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계18장 |
---|---|
설교자 : | 이동원 목사 |
참고 : | 지구촌교회 |
주 제 : 믿 음
성 경 : 계 18장
설 교 자 : 이동원 목사
비 고 : 지구촌 교회
시작이 있는 모든 것은 반드시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성경책에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는 것처럼,지구의 역사에도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습니다.많은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쯤 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과학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나 소위 기독교적 관점에서 새롭게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 보면, 어쩌면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은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고 1만 년 내외에 불과한 젊은 지구일지 모른다는 가설이 등장합니다.지구의 연수가 오래되지 않았다고 보는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바다에 사는 생물에게 필수 영양소가 되는 인(燐)이 빗물에 씻겨서 바다로 유입해서 들어가는 양이 매년 1,400만톤이라고합니다.태초에 바다에 인이 전혀 없었다고 가정할 경우에 현재와 같은 속도로 현재와 같은 양의 인이 바다 속에 유입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약 7000년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구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지구의 역사가 45억년쯤 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가장 강력한 근거는 방사성 동위 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법입니다.그런데 창조과학자들이 같은 방사성 동위 원소(특별히 헬륨을 가지고)측정법으로 이 지구의 나이를 풀어 가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을 때, 결과는 기존의 가설과 크게 달랐습니다.방사성 동위 원소가 붕괴하면서 방출된 헬륨의 총량이 연간 30만톤 정도 되는데, 이 지구상에 있는 헬륨 총량은 35억톤이라고 합니다.그렇다면 지구의 나이는 만이천 년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지구의 나이를 1만년 정도로 보는 가정을 받아들일 경우에,지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한 것이 됩니다.이와 비슷하게 지구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쉽게 몰락할지도 모릅니다.대개 우리는 하루하루 이 지구를 디디고 사니까 이 땅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구도 그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끝이 있고, 그 끝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쉽게 찾아올지도 모릅니다.창조 과학자들은 열역학제 2법칙 같은 것을 예로 들어서 에너지가 질적(質的)으로 계속해서 쇠퇴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합니다.그것은 자연계에서 무질서가 계속해서 증대하고 있으며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이런 가설은 지구가 얼마 안 있어서 곧 최후를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경고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꼭 자연적인,물리적인 최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지구는 반드시 최후를 맞이할 것입니다.본문인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세상 최후의 날을 묘사합니다.
개역 계 18: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女皇)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본문 1,2절을 보십시오.“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 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앞 과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벨론은 사람들이 만들어 왔던 지금까지의 모든 문화와 이 세상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그런데 이제 성경은 역사의 마지막 단계에 와서“큰 성 바벨론이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라고 증언합니다.두 번 반복하는 것은 언제나 그 확실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세상은 반드시 무너집니다.사람들이 만들었던 바벨의 문화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지구문화의 종말 원인 본문은 단순히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만을 증언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즉, 인류 문화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무너지는 원인이 무엇인지도 밝힙니다.2,3절을 읽어 보면 인간의 부패함이 그 원인임을 주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우리의 부패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영적 부패 2절 말씀을 보면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 원인이 나옵니다.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들이 주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문화의 자리가 되어야 할 이 세상이 오히려 귀신의 처소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마치 우주의 쓰레기통처럼 철저히 부패해 버린 이 세상 문화에 대한 생생한 상징적 고발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음행, 즉 성령을 따라가기보다 악령들을 추종하고 있는 이 세상의 더러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영적인 부패는 그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도덕적인 부패를 낳습니다.왜냐하면 사단은 악한 영일뿐만 아니라 더러운 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간 문화는 더러운 문화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사람들은 이 악령을 좇아가며 더러운 일을 더욱 자행하여 이 지구를 더러운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갈것입니다.바로 이 부패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지구 종말을 초래하는 원인이라고 성경은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정치적 부패 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왕들은 권세자들, 정치가들을 가리킵니다.이들이 이 세상을 아름답고 거룩한 곳,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는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이 세상)과 더불어 귀신의 땅, 사단의 왕국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성경은 정치가들이 바른 역할을 할 때 그들을 하나님의 사자(使者)라고 합니다 사자라는 말은 사역자(minister)라는 말입니다.로마서 13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고 있는한 권세를 잡은 자들, 정치 지도자들을 두려워해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4절에 보면 그는 정치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사자라고 부릅니다.“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악을 벌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정치 지도자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정의를 행사하는 기능을 기대하십니다.그들이 정직하게 정상적으로 정치를 잘 할 때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위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는 대신에 마귀의 사자가 되고 있습니다.그들은 악을 벌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선(善)과 공의를 짓밟아서 가치관을 전도 시키는입니다.정치가들의 권력 남용과 그로 인해 이 땅을 더럽히는 일은 역사를 향해서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그리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해질 것입니다.
셋째/경제적 부본문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땅의 상고(商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致富)하도다 하더라” 상고란 장사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자본을 독점 할수록 세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질수밖에 없고, 세상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바로 이 경제적인 불공평과 부패야말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초래할수 밖에 없는 이 지구의 악입니다.이것을 하나님은 보신 것입니다.이런 맥락에서 저는, 역사가 이 마지막 순간을 향해서 갈수록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경제적인 책임이 더욱 중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잘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허락하신 부(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이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면 역사는 걷잡을 수 없이 어두워져 갈것입니다.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요한복음 3장 16절 못지않게 요한일서 3장 16절 말씀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요한일서 3장 16절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시므로 우리가 믿고 구원받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빚진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아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서 그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그 이상으로 나아가길 원하시는데, 그것이 이 요한일서 3장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라면 형제를 사랑하기 위한 희생적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18절을 보십시오.“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가장 구체적인 사랑은 물질을 나누며 이웃을 섬기는 사랑입니다.잘 사는 사람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조금 덜 쓰면서 살려는 노력, 이것을 고대 우리 그리스도인 선배들은 청빈을 위한 수행이라고 불렀습니다.마지막 때가 될 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노력을 더 요구하실 것입니다.왜냐하면 이 세상은 점점 부패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향해서 가는 이 멸망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참으로 빛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책임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지구 문화의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세상이 무너질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두 종류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기득권자들은 이세상에서 정치적인 혹은 물질적인 힘을 가지고 누리던 사람들을 말합니다.본문에서는 이 기득권자들이 세 가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왕(3절)과 상고들(3절)과 선객들(17절)이 그들입니다.처음 두 부류의 사람들은 앞에서 살펴보았고, 세번째로 등장하는 선객은 당시의 그 지중해 문화권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무역하는 큰 부자들을 가리킵니다.이들은 모두 정치적인 힘이나 혹은 물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멸망할때 제일 안타까워할 사람이 바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한국에서도 빈부차이가 심해지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싹 망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이 망해도 잃어버릴 것이 없으니까요.가지지 못한 사람들 속에 쌓여 가는 울분과 한(恨)의 표현입니다. 이 세상이 멸망할 때 소위 기득권자들이 보이는 반응은 어떠할까? 본문에서 두 가지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바로 고난과 애통입니다“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7절).“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고통을 위하여 울며 가슴을 치며”(9절)“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10절).“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11절)“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15절)“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19절)이것이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하고, 생의 목적도 없이 자기 힘을 축적하는 일에만 목적을 가지고 살아 왔던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에서 나타내는 슬픈 반응입니다.
둘째/ 성도들에게 말씀하신 20절을 보십시오.“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伸寃)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이 심판의 시간은 통곡과 고통의 시간입니다.그런데 성경은 복음을 가지고 이 역사 속에서 외쳐 왔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즐거워하라”고 합니다.이 통곡의 시간에 성경은 왜 즐거워하라고 초청합니까? 이 마지막 심판의 순간이야 말로 우리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순간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그 뜻대로 살아 왔던 사람들에게 이 마지막 심판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오히려 즐거워해야 할 시간입니다. 슬피 애통하는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사람들,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이 두 부류 중에 어느 쪽에 속하겠습니까? 누가복음 6장에 기록된 산상수훈의 메시지를 보십시오“이제 주린 자는 복이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21절)“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는 웃는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25절)모든 것이 전복되는 마지막 순간입니다.하나님 없이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 왔던 사람들은 지금은 웃지만 마지막은 슬피 울며 애통할 것입니다.반면에 지금 고난속에 있으면서 울고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즐거워할 것입니다.마지막에 웃는자가 최후의 승리자이지 않을까? 당신의 마지막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이순간을 당신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지구 문화 종말의 성격이 세상의 최후가 어떠한 특성을 보이는지 본문에 세 가지로 나옵니다.
첫째/순간성 바벨탑에서 시작되었던 인류 역사의 찬란한 문화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말입니다.성경이 그 순간성을 증언합니다.본문 19절입니다“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있도다 화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부리는 모든 자들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일시간이란 말은 가장 짧은 시간의 척도를 의미합니다.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이 인류의 찬란한 문화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한 순간에 사라져가는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말이 그마지막 때에는 얼마나 실감이 나겠습니까?
둘째/철저성과 완전성 21절 말씀입니다.“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맷돌을 바다에 던지면 다시는 떠오르지 않습니다.큰 바벨론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인류 문화의 마지막이 이렇게 철저하고도 완전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셋째/허무성 나팔 소리가 이 우주 속에는 다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시와 음악이 없을 것입니다.맷돌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빛이 없을 것입니다.결혼하는 신랑,신부의 즐거운 웃음 소리도 없어질 것입니다.마지막 심판을 통해서 이 우주는 절대의 허무와 공허속으로 돌아갈 것입니다.모든 것이 다 없어져버리는 이 마지막 멸망을 당할 때, 사람들은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이에 대한 답을 베드로후서에서 찾아 봅시다 베드로후서 3장 첫머리에서 베드로는“왜 예수님의 재림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합니다.성도들이 그렇게 재림을 소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기다려 왔는데도 웬일인가 아직도 막을 내리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3,4절을 보십시요.“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譏弄)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고 비웃는 자들이 와서 말하기를 예수님의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고 합니다.“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4절).창조 때와 같이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무슨 말세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언급하면서 대답합니다.“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전하여 두신것이라”(6절).예전에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이제는 불을 통해서 심판 하신다고 말합니다.8절 이하를 보십시오.“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일이 드러나리로다”(8-10절).성경은 이 마지막을 증언하면서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이 모든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11절).그것이 역사의 궁극이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라면,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는 것입니다.“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11-13절).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건너편에 있을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그 세계에 거하기를 기대한다면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대비하라고 권면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최후의 모습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본문 4절이 18장 전체 메시지의 요약이라고 생각합니다.“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늘에서 멸망을 선언하는 음성이 아닌 다른 음성이 나옵니다.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죄에 참여하지 말고 또 심판과 재앙에 참여하지 말고 나오라고 부르십니다.하나님은 언제나 이 세상 신이 지배하고 있는 이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내셨습니다.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시고,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불러 내셨습니다.또 교회의 의미도 불러냄을 받은 백성들 아닙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입니다.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자입니까? 세상을 향해서 심판을 외치는 자입니까? 아니면 세상을 닮아 가고 있는 자입니까?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생각해 보십시오.바닷물은 짜지만, 그 물을 먹고 사는 고기는 짜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향해서 선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면, 세상과 다르다는 사실입니다.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똑같다면 세상에 기여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우리는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세상 사람들을 깨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렇지 않고 우리가 세속에 물들어 간다면 세상이 멸망하는 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주께서는 이 멸망해 가는 이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백성아, 세상이 받을 재앙에 참여하지 말라.거기서 나오라” 이 음성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당신은 이 음성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멸망할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함께 멸망하기 위해서 세상을 좇아가는 자입니까? 저는 이 세상이 언제 멸망할지 잘 모릅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마지막 시간이 가까워진 오늘의 시간 속에서,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깨워 주시며 우리의 변화를 촉구하십니다.말세의 준비는 가정을 버리고 떠나가서 밤마다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해야겠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 하심으로써 그 죄가 가져올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와 심판을 피하게 하시고 이 죄에서 떠나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가장 아름답게 준비하는 자들을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금년으로 역사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고 할지라도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거룩하게 설 수 있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썩어가는 이 시대를 향해서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시옵소서.세상이 받을 재앙에 참여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외치시는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켜야할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삶 속에 새로운 경종을 울려 주셔서, 하루 하루가 주님 앞에 설 그때를 준비하는 날들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