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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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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가상칠언 중 두 번째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1. 잊혀져가는 내세신앙
- 톨스토이는 인생이란 영원을 기다리는 기차역과 같다고 말하였다. 오늘 조국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아름다운 신앙 중에 하나는 내세신앙이다. 내세신앙은 모든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이 사모하던 신앙이었고, 그 신앙으로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련을 이길 수 있었다. 내세 신앙은 우리가 영원을 잇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이 세상의 삶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믿음이다.
- 형식적인 신자의 꿈은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는 것이고, 진실한 신자의 꿈은 이 세상에서 거룩해지는 것이다. 신자는 이 세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본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신앙을 가질 때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고,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와 정욕들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있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지 말고 주님이 계신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타오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나그네 길을 지나는 길손일 뿐이다. 나그네는 잠시 그 곳을 지날 뿐 그 곳에 집을 짓거나 뿌리는 내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누리도록 주신 분깃과 욕망으로 흐르는 방종 사이를 구별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는 더욱이 내세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순간을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주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강도에게 일어난 네 가지 변화
- 디스마스와 게다스라고 알려진 두 강도는 동일한 범행을 저지르다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둘은 함께 예수님을 욕했으나 당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자 한 강도에게 회심과 같은 네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 첫째로, 죄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대로 세상의 자원을 빼앗으며 살아갔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 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죽어가는 강도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둘째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껏 자기가 온 우주의 중심이며 궁극적인 가치가 자신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심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받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넷째로, 그리스도와 낙원에 관한 생각이었다. 인격 속에 침범할 수 없는 평안과 하나님 앞의 평정을 가지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이 자신이 생각하는 죄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낙원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애원하였다.
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십자가 상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행실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통해 들어가는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인생의 허무감 속에 사람들은 쾌락에 자신을 던짐으로 쾌락을 진통제 삼아 살아간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허무를 깨달을수록 이 세상의 낙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며 살았다. 인생의 허무는 믿음의 사람들을 낙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더욱 분투하며 주님을 위해 살고자하는 마음에 기름을 끼얹었고, 쇠하지 않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우리는 나의 나된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우리의 일생이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종말론적인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믿음으로 애쓰며 살 때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이 가득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는 나타날 내세의 영광이 이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은 다만 나그네 길이고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나가며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히 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즐거움 때문에 하늘나라의 소망을 잃게 되거나 이 세상의 시련과 고난 때문에 괴로울 때에 그것을 생각하며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구원받은 강도를 행운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기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이제 그는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애쓰며 살고 싶었으나 그는 주님과 함께 육신을 버려두고 떠나야만 했다. 그는 이 땅에서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허비하는 인생은 죽어가는 강도가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하던 한 날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상칠언 중 두 번째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1. 잊혀져가는 내세신앙
- 톨스토이는 인생이란 영원을 기다리는 기차역과 같다고 말하였다. 오늘 조국교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아름다운 신앙 중에 하나는 내세신앙이다. 내세신앙은 모든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이 사모하던 신앙이었고, 그 신앙으로 이 세상에서의 고난과 시련을 이길 수 있었다. 내세 신앙은 우리가 영원을 잇대어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이 세상의 삶으로 충분하지 않고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다는 믿음이다.
- 형식적인 신자의 꿈은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는 것이고, 진실한 신자의 꿈은 이 세상에서 거룩해지는 것이다. 신자는 이 세상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강력한 확신을 가지고, 본향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신앙을 가질 때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고, 우리 안에 내재하는 죄와 정욕들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있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지 말고 주님이 계신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타오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나그네 길을 지나는 길손일 뿐이다. 나그네는 잠시 그 곳을 지날 뿐 그 곳에 집을 짓거나 뿌리는 내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누리도록 주신 분깃과 욕망으로 흐르는 방종 사이를 구별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는 더욱이 내세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가지고 순간을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주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강도에게 일어난 네 가지 변화
- 디스마스와 게다스라고 알려진 두 강도는 동일한 범행을 저지르다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둘은 함께 예수님을 욕했으나 당신을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자 한 강도에게 회심과 같은 네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 첫째로, 죄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대로 세상의 자원을 빼앗으며 살아갔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달았고, 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죽어가는 강도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둘째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이제껏 자기가 온 우주의 중심이며 궁극적인 가치가 자신이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셋째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심판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받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넷째로, 그리스도와 낙원에 관한 생각이었다. 인격 속에 침범할 수 없는 평안과 하나님 앞의 평정을 가지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이 자신이 생각하는 죄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낙원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되자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애원하였다.
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십자가 상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두 번째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행실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을 통해 들어가는 나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인생의 허무감 속에 사람들은 쾌락에 자신을 던짐으로 쾌락을 진통제 삼아 살아간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허무를 깨달을수록 이 세상의 낙을 좇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며 살았다. 인생의 허무는 믿음의 사람들을 낙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더욱 분투하며 주님을 위해 살고자하는 마음에 기름을 끼얹었고, 쇠하지 않는 하늘나라의 영광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우리는 나의 나된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우리의 일생이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인생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종말론적인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믿음으로 애쓰며 살 때 우리에게 시련과 고난이 가득하지만, 그 때마다 우리는 나타날 내세의 영광이 이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은 다만 나그네 길이고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나가며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히 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을 격려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의 즐거움 때문에 하늘나라의 소망을 잃게 되거나 이 세상의 시련과 고난 때문에 괴로울 때에 그것을 생각하며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하는 것이다.
- 많은 사람들은 죽기 직전에 구원받은 강도를 행운아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기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이제 그는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애쓰며 살고 싶었으나 그는 주님과 함께 육신을 버려두고 떠나야만 했다. 그는 이 땅에서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허비하는 인생은 죽어가는 강도가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하던 한 날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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