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몸에 맞는 옷이 좋습니다.

역대하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25 추천 수 0 2010.05.24 22:50:10
.........
성경본문 : 대하22:10-1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중국 역사의 240여 명의 황제 중에서 유일한 여자 황제가 있습니다. 무측천입니다. 『측천무후』라고도 합니다. 상인의 딸로 태어나 당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아들인 당고종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와 아들의 아내가 된 패륜을 저지른 여인입니다. 당태종이 죽자 궁에서 절로 쫓겨나 비구니가 되었지만 절을 방문한 고종을 유혹하여 왕궁에 다시 들어가 자신을 돌보아 준 왕황후와 소숙비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어느 정도 잔인했는가 하면 그들을 벌거벗긴 채 난장 1백대를 치고 손과 팔을 절단한 뒤 술항아리에 담아 죽어 가게 하였다고 합니다. 황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여 갓 태어난 딸을 죽이고 고명신들을 모조리 죽였고, 세자도 차례로 죽이거나 갈아치우길 4명이나 했던 독녀입니다. 친언니가 궁중에 드나들며 고종을 홀린다고 절구에 찧어 죽이기도 하였고 미소년 장형제를 침실에 드나들게 한 것을 만류한 삼촌 사촌 일가족을 증발시키기도 한 독녀였답니다. 28년간의 황후, 6년간의 태후, 15년간의 황제로 근 50년 간 권좌에 있었던 여인, 그녀에 대하여 “측전무후”라는 책을 쓴 임어당은 "무측천은 중국 역사상 가장 교만하고 가장 음탕하고 가장 허영끼가 있고 가장 고집스럽고 가장 명성이 나쁜 황후이며", "역사상 가장 흉악하고 잔인한 살인마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유다 20대 왕 가운데도 이렇게 잔인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권력에 굶주린 여인, 음모와 살인의 화신이 된 악녀로 유대 역사 상 유일하게 여왕인 된 오늘 나오는 제 7대 왕 아달랴라입니다.

아버지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입니다. 왕의 딸 공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세상에는 공주가 아닌데도 공주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은 진짜 공주로 태어나 공주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자신이 최고가 되지 않으면 못견디는 여인입니다. 남편도 아들도 경쟁 대상이고 지배 대상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얼마나 화려하고 희망찬 출발이었습니까?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 왕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자입니다. 부모의 권력이 내 권력이 되고 부모의 부가 내 부가 되는 시대입니다. 자라면서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지식이 있는 사람이나 부자나 모두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일반 사람과는 환경이 달랐습니다. 자랄 때부터 모든 사람의 중심에 서고 싶은 심리가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자신의 성격을 잘 못 형성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달랴의 어머니 이세벨은 악녀였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엘리야를 죽이려고 독기를 품은 사람입니다. 궁중에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 학교를 만들어 놓고 850명의 선지자를 기를 정도로 철저히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철저히 미신을 섬기는 집안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이 비를 내려 주어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철저히 믿고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섬기던 신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미신적 사고를 탈피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믿는 집안으로 시집을 간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그것도 적당히 예수님을 믿는 집안이 아니고 철저히 예수님을 믿는 집안입니다. 당시 남북으로 나라가 나누어졌었는데 아버지가 그녀를 정략적으로 남쪽 나라의 왕자와 결혼을 시켰습니다. 자신의 집안과 전혀 신앙적 배경이 다른 집이었지만 사돈을 맺음으로 이익을 보기 위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남쪽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결혼하였지만 지옥에 갈 인생이 천국 갈 인생으로 바꾸어질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이방신의 노예로 사는 인생에서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추한 이방문화를 벗어버리고 우아한 하나님의 백성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아달랴에게는 어릴 때 주어진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그 기회를 선용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여 결혼하기 전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사람은 결혼하여 오히려 결혼 전보다 더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댤랴는 결혼하므로 더 불행해진 사람입니다.

아달랴가 시집을 갔을 때 심각한 환경 충돌, 문화 충돌을 만났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심각한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집 오기 전에는 친정은 모든 것이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문화였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개업을 할 때도, 이사를 할 때도 모든 삶이 바알신에 지배되는 문화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달라졌습니다. 시집에 와보니 시아버지가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다 제거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일년에 12번씩 제사를 지내었는데 시집에 와 보니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며 하나님을 섬기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아달랴는 어릴 때 잘못된 환경 속에서 주어진 그릇된 신앙을 바꿀 절호의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녀에 있어서 인생의 비극은 바알과 아세라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만 버려버리면 인생이 달라지는데 그것이 가시가 되어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달랴의 잘못된 신앙은 남편에게 심각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남편을 비참하게 죽게 만들고 아들들을 처절한 죽음의 고통으로 처넣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있을 때는 감히 남편의 마음을 노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남편 여호람이 32살에 유다 나라의 5대 왕이 되자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본색이 들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왕이 되자 마자 동생들 6명을 칼로 죽여 버렸습니다. 동생들에게 준 성을 다 빼앗고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견제 세력인 신하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섬기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아내가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자기만 바알 신을 섬긴 것이 아니라 유다 여러 곳에 산당을 세워 백성들에게도 섬기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려버렸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회개하고 돌아 올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만약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그만 두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 전쟁으로 자식들이 죽을 것이고 왕은 중병에 걸려 비참하게 죽을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릇된 길을 갈 때 말씀을 전하는 자의 입술을 통해 경고해 주십니다. 그대로 계속 달려가면 낭떠러지가 나오니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달랴의 남편 여호람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계속 죽음의 길을 향해 질주하였습니다. 결국 아버지 때에 조공하던 블레셋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쳐들어와 한 아들만 남겨 놓고 자식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정도되면 아내된 사람으로 “우리 잘못되었으니 빨리 그 쓴뿌리를 다 내어버리고 예수님 믿고 삽시다.”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회개하지 않습니다. 결국 남편이 왕이 된지 6년 만에 38살에 불치의 병이 결렸습니다. 심하게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2년 동안 고생을 하는데도 하나님께 돌아 오지 않습니다. 남편이 죽자 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왕실의 묘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아달랴의 남편 여호람이 이렇게 인생을 비참하게 살다가 죽게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대하 21장 6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라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쓴 뿌리 때문에 남편의 인생을 망하게 만든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아들들의 인생을 망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아들들이 다 죽고 막내만 살아남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여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고 싶었던 것같습니다. 지금 말하면 북한 김정일의 딸이기 때문에 남쪽을 공산화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바알의 지배력을 유다에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시숙들도 없고 장성한 아들도 없고 왕의 정책에 반대하는 신하들은 모조리 죽여 버렸으니까 자신이 정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달랴를 왕으로 세우지 않고 청년이 된 아하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22살에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데 그 아들도 인생이 비참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바알신을 섬깁니다. 외삼촌을 도와 전쟁에 나갔다가 외삼촌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로 외삼촌의 문병을 갑니다. 그런데 그 때 예후가 반역을 하여 외삼촌도 죽고 자신도 죽음을 당했습니다. 왕이 된지 1년 만에 타지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들의 인생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것도 아달랴의 꾀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2장 3절을 보십시오.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 모친이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남편과 아들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악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탄의 도구가 되어 타인의 인생을 망치는 여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죽으면 정상적인 어머니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손자 손녀들을 위로하고 어떻게든 나라를 안정시키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욕이 강한 아달랴는 달랐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자 아달랴는 자신이 정권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자 왕이 될 만한 손자들을 다 죽여 버린 것입니다. 악녀의 본색을 드러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습니다. 이 때 제사장에게 시집을 간 공주 여호사브앗이 요아스를 구하였습니다. 유모와 한 살된 동생 요아스를 침실에 숨겼습니다. 아달랴는 그를 죽이기 위해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6년 동안 선전에 숨겨 길렀습니다. 결국 요아스가 7살이 될 때 제사장을 비롯하여 뜻있는 대신들과 국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아달랴를 제거해 버렸습니다. 영원히 집권할 것같던 아달랴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6년 만에 혁명군의 칼에 거리에서 비참하게 죽게 되었습니다. 아달랴는 공주로 화려하게 인생을 시작했다가 왕이 되어 비극으로 인생을 마친 여인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유일한 여왕이지만 그 유일은 창조적 유일이 아니라 파괴적 유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은 유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 받는 유일이 되었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일평생 산 여인이 되었습니다. 살면서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는 잔인한 여인으로 40대에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자식들에게 악을 가르치는 어미가 된 사람입니다. 아들 아하시야를 악한 자로 키움으로써 간접적으로 다윗 왕가를 몰락시키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윗 왕가의 씨를 전멸시키고자 하였습니다. 메시아를 탄생시킨 유다지파, 다윗의 씨를 완전히 없애려고 했습니다. 메사야 탄생을 방해하려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의 노리게로 한 평생 쓰임받은 여인입니다. 가면을 쓰고 일평생 산 여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달랴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존귀하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빛의 천사로 위장하고 인생을 산 것입니다. 이름만 그렇지 실제로는 철저히 여호와를 대적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달랴의 인생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평생 산 여인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옷도 제몸에 맞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몸에 맞는 옷이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롬 15:4)”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아달랴의 인생이 그저 아무 의미없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인가 교훈을 주시기 위해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옷을 입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 시간 일반적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업적의 옷, 인격의 옷, 관계의 옷으로 나누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며 크든 작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업적을 남기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업적의 옷, 사역의 옷
아달랴는 6년을 왕위에 있으며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유익을 주는 업적은 한 가지도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분은 대단한데 그 신분에 맞지 않게 업적의 옷이 초라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아스가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6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기간의 주인공은 요아스로 나와 있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되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왕권을 잡았지만 성경 기자에게 있어서 그녀는 엑스트라에 불과합니다. 끼어든 인생에 불과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공주가 동생 요아스를 어머니의 살해 음모로부터 피하게 하였습니다. 유모와 함께 피신을 시켜 요아스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장에 제사장 여호야다가 혁명을 일으켜 요아스를 제 8대 왕으로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혁명으로 그녀는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15)

그녀가 왕비가 되었을 때 한 일은 남편을 타락시켜 아주 폭력적으로 정치하다 비참하게 죽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21장 4절을 보십시오. 남편 여호람이 왕이 되자 아우들과 신하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데 그 원인 어디에 있다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까? 6절에 보십시오. 그 원인이 아달랴에게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녀가 왕의 어머니가 되었을 때 아들을 꾀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아들 아하시야가 22살에 왕이 되어 단 1년간 통치하다 객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2장 3절을 보십시오. 그 이유도 성경은 아달랴에게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왕비가 되었을 때는 남편을 망하게 하고 태후가 되었을 때는 아들을 망하게 하는 일이 그의 일의 전부였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었지만 6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한 일이라곤 손자들을 죽이고 혁명으로 자신도 도망하다 죽은 일 밖에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만큼 가치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달란트와 은사를 주십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사회를 위해 업적을 남기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신분에 맞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울은 왕의 신분을 받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몰락으로 가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유다도 제자로 신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분으로 오히려 예수님을 인신 매매하였습니다. 니골라 집사도 일곱 집사님 중의 하나로 신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분으로 이단이 되어 역사속에 수치스런 인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좋지 않는 환경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 환경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극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좋지 않은 환경을 극복하고 한 시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보며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일본에서 재벌이자 미국에서 가장 큰 할리우드의 영화사를 소유한 마쓰시다는 가난한 집에서 몸이 약한 아이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굴지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이 주신 세 가지 은혜 덕에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라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신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게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온갖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세상을 살아 나가는 동안 둘도 없는 재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자신을 허약한 신체를 가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 이를 이기기 위해 항상 운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90세에도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자신을 초등학교도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것들을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만난는 사람 전부를 스승으로 삼고 배웠다는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환경 그것 때문에 망하는 인생이 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에 업적을 남기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예수님을 닮은 성숙한 인격을 통해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의 옷
10절은 아달랴의 인격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분에 맞지 않는 인격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신분에 걸맞은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이 자신의 친정 집, 북 이스라엘 오빠의 문병을 갔다가 예후의 혁명으로 죽었습니다. 참으로 애통한 일이었습니다. 오빠를 도와 전쟁을 하다가 자신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슬퍼하며 며느리를 위로하고 손자들을 잘 돌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댤랴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짓을 합니다.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가문을 살리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손자 손녀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권력욕 때문입니다. 권력에 굶주린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아라비아 사람들이 쳐들어와 막내 아들 여호람만 살려 놓고 다 죽여 버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죽고 이 아들이 어렸습니다. 이 때에도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22장 1절에 보면 예루살렘 거민이 막내 여호람을 왕위에 세웠다는 것을 보면 그 때에도 권력을 잡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23살에 죽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대권을 이을 손자들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권력욕이 있습니다. 지배욕이 있습니다. 이것이 잘 못 사용될 때 인간을 인격을 더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힘을 잘 못 사용하여 역사상에 광기를 부린 권력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로마제국 시대의 네로, 칼리굴라를 시작으로 영국의 헨리 6세, 프랑스의 샤를 6세, 스웨덴의 에릭 14세, 히틀러와 스탈린 등이 그들의 더러운 인격으로 얼마나 많은 악 영향력을 미쳤습니까? 과학적 의미에서의 힘이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을 말하고 사회적 의미에서의 힘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신분에 걸맞는 힘을 줍니다. 능력을 주고, 실력, 권력, 세력, 체력, 재력, 매력, 영력을 줍니다. 그러면 그것을 통해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용하거나 남용하면 나쁜 영향력을 미치는 추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권력의 이동(power Shift)"에서 권력의 원천은 폭력. 부. 지식이라고 규정한 엘빈토플러는 폭력은 가장 질(質)이 낮은 저품질의 권력이라고 했습니다. "기업들의 전쟁"이라는 책에서는 힘있는 기업이 어느 날 힘을 잃는 이유는 "자기 만족(complacenct), 과신(confidence), 오만(conceit)"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의 화신"이라고 말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세상 사람들은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비윤리적이고 기만적인 방법을 서슴없이 감행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40년 동안 왕권을 가지고 통치했던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 우리 하나님께서 힘의 근원이십니다. 힘을 얻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지지 않는 인생이 될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근원적인 문제에 있어서 두 종류의 인생들이 있습니다. 힘의 원리로 사는 사람과 은혜의 원리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원리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안에 살다 보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인격의 성숙한 옷을 입을 때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와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관계의 옷
아달랴는 바알을 믿는 집에서 태어나 바알을 위해, 바알과 함께, 오직 바알을 전파하는 인생으로 살다가 비참하게 인생을 끝마쳤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관계의 옷을 잘 못 입은 것입니다.
아달랴가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고자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권력욕에 사로잡혀 권력만 쥐기 위해서일까요? 그것만이 모든 이유가 될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혁명을 일으키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혁명을 일으킨 후 무엇을 합니까? 아달랴를 죽이고 바로 한 일이 23장 16-17절에 나와 있습니다. 무엇을 합니까? 요아스을 8대 왕으로 세우고 백성들과 언약을 세웁니다. 여호와의 백성이 되겠다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아달랴가 세웠던 바알의 당을 다 제거해 버립니다.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장 맛다를 쳐형해 버렸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되자 말라 한 일이 무엇입니까? 24장 1절 이하를 보십시오. 할머니가 황폐하게 만든 성전을 중수하는 것입니다. 7절을 읽어 보십시오. 아달랴의 만행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에게 바쳤습니다.
아달랴의 인생 목표를 오직 바알과 아세라를 위하여입니다. 모든 것이 바알의 영광을 위하여입니다. 결국 무엇을 하든지 어떤 직책을 맡던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보내 주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요구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기만 해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 2:11)”
인간에게 주어진 영광은 잠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게 영광돌려야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작곡가 하이든을 알 것입니다. 참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작곡한 '천지창조'라고 하는 오라토리오를 비엔나에서 연주할 때였답니다. 76세로 병들어 하반신을 못써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 발코니에 있었다고 합니다. 공연이 끝나자 청중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이 때 사회하는 사람이 하이든을 소개하자 끝일 줄 모르는 박수가 자신향하여 울려 왔습니다. 그는 그 때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라고 외쳤답니다. 그래도 박수가 끝나지를 않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일어났답니다. 결국 쓰러졌고 병원으로 실려 가면서도 "나는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을!"이라고 계속 외쳤다고 합니다. 1년 동안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77세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나는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 이 영광을!" 그리고 운명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그의 작품보다 더 아름다운 걸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위도 주셨고 자녀도, 건강도, 지식도, 건강도 주셨습니다. 이것들을 다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을 시키면 걸작품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삼손같이 많은 것 받았지만 자신의 정욕을 위해 쓰면 결국 인생은 졸작이 되고 맙니다. 다윗이 받은 재능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연결되니 위대한 걸작품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정치적 능력이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됩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이 하나님과 연결됩니다. 그의 음악적 능력이 하나님의 영광과 연결됩니다. 그렇게 될 때 걸작품의 인생으로 다윗을 볼 때 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고 변화가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지식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물질은 타락의 도구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권력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명예와 인기는 교만을 불러 일으키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는 건강은 결국 건강으로 인해 하나님을 더 멀리하게 하여 영혼과 정신을 피폐하게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6.1.22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3551 요한계시 구속받은자의 찬미 계7:9-17  박노열 목사  2010-05-28 1755
3550 요한계시 하늘의 할렐루야 계19:1-10  이동원 목사  2010-05-26 2752
3549 다니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단6장  이동원 목사  2010-05-26 3594
3548 요한계시 최후 심판의 드라마 [1] 계20:7-15  이동원 목사  2010-05-25 2728
3547 요한계시 종말론적 삶의 태도 계14:6-13  이동원 목사  2010-05-25 3602
3546 다니엘 이스라엘의 구원 단9:24-27  이동원 목사  2010-05-25 2665
3545 요한계시 이 세상의 최후 계18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334
3544 다니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 단7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742
3543 다니엘 멸망의 큰 잔치 단5장  이동원 목사  2010-05-25 2667
3542 요한계시 마지막 추수 계14:14-20  이동원 목사  2010-05-25 2728
3541 요한계시 다시 오실 그리스도 계19:11-21  이동원 목사  2010-05-25 2680
3540 역대하 보가 터지면 물고기는 같이 물 따라 내려갑니다. 대하28:16-21  김필곤 목사  2010-05-24 2374
3539 역대하 사람은 거울을 볼 때 자신의 얼굴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하27:1-9  김필곤 목사  2010-05-24 2620
3538 역대하 큰 둑도 작은 구멍에 의해 무너집니다. 대하26:1-5  김필곤 목사  2010-05-24 2728
3537 역대하 지속적인 승리를 위한 삶의 자세 대하25:17-24  김필곤 목사  2010-05-24 2441
3536 역대하 은혜받은 자의 삶의 태도 대하24:1-7  김필곤 목사  2010-05-24 3068
» 역대하 몸에 맞는 옷이 좋습니다. 대하22:10-12  김필곤 목사  2010-05-24 2425
3534 역대하 체질개선, 절망에서 희망으로 대하22:1-9  김필곤 목사  2010-05-24 2537
3533 역대하 바른 출발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대하21:1-7  김필곤 목사  2010-05-24 2068
3532 역대하 물은 그릇에 의해 모양이 달라집니다 대하17:1-6  김필곤 목사  2010-05-24 2542
3531 요한복음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요10:11-18  김필곤 목사  2010-05-24 3568
3530 에배소서 참된 말을 하라 엡4:23-25  강종수 목사  2010-05-23 2235
3529 스가랴 문제를 겁내지 마십시오 슥9:1-8  이한규 목사  2010-05-22 2315
3528 누가복음 하나님을 만나는 길 눅15:11-24  이한규 목사  2010-05-22 2713
3527 스가랴 복의 근원을 꿈꾸십시오 슥8:18-23  이한규 목사  2010-05-22 2375
3526 스가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 슥8:14-17  이한규 목사  2010-05-22 2456
3525 스가랴 서로 믿어주고 밀어주십시오 슥8:9-13  이한규 목사  2010-05-22 2253
3524 신명기 축복의 모델을 꿈꾸라 신1:34-39  이한규 목사  2010-05-22 2579
3523 스가랴 한국교회의 자성이 필요합니다 슥8:1-8  이한규 목사  2010-05-22 1856
3522 스가랴 인생의 3대 기본실천 덕목 슥7:8-14  이한규 목사  2010-05-22 2679
3521 스가랴 가장 복된 2가지 자세 슥7:1-7  이한규 목사  2010-05-22 2298
3520 스가랴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삶 슥6:14-15  이한규 목사  2010-05-22 2339
3519 마태복음 온유한 자의 복 마5:5  이한규 목사  2010-05-22 3748
3518 누가복음 구유에 뉘인 아기 예수 ..... 눅2:1-5  이정원 목사  2010-05-20 2739
3517 역대하 솔로몬의 성전봉헌기도 ..... 대하6:18-31  이정원 목사  2010-05-20 6119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