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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혜로 누립니다.

누가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735 추천 수 0 2010.03.21 23:30:28
.........
성경본문 : 눅15:25-3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 

2003.1.26

 

한 구두쇠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돈도 많고 집도 여러 채 있는데 궁색을 떨면서 살았답니다. 어느날 노부부가 식당에 갔는데 밥 한 그릇과 그릇 두 개를 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밥 한그릇을 둘로 나누더니 할아버지가 밥 먹는 것만 열심히 구경만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주인이 할머니 "왜 식사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할머니가 말하기를 "할아버지가 다 먹으면 틀니 빌려서 먹으려구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지독한 구두쇠인지라 이 할아버지가 하도 잘 못 먹어 몸이 시름시름 아팠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니 의사가 소변 검사를 하자고 오줌을 받아 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것입니다. 몇 시간 지났는데 이 할아버지가 큰 병에 오줌을 받아 오더라는 것입니다. 당황한 의사가 "이렇게 많이 필요 없습니다." 라고 말하자 할아버지가 "그래도 적은 것보다 낫죠"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며칠 후 병원에 찾아간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집에 왔다고 합니다. 너무 기뻐 가족들을 다 모아놓고 감격에 겨운 목소리고 크게 외쳤다고 합니다. "기뻐해라. 얘들아 ! 너희들 모두 건강하단다." 이 할아버지가 얼마나 구두쇠인지 한 번도 부부가 제주도에 구경을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결혼 50주년을 맞이하여 할머니와 제주도 구경을 가려고 갔는데 배를 타기 위해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에게 "임자, 비행기를 타봅시다." "비행기라뇨? 그게 얼만지나 알아요? 10만원이에요. 10만원은 10만원이라구요!" "이제 우리도 많이 늙었고, 한 번 타보자고 " "안돼요! 그래도 10만원은 10만원이에요!" 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를 옆에 듣고 있던 마음씨 고운 경비행기 조종사가 "제가 공짜로 비행기를 태워드릴께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비행기를 타시는 동안에 한마디도 안하시면 돈을 안받겠어요. 하지만 한마디라도 하시면 10만원씩을 내셔야 됩니다." 비행사는 이 노부부가 소리치게 하기 위해 엄청난 곡예 비행을 하며 제주도에 갔다고 합니다. 조종사가 웃으면서 "제가 온갖 묘기를 다 부리면서 놀래키게 하려고 했는데 안되는군요. 대단하십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아까 할망구가 밖으로 떨어질 때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10만원은 10만원이니까!" 많은 것 쌓아 놓고 이렇게 살다가 가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는 누릴 것 누려야 합니다. 누리는 삶도 복입니다. 무엇을 누려야 하겠습니까?

1. 먼저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누려야 합니다.
누린다고 해서 많은 것이 있어서만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 것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누림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은혜입니다. 아버지가 부자인 것을 누리는 것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아무런 대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그런데 오늘 비유에서 나오는 큰 아들은 아버지 밑에 살면서 아버지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양식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품꾼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자입니다(17).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31). 그런데도 그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분노합니다. 방탕한 동생이 돌아와 아버지가 잔치를 하니까 분노하며 그 잔치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불평하기를 나는 열심히 종처럼 일했는데 염소새끼 한 마리 잡아 잔치해 주지 않았는데 창기와 놀아난 아들이 돌아오니 소를 잡아 잔치해 준다고 원망합니다. 그는 얼마든지 잔치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아버지의 재산을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미 그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미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입니다. 유대 풍습에 따르면 동생이 1/3을 가졌다면 자신은 2/3를 가졌을 것입니다. 한 번도 아버지에게 잔치해 줄 것을 요청도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 한 번도 잔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잘 못 알 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집나간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용서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쁨의 잔치에 동네 사람도 와서 즐거움을 누리는데 큰 아들은 아들로서 이 잔치를 스스로 누리지 않습니다. 다 주었는데도 누리지 못하는 아들입니다. 스스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누리지 못하고 종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29절의 섬겼다(루류오)는 말은 종살이 했다는 말입니다.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문밖에 배외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무한한 사랑 끝없는 용서를 누려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없다고 환경이 부족하다고 끝없이 불평과 원망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끝없는 용서와 기쁨과 평강과 사랑을 누려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가장 풍성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사람입니다. 어려울 때 불평만 하지말고 이 아버지께 부르짖으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1875년 미국에서 7남 2녀 중 6남으로 태어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무디(D.L.MOODY)입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석공으로 일을 했는데 일찍 돌아가시고 학교 공부를 여섯 달밖에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는 영적 아버지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10살 때 출판사의 직공으로, 16살 때에는 친척이 운영하는 구두 깁는 공장의 직공으로 취직을 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계를 다 안을 수 없지만 예수님을 모시니 세계를 다 안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상을 소유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모시면 참 부요한 자가 된 것입니다. 교회 학교 교사가 너무 하고 싶었지만 시켜 주지 않습니다. 교회에 사정을 합니다. 아이들을 자신이 데려다가 교회 신발장 앞에서 가르칠 테니까 허락만 해달라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00명의 교사들이 가르치는 아이들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가 미국을 변화시킵니다. 미국에 청교도 정신으로 다시 한 번 정신 혁명을 일으킵니다. 일년에 200만 명을 전도할 만큼 세계적인 부흥사로 일어서게 됩니다. 누가 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이 하십니다. 어떤 경우든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누려야 합니다.

2. 은혜로 우리는 이웃이 우리의 형제 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의 형제로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을 아내를 시어머니를 며느리를 자식을 목회자를 교인을 집사님을 장로님을 사랑의 형제로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경쟁의 대상도 자존심과 수치의 대상도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형제됨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큰 아들은 자신의 동생을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한 번도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동생을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종도 당신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27). 아버지는 이 내 아들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 잃었다가 찾은 아들이라고 기뻐합니다(24) 그런데 30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나에게 손해를 주는 사람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사람,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결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32절을 보십시오. 함께 즐거워할 대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타락했고 아무리 부족하고 아무리 볼품없고 아무리 가정에 망신을 시키는 아들이지만 그 아들 사랑해야 할 사람이고 함께 관계를 누려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큰 아들은 29절에 아버지의 명을 어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랑의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율법 가운데 가장 큰 계명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을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준이 아닙니다 자신의 윤리적인 기준으로 동생을 판단하고 속상해 합니다. 자신의 신앙적 기준, 자신의 믿음으로 기준으로 남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먼저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을 마태복음 23장 13절에서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언제가 어느 집사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분을 이야기 하면서 왜 우리 교회에 저런 분이 나와야 합니까? 그 분 때문에 교회에 나오기 싫다고 하면서 교회를 떠난 분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다 우리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순간 우리도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병자도, 간음자도 폭행자 죽어가는 자 될 수 있습니다.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로 형제를 사랑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필립 얀시가 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처 앞 부분에 자신이 들은 한 친구 실화를 적고 있습니다. [창녀 하나가 나를 찾아왔네. 울먹이며 하는 이야기가 두 살 된 자기 딸을 변태섹스를 밝히는 남자들한테 돈을 받고 팔아왔다는 거야. 딸의 몸을 한 시간만 팔면 자기가 하룻밤 버는 것보다 수입이 좋다나. 마약 먹을 돈을 대려면 어쩔 수 없다더군. 교회에 가서 도움받아 볼 생각은 안 해 봤냐고 겨우 물어 봤지. 그 얼굴을 훑고 지나던 완전 충격의 표정, 평생 못 잊을 걸세. "교회요! 거긴 뭐하러 가요? 그러잖아도 비참해 죽겠는데 가면 그 사람들 때문에 더 비참해질 거예요." ]
교회가 은혜를 일어 버리면 안됩니다. 우리가 은혜를 잃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교회만이 은혜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도 흰두교도 유교도 은혜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 마지막 최고의 단어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물 한 방울 속에 해의 모습이 숨어 있듯이 복음의 진수가 은혜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말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세상도 교회 못지 않거나 교회보다 낫다. 그러나 세상이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세상은 은혜를 베풀 수 없다." 우리는 은혜로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상대의 조건을 보고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웃을 형제로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은혜로 서로 형제됨을 누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승재씨가 쓴 "소설 우리 예수님" 중에 "제일 교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입니다. 아주 잘지어졌습니다. 문화시설이 있습니다. 헌 누더기를 걸치고 왼팔이 없는 누더기 옷을 입은 거지가 봇짐을 걸머진채 교회들어옵니다. 안내를 보던 남집사 떠밀어 냅니다. "나 예배보러 왔소" "이런 꼴로 예배보면 안된다." 송집사는 백원짜리 하나쥐어 주고 보낼려고 합니다. 이 때 부목사가 "어디서 왔소" "예배보는데 어디서 온게 무슨 상관이요, 나 집이 없는 줄 뻔히 알지 않소." "누구소개로 왔소" "거리에서 예수믿으라라는 말 듣고 왔소" 들여 보냈습니다. 송집사 헌금 훔치러 왔으니 보내자고 합니다. 그 주변에는 아무도 앉지 않습니다. 부목사가 나가면서 인사합니다. "와 주셔셔 감사합니다." "정말이요. 그럼 다음 일요일에 많은 친구들을 데려 오겠소." 다음 주 헌금 시간 헌금바구니를 그 앞에 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헌금할 수없소." 당회 구제비 주고 못오게 하였습니다. 어느날 한 거지아이 "우리 아저씨가 목사님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다리 밑 가마니로 가리고 사는 천막에 희끄무레 죽은 시체 같은 몸이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듯 소리없이 한 쪽 손을 들려고 하였습니다. 손에는 꼬기꼬기 꾸겨진 100원 지폐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가를 말하려다가 끝내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웠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이 거지일 수 있습니다. 내가 가장 미워하는 친구가 이 거지일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일가 친척이 이 거지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한 자, 세상의 실패자들이 모두 우리의 형제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다말, 라합, 밧세바, 사마리아 여인 이런 사람을 받아들입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와 동침한 여인입니다. 라합은 기생이고 창녀입니다. 밧세바는 남편 몰래 왕과 잠자리를 한 여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 갈아치웠습니다. 이런 사람들 우리 하나님이 다 모 쓰셨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품고 인정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리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상식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주님 안에서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마땅합니다(32).

3. 은혜로 우리는 주어진 것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세상이 어렵고 힘든 것은 없어서가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 있는 것 보지 못하고 자꾸 남의 것만 보기 때문입니다. 큰아들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거지로 온 동생 소 한 마리 잡아 잔치한다고 그렇게 역정을 내고 있습니다. 자기 받은 유산 다시 나누어 준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내 것 조금만 나누어 주어도 서운한게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것 초월해야 합니다. 은혜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나에게 있는 것 생각해 보면 다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받은 자격 없는 나에게 무조건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입니다. 은혜는 자격을 따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내 힘으로 얻어낸 것이 아닙니다. 벤자민 워필드 "은총이란 자격이 없는 자에게 공짜로 내려지는 하나님의 호의다"라고 했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은혜받는 사람이 사랑 받을 만한 어떤 일을 했는지 묻지 않습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상대방의 반응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작용합니다. 은혜란 일방적인 것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고 받을 만한 일도 한 일이 없고 되갚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로 사는 것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 대가를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은혜는 갚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고 은혜로 매일 밟고 다니는 땅 내가 만든 것 아닙니다. 등산 하는 산, 마시는 물, 산소 내가 만든 것 아닙니다. 함께 누리니까 얼마나 풍요롭고 좋습니까? 좋은 것은 나누면 배가 되고 힘든 것은 나누면 반이 됩니다. 한 사람이 다 가지려고 하면 서로 비교하게 되고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그러면 정작 누리지를 못하고 모으는데 일생을 다 보내어 버립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큰 아들이 왜 누림의 기쁨을 회보하지 못하고 누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분노할까요? 말은 아버지가 부당하게 대한다고 말하며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29). 왜 허랑방탕한 동생은 소를 잡아 주고 성실한 나는 염소 새끼도 안 잡아 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욕심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31절에 내게 있는 것 다 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생에게 나누어주기 싫은 것입니다. 동생이 돌아온 것이 자신에게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나친 이기심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해지고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중요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더 많은 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안전해진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버는 기쁨, 모으는 기쁨도 크지만 나누는 기쁨 잘 쓰는 기쁨은 더욱 큰 것입니다. 은혜로 우리는 나에게 주어지 건강을 나에게 주어진 지식을 나에게 주어진 명예를 나에게 주어진 권력을 나에게 주어진 믿음을 나에게 주어진 사랑을 나라에게 주어진 물질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온도계(Thermometer)처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온도 조절장치(Thermostat)와 같은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외부의 것에 의해 내려갔다 올라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방안 온도를 따뜻하게 맞추는 사람입니다.
앞에 이야기 한 그 지독한 구두쇠 할아버지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제주도 가다 할머니 잃고 그 충격으로 이곳 저곳 몸이 아팠답니다. 몸 한곳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고, 곧 죽을 것 같아 큰 맘 먹고 병원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답니다. 얼마나 택시비가 아깝겠습니까? 그런데 대절한 택시가 막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로 가는데 갑자기 부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고 막 내려가자 구두쇠 할아버지가 기사에게 소리쳤답니다. "멈춰요.... 멈춰!" "어쩔 수가 없어요. 사고예요." "그렇다면 최소한 택시 미터기라도 멈추시오!"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겨우 택시가 멈추고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났는데 “영감님,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의사가 이렇게 묻자 영감님은 눈빛이 갑자기 살아나더니 되물었답니다.“진찰비 안 받으면 가르쳐주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혼자만 너무 누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누리는 것 중에서 가장 귀한 누림은 같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같이 누릴 사람이 있으므로 우리 열심히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6)"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4)"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누리십시오. 이웃을 형제로서 누리십시오. 주어진 것을 함께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은혜로 누립니다./누가복음15:25-32/ 2003.1.26/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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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4 빌립보서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세 가지 신앙 원칙 빌1:20  이정수 목사  2010-03-20 2392
3133 시편 삶 자체를 여호와께 맡기고 살자 ! 시37:5-6  이정수 목사  2010-03-2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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