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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2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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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우제돈 목사 |
참고 : | 상원교회 |
(눅 5 : 27-3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1∼32절).
1. 무엇이 죄인가?
아프리카 토인들이 사는 어느 지역에 가면 사람이 죽으면 햇볕에 바짝 말려서 절구에 넣어 공이로 빻아 가루를 만들어 두었다가 손님이 올 때 짐승의 피에 말아서(미숫가루처럼) 대접한다고 합니다. "어찌 부모 형제의 시체를 땅에다 묻어 썩게 할 수 있느냐. 차라리 내 뱃속에다 안장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또 어디에 가면 매년 처녀 하나씩을 죽여 산신령께 제사를 드리고 남은 몸은 모두 찢어 나누어서 그 동네 사람들이 먹음으로 액땜이 된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이런 얘기를 드리는 것은 사람들은 어떤 습관이나 행동이 분명히 잘못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쳐 개선해 나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것이 바로 살인인데도 중단하면 신의 큰 해꼬지를 받는다 하여 알면서도 번연히 그 행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가령 어느 가정에 며느리를 통해서 복음이 들어갔을 때 교회에서 심방가면 남편 되는 이가 이렇게 말하며 거절합니다. "예수 믿으면 좋은 줄은 나도 알아요. 하지만 어머님이 저렇게도 극구 반대하니까 마음 상하게 해 드려서 우리에게 이로울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어머님 돌아가신 다음에 믿는 것은 몰라도 살아 계신 동안에는 절대로 안되겠어요"라고 합니다. '잘못된 것을 아는 것이 죄'입니다.
2. 그러면 누가 죄인입니까?
'죄'와 '죄인'의 개념에는 좀 차이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죄인이라고 해서 다 죄를 지은 자라고는 단정해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셨지 '죄인'까지 미워하신 것은 아닙니다. 엄위하신 하나님의 불꽃같은 공의 앞에서는 절대로 죄가 가리워 질 수가 없습니다. 금방 드러납니다.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지독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추한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자기가 그러한 죄를 지었다고 사실을 인정하고 통회자복 회개하며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아니고 용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죄인이겠습니까?
①예수를 '나사렛 예수'로만 보는 자는 '자칭 의인'이요, 예수를 '그리스도 예수'로 보는 자는 '진짜 죄인'입니다. "나사렛 같은 시골구석에서 무슨 선지자가 날 수 있겠느냐" 하며 예수를 단순히 나사렛 예수로만 여기는 선민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의인이요, 오히려 예수를 죄인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 예수' 즉 '구세주 예수'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 중에 있는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자기들의 죄를 고백합니다.
②유대인들은 예수를 '목수의 아들'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습니다. '목수의 아들'로만 본 유대인들은 예수를 마리아가 직접 낳은 자식이 아니라 결혼 전 잉태한 사실을 들어 '남의 자식' '데려온 자식'으로 보았지만 이방인들은 예수를 '요셉과 마리에게서 낳은 하나님의 친아들'로 믿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낳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마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둔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철저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절대로 '정의'편에 서있었다고 자부하고, 스데반이 순교 당할 때 '증인'으로 있었고(행 7 : 58),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고"(행 8 : 1), "교회를 잔멸하려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고"(행 8 : 3) 또 "여전히 살기가 등등하여 그 도를 좇는 자들은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행 9 : 3) 다메섹 도상에 이르렀을 때 하늘로서 큰 빛이 둘러 비추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행 22 : 7) 하는 음성을 듣고 "주여 뉘시오니이까"하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행 22 : 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울'시대의 신앙과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이후 '바울'시대의 신앙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사울시대의 '사울'은 하나님을 아주 잘 받들어 섬기는 의인으로 생각했고, 바울시대의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속죄 받은 죄인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방인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보았고, '재림주'로 보았고, '죄인의 친구'로 보았습니다.
3. 회개란 무엇인가
본문 32절에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였는데 이 '회개'가 무엇일까요?
①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의 시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무슨 죄인이냐? 나처럼 깨끗하게 살아라.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고 큰소리로 당당히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입니다. 지옥 아랫목에 들어갈 죄인 중 괴수들입니다. 이것을 먼저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여자들이 화장대 앞에 앉아 자기 얼굴을 화장할 때 제일 어려운 부분이 눈썹 화장과 입술 화장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했다고 하지만 거울 앞에서 다시 보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면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정성껏 면도했다 하지만 다시금 손으로 아래턱을 만져보면 껄끄러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화장 잘하고 면도 잘했다고 해도 거울 앞에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미흡한데가 있는 것처럼, 아무리 지하수를 정수기에 걸러 먹는다고 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병균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리 의롭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인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솔직히 시인해야 합니다.
②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를 '메타노이아'라고 하는 데 이것을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한문으로 돌이킬 회(悔)자와 고칠 개(改)가 합쳐 '회개'인데 돌이키기만 해서 회개가 아니고 돌이켜서 고치기까지 해야 진짜 회개입니다. 돌이키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반성(反省)에 불과한 것입니다.
토요일까지 열심히 범한 죄를 주일날 열심히 회개하고 또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열심히 죄짓고 하는 데는 진정한 회개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3 : 8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으며 만일 뉘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일이요, 삭개오가 그대로 실천했기에 주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③잃어버린 감사를 되찾는 것입니다. 면목동 어느 목사님이 천안 지방의 집회를 인도하러 가서 버스 터미널에 내렸는데 어느 여자 걸인이 다가왔습니다. 그 여자의 머리는 벼락맞은 것 같고 헌 누더기로 몸을 감았으며, 얼굴과 손은 검은 때가 더덕더덕 묻어있고 누런 이빨을 내놓고 히죽히죽 웃으며 적선을 요구하기에 얼른 그때 돈 천 원을 건네주었답니다.
그리고 한 주간의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려고 또 천안역전 고속버스터미널에 갔는데 또 그 여자 걸인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돈 천 원을 지갑에서 꺼내 이 걸인에게 주려고 했더니 거절하면서 "목사님이시죠?" 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는가?" 물었더니 "한번 보면 척 알 수 있죠. 요즘 세상에 누가 먼저 돈주는 사람이 있나요" 하면서 천안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서 안겨 주더랍니다.
그리고 차에 타고 있는데 그 앞 차장 밖에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하더라는 것입니다. 운전사가 비키라고 경적을 울리는데도 옆에 서서 계속 흔들며 잘 가라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차 타고 오면서 계속 그 여자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동안 그 여자보다 훨씬 많은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왔는데도 감사는커녕 오히려 불평 불만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나 하면서 회개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저 여자는 돈 천 원에 저렇게도 감사인사를 하고 또 하는데 나는 얼마나 감사를 해 왔는가" 하며 잃어버린 감사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한 이것이 바로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4. 회개의 결과는 무엇인가?
①죄 사함 받습니다. 요한일서 1 : 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회개의 결과로 제일 중요한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②능력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2 : 38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③유쾌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3 : 19에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오" 했습니다. 회개하고 나면 병 고침을 받고 그 몸이 건강하게 될 것입니다.
④증인이 됩니다. 시편 51 : 13에 보면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리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했습니다. '그리하면'은 '회개하면'입니다. 내가 먼저 회개하면 그 다음에 복음전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집니다. (199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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