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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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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상)
1. 서론 :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생활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삼십년 신앙생활하면서도 구원 얻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사람들인가. 그러나 이 세상에는 많은 수는 아니지만 하나님만을 위해 살고 불꽃과 같은 삶을 살며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숙된 경건과 연단된 꿋꿋함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 그리고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통점은 그들이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는지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2. 본론
1) 오늘날 필요한 것, 고난 신앙
- 경건하게 살고자 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도 환영을 받았던 때는 별로 없었다.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다수이고, 진실한 신자가 되기를 애쓰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이 소수였다. 그러나 그 소수에 의해 세상은 변하였다.
- 이 땅의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 속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는 오직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대로 믿고 살아야한다는 성경제일주의였다. 둘째는 지금 받는 고난은 잠간 지나는 것이고 우리 주님과 영원히 사는 내세가 있다는 확고한 내세신앙이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셨으니 나도 주님의 자녀로 예수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난신앙이었다. 예수가 나를 위해 고난당하셨으니 주님을 섬기기 위해 고난을 당해야 할 때 편안한 길을 택하기 보다는 예수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예수가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필요하다면 나도 예수를 위해 죽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고난신앙이다. 그러한 정신으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갔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러한 삶이다.
2) 아버지께 기도하신 십자가 :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두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본문은 그 첫 번째 말씀이다.
① 기도하신 때
- “이에” 이것은 “그쯤에”즉, 예수님이 고치시고 먹이시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 보이지 않고,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그 때를 가리킨다. 십자가는 “스타우로스(staurov")”로 그저 막대기라는 의미한다. 십자가의 고통은 타는 듯한 목마름과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죽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것이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로 시작되었다.
- 그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그 극악한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고통의 때에도 예수님은 기도하셨고, 그 기도는 우연히 나온 것도, 십자가에 박힌 특별한 때였기 때문에도 아니었고, 그의 전 삶이 기도하며 달려온 삶이었기 때문에 흘러너온 것이었다.
- 그 십자가의 정신이 우리의 삶에 깊이 박혀서 예수 죽인 것을 우리가 짊어지고 기도한다면 이렇게 쉽게 환경과 육신의 연약함을 핑계로 침륜에 빠지는 삶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주님 앞에 산 사람들은 날마다 주님 앞에 죽는 사람들이었다. 한 때 은혜를 받았으나 물러가 미끄러진 고린도교회를 향해 사도 바울은 아버지 같은 음성으로 말하기를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였다. 예수님이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 죄와 이 세상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황망한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물러서는지 생각해보라.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힘든 상황이 우리로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참 사랑과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망각의 삶이 우리로 기도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깊이 뉘우쳐야 한다. 내가 누구이고, 주님이 어떻게 나를 구원하심으로 나를 자녀 삼으시고 인도하셔서 오늘도 살게 하시는가 하는 것을 깊이 뉘우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② 기도의 시작, “아버지여”
-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친밀함과 정겨움으로 아버지를 부르셨다. 예수님의 지상생애는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 속에 사신 삶이었기에 어떠한 상황이나 고난도 아버지에 대한 이 신뢰를 깨뜨릴 수 없었다.
- 하나님의 자녀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이 아버지 되신 것이다. 그래서 그 아버지와 친밀한 사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세상의 안일한 삶 앞에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너무나 쉽게 버리고 만다. 두고 온 세상 사랑하기를 아버지의 집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하고,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과 세상에 대한 집착이 한때는 살아있었던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사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참된 가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생각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며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그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친근히 하고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느 것 보다도 하나님과 누리는 친밀함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야 한다.
날마다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함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200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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