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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7:3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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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0.3.28 주일 오전예배 설교 http://cafe.daum.net/st888 |
성경 : 마27:38-42
제목 : 부활이 보장된 죽으심
마27:38-42 ‘38.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찌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아멘.
기독교를 피의 종교라고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 피의 제사를 시작으로 기독교 교주되신 예수께서 십자가로 돌아가시고 또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의 종교라고 합니다. 예수의 죽으심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속죄의 은총을 경험하고 구원이 확실해집니다. 오늘 <부활이 보장된 죽으심>이란 제목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다시 기억하고자 합니다.
1. 의도된 죽음
보통 죽음은 세 종류로 생노병사로 병들어 인생7-80에 죽는 것을 비롯해서 무슨 사고나 천재지변 등의 보통 인생사로 죽는 일반적인 죽음, 그리고 자살로 죽거나 일반 타살의 경우가 있는데 어떤 목적을 띠고 효과적인 성취를 위해 희생이 되는 제물로서의 죽음이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죽음도 희생이겠지만 아주 특이하게 죽음을 받아들려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인데 바로 주님이 그러한 죽으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본래 하늘 영광 가운데서 영광 중에 계시던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에 보면,
요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로 인해 죽어가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도록 독자이신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겁니다.
본문 마27:38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주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실 때 양쪽에 큰 죄로 사형을 받아 못 박힌 두 강도는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할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희생의 죽으심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본문 앞에 마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
(기록된대로의 말씀은...)
사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 6.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2. 우리 구원 위해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위해 희생을 하시는 일들에는 많은 고독과 고충과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죄인들이 하는 말은,
본문 마27:40-41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 했다고 했습니다.
내 성질 같으면 죽을 때 죽더라도 십자가 못 뽑고 내려와서 대제사장이고 뭐고 코피가 나도록 쥐어박은 후 다시 십자가에 올라갔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히12:3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고후 12:12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 인내 없이는 주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을 당해도 고요히 주님께 아뢰고 의지하는 인내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대개의 경우 자신을 못 참아서 복을 놓칩니다. 부지런히 주님을 따르고 농부처럼 열매를 기다릴 줄 알아야 은총을 받습니다.
3. 부활이 보장된 죽으심
예수 믿고 산다는 것이 타 종교보다 어쩌면 훨씬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세상은 마귀의 조종 가운데 있기 때문에 성도답게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그래서 좁은 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끝도 없이 고통만 있는가? 그게 아닙니다.
주님이 죽으실 때 참으시는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돌아가신다고도 예언하시면서 이어 사흘 만에 부활할 것이라도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본문 마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46년간이나 지어져 가고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세운다는 뜻이 아니었고 주님의 몸이 성전되시니 죽으신 후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예고하신 비유의 말씀이었습니다.
요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은 한이 많아 비운의 감정과 운명론적인 사고가 많아서 교회 생활하다가 어렵다 싶으면 그만 원망 불평, 눈물로 힘들어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제대로 깨달으면 그럴 것이 아니라 고난과 환난 가운데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을 줄 알아야 합니다.
궁상떨고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고 가령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때,
히11:17-19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성도가 고난 받을 때는 주실 축복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왜 그렇게 장년들이 죽게 된 줄 아십니까?
그들은 광야 길을 가면서 원망과 불평만 했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고전10:10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원망할 시간에 차라리 주를 향해 눈을 들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실 축복과 은총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저주스런 십자가의 처형이었으나 주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아지는 법을 가르치시려고 속죄와 은총의 길을 위해 소망을 안고 죽으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완전히 죽을 것 같아도 살고, 버려질 듯해도 찾아지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뒤 따르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우리는 주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생각 할 때 예수님에 대한 무슨 동정적인 눈물을 흘리기 쉬운데 그러나 십자가로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가진 각자의 십자가적 삶을 사는 중에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무쪼록 그리스도인의 삶은 비관적으로 고난만이 아니라 반드시 살려주시고 잘 되게 하시고 축복의 삶을 선물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대체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의 십자가가 찾아옵니다. 잘 참고 인내하여 고난만 의식하지 말고 잘 인내하여 축복도 받아 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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