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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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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2005.3.6 주일 설교 |
[민병석 잠언 강해] 2 악한 자의 길 ( 본문 : 잠언 1 : 10 - 19 )
10절 서두에 나온 말씀을 보면 ‘내 아들아’라고 부르며 교훈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2장부터 7장까지는 각 장 서두에 한결같이 ‘내 아들아’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이 글을 쓴 솔로몬 왕이 내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자기 아들 ‘르호보암’을 가리킨 말이 아니라 두 가지 견지에서 이 잠언서를 읽고 배우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시킨 것입니다.
하나는 모든 성경 말씀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에게 교훈 하시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솔로몬 자신이 어버이의 입장에서 이 교훈을 듣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대로 그렇게 부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삿17:10절 말씀을 보면 레위인인 한 소년이 미가의 집에 이르렀을 때, 미가가 그 레위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아비란 말은 반드시 육신적인 아버지에게만 적용해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갈4:19절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나의 자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그 말씀을 먹이고 그 말씀으로 양육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종들은 영적으로 아비의 칭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악한 자의 뜻
먼저 아들에게 경계하는 아버지의 말씀은 그 아들로 하여금 악한 자의 무리에게 물들지 말 것을 간절히 소망하는 교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악한 자란 말은 죄인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보지만 약간 구별되는 말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류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악인이란 죄로 연결되어 그 죄를 행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죄의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죄인이라면 그 죄를 자기 생활에 나타내는 일을 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죄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악을 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을 억제하는 힘을 도덕적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혹은 인격이란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이 악에서 멀리하게 하고 선한 행실을 하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활에 적용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신앙적인 교육이며 잠언은 바로 이런 생활에 유익한 것입니다.
죄인이란 말은 원어로 ‘하타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표적을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활을 쐈는데 그 화살이 표적을 빗나갔다면 그 화살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표적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가 맞춰야 할 표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는 이 표적에서 빗나가므로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악한 자는 두 가지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의적으로 또는 상습적으로 그리고 계획적으로 죄를 짓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자기 자신을 죄에게 내어 주고 다른 사람들마저 죄의 길로 인도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악한 자, 악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보편적으로 말하는 죄인들보다 죄가 더 큰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악한 자들이 우리 곁에 다가와서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하여 10절 이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절에서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악한 자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을 꾀는 일입니다. 꾄다는 말은 상대방을 자기가 계획하고 있는 악한 일에 동참시켜 함께 악한 무리가 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꾀는 방법은 유혹입니다. 유혹의 전문가는 물론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은 사탄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유혹하는 자들은 낚시 밥이 있습니다. 그 낚시 밥을 살며시 우리 앞에 던지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유혹의 손길은 언제나 재물과 연결되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런 악한 자의 꾐에 넘어가는 것입니까? 1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며 자기의 생명을 잃게 되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를 탐하는 자의 길과 악한 자의 길은 모두 똑같은 길이란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익을 탐한 다는 말은 장사를 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정과 악한 도모에서 나온 이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문자적으로 풀이하면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간절히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에는 반드시 부정과 탐욕이 따르는 것입니다. 딤전6:10절에서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했습니다. <악한 재물에 마음을 두는 일, 정당한 수입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얻는 이익, 개같은 자의 소득(하나님은 받지 않으심) 술장사,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업 등,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사업의 수익, 날개가 있다. 흩으심, 실패, 도적, 화재, 재앙 등) 재물은 행복의 수단이 되어야 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축복이 되어야 함. 돈으로 찔림 당하는 생애(가정 파탄, 질환으로 병고, 가정이 무너짐)
다윗은 시편1편에서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인생 길은 보이지는 않지만 인생은 그 가는 길이 반드시 있습니다. 렘21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7장에서 예수님은 이 같은 인생 길을 넓은 길과 좁은 길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길은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버는 일에도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법으로 재물을 쌓아야 합니다.
여하튼 악인의 길은 다 사망의 길이 것처럼 악한 길을 걸으면서 돈을 벌면 망하게 됩니다. 인생들이 참으로 걸어야 할 길은 어느 길인 것입니까?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이 가장 안전하고 복된 인생의 길입니다. 그 종착역은 영생이요 천국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길이 좁아서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좁다고 하신 말씀은 비합리적이란 뜻입니다. 재물을 버는 길도 마찬가집니다. 죄의 길에서 떠나야 평탄한 축복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악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악인은 결코 형통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욥18:5-6절에서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아니할 것이요 그 장막안의 빛은 어두어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하여 분명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시140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소원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악한 꾀를 이루게 하시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시141편에서는 ‘하나님은 악인을 자기의 그물에 걸리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그물이란, 악한 자를 넘어지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처 놓으신 덧입니다. 이 덧은 하나님이 수고롭게 친히 치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을 도모할 때 그 악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그물이 되어 악을 행한 자가 걸려 넘어지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물입니다. 역사상에 존재했던 모든 악인들의 결과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 잡히게도 하시고, 재앙을 만나게도 하시고, 응당한 보응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시146편에는 하나님께서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굽게 하신다는 말은 멸망의 함정에 빠지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때가 이르면 언제인가는 반드시 걸려 넘어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 악한 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악한 자를 대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로 악한 자를 쫓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길은 음부로 향한 길이기 때문에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 죽음의 길을 따라 갈 것입니까? 백이 숙제는 불의한 정치를 피하여 심산에 들어가 산나물과 나무 뿌리를 캐 먹다가 죽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와는 뱀의 악한 꾀를 쫓다가 자신의 생명을 잃었을 뿐 아니라 축복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와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시켰으며 모든 후손들에게 사망이라고 하는 유산을 남겨 준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악인의 꾀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부정한 이익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정한 이익은 반드시 악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악을 행하는 일입니다. 부정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은 우리의 마음속에 탐심을 일으키며 이 탐심은 내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악인의 꾀에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내가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부요한 사람입니다. 잠23장에서 교훈 하시기를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셨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붙들어 부요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라고 다 복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가난이 어떻게 축복이 되느냐는 데 대한 성경적인 바른 해답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난이 자신에게 족한 줄로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딤전6:8절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가난한 처지에 불만족 하는 사람은 가난하지만 탐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음에 자신이 가난한 처지에 있지만 그리스도의 가난을 생각하므로 위로를 받으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증의 새도 깃들 곳이 있건만 인자에게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가난을 감사할 수 있는 일은 복 받을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땅의 가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세상일에 염려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나머지 욕심을 품고 불의의 이익을 넘겨보며 그것을 마음으로 원하는 가난한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하박국은 이처럼 말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여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할렐루야! 여러분들은 이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 다시 말하면 악인들과 함께 다니지 말고 그들의 모임에도 동참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혹의 손길은 누구에게 뻗치는 것입니까? 악한 자를 자주 만나고 그들과 함께 자주 모이는 그 자리가 함정인 것입니다.
친구의 유혹의 손길에 이끌려 한 두 번 유흥장에 가 본 일이 화근이 되어 일생에 씻지 못할 불행을 낳는 가정주부들이 어디 하나둘입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을 따라 자기의 생각과 행실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잠언 말씀은 이 말씀을 읽고 듣는 자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지혜를 주며 그 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결 론 : 어떤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한 아들이 어느 날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 이러이러한 좋지 아니한 친구들과 교제하고는 있지만 저는 결코 그들이 행하는 악한 일에 동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요.’ 이런 아들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앉은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난로로 가까이 가셔서 난로 안에서 타다 남은 석탄 덩어리 한 개를 끄집어냈습니다. 식구들은 아버지가 왜 저러실 까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얘야, 손을 벌려 이것을 받아라’하시면서 그 석탄재를 아들에게 던지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은 깜짝 놀래면서 ‘왜 그러세요, 아버지’ 하면서 손을 내민 것이 아니라 움츠렸습니다. 아버지는 왜 그러니 뜨겁지도 않은데, 아버지의 이 말씀에 ‘아버지 그러나 손이 더러워지지 않아요.’ 아들은 이처럼 말했습니다.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일은 비록 우리가 지혜롭게 행동하고 그들에게 물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벌써 내 마음이 더럽혀지므로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일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우리의 즐거움은 악한 자의 길에 있지 아니합니다. 우리의 참 즐거움은 생명의 길을 걷는 성도들의 신앙적인 교제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악한 자의 꾐에 유혹 받지 마시고 그들이 걸어가는 그 길에 함께 동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즐거워하시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생명의 길에서 행복과 평강과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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