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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29:1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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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민병석 목사 |
참고 : | 신생교회 http://www.bamjoongsori.org |
[민병석 잠언 강해] 65
지혜로운 자의 생애
본문 : (잠언 29 : 17 - 27)
지혜로운 자의 생애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장식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생애는 자기의 그 미련함이 자기 인생의 함정이 되어 자기 인생을 고난 가운데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밤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생애인가에 대하여 지혜자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생애의 기울로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 자식을 주 안에서 키우라
본문에서 제일 먼저 우리에게 교훈해 주시는 말씀은 자식에 관한 권고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선물이란 말씀은 성경적인 견해입니다. 그런데 사실인즉 자식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자식 때문에 많은 부모들이 골치를 썩히는 것입니다. 품안에 자식이란 말이 있듯이 자식이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지면 부모를 알기를 우습게 알고 부모에게 고분고분 하는 것은 구시대의 낡은 풍습이요 이제는 반항도 하고 불순종하기를 보통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딘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잘못은 어디에 근거하고 있습니까? 18절에서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식을 키울 때, 하나님의 묵시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지 못한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부모를 평안하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주도록 그 자녀를 키우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네 자식을 어떻게 하라고 하셨어요? (징계). 그리하며 그 자식이 커서 그 부모에게 어떻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까? (평안하게 하겠고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자식에 대한 징계는 신약이나 구약에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13:24절 말씀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차마 못한다는 말은 자식이 애초롭고 안타까워 손을 댈 수가 없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사랑스럽다고 그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가고 부모를 거역하며 죄를 범했는데도 방치하거나 못 본 채 그냥 지내 버린다면 그런 일은 결과적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미워하는 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미워한다는 말은 그로 인해 그 자식의 생애가 불행해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지금 교도소에서 비참한 형살이 하고 있는 불량 청소년들을 보면 부모로부터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난 애들이 많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잠19: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2:15절에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매를 가지고 자식을 키우라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채찍을 들어 때릴 때는 때리되 그런 매질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손길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시키는 하나의 방편으로 사랑의 매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올바른 징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근실히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자식이 장차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자기 부모를 평안히 하고 부모의 마음속에 기쁨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2. 언어에 조급하지 말라
다음에 지혜로운 자는 그 입의 말에 조심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사람들이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진리입니다. 언어에 조급하다는 말은 말에 대한 책임이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대개 하나님께 경솔히 서원하고는 곧 서원을 잊어 버리거나 감당할 수 없어 배반하는 사람이 이런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과 쉽사리 약속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그 약속을 쉽게 파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무슨 말이나 말을 참지 못하고 깊은 생각도 없이 조급하게 하는 말에는 반드시 함정이 따릅니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를 담임하고 책임지고 있는 주의 종에게 약속하는 일은 하나님과의 약속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의 일이니 17년이 넘은 일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엄청나게 많은 건축헌금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그 건축헌금을 내지 않은 채 다른 교회로 옮겼습니다. 그 후 소식이 감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길에서 만났는데 곧 낼 듯이 약속하더니만 그 후 소식이 또 끊겼습니다. 그러다가 엊그젠가 길에서 또 만났는데 일간에 곧 찾아 뵙겠다고 또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간이란 기간이 몇 년이 지나는지는 몰라도 아직 찾아오기는 고사하고 전화 한마디 없습니다.
지키지도 못할 말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쏟는 사람은 그의 생애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는 징계가 따라오게 되고 사람으로부터는 신용 타락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신임과 신용은 그 사람의 양심을 보여 주는 것이요 그 사람의 인격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번 입에서 나온 말은 그 책임을 질줄 알아야 사람다운 사람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한번 약속한 것은 그 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고 재산상 불이익이 온다고 해도 꼭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약속에 있어서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에 조급한 것입니까? 말만 해 놓고 실행이 없는 사람이 말에 조급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하는 일에는 명수입니다. 기도하라면 단 5분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과 흉을 꺼내 놓고 말하는 데는 한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루 종일이라고 모자라는 것입니다. 아마 그 입심 가지고 기도하는 일과 전도하는 일에 쏟을 수 있다면 얼마나 유익하고 보람있는 생애를 살아갈 것이며 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조급한 입술을 제어하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말만 조심스럽게 할 수 있어야 입으로 말미암아 재앙을 받지 않고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야 합니다. 다윗은 시141편에서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같은 기도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있어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은 참지 못하고 방정맞기 때문에 하나님이 파수꾼을 세우셔서 지켜 주셔야 온전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우리의 혀에서 나오는 악한 말과 거짓된 말과 속이는 말과 남을 비방하는 말 등이 어디서 나온다고 하신 것입니까? 약3:6절 말씀에서 혀에 대하여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라고 했습니다. 혀는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는 지체 중에서 가장 적은 것이지만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히는 것이 이 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혀에서 나오는 악한 말은 어디서 나온다고 했어요? ‘지옥 불’에서 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알 때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우리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해야 하나요, 하지 않아도 되나요?
(3) 다음에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에 실수가 없기 위해 우리의 혀에 재갈을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약3:2절에서 사람이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으려면 그 입에 재갈을 먹여야 하는 것입니다. 약1:26절에서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혀에 재갈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는 우리의 입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3. 분노하지 말라
다음에 지혜로운 자는 분노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분노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느냐, 아니면 우리를 해롭게 하느냐’ 이에 대한 해답을 22절 말씀에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노하는 자는 무엇을 일으킨다고? (다툼)
여러분, 모든 다툼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사람의 분노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노한다는 말은 성을 낸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의 말에 성을 내면 그 대화는 싸움으로 시작되어 싸움으로 끝나 버립니다. 누구와 싸우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성을 내보세요. 당장에 싸움판이 벌어질 것입니다. 분을 품는 일은 만약 그 분이 풀어지지 아니할 때 그 분이 끝내는 범죄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가인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두 형제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을 때,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 가인은 심히 분하여 했다고 했습니다. 가인이 분하여 안색이 변했을 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냐’고 하셨습니다. 가인의 분은 결국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이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분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을 내되 그 분을 하루 종일 마음에 품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분을 삼가는 일은 그 분을 마음에 오래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절제와 사랑으로 분을 내지 말고 슬기롭게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4. 교만하지 말라, 사람을 두려워 말라
다음에 지혜로운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에 대하여 23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어떻게 된다고 했어요(낮아지게). 겸소하면 무엇을 얻어요(영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단히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교만한 자에 대해 성경에서는 명백하게 만인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밝혀 놓으셨습니다. 첫째 교만한 자는 낮추신다고 하셨습니다. 돈이 좀 있다고 교만한 사람들을 보세요. 하나님이 그들을 낮추실 때 어떻게 됩니까? 영락없이 쇠고랑 차고 유치장에 들어갑니다. 권세를 가지고 교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박정회씨는 어떻게 되었고 전두환씨는 어떻게 되었으며 노태우씨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김영삼씨 역시 자신이 누렸던 권세에 비해 너무나도 비참한 자리에 내려앉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대적자가 되면 그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으로 교만을 버리고 스스로 낮아질 때까지 연속적으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에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25절 말씀을 보세요. ‘사람을 두려워하면’ 무엇에 걸린다고 했습니까? (올무).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결론 : 여러분,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온갖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을 제일주의로 삼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처럼 지혜로운 삶을 살아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어 범사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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