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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박동현 교수............... 조회 수 2132 추천 수 0 2010.04.11 20:13:16
.........

그저께 오랫만에 시력 검사를 하려고 안과에 갔습니다.
간단한 시력 검사를 시작하는 데도 한 시간 반 이상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력 검사가 아닌 안과 질환 때문에 온 사람들을
먼저 진료하는 바람에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더 길어졌습니다.
뒤늦게 온 사람들이 여러 차례
저보다 먼저 진료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느라니 속이 상했습니다.
의사의 관점에 따라 나중 온 사람이 먼저 진료받을 수도 있으니
양해해 달라는 안내말이 진료실 문에 붙어 있기는 했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가만있을 수 없어
처음에는 함께 간 아내를 시켜 사정을 알아보게 하고,
그 뒤 한 이십 분이 지나서는 제가 직접 나서서,
단순 시력 검사라고 이렇게 자꾸만 뒤로 늦추어서야 되겠느냐,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접수받을 때 미리 일러주어야 하지 않느냐,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느냐는 등으로 말하면서
창구 간호사에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직도 반 시간은 더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본디 정해진 순서가 되어서인지 아니면 불평을 해서인지
오래지 않아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반 시간 걸려 진료를 마치는 마당에
젊은 검안사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거듭 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소시민들은 그저 기다리는데 당신은 그 정도도 참지 못하고 불평하다니
당신에게는 특권 의식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에 와서 한 두 시간 기다리는 것이야 보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참지 못한 걸 보면
나를 남보다 중요하게 보는 생각이
제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나 봅니다.

병원뿐만 아니라 이 세상 곳곳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당하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나서서 항의할 만도 합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잠잠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신분이나 지위가 높을수록 그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새치기'가 생기고
힘없는 사람들은 더욱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박동현 교수/장신대학교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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