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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4:30-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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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
[민병석 잠언 강해] 53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
본문 : (잠언 24 : 30 - 34)
오늘 잠언강해는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이란 말씀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 왕이 어느 날 나라 안을 시찰했을 때, 어느 농촌 포도원에서 게으른 농부에 의해 버려진 포도원을 보고 경계를 삼은 교훈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솔로몬 왕은 그 밭의 임자가 게으른 자요 지혜 없는 자라고 말하고 그 이유로써 그 밭의 형편을 예로 들었습니다. 31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그 밭에 가시덤불이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으며 돌담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본 솔로몬 왕은 생각이 깊었고 훈계를 받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이 말씀에 나타난 두 가지 교훈
이 교훈에는 두 가지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게으름에서 오는 결과에 대한 경종입니다. 이 일에 대한 결론으로 33절에 나온 말씀을 보면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손을 모으고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에 이 포도원에 대한 말씀에는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영적으로 풀이하여 우리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에 교훈을 삼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첫째로 이 포도원은 영적으로 교회로 비유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포 도원이나 포도나무에 대한 비유는 신구약 성경에 참으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포도원이라고 할 때는 이스라엘이나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고 포도나무라고 말할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유적으로 나타낼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5장에는 아름다운 포도원의 노래가 나옵니다. 1절과 2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에 대한 관리를 잘못한 탓으로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주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들 포도 열매를 맺음으로 이에 진노하신 포도원 주인의 심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1절과 2절에는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가꾸시는 정성과 깊은 사랑이 나옵니다. 교회란 우리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곳이기 때문에 기름진 땅이며 아름다운 곳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포도원인 교회를 가리켜 ‘나의 사랑하는 포도원이라’고 노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인 교회를 위하여 그 아들을 회생 제물로 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주셨으며 사도들을 보내셨고 많은 종들을 보내시어 그 포도원을 살펴보시면서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맺은 열매는 참 포도 열매인 것이 아니라 들 포도 열매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포도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뜻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피로 값 주고 사신 성도들은 그 몸의 각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대하여 더 하실 수 없을 정도로 사랑으로 은혜로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 포도원에 대하여 실망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교회에 대하여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사5:4절 말씀에서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 도를 맺음은 어찜인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포도 열매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으로 비유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들 포도를 맺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에 많은 포도원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에 항상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과연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좋은 포도를 맺고 있느냐고 물을 때, 좋은 포도가 아니라 들 포도를 맺고 있다는 책망을 들을 정도로 열매 없는 포도원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좋은 포도 열매인 것이 아니라 들 포도를 맺은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여 성도들로 음행하게 하였으며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사데 교회는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인즉 죽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좋은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의 입에서 토하여 내침을 당할 것이라는 경종을 내리셨습니다. 이 같은 교회에서 주님이 바라시는 좋은 포도나무의 결실을 어떻게 바랄 수 있을 것입니까? 그리하여 주님이 재림하실 즈음에 이르면 온 교회가 음녀 화되어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되며 진리에서 멀리 떠나게 될 것입니다.
2. 포도원의 폐허
그러면 어떤 포도원이 이처럼 처참한 자리에 빠지며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세 가지 사실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이 퍼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친 풀이 덮였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돌담이 무너졌다고 한 것입니다.
(1) 가시덤불이 퍼졌다고 했는데 그러면 가시덤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왜 하나님의 교회에 가시덤불이 퍼진 것입니까? 예수님은 마13:22절에서 가시 떨기에 떨어진 씨앗에 대한 비유의 말씀에서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를 가시 떨기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은 말씀의 결실을 맺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모든 교회의 형편을 살펴볼 때 점점 말씀에서 떠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멀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세속화된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종말에 있을 교회에 대하여 그들의 생활이 세속화될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모습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생활, 세속화된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세상에 속한 축복입니다. 성도들은 귀가 얄팍하고 가려워서 교훈과 심판을 경종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 싫어하고 세속화된 달콤한 세상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원하며 그런 말씀을 사모하며 듣기를 즐겨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순수하고 순결한 포도주인 것이 아니라 물에 탄 값싼 포도주요 세상 기복에 취한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며 즐겨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는 가시덤불이 퍼진 것입니다. 이 가시덤불을 제하지 않고서는 좋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다음에 포도원에 거친 풀이 덮였다고 했습니다. 풀이란 양떼들을 먹이는 꼴로써 생명의 양식을 말합니다. 시편 23편에는 유명한 다윗의 시가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양떼들은 언제나 목자가 이끄는 손길에 의하여 푸른 초장으로 인도 받아 꼴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풀은 언제나 순결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독초가 섞여 있거나 먹어서는 안 될 풀이 섞여 있으면 해로운 것입니다. 이런 풀이 무성한 포도원에서는 양떼들이 살아갈 수 없으며 젖을 짜 낼 수 없습니다.
(3) 다음에 돌담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돌담은 양의 우리를 말합니다. 요10장에서 예수님은 양의 우리에 대하여 의미 있는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포도원에는 울타리가 있어야 합니다. 양을 잡아먹으려는 못된 짐승들이 양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든든히 잘 쳐져 있지 않으면 양의 생명이 위험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의 우리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구원의 도리를 올바로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방법을 가르치며 믿음에 굳게 서게 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의 울타리를 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는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은 우리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안에 그 누구라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우리의 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절에서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 이외에는 생명의 주가 없으십니다. 교회에는 악한 세력이 양들의 생명을 노략질하기 위해 넘나 보고 있는데 그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오는 목자인 것이 아니라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들로 이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절도요 강도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양의 우리에 들어가 양의 생명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양의 우리를 든든히 쳐야 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그 문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떼들을 그 문을 통해서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근래에 우리 한국 교회만 보아도 많은 이단들이 발호하며 이상한 복음을 가지고 양의 우리를 넘어오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이처럼 이단들이 넘나들며 많은 양 무리들을 유혹하여 생명을 노략질하며 죽이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 왕은 말하기를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게으르면 그 포도원이 이 꼴이 되는 것입니다. 롬12: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목사가 게으르면 양떼들의 생명이 위협받습니다. 장로나 권사들이 게으르면 교회의 울타리가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는 가시덤불이 나게 되고 거친 풀이 돋게 되고 돌담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생교회 성도들은 지혜로운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부지런한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상도는 어떤 성도들입니까? 예수님은 마25장에서 미련한 처녀와 슬기 있는 처녀들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처녀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처녀들은 왜 등과 기름을 준비했습니까? 신랑을 기다리려고 그리 한 것입니다. 주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포도원의 일꾼들입니다. 포도원의 일꾼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의 생활에는 마음이 없고 세상일에만 분주하며 육신의 생활에만 마음을 쓴다면 결국 미련한 처녀가 되어 그 포도원은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이 되어 결국 버린바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을 한번 깊이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내 마음속에 이 같은 가시덤불은 없는지? 거친 풀은 없는지? 돌담이 무너지지는 않았는지? 살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신생교회를 아름다운 포도원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퍼진 가시 넝쿨을 뽑아냅시다. 거친 풀을 돋웁시다. 무너진 돌담을 다시 일으켜 세웁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어 제때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교회로 만듭시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를 이루시려고 신생교회를 이곳에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힘을 합하여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드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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