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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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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눅15장의 세가지 비유와 마25장의 세가지 비유의 내부 구조
본문/ 마24:44,눅15장 전체 그리고 마25장 전체
1.눅15장에는 3개의 비유가 실려 있습니다. 마25에도 3개의 비유가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한 장에 3개의 비유가 실려 있다는 점도 기이한 경우지만 그 비유들의 속 구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아주 신선 합니다.
2. 눅15장의 3 비유는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모양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기쁨이 얼마나 큰것인가! >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그림언어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간혹 < 탕자의 비유 >에서 주인공이 누구냐?하는 물음을 던지면 탕자라는 사람, 아버지라는 사람, 큰 아들이라는 사람 여러 대답이 나옵니다. 물론 각각의 시각에 따라 달리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눅15장 전체의 구조를 보면 그 해답은 자연 스럽게 도출 되리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눅 15장 3 비유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 일백마리 중 하나를 잃음 - 힘써 찾아다님 - 마침내 찾음 - 기쁨의 잔치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일음 - 쓸고 찾아다님 - 마침내 찾음 - 기쁨의 잔치
두 아들 가운데 하나를 잃음 - 간절히 기다림 - 마침내 귀향 - 기쁨의 잔치
주제는 분명히 귀중한 것을 잃은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과 고통과 염려 속에서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닌 결과 그 잃은 것을 찾았을 때의 기쁨입니다. 양이나 돈도 그런데 하물며 아들이랴! 이 세 비유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주인의 마음 곧 아버지의 마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 됩니다.
3. 마25장의 3 비유를 우리는 가끔 따로따로 설교하는 것을 들어왔고 나 자신도 그렇게 설교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가만히 눅15장과 연결지어 생각 해 보니 마25장의 3 비유는 그렇게 따로따로 해석하고 설교 할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눅15장의 비유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3가지 다양한 변주로 구성 되어 있는 것이라면 마25장의 3 비유는 < 천국문을 여는 데 필요한 세가지 열쇄 >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다시말하자면 마25장의 3 비유는 < 우리의 신앙이 삼겹줄로 어울어지는 큰 흐름의 신앙이어야 함을 밝혀 주는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얽혀져 있는 비유 >라고 생각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예레미아스의 비유 연구, 로버트 스타인의 예수 비유 연구, 프란츠 무쓰너의 예수의 비유, 틸리케의 기다리는 아버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여러 교수와 목사님들의 비유 설교집을 읽어 보았습니다만 모두들 마25장의 3가지 비유들이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주기 위하여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비유군으로 보지 않고 이 3가지 비유를 각각 따로따로의 의미를 가진 독립된 비유로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25장의 3 비유는 그 내부 구조상 상호 긴밀하게 짜여진 견고한 구조물이라고 생각 합니다. 눅25장의 3 비유가 한 주제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듯이. 마25장의 세 비유를 분리하면 그 원래의 의미 자체가 상실 된다고 봅니다.
4. 마25장의 3 비유를 분리 할 수 없는 이유?
마25장의 비유는 마태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 설교에 해당 합니다. 또한 마25장의 비유는 <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에 연결되어 나오는 말씀입니다. 즉 예비 할 사항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비유로 일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비 할 사항 3가지를 분리 시키면 예수님의 원래의 의도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5. 인자가 오실 때까지 우리가 예비 할 3 가지 사항은 무엇인가?
첫째로 열 처녀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열 처녀 모두 잠을 잤습니다. 다른 점은 등잔의 기름을 준비하였느냐? 아니 하였느냐?에 있습니다. 기름은 불을 일으키는 근원입니다. 레6:8-13을 보면 번제단의 원래의 불을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인자가 오실 그 때 까지 우리 심령 속에 그 믿음의 불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예비 하라는 것입니다. - 내적 신앙의 불이 타오르게 하라!
둘째로 달란트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살 때 자신이 처해진 삶의 현장에서 지레 겁먹고 시도 조차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책망입니다. 만약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나가서 장사하다가 그만 완전히 파산 하였다고 합시다. 그 주인이 그렇게 파산한 그 종을 책망하셨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주인은 빙긋이 웃으시며 < 실패도 재산이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 다시 한 번 해보아라! >고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주인의 성품이 원래 그런 분 아닌가요? 즉 인자가 오실 그 날 까지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용감하게 도전하면서 사는 삶을 예비 하라는 것입니다. - 외적으로 너의 삶에 생기가 넘치게 하라!
셋째로 양과 염소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제 살기에 바빠서 지극히 작은 이웃 하나에 도무지 관심 조차 두지 않은 사람과 괴로운 인생의 고난 속에서 그래도 힘 닿는대로 지극히 작은 이웃 하나에 손을 벌려 베푸려는 사람의 차이 아닙니까! 내적으로 신앙 지키고, 남에게 신세 안지고 열심히 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자가 오실 그 날 까지 너의 삶 말고 네 이웃의 형편도 돌보면서 사는 삶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살라!
결론/
마25장의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제각기 따로따로의 교훈적 의미를 주시는 비유의 말씀이 아니라 한 주제 곧 < 인자의 오실 그 날을 어떻게 예비 할 것인가? >라는 종말론적인 명제 앞에 서있는 < 나에게 > 그리고 < 우리에게 > 그 길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열심만 있다고 다가 아니요, 열심히 살았다고 다가 아니고, 남을 도와주는데 앞장 섰다고 다가 아닙니다. 예수는 몰라도 남을 위하여 한 평생 바친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는 몰라도 남에게 피해 안주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께서 마지막 자리에서 이 3 비유를 주신 근원적 목적은 < 크리스챤의 삶의 원형질 >을 일러 주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25장의 3비유는 따로따로 해석 해서는 그 분래의 의미를 상실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그 원초적 삶의 원형질을 복구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쏟아부어 주옵소서. 지성과 진심을 다하여 아-멘!
본문/ 마24:44,눅15장 전체 그리고 마25장 전체
1.눅15장에는 3개의 비유가 실려 있습니다. 마25에도 3개의 비유가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한 장에 3개의 비유가 실려 있다는 점도 기이한 경우지만 그 비유들의 속 구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도 아주 신선 합니다.
2. 눅15장의 3 비유는 한 가지 주제를 다양한 모양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기쁨이 얼마나 큰것인가! >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그림언어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간혹 < 탕자의 비유 >에서 주인공이 누구냐?하는 물음을 던지면 탕자라는 사람, 아버지라는 사람, 큰 아들이라는 사람 여러 대답이 나옵니다. 물론 각각의 시각에 따라 달리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눅15장 전체의 구조를 보면 그 해답은 자연 스럽게 도출 되리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눅 15장 3 비유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양 일백마리 중 하나를 잃음 - 힘써 찾아다님 - 마침내 찾음 - 기쁨의 잔치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일음 - 쓸고 찾아다님 - 마침내 찾음 - 기쁨의 잔치
두 아들 가운데 하나를 잃음 - 간절히 기다림 - 마침내 귀향 - 기쁨의 잔치
주제는 분명히 귀중한 것을 잃은 주인의 안타까운 마음과 고통과 염려 속에서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닌 결과 그 잃은 것을 찾았을 때의 기쁨입니다. 양이나 돈도 그런데 하물며 아들이랴! 이 세 비유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주인의 마음 곧 아버지의 마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 됩니다.
3. 마25장의 3 비유를 우리는 가끔 따로따로 설교하는 것을 들어왔고 나 자신도 그렇게 설교하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가만히 눅15장과 연결지어 생각 해 보니 마25장의 3 비유는 그렇게 따로따로 해석하고 설교 할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눅15장의 비유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3가지 다양한 변주로 구성 되어 있는 것이라면 마25장의 3 비유는 < 천국문을 여는 데 필요한 세가지 열쇄 >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다시말하자면 마25장의 3 비유는 < 우리의 신앙이 삼겹줄로 어울어지는 큰 흐름의 신앙이어야 함을 밝혀 주는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얽혀져 있는 비유 >라고 생각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까지 예레미아스의 비유 연구, 로버트 스타인의 예수 비유 연구, 프란츠 무쓰너의 예수의 비유, 틸리케의 기다리는 아버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여러 교수와 목사님들의 비유 설교집을 읽어 보았습니다만 모두들 마25장의 3가지 비유들이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주기 위하여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비유군으로 보지 않고 이 3가지 비유를 각각 따로따로의 의미를 가진 독립된 비유로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마25장의 3 비유는 그 내부 구조상 상호 긴밀하게 짜여진 견고한 구조물이라고 생각 합니다. 눅25장의 3 비유가 한 주제를 중심으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듯이. 마25장의 세 비유를 분리하면 그 원래의 의미 자체가 상실 된다고 봅니다.
4. 마25장의 3 비유를 분리 할 수 없는 이유?
마25장의 비유는 마태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마지막 고별 설교에 해당 합니다. 또한 마25장의 비유는 <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에 연결되어 나오는 말씀입니다. 즉 예비 할 사항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비유로 일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비 할 사항 3가지를 분리 시키면 예수님의 원래의 의도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5. 인자가 오실 때까지 우리가 예비 할 3 가지 사항은 무엇인가?
첫째로 열 처녀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열 처녀 모두 잠을 잤습니다. 다른 점은 등잔의 기름을 준비하였느냐? 아니 하였느냐?에 있습니다. 기름은 불을 일으키는 근원입니다. 레6:8-13을 보면 번제단의 원래의 불을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인자가 오실 그 때 까지 우리 심령 속에 그 믿음의 불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예비 하라는 것입니다. - 내적 신앙의 불이 타오르게 하라!
둘째로 달란트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살 때 자신이 처해진 삶의 현장에서 지레 겁먹고 시도 조차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책망입니다. 만약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나가서 장사하다가 그만 완전히 파산 하였다고 합시다. 그 주인이 그렇게 파산한 그 종을 책망하셨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주인은 빙긋이 웃으시며 < 실패도 재산이다. 너무 상심하지 말라. 다시 한 번 해보아라! >고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주인의 성품이 원래 그런 분 아닌가요? 즉 인자가 오실 그 날 까지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서 용감하게 도전하면서 사는 삶을 예비 하라는 것입니다. - 외적으로 너의 삶에 생기가 넘치게 하라!
셋째로 양과 염소의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제 살기에 바빠서 지극히 작은 이웃 하나에 도무지 관심 조차 두지 않은 사람과 괴로운 인생의 고난 속에서 그래도 힘 닿는대로 지극히 작은 이웃 하나에 손을 벌려 베푸려는 사람의 차이 아닙니까! 내적으로 신앙 지키고, 남에게 신세 안지고 열심히 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자가 오실 그 날 까지 너의 삶 말고 네 이웃의 형편도 돌보면서 사는 삶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살라!
결론/
마25장의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제각기 따로따로의 교훈적 의미를 주시는 비유의 말씀이 아니라 한 주제 곧 < 인자의 오실 그 날을 어떻게 예비 할 것인가? >라는 종말론적인 명제 앞에 서있는 < 나에게 > 그리고 < 우리에게 > 그 길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열심만 있다고 다가 아니요, 열심히 살았다고 다가 아니고, 남을 도와주는데 앞장 섰다고 다가 아닙니다. 예수는 몰라도 남을 위하여 한 평생 바친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는 몰라도 남에게 피해 안주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께서 마지막 자리에서 이 3 비유를 주신 근원적 목적은 < 크리스챤의 삶의 원형질 >을 일러 주시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25장의 3비유는 따로따로 해석 해서는 그 분래의 의미를 상실 하는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오 주여 우리에게 그 원초적 삶의 원형질을 복구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쏟아부어 주옵소서. 지성과 진심을 다하여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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