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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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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가상칠언 중 첫 번째 : “저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1. 용서의 중요성
- 여기에서 저희란, 좁게는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계획에 무지하여 죄 가운데 살아가는 전 인류를 가리킨다. 만약 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고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용서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순간에 하나님께 저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셨다.
2.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십자가
-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해 부들부들 떠시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우리는 흔히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사실 가장 먼저 십자가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사랑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진노의 심판을 받으셨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이 광경을 생각해보라. 그는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셨다. 그 기도를 드리는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었고, 그가 당하신 고통은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것이었다. 그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는 죄인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진노, 하나님의 엄위로운 공의를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 그런데 살 찢고 뼈를 깨뜨리는 무서운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관심은 찢어지는 그분의 육체가 아니라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종국에는 죽어갈 고통 하는 인간들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큰지를 아셨기에 저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다.
3. 먼저 용서받은 자들의 할 일
- 구원받은 우리를 이 땅에 살아있게 하시는 이유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어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알리고 그 사랑 안에 이끌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예전에는 영혼의 어두움 가운데 생각은 허탄한 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좋은 것을 따라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살던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가게 되었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
- 오늘날의 교회가 모일 때마다 죄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다면 이 세상에는 더 성공적인 복음의 역사가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받으시고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당하신 그 고통을 짊어지고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 교회는 모든 부패함과 죄를 떠나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여러분의 가족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도록, 저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알리기 위해 당해야 하는 고난과 고통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를 진심으로 사랑하신다. 너희들 가운데 누구도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그들의 심령이 강퍅할 때에 그들은 이 복음을 거절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감히 그들의 멸망당하는 것은 그들의 강퍅함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그들과 같이 강퍅하던 우리의 마음을 녹이셨다.
4. 능욕을 참으신 그리스도의 인내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 때문에는 이 능욕을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분의 모든 목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그 한 목표에 고정시키시고 능욕을 참고 견디셨다. 우리가 회심하고 나면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쏟아진다. 그래서 시련이 겹쳐도 십자가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사랑이 사라지고 마음은 차갑게 식어져서 육욕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끊임없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사도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고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 속에 있는 자원을 빼앗기 위해 싸우며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먼저 만난 이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었고, 우리를 위해 눈물로 아파하며 기도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은혜는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능욕을 잘 견디는 사람들인가? 구원을 주고 기쁨을 줄 때만 아니라 저주와 시련과 고통 밖에는 안겨주는 것이 없을 때에도 십자가를 붙드는 삶이 바로 날마다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2004-03-07
가상칠언 중 첫 번째 : “저희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1. 용서의 중요성
- 여기에서 저희란, 좁게는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계획에 무지하여 죄 가운데 살아가는 전 인류를 가리킨다. 만약 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고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용서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순간에 하나님께 저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셨다.
2.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십자가
-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해 부들부들 떠시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우리는 흔히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적용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고, 사실 가장 먼저 십자가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이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사랑이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진노의 심판을 받으셨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는 이 광경을 생각해보라. 그는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셨다. 그 기도를 드리는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었고, 그가 당하신 고통은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것이었다. 그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는 죄인들이 받아야 할 마땅한 진노, 하나님의 엄위로운 공의를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 그런데 살 찢고 뼈를 깨뜨리는 무서운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관심은 찢어지는 그분의 육체가 아니라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종국에는 죽어갈 고통 하는 인간들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큰지를 아셨기에 저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다.
3. 먼저 용서받은 자들의 할 일
- 구원받은 우리를 이 땅에 살아있게 하시는 이유는 주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어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알리고 그 사랑 안에 이끌게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도 예전에는 영혼의 어두움 가운데 생각은 허탄한 것을 좋아하고 자기의 좋은 것을 따라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살던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살아가게 되었다면 이 세상의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
- 오늘날의 교회가 모일 때마다 죄 가운데 있는 이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다면 이 세상에는 더 성공적인 복음의 역사가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받으시고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당하신 그 고통을 짊어지고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 교회는 모든 부패함과 죄를 떠나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여러분의 가족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도록, 저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알리기 위해 당해야 하는 고난과 고통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를 진심으로 사랑하신다. 너희들 가운데 누구도 멸망당하지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가르쳐 주어야 한다. 물론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그들의 심령이 강퍅할 때에 그들은 이 복음을 거절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어떻게 감히 그들의 멸망당하는 것은 그들의 강퍅함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그들과 같이 강퍅하던 우리의 마음을 녹이셨다.
4. 능욕을 참으신 그리스도의 인내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 때문에는 이 능욕을 감당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분의 모든 목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그 한 목표에 고정시키시고 능욕을 참고 견디셨다. 우리가 회심하고 나면 폭포수와 같은 은혜가 쏟아진다. 그래서 시련이 겹쳐도 십자가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사랑이 사라지고 마음은 차갑게 식어져서 육욕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항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끊임없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사도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한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고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 속에 있는 자원을 빼앗기 위해 싸우며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먼저 만난 이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었고, 우리를 위해 눈물로 아파하며 기도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은혜는 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능욕을 잘 견디는 사람들인가? 구원을 주고 기쁨을 줄 때만 아니라 저주와 시련과 고통 밖에는 안겨주는 것이 없을 때에도 십자가를 붙드는 삶이 바로 날마다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2004-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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