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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6: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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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
[민병석 잠언 강해] 56 미련한 자의 생애
본문 : (잠언 26 : 1 - 12)
잠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여기서 얻는 삶의 지혜는 우리의 생활에 많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잠언 1장에서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 할 것이요 명철한 자에게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미련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에 대하여 미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개의 경우, 자기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은 달라서 다른 사람을 지혜롭게 생각하기보다는 미련하게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미련한 사람인가? 잠언의 말씀을 따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잠언1: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미련한 사람의 경우를 보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들려주려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 자신의 지혜를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려주는 지혜를 받아 드리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이나 행동에 결국은 미련한 것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훈계도 늘 자기가 다른 사람을 훈계해 줄 입장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훈계를 받아 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사랑하고 훈계를 들을 만한 입장에 있다면 이미 미련한 사람의 자리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보겠습니다.
(2) 잠언 12:16절 말씀을 보면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사귀다 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렇지 이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구나’고 생각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에 미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아,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곰처럼 우직하고 양보를 모르고 자기 고집만 세우는 사람을 보고 미련하다고 판단하지만 모든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에 그 분을 나타내는 사람과는 결코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미련한 일이 자기에게 해로 미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슬기로운 사람은 수욕을 참는다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그 사람은 밸도 없나? 그럴 때 한번 따끔하게 대들지 않고, 그런 창피를 당하고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 자리를 걷어차고 나올 일이지, 그러나 이렇게 자기감정을 당장에 나타내는 사람보다 수욕이나 자신에게 오는 창피를 참는 사람이 슬기 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에서는 칭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슬기로운 사람이란 말을 들으려면 수욕을 당할 때 상대방과 싸우지 말고 그 수욕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욕하고 그 사람과 싸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참는 일은 슬기로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분내는 일이 미련하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분은 좌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시 4:4절에서 ‘너희는 분 내어 범죄치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딛 1:7절에서도 ‘급히 분내는 사람은 감독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3) 세 번째로 미련한 자의 특성이 잠18:2절에 이처럼 나와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여러 층의 사람들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교제하지 않아도 누가 미련한 사람인지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지 곧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쉴 새 없이 내세우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다른 사람이 말을 하려고 하면 중간에 그 말을 가로채서 자기 견해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보거든 아, 저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을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좌중에 앉아 있다면 이런 사람과 말다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입을 봉하고 가만히 있어야 망신을 당하지 않습니다. 함께 입을 열면 똑같이 미련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잠 23:9절에서 교훈해 주시기를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4) 다음에 잠 20:3절에서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고 했습니다. 다툼은 언제나 미련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어떤 모임에서도 다툼을 일으키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툼을 멀리하고 언제나 화평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산상보훈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다툼을 쉬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미련한 사람인 것입니다.
(5) 잠 28:26절에서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을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기 스스로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고전 3: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따라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판단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형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보다 백배나 지혜롭기 때문입니다.
(6) 잠언 29:20절 말씀에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더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말을 참지 못하고 조급하게 발설하는 사람에 대하여 경종하신 말씀입니다. 말을 참지 못하고 들은 말을 빨리 옮기는 사람은 대단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서 한마디 실수라도 하면 그 사람은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이 조급하다는 말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이런 버릇 가진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당신만 알라는 식으로 비밀한 말을 했다 간 몇 시간이 안 되어 그 소문이 확 퍼지고 맙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좀 언짢은 말을 들으면 당장에 그 사람을 찾아가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을 성경에서는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미련한 사람은 그 미련함을 고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잠 27:22절에서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나온 본문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말에게는 ? 나귀에게는 ? 미련한 자의 등에는 ? 막대기라고 했습니다. 왜 미련한 자에게는 소망이 없는 것입니까? 미련한 자의 특징은 지혜를 싫어하고 훈계를 멀리하기 때문에 고칠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련한 자가 가지고 있는 소유는 무엇입니까? 잠14:2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2. 미련한 자에게 있는 일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예란 영광스러운 직책이나 명예 또는 권세나 권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미련한 자들이 그들이 가져서는 안 될 명예나 권력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련한 자가 한 나라의 권력을 잡거나 명예로운 자리에 앉는다면 그 불행이 사회 전반에 미칠 수도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세계 평화에 위협을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진주만을 공격하여 세계 제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도조 같은 자는 참으로 미련하기 그지없는 인물입니다. 이 자의 미련한 생각과 행동이 전 세계에 전쟁을 가져 왔고 이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존재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여 그가 죽어라고 해 놓는 일이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게 되어 자신에게 저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자가 세상에 가장 비극적인 미련한 일을 행하는 일이 계9장에 계시되어 있는데 이 자에 의해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고 세계가 폐허화되는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는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을 대적하는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켜 그 결과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산채로 붙잡혀 불 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들이 하는 일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일입니다. 미련한 자들은 남에게 까닭 없는 저주를 잘 합니다. 성경에서는 남에게 축복을 해 주면 자기가 복을 받고 남에게 저주를 하면 그 저주가 자신에게 임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미련한 사람들과 상대할 때 우리는 그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혜로운 사람들만 상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때로는 미련한 사람들과의 교제가 불가피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적당할 때에 침묵하고 적당할 때에 말을 해야지 이런 일에 지혜를 쓰지 못하면 그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에게 가까이하는 사람들과 사귈 때 미련한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미련한 사람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질문에 지혜로운 답변을 해도 그 답변 역시 어리석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답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으로 자기가 지혜자로 잘못 알게 될 것이기 때문에 대답할 말과 대답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구별하여 지혜롭게 처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미련한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나 심부름을 시키지 말라고 경종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뒤쫓아 죽이려던 사울 왕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이 소문을 어느 아멜렉 소년에게서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사울 왕이 전쟁에서 부상을 당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왕이 자기를 죽이라고 명하기로 그가 살아날 것 같지 않으므로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머리에 씌어 있던 왕의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다윗 왕에게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은 다윗에게 가장 좋은 소식인 줄로 알아 왕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보상을 받을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아멜렉 소년은 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식은 결국 자기의 생명을 죽이기에 이른 것입니다. 미련한 자 편에 소식을 전하는 것은 마치 자기의 발을 배어 버리는 것 같은 해를 당한다고 한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과연 이 미련한 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 아닌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훈계를 들어서 바른 행위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처럼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여 그 지혜로 지혜로운 삶을 살아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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