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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1:2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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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5·11·26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이 자리에 나온 당신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와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각자 맡은 일에 심혈을 기울여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특히 요즘 사회는 적당히 일하고 돈 버는 일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적당히 대충 일하는 사람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오늘 주님 앞에 나올 때 어떤 자세를 가지고 오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배하러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된 자세로 나온 성도라야 주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풍성하게 받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와 삶에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경험되지 못하고 있다면, 이유는 우리가 준비되지 못한 채로 나와서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 뵙고,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힘입기 원한다면 준비된 마음, 사모하는 갈급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세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까? 오늘은 특별히 성찬식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되며, 그 결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찬식의 유래와 의미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 성찬식은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23상) 오늘 우리가 참여하고자 하는 성찬식은 사람이 생각해낸 예식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이 예식을 세우시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곧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23하-25)
주님께서는 탁월한 선생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몸을 찢기시며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를 흘려 죽으신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망각의 명수들입니다. 그토록 감격하던 큰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곧 우리의 믿음과 은혜가 식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탁월한 선생이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복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 이처럼 성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게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가지 전하는 것이니라”(26절)
여기서 우리는 성찬식의 의미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피를 흘려 죽으신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시간에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임재하사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새롭고도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특별히 이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면서 도무지 마음이 열리지 않고 은혜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와 주님께서 제정하신 이 신령한 예식이 진부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이번에는 혹시 색다른 은혜를 경험하게 될까 하고 기대했다가, 또 다시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바울은 본문에서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 예식에 합당치 않게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27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29절) 그 결과는 더욱 두렵습니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30절) 성찬식에 합당치 않게 참여하는 것은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약해지고 병들며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심각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떡과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애찬
고린도 교인들이 이 성찬에 합당치 않게 참여했던 모습이 17-22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모일 때 각자 집에서 음식을 가져와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요즘처럼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공동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식사 중에, 또는 식사가 끝난 후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공동식사에서 생겼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자들은 좋은 음식을 가져왔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거나 아예 음식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식사를 할 때가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부자들이 자기들이 싸온 좋은 음식을 부자들끼리만 먹었던 것입니다. 부자들은 자기들끼리 배부르게 먹고 포도주를 취하도록 마셨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성도들은 더욱 배가 고팠으며,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분쟁과 원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자 성도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사랑하기는커녕 그들을 멸시했고, 더 나아가서 시험에 들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악하고 부끄러운 죄입니까?
그런 상황에서 성찬식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먹고 마시는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타락은 육체적인 질병을 유발시켜, 그들 중에 병든 자들이 많고 죽는 자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고린도 교인들이 이 거룩하고 엄숙한 성찬식에 잘못 참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살피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죄와 심각한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진정으로 특별한 주님의 은혜를 힘입기 위해서, 이 예식에 참여하기 전에 자신을 살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28절) 우리는 먼저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준비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여 먼저 회개하고 바로 서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이 예식에 참여한다면 우리 역시 자신의 죄를 먹고 마시며, 주님의 몸을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살펴야 할까요?
무엇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나의 죄를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향한 뜨거운 감사와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희생과 사랑을 통하여 주님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뜨거운 열심과 결단이 있습니까? 주님은 나를 위해 거룩하신 몸을 버리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충성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정말 믿음으로 살기로 새롭게 결단하며 더욱 힘쓰고 있습니까?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자신을 살펴볼 때 우리는 주님 앞에 너무나도 불충하고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살펴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자신의 죄와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했다면 진정으로 회개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이러한 자신의 죄와 부끄러운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고, 그래서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뻔뻔하고 가증스런 모습입니까? 그렇게 하면서 무슨 은혜와 축복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주님께서는 얼마든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회개한 심령으로 예배를 드리며, 이 예식에 참여할 때 친히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시고, 특별하고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성찬식에 참여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결단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떡과 잔에 참여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이번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께서 나의 마음속에 찾아오셔서 나를 만나주시고,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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