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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급여통장과 모든 카드를 아내에게 반납하고 과거에 낭비한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며 적은 용돈을 타 쓰고 있습니다. 그 후에 아내는 신학원 시절을 다 잊고 성경대학을 수료하고 다락방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함께 사랑부 교사로 섬기며 주일을 은혜 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마치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방황하던 예전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저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은 매우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하루걸러 계속되는 부모님의 다툼은 저를 우울한 아이로 만들었고,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술과 담배에 의지하게 됐던 고등학생 때에는 괴팍한 성격 때문에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방황하던 제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동네사람의 소개로 근처 성당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곳은 외국인 신부님이 계시는 그리스정교회였습니다. 말씀은 알아듣지 못해도 천장과 벽에 그려진 예수님과 천사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하나님과의 첫 만남인 듯합니다.
현실에서 도망치듯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힘든 생활 중 부대 안의 교회는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고 바쁘다보니 신앙생활은 점점 멀어져갔고 결혼과 함께 아내와 정교회에 나갔으나 아내는 복잡한 예배절차와 의식 때문에 다시는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저는 등산, 여행 등 단순한 즐거움을 찾는 데 혈안이 되었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로 직장동료와 거의 매일 술과 잡기에 매달렸습니다. 마치 과거 암울하게 보냈던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철저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교사를 하는 아내 덕분에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살며 생활비를 대면서도 유흥비는 항상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아내는 저를 구원하려는 마음에 신학원에 등록하여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방황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멈출 줄 몰랐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잘 다니는 아내에게 ‘그래 너 혼자 열심히 다녀서 혼자 천당 잘 가라.’하고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은 날이면 “어제는 신학원에서 뭘 배웠는데?”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변덕스러운 저의 질문에 항상 미소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설명해주는 많은 부분이 속칭 구원파 교회의 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식당 주인이 전도사님이셨는데, 아내에게 들은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요즘 말세운운하며 요한계시록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이단 신학원이 늘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저의 방황보다 아내의 방황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 저는 아내의 잘못된 믿음을 돌이키려고 무척이나 애썼지만 번번이 헛수고였습니다. 저희는 다투는 날이 많아졌고 성경에 대한 저의 무식함이 정말 답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정말 고마우신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순장사역을 하시는 교회 집사님인데 자상하게 제 얘기를 들어주신 후 교회의 새생명축제를 소개하시면서 태신자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이 갔지만 점점 그 분의 진실하심과 배려에 감동하여 저희 부부는 어렵게 참석을 결심하였습니다. 첫날에는 서먹함도 있었으나 말씀을 들으면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새생명축제는 오랜 동안의 방황과 마음고생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며 길 잃은 어린 양을 위해 예비하신 잔치였습니다. 1년간 몸담았던 구원파의 늪을 단 한번에 돌이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내와 저는 마지막 날 결신 카드를 제출하였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은 새생명을 얻은 뜨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번 택하신 자는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자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어서 5주간 새 가족 모임 후 가정예배를 바로 시작함으로써 중등부와 초등부에 다니는 자식들도 저희 가족의 변화에 동참하였습니다. 특히 저의 기타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찬송은 비록 잘 부리진 못해도 어느 시간보다 은혜롭습니다. 수양관 기도실에서 가족을 위한 중보기도 때 처음으로 2주간 금연 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내와 딸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급여통장과 모든 카드를 아내에게 반납하고 과거에 낭비한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며 적은 용돈을 타 쓰고 있습니다. 그 후에 아내는 신학원 시절을 다 잊고 성경대학을 수료하고 다락방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함께 사랑부 교사로 섬기며 주일을 은혜 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세 번째 만남은 시작되었으며, 다시는 하나님과 헤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족한 저와 아내이지만 앞으로 계속 변화되어 주님 닮기를 감히 원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현실에서 도망치듯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습니다. 힘든 생활 중 부대 안의 교회는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고 바쁘다보니 신앙생활은 점점 멀어져갔고 결혼과 함께 아내와 정교회에 나갔으나 아내는 복잡한 예배절차와 의식 때문에 다시는 교회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저는 등산, 여행 등 단순한 즐거움을 찾는 데 혈안이 되었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핑계로 직장동료와 거의 매일 술과 잡기에 매달렸습니다. 마치 과거 암울하게 보냈던 시절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철저하게 인생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교사를 하는 아내 덕분에 부모님, 동생들과 함께 살며 생활비를 대면서도 유흥비는 항상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자 아내는 저를 구원하려는 마음에 신학원에 등록하여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방황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처럼 멈출 줄 몰랐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잘 다니는 아내에게 ‘그래 너 혼자 열심히 다녀서 혼자 천당 잘 가라.’하고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은 날이면 “어제는 신학원에서 뭘 배웠는데?”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변덕스러운 저의 질문에 항상 미소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설명해주는 많은 부분이 속칭 구원파 교회의 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식당 주인이 전도사님이셨는데, 아내에게 들은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요즘 말세운운하며 요한계시록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이단 신학원이 늘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저의 방황보다 아내의 방황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 저는 아내의 잘못된 믿음을 돌이키려고 무척이나 애썼지만 번번이 헛수고였습니다. 저희는 다투는 날이 많아졌고 성경에 대한 저의 무식함이 정말 답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정말 고마우신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순장사역을 하시는 교회 집사님인데 자상하게 제 얘기를 들어주신 후 교회의 새생명축제를 소개하시면서 태신자로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이 갔지만 점점 그 분의 진실하심과 배려에 감동하여 저희 부부는 어렵게 참석을 결심하였습니다. 첫날에는 서먹함도 있었으나 말씀을 들으면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새생명축제는 오랜 동안의 방황과 마음고생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며 길 잃은 어린 양을 위해 예비하신 잔치였습니다. 1년간 몸담았던 구원파의 늪을 단 한번에 돌이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내와 저는 마지막 날 결신 카드를 제출하였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은 새생명을 얻은 뜨거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한번 택하신 자는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자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어서 5주간 새 가족 모임 후 가정예배를 바로 시작함으로써 중등부와 초등부에 다니는 자식들도 저희 가족의 변화에 동참하였습니다. 특히 저의 기타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찬송은 비록 잘 부리진 못해도 어느 시간보다 은혜롭습니다. 수양관 기도실에서 가족을 위한 중보기도 때 처음으로 2주간 금연 생활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내와 딸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급여통장과 모든 카드를 아내에게 반납하고 과거에 낭비한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며 적은 용돈을 타 쓰고 있습니다. 그 후에 아내는 신학원 시절을 다 잊고 성경대학을 수료하고 다락방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함께 사랑부 교사로 섬기며 주일을 은혜 속에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세 번째 만남은 시작되었으며, 다시는 하나님과 헤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족한 저와 아내이지만 앞으로 계속 변화되어 주님 닮기를 감히 원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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