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살전1:1-10 |
---|---|
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사람들이 다 첫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도 첫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땅의 첫 소산물을 내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3 : 9에 보면 첫 예물을 내게 바치면 그 창고가 가득 차고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첫 것 그리고 첫아들, 첫딸 이 첫 것에 대단한 관심을 가집니다. 둘째나 셋째 아이 낳을 때나 기를 때는 첫아이 낳는 정성이나, 첫아이 기르는 정성에 훨씬 못미치는 수가 저뿐만 아니고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경험들이 많이 있을 겁니다.
목장하는 이의 얘기를 들어보면 짐승이 새끼를 낳을 때 혹은 두 마리 세 마리 혹은 여러 마리 낳을 때, 맨 첫 번째 젖을 누가 먼저 빨아먹느냐에 따라서 그 새끼가 그렇게 건강해진다는 겁니다. 일평생 면역이 될 수 있는 항체가 찐득찐득한 그 첫 젖 속에 몽땅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 사람들도 우유보다도 모유가 좋다 해서 모유로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자 어려움을 무릎 쓰고 애들을 쓰는 모습을 봅니다.
역대상 31 : 5에 보면 모든 소산의 첫 것을 풍성히 드렸는데 31 : 10에 보면은 "여호와의 전에 첫 예물을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그랬어요.
첫 것, 첫 자식, 첫 소산, 첫 시간, 첫 예물, 첫 태생 이 첫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93년도 첫 주일 오늘 예배가 아주 중요합니다. 복된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선 송구영신 자정 촛불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정성껏 예물을 드리고 오늘밤부터 신년 축복성회가 이루어집니다.
또 어떤 이들은 1월 1일 첫날이라고 만사 제폐 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해서 기도원으로 가는 이들, 혹은 금식하며 1년을 계획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이는 매월 첫날을 정해 놓고 금식을 하며 철야 기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안식 후 첫날을 성일이라 주의 날이 옳습니다. 또 성경에 보면 매월 첫날은 성일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추도요 첫 번째 딴 고추가 맛이 있어요. 맛있다고 그러니까 밥맛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고추는 매워야 제 맛이지요. 향기가 있으면서 매운 맛이 있고요. 그리고 모양이 좋고 가루도 많이 나오고. 두 번째, 세 번째 따는 고추는 별로 에요.
우리가 이 첫 시간을 하나님께 오늘 드리고자 나왔어요. 하나님의 축복이 금년 첫 주일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의 마음과 우리 가정 위에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정 기도회 때도 결심을 했지만 오늘도 결심하는 마음으로 이 해를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해서 우리가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고 나름대로 결심을 하세요.
내가 금년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부요 해지는 새해가 되어야지. 적어도 나는 믿음의 부자가 되어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잘 믿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잘 믿읍시다'가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됩니다.
`믿음의 부자가 되자.'
우리가 아침 일찍이 세상사람들 만나기 전에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지 해서 새벽제단에 나오시는 습관도 참 좋습니다. 또 세상 신문이나 책읽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지 해서 새벽기도회 나와 가지고 성경을 읽습니다.
작년 5월 달 우리 교회 부흥회 때부터 새벽기도회 때면 하루 새벽에 시편 같은 데는 10장씩 다른 성경은 5장씩 계속 읽어 왔어요. 오늘 아침에는 예배소서를 읽었어요. 뭐, 곧 있으면 이제 신약 다 마치고 또 창세기부터 시작을 하면 금년 아마 더 빨리 마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아마 저도 그런 경험을 가지니 여러분들도 그럴 겁니다. 이 새벽기도회 때 성경을 읽어가면서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졌지만 읽을수록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읽을 때 성령이 역사 하시고 그 말씀을 가지고 묵상할 때에 설교의 제목이 나오고, 아! 이 말씀은 어느 가정에 가서 축복해 드리면 참 좋은 말씀이 되겠다. 그 명상의 구절이 전에는 그냥 지나가던 말씀도 새벽기도회 때는 읽어가면서 느낌이 옵니다.
우리가 눈으로 읽는 눈독도 좋지마는 입으로 소리내어 함께 읽는 입 독도 참 좋습니다. 한번 여러분 작정해 보십시오. 그래서 오늘 주보 속에 3가지를 넣어드렸어요. 십일조 헌금봉투와 선교 헌금봉투와 성경 읽기 카드를 넣어드렸어요. 자정 기도회 때 못 받으신 분들은 이제 나가실 때 또 받으세요.
해서 그 성경 읽기 카드대로 하면 1년이면 신구약성경 66권을 다 읽도록 짜 놓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회 때 나오셔서 성경을 읽으시고 또 여기 주보 뒷면에 있는 이 「가정 성경공부」이것도 하시면서 성경을 읽게 되고요.
또 매일 가정예배 드릴 때에 성경을 읽고 이렇게 되면 여러분 1년에 적어도 세 차례, 세 번은 읽게 됩니다. 그러면 막 힘이 생깁니다.
새끼가 어미의 첫 젖을 먹고 항체가 생겨 면역성이 있는 것과도 마찬가집니다. 마귀가 제일 무서워 떠는 게 무슨 입신이고 방언보다는 이 말씀으로 무장한 성도들을 그렇게 무서워 할 수가 없어요.
작년 1년간 여러 성도들의 신앙 경력을 전부 뽑아서 보았습니다. 성수 주일 한 횟수, 십일조 한 내용, 혹은 이번에 백일 작정 기도했던 것 또 전도한 내용, 성경공부하고 혹은 건축 헌금한 내용들, 전부 제가 보면서 한가지 결론 내리는 것은 하나님께 정성껏 바치고 드리고 충성하는 자는 믿음이 살아 그 성장이 있는 모습을 봅니다.
힘이 있어요. 그러나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출석만 하고 다른 어떤 관계에 일을 하지 않는 분은 기대 이하로 자꾸 쳐지거나 남 뒤 따라 가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지금 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도 바울이 실루아노와 함께 처음은 걱정을 했는데 이 본문을 보니까 칭찬을 하는 내용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거기 헬라파 교인들이 귀부인들과 함께 뜨겁게 예수를 잘 믿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유대인들이 와 가지고 우리 성내 사람들을 교란시킨다 해 가지고 핍박을 해 견딜 수 없어서 그냥 도망간 겁니다.
그래서 뵈레아와 빌립보를 지나서 고린도에 가 머물면서,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가?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지 않은가? 그저 초조하고 안타까워서 믿음의 후계자 디모데를 보내본 겁니다.
그런데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녀와서는 막 기쁨이 충만합니다. 선생님, 예수를 이렇게 잘 믿습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여차여차 저차저차 보고하는 내용을 들어보니까 뜨겁게 예수를 잘 믿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본문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두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그저 입이 벌어져 할 말이 없다 너무 기쁘고 좋다 하면서 이 3절에 보니까, 세 가지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이 세 가지를 잘하는데 살로니가 교회가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세 가지를 잘 함으로 믿는 중에 더욱 잘 믿는 우리 상원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어느 여자의 외아들이 절뚝발이 불구자였습니다. 그 동네 이웃 사람들이 측은히 여겨서 성금을 모아 좀 고쳐보자 해서 어느 의사를 찾아가 자초지정 얘기를 했더니, 의사가 감동을 받고 무료로 고쳐주었습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 엄마는 의사에게 정성껏 감사하는 인사를 하고 그리고 그 아이에게 걷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아들은 마침내 다른 아이들같이 걷기도 뛸 수도 있도록 물리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중년이 된 그 여자가 우연히 의사를 어느 곳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의사가 첫 번째 묻는 질문이 이 아들이 어떻게 됐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 부인 그 때 그 아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여자는 머뭇머뭇하면서 얼른 대답을 못하다가 나중에 대답을 합니다.
"지금 그 아들은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인자로 형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면서 "박사님, 그때 우리들은 그 아들에게 걷는 법만 가르치려고 애를 썼지요. 걸어가야 할 방향을 가르치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걷는 법이 문제가 아니고 방향이 문제입니다. 돈 버는 것만 문제가 아니고,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입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학교 1등 수석으로 들어간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 아이 장래가 어떻게 나아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길이 올바르게 트여야 됩니다. 서울을 가겠다는 사람이 고속도로를 달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울을 가려면 부산에서, 광주에서 서울 쪽으로 기수를 돌려야지요. 남쪽으로 기수를 돌리면 아무리 좋은 차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해도 서울을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오늘 정초 첫 주 예배에 참석한 우리들, 방향을 바로잡고 주님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기 믿음의 역사가 그랬습니다. 강조된 말은 믿음이 아니라 역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으로 표현되느냐, 유창하게 기도한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막힘 없이 외운다고 해서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주여! 나는 그 사람하고 사이좋게 지내게 해주시옵소서 해서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실천을 해야 돼요.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에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생활 속에 역사가 없으면, 즉 나타난 증거가 없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했어요(약 2 : 26).
가령 우리 몸에 감기가 들었다 치십시다. 그러면 증거가 나타나지요, 콧물이 줄줄 흐르고 기침을 하고 열이 오르고, 이게 감기 들린 증상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파 가지고 의사에게 가면 의사는 청진기를 대고 맥을 짚어보고 사진을 찍어보고 하지만 맨 먼저 묻는 게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디가 아파 오셨습니까? 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픈 증세를 말하지요.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코가 실룩실룩하고, 이상하게 소화가 안되고, 여기를 찌르면 이쪽이 욱신욱신하고, 이 욱신욱신 실룩실룩하는 말은 의사가 잘 이해 못하는 말인데도 그저 그렇게라도 표현을 해요. 그러면 감을 잡지요. 아하 그렇게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보아서 이건 내과 소관이다 외과 소관이다 판단을 하게 되는 거지요.
여러분,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표현이 없으면, 증거가 없으면, 열매가 없으면 그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믿음은 분명히 역사가 있습니다. 내 속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이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역사로 말미암습니다.
전도합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나에게 구속의 은총을 주셨으니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서 전도합니다. 찬양합니다. 기도합니다. 헌금합니다.
금년에도 우리 교회에서 선교를 크게 해보자 해서 선교헌금 카드를 각자 여러분께 나누어 드렸어요. 십시일반이라고, 이렇게 모은 헌금이 주의 선교에 큰 몫을 감당하게 되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거룩함에 있습니다.
믿음은 거룩함으로 나타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장 이하에 믿음은 거룩함으로 나타난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집회 때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면 `아멘 아멘'을 크게 해야만 복을 받습니다.
하면 입이 찢어지도록 `아멘'하지요. 그런다고 해서 그 축복이 나의 것이 되나요?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뿌려야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종을 해야 수확을 한다는 얘기입니다. `아멘'을 크게 하는 것만큼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두는 겁니다. 그런데 아실 것은 뿌리는 것보다 더 많이 거두어 주십니다. 아멘. 이게 하나님의 심고 거두는 수확의 법칙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랑의 수고, 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수고하는 것은 사랑이 없으면 안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수고가 되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를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의 수고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치는 수고를 피차에 해냈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수고가 무엇이었는가?
첫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의 수고입니다. 데살로니가 1 : 6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도를 받아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주를 본받는 자라는 것은 주의 기적만을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바라보고서 본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말씀을 순종한 그 순종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의 인격까지를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본받는 것은 좋은 것만 본받는 게 아니고 그 좋은 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어려운 고통과 고난과 고생까지도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교통사고로 두 눈을 잃었습니다. 그는 실망하여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소경이 되어 앞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답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가 수술을 받아 보자고 했습니다. 수술을 받았습니다. 붕대를 푸는 날이 가까워오는데 의사가 말합니다.
잘하면 한쪽 눈은 볼 수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그냥 실명체로 입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아니 수술을 해줬으면 성공을 해야지, 그렇게 어려운 수술을 했는데 잘해야 한 쪽 눈만 겨우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장님이 된다니 원망도 하고 또 앞으로 맹인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고 꺼질 듯하게 한숨도 쉬어 봤습니다.
그런데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드디어 붕대를 풀었습니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의 모습이 한쪽 눈을 통해서라도 많이 들어오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눈에 띄는 어머니의 모습이 희미하게 나타납니다. 자신의 병상을 떠나지 않고 뒷바라지를 해주었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머니의 눈이 한쪽에 붕대를 감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눈 하나를 준 것이었습니다. 바로 사랑의 희생이었던 어머니의 고통이 거기 나타나 있습니다. 이 아들의 그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수고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셋째로 소망의 수고가 있는 교회입니다. 인내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오래 참음은 다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인내, 오래 참음은 무조건 우직하게만 참는 것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인내는 겸손으로부터 나온 하나의 열매입니다.
겸손이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의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라고 빌립보 2장 5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희생의 정신은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집은 아파트단지에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별난 분들도 많이 계세요. 해서 본인은 아마 이런 별명을 모르고 있는데 이제 여느 사람들은 아주머니를 통해 듣는 별명이 있어요.
주물럭도 있고, 떠벌이도 있고, 그런데 왜 주물럭이냐? 주물러 가지고서 지압같은 거 그런 걸 가지고서 사람을 고쳐요. 저도 가서 좀 시술을 받아 보곤 합니다. 아플 때도 있고 또 철커덕 하면서 바르게 되면 됐다고 그래요. 됐다고 그러면 된 것으로 알고 아, 고맙다고 그러고 옵니다.
그분에게는 자기가 애용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뭐냐 하면, 찹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은 차도 아니었는데 좋은 차로 바꿨어요. 이 차에 누가 흠집을 냈다든지 하면 불호령이 나오는 것입니다.
막 소리소리 고함을 지르면서 어느 누가 뭐,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하면서 나오라고 막 야단을 칩니다. 그걸 제가 알기 때문에 만나기만 하면 참 차 좋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반짝반짝 코팅이 잘되고 어쩌면 차를 이렇게 잘…….
자기는 차 운전 할 줄도 몰라요. 그 부인이 운전을 해요. 아, 어쩌면 이렇게 운전을 잘 하느냐구요. 뭘요, 뭘요, 해가면서 그분은 또 자랑을 해요. 그걸 들어준단 말이에요.
"어저께도 어느 사장님을 고쳐 드렸습니다." "아, 그래요" 하고 들어줘야 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가 1부예배를 마치고 가서 제 차를 왁스로 닦고 있는데 "그 왁스로는 안돼요. 제가 해드리리다." 하면서 그분이 상당히 노랭이 깍쟁이인데도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자기 트렁크 속에 있는 왁스를 가지고 와서는 그게 외제왁스래요. 뭐 몇 만원짜리래요.
그걸 가지고 와서 이걸 닦으면 한번만 닦고 살짝 스쳐만 줘도 한달 이상 간다고 해서, 아이고 그러냐고 그런 거 어디 있으면 나도 사게 해달라고 했더니 "아니요, 내가 발라드릴게"하면서 자기가 다 발라주는 겁니다.
그래 나는 자꾸 그냥 놔두라고 내가 하겠다고 해도 계속 그분이 하는 거예요. 나는 따라 다니면서 칭찬만 하는 거유. 시술 받으러 온 사람에게서 선물로 받은 건데 이걸 유리창에 바르면 빛이 나고 한달 보름가도 이건 뭐 상처 도 안 나고 물방울이 떨어지면 또르르 굴러버린다는 둥 자기가 그걸 다하고 또 닦아주더라고요. 그러면서 나중 하는 얘기가 "목사님, 우리 아들도 교회 보내겠어요."하는 것입니다. 아멘 그랬어요.
사실 제 속에서 `야, 니 차가 별거냐 응! 니 시술이 벌 거야 흥!'하고 한마디 핀잔 같은 얘기 해주고 싶지만 참았어요. 그리고 무조건 추켜세웠지요. 다른 사람들은 주물럭 떠벌이 하지만 저는 그저 아이구 원장님 이거 황송해서 어쩌나 했더니,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좋다고 자기 아들을 교회 보내겠대요.
`그래 교회 보내고 너도 나와야지.'제가 속으로 그렇게 기도했어요. 할렐루야! 참아서 손해볼 게 없어요. 그런데 우직하게 참으라는 게 아니에요.
어떤 총각이 화를 안 냈는데 그 친구들이 팔을 비틀면 "어 그러지 말어 그러면 부러져"라고 할뿐이지 화를 안내니, 화내는 꼴이 보고 싶어서 자꾸 비틀자, "어허 아파" 또 두 바퀴쯤 돌리니까 뚝 하고 부러졌어요. 이 청년이 화내지 않고 부러진 팔을 덜렁거리며 "그래 내가 뭐라고 그려, 그렇게 비틀면 부러진다고 그러잖어?"하더랍니다.
그런 식으로 무조건 참으라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꼭 전도에 연결시키고 믿음의 한계를 가지고 참으라 이 말이에요. 괜히 참으랬나요? 다 생각이 있고 속이 있어 참자 말입니다. 할렐루야.
고양이와 강아지가 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와 강아지는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아 나섰습니다.
드디어 길가에서 고깃덩어리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러니까 강아지가 고깃덩어리를 얼른 입에 물었어요. 하니까 고양이가 있다가 "야, 고기는 내가 먼저 발견을 했으니까 내 거다." 고깃덩어리 하나를 놓고 티격태격 다툼이 일어났어요.
그 런데 여우 하나가 나타났어요. 여우가 그래 공평하게 나눠준다고 고기를 딱 반으로 자르고 보니까 고양이의 것이 조금 커 보여요.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강아지가 있다가 "야, 니 거 좀 크다"하니까, 여우가 한입을 또 떼어 먹었어요.
그러고 보니까 이젠 강아지 쪽의 것이 커 보여 고양이가 가만 있으면 괜찮은데, "야, 니 거가 더 크다"하니까 여우가 또 한쪽 베어 먹었어요. 그러니까 이쪽도 먹고 저쪽도 먹고 나중에는 조그맣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엔 여우가 다 뜯어 먹어 버렸습니다.
서로 욕심을 부리다가 엉뚱한 여우에게 고기를 다 빼앗기고만 고양이와 강아지는 그후에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싸우는 사이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이솝이야기처럼 남에게 좋은 일만 시키고 마는 겁니다.
금년에는 마귀 좋은 일 시키지 마십시다. 주님 좋아하는 일에 앞장 서십시다. 솔직하게 저도 사람인지라 명절 되면 누가 선물 가지고 오나 기다려져요.
그런데, 참 좋은 선물을 한 가지 받았어요. 지금 생사고락을 넘나들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여집사님, 그의 남편이 과일 한 짝을 가져왔어요.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그 아픔의 통증이 멈춰지고 그래서 꼭 갖다드리라고. 우리 집 사람 명령대로 제가 가지고 왔어요."
제가 받아본 선물 가운데 너무너무 눈물겨운 선물이에요. 순간 순간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아파하는 그 모습, 주님나라를 생각하며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기를…….
저는 과일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지 몰라요. 여러분 살다보니 참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냥 너 죽고 나죽자 팔 걷어 부치고 어떻게 해보고 싶은 때가 많이 있지만, 그러고 나서 시원한 점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금년을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주님과 연결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꽂꽂이를 보십시오. 이 꽂꽂이가 술집에 가 있다면, 카페 키보드 위에 가 있다면 이런 존경은 받지 못할 겁니다. 전에 몇 년간 이 꽃을 담당했던 분, 또 그 다음에 후임자가 생겨서 그냥 모두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기술을 배우고 자기가 돈을 들이고, 시간을 내고 하면서 꽃을 꽂아 정성껏 봉헌하니, 우리 예배 분위기가 돋보이고 하나님께 영 광돌리고…….
잘 믿는다는 것은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가 있는 복된 새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의 수고를 고통과 함께 감내할 수 있는 새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소망의 인내가 우리에게 함께 역사하기를 축원합니다.
(1993. 1. 3)
우제돈 목사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