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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8: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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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
[민병석 잠언 강해] 61
죄를 자복하는 자의 복
본문 : (잠언 28 : 1 - 13)
오늘 밤 잠언 강해는 죄를 자복하는 자의 복에 대하여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중에 1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13절 말씀을 따라 읽겠습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 그러나 그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어떻게 여김을 받으리라?고 하셨어요?
1.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
죄가 무엇이냐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적인 죄와 세상적인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죄란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죄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 최초의 죄인으로 성경에는 아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지은 죄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먹은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죄가 될 것인가? 사람이 무엇을 먹었다는 것이 죄가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잘못되면 기독교는 큰 타격을 입게 되며 오늘날 많은 이단자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의 행위가 왜 죄가 되어 무서운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까? 아담의 죄는 선악과를 먹은 그 행동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먹은 불순종에 있는 것입니다. 비록 선악과를 먹는 일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그 어떤 것이라도 불순종하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고 율법에서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적질을 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모두 죄인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왜 죄인이냐에 대한 해답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인간은 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은 아담의 죄를 물려받게 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죄를 원죄라고 부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유전죄인 것입니다. 아담이 지은 죄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유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다 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한 분, 예수님만이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 분은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분에 대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분은 아담의 피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이런 사실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1) 첫째로 사람 중에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구원 받을 만한 존재가 사람 중에는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가 하나님을 믿었을 때 비로소 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고백하기를 ‘모친이 죄 중에 자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2) 둘째로 사람은 모두 죄인이므로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해 줄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도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죄인이 더군다나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거나 의를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사람 중에는 그 누구도 천국이나 구원을 약속하는 어떤 종교의 교주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해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빌린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모두 도적이요 강도들이며 사람의 생명을 노략질하는 이리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좋은 교훈을 가르치며 훌륭한 말을 남겼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적인 교훈일 뿐 구원이나 의를 얻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처럼 원죄를 안고 태어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도 많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 열매를 딸 수 없는 것처럼 죄인은 이 세상에서 죄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죄를 기독교에서는 ‘본죄’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한 나무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포도나무로 비유하면 들포도나무요, 감나무로 비유하면 돌감나무인 것입니다. 아담이 죄인이요 우리도 아담의 자손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이 나무는 죄 가운데 생겨난 악한 나무요 이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열매는 악한 열매로 죄의 열매인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 악한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나무 그 자체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1:10절에서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않았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인간이 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죄를 버려야 합니다. 이 죄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버리지 못한 인생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사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맹자의 경우에나 석가의 경우에나 아브라함의 경우에나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죄에 대하여 그 죄를 버리는 방법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이 선행을 하면 우리의 죄가 소멸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종교에 귀의하여 그 종교를 따르는 생활을 하면 죄를 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더욱 죄가 가중되고 더욱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질 뿐입니다. 죄를 버리는 방법은 오직 한가지뿐입니다. 그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죄를 자복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요일1:9절에 있는 말씀을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자복한다는 말은 자신이 행한 자신의 불의한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했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자기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아뢰는 일을 죄의 자복이라 하고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인 것입니다.
회개는 입으로 자기 죄를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지만 사실인즉 자신의 마음을 찢는 일을 말합니다. 욜2:13절에서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고 했습니다. 옷을 찢는다는 말은 형식적인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 곧 죄의 자복은 마음에서 나와야 합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한 회개여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하여 정말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죄를 계속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일은 외식적인 회개이며 거짓된 회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찢는다는 말은 다시는 그 같은 죄를 범하는 일을 단념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해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결심이 따르는 회개를 말합니다. 그래서 죄를 자복하는 일에는 통회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은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함으로 우리는 그 죄에서 용서를 받고 죄를 버릴 수 있는데 이것은 다만 죄를 자복한 일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서 용서 받는 것도 아니며 회개에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의 용서에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 흘리신 피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이건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그 죄에서 용서를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죄를 씻을 길도 없으며 죄를 버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면 이 같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때문에 그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아무리 죄를 자복하고 선행을 하고 선한 교훈을 따른다고 해도 자신의 죄의 처리를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3. 죄를 자복하는 자의 축복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죄를 자복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축복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죄를 자복한 자의 죄는 그 어떤 죄라도 깨끗하게 씻음 받을 수 있습니다. 사1:18절에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홍 같은 죄란 더 붉어질 수 없는 죄로 죄인 중의 괴수 같은 자의 죄라도 그 죄가 눈처럼 희어지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에서 말하기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죄수니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하여 사44:2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을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사라진 구름은 다시 뫃아 드릴 수 없습니다. 사라진 안개는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회개한 우리의 죄를 이처럼 없애 버리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 대하여 히9장에서 증거하시기를 ‘염소와 황소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떤 죄이건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복하는 회개를 하셨다면 그 죄가 어떤 죄이건 이미 사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고 다시는 그 죄의 길을 걷지 마시고 그 죄로 인하여 고민도 하지 마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 같은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과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죄사함의 방법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자복한 죄에 대하여 이미 용서 받은 사실을 믿고 마음에 기쁨과 감사와 평안을 가지고 내가 이제부터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주님을 위한 새로운 생애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회개와 믿음의 생활을 기뻐하시고 그 같은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에 죄를 자복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를 주십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바울은 롬5:18절에서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의는 죄를 자복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면 그 죄의 용서 뿐 아니라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의를 주심으로 나를 의롭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다음 세 번째로 죄를 자복한 사람의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자복한 죄에 대해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 용서 받은 죄에 대해서 다시 책망을 듣거나 그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범하면 우리는 그 죄에 대해서만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용서 받은 지난날의 죄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용서 받은 죄는 영원히 씻음 받았다는 사실을 믿고 감사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들이 우리의 죄를 자복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할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죄를 숨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 앞에 숨겨질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숨김없이 하나님께 자복하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로 하나님의 축복 받는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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