 협력하는 협력자가 됩니다.(본문 27-28)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하나로 함께 힘을 모아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협력할 때 하나님이 또한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하나 같이 협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비판자가 되지 말고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세워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도와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칭찬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어느 여전도회 회장님이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교회에 커틴을 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커틴의 색깔에 대하여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하며 당장 거두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어 그 집사님이 교회에 나오는 한 나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매사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섬기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차를 닦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이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남편은 "당신 왠 일이이냐? 오늘 해가 동쪽에서 뜨겠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편에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장미 꽃 한 송이를 사 가지고 저녁에 들어갔는데 이것을 받고 아내가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느냐?" 고 말한다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아이가 모처럼 100점을 받아 왔습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자 마자 "누구 컨닝했냐?"라고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며 칭찬부터 합니까? 비난부터 먼저 하십니까?
우리는 비난자가 되기 전에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가들은 남의 약점을 드러내기 좋아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결함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남을 가장 많이 비판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한 일을 업신여기고, 경멸하고 조롱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풍자하여 비웃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조롱하고 비웃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네가 만약에 소자 한 사람을 실족케 하면 네 목에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낳다" 고 도 하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칭찬하면서 서로를 세워 주며 살아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이나 약점은 사랑으로 덮어주고, 절대로 조롱하거나 비웃지는 말아야 합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욥은 남편을 비난했습니다. 욥의 아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옥합을 깨트려 향유를 붓은 마리아를 보며주님께 '왜 허비하는가?'라고 비난하는 가롯유다가 되지 맙시다. 미갈이 비난한다고 법궤가 예루살렘에 오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에 맞지 않아 비난한다고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비난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소리지르지 않으면 돌들이라도 소리지르게 하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학창시절을 보면 그는 결코 천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담임 선생님은 "이 학생은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든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낙담해하는 아들을 오히려 달래며 "아들아, 너는 다른 아이와 다르단다. 네가 다른 아이와 같다면 너는 결코 천재가 될 수 없어"라고 격려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칭찬과 격려로 아쉬타인은 변하였다고 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학교에서는 우등생이었습니다. 같은 학생인데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꾸중과 비판과 질책이 있었고,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인정과 신뢰와 칭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신뢰와 칭찬과 격려는 에디슨을 세계적인 발명왕으로 만들었습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박한상군 한약상 부부 살해 아들 13년 동안 부모 칭찬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비난자가 아니라 격려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주변을 보는 자가 아니라 본질을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본문
1)미갈은 주변을 보았습니다.
부수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춤추는 행동, 옷이 내려갈 정도로 춤추는 그 행동만 보았습니다. 왜 다윗이 춤을 추는지 왜 그렇게 기뻐하는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면 사람은 실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시다는 자세로 법궤를 맞으며 춤을 추었습니다(14). 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습니다(13-15). 그는 사람의 체면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14,16).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진솔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1). 그런데 미갈은 이 다윗의 심중을 알지 못했습니다. 본질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중심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겉만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실 미갈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까? 사울 가는 망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여전히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모르고 다윗의 험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비난받아야 할 남편이 아니라 평생동안 사랑해야할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남편이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비난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자신의 자존심으로 가리어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2)다윗은 본질을 보았습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법궤가 들어 옴으로 말미아아 누릴 축복의 미래를 본 것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법궤입니다. 인기가 아닙니다.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는 본문의 구절 마다 나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언약궤입니다. 여기에 초점이 있습니다. 초점이 흐려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분명하게 본질을 본 것입니다. 자신은 목동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세워 주었다는 것을 그는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은 그렇게 체면을 차릴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2)우리는 주변을 보는 자가 아니라 본질을 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변만 보면 주변 인물로 끝나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중심 본질을 보아야 중심인물로 남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주변만 보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가 얼마나 크냐? 교회가 지어졌느냐? 그것이 문제가 압니다. 그 교회에 하나님 살아계셔서 역사하느냐?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통치가 있느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느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냐? 복음의 멧세지가 있느냐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느냐? 성례가 바르게 집행되느냐?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지고 있느냐 이런 것이 본질 것인 것입니다. 병원가서 의사를 보지 않고 경비원의 불친절만 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본질에 초점을 맞출 때 핵심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저희 막내 아들이 시험 문제 푸는 것을 보면 지문은 읽지 않고 문제만 보는 것을 봅니다. 문제만 백날 보아야 답은 틀린 것입니다. 제가 독서 교실을 할 때 아이들에게 문장을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주어와 동사를 늘 보라고 합니다. 형용사 부사 이런 것은 단지 수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형용사를 백날 보고 있어도 그 문장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본질을 보지안고 주변만 자꾸 보면 추측하고 억측하게 되어 있습니다. 장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Discipline of Market leader"라는 책에서 Michael Treacy ,Fred Wiersema " 목표 고객을 정하라! 핵심 영역에 집중하라! 시장을 지배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가장 소중한 것](What Matters Most)을 쓴 하이럼 W. 스미스 (Hyrum W. Smith) 교수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네 가지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소중한 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소중한 것을 발견했으면 소중한 것을 집중적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하여 그것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에 집중하여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인물로 사시며 다윗같은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항상 우리는 참여자와 예외자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참여자로 살겠습니까? 예외자로 살겠습니까? 에스겔처럼 참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에스겔과 유다 장로들이 같은 방에 앉아 있었는데 여호와의 권능을 받은 사람은 에스겔 뿐이었습니다. 유다 장로들은 에스겔이 여호와의 권능을 받는 것을 구경하는 들러리에 불과했습니다(겔 8 : 1).
빌립보 강가의 루디아처럼 참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루디아만 은혜을 받은 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구경꾼에 불과했습니다(행 16 : 11-14).
다락방 120명과 고넬료 집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는 참여자가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행2:1-; 행 10:44-48) 우리는 방관자가 되지 말고 참여자가 이 은혜를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비판자가 되지 말고 함께 격려자가 되어 이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변을 보는 자가 아니라 본질을 보는 자가 되어 이 축복의 수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참여자와 예외자/역대상15:25-29/김필곤 목사(열린교회)/200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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