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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강에 이르러

마태복음 우제돈 목사............... 조회 수 2174 추천 수 0 2010.06.03 01: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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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3:13-17 
설교자 : 우제돈 목사 
참고 : 상원교회 

요단강에 이르러      
 (마 3 : 13-17)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13∼15절).


  등산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산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가지 요령을 터득하면 참 쉽다고 합니다. 가령 몸을 앞으로 굽히고 11자 걸음걸이로 내려오면  덜 넘어진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요단강으로 내려 가셨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에 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작은 자의 자리 

 

  갈릴리 나사렛에서 30년간 부모를 섬기며 목수일을 하며 살았던 예수님은 그의 사생활을 마치신 후에 공생애의 첫 걸음으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던 요한에게로 내려갔습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이나 먼저 세상에 태어났고 말씀 전도하는 일도 먼저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세례요한을 비교해 볼 때 예수님은 구세주요, 세례 요한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빛 그 자체시요, 요한은 빛을 전하는 그릇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요한은 길잡이입니다. 예수님은 신이시고 요한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세례를 받았어야만 옳을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요한이 머물러 있는 요단강으로 내려 가셔서 요한에게 자청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수님과 요한은 비교도 안되는 존재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친히 피조물이요 인간인 세례 요한을 찾아 요단강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의 자리로 친히 내려 가셨습니다.
  이 사회는 하나의 계층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학교, 사회, 직업에 서열이 엄격하고 위계 질서가 뚜렷합니다. 여기서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고 연하자가 연상자에게 지도를 받는 것을 좋은 미덕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좋은 일은 큰 자가 작은 자의 자리로 내려갈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을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신 것을 귀감으로 삼아야 합니다.(찬 278장 2절).
  미국 헨리 누엔 박사는 오랫동안 몸담아 있던 명문 하버드 대학을 사임하고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작은 정신 박약아 시설인 데이 브레이크 학원의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가 많은 보수와 명예를 버리고 철없는 아이들의 용변 지도와 행동 교정과 식사, 세수, 옷입히는 훈련에 종사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그 동안 성공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이 아이들 곁에 와 있을 때 내리막길을 통하여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미국의 전 카터 대통령이 목수일을 하고 전직 서울 시장이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내려간 것이 결코 좌천이 아니라 작은 자의 길을 자원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2. 죄인들의 자리

 

  요단강 가에는 요한에게 세례받기 위해 내려온 많은 죄인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중에서 남을 등쳐먹는 자, 토색하는 자, 노략질하는 자, 연약한 부녀자나 순진한 사람들을 후려치는 자, 교만한 자 등 별의별 죄인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섞여 있습니다. 요한은 이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며 신랄하게 파헤쳤습니다.
  그런데 무죄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파렴치한 죄인들이 우굴거리는 군중들이 있는 요단강으로 내려  가신 것입니다. 죄인의 자리에까지 가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인의 자리에까지 내려 갈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일부러 죄를 벌하여 죄인이 되어 보자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책임 추궁을 당하고 집중 공격을 받게 되는 경우 우리 주님처럼 묵묵히 죄인이 되어 보자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죄인 취급을 받으셨는데 원래부터 죄인인 우리가 죄인 취급을 좀 받기로서니 크게 억울해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 내려가려고 하지 않고 의인의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의인의 인정이나 천사의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깁니다.
  속담에 "죄지은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이 있듯이 죄인 옆에 있으면 자칫 죄인 취급 받을 때도 있습니다. 잘못이 있기 때문에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잘못한 사람처럼 몰릴 때 잠잠히 안내하며 기도하는 것도 십자가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남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십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필요하면 내 자신이 그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6.25사변때 어떤 분이 인공에 부역했다는 밀고로 경찰서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데 이웃에 사는 어떤 분이 그분은 그럴 분이 아니라고 변호했다가 크게 오해를 받았는데 나중에 명백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칭찬을 받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죄짓고 복역하는 이들 곁에 가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3. 죽음의 자리

 

  세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옛것, 즉 죄에 대한 죽음이요, 다른 하나는 새것 곧 의에 대한 삶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우는 세례의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죄가 없으신 분이니 죽어야 할 아무 것도 없고, 그 자신이 의가 되시니 새삼스럽게 살아야 할 새것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세례가 일반인들에게는 죄 씻는 의식임에 반하여 예수님께는 하나의 헌신하는 예식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난 30년 간은 나사렛에서 평범한 가족의 일원으로 성실하게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3년은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만 살으셔야 했기에(막 10 : 45) 주님의 세례는 곧 '나사렛 예수께서 메시야 예수'로 발전하는 주님 자신의 헌신의 예였습니다.
  헌신이 무엇이냐 하면 헌신은 포기요, 포기는 희생이며, 희생은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위해 대속제물이 되시려고 일체를 포기하셨는데 이것은 곧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그가 3년후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지만 공생애에 들어 가시면서 요단강에서 이미 죽으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빌 2 : 8).
  룻은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 : 17)고 죽음을 각오하고 나오미를 따랐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 : 16)"하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고, 사도 바울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 : 14)고 하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은총을 감사하고 보답하겠다면 죽음의 자리에까지 내려 갈 수 있어야 합니다.
  실로 존귀하신 분이 비천한 자리에 내려가시고 거룩하신 이가 죄인처럼 되시며 생명의 주가 죽음의 자리로 내려가신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이르신 명분이었습니다.
  우리 다같이 두 사람씩 짝을 짓고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따라서 해보십시오.
  "집사님! 옛날 성깔 다 어디 갔습니까?"
  "이미 죽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요단강으로 내려가십시다.〈199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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