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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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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서중석 교수 |
참고 : | 새길교회 2010.1.24 주일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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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와 찬양의 근거
[누가 5 : 1 ~ 8]
서중석 교수 (연세대학교 부총장)
갈릴리 호숫가에서 잡히는 고기들은 모두 얕은 곳에서 산다. 이것을 보통 표층 물고기(surface fish)라고도 한다. 4절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결정적인 단어는 바로 “깊은데”라는 단어가 된다(eis to bathos).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예수의 이 말씀은 익숙하지 않은 명령이다. 왜냐하면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는 늘 얕은 곳에서 잡혀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씀은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곳”에 가서 고기를 잡으라는 명령이나 다름이 없었다.
5절에 보면 베드로의 허탈한 심정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얻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곧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아무리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적인 모든 능숙한 지식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끝장은 하나님의 시작을 뜻한다는 말이다. 베드로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다고 기록돼 있다. 순종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순종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절감하는데서 시작된다. 자신에게 익숙한 고기 잡는 기술의 세계, 경험의 세계를 포기하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이 마감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밤새도록 분주하게 노력하는 우리의 상황이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주님의 능력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찬송가 「내주는 강한 성이요」 2절에 뜻 깊은 가사가 나온다. “내 힘만 갖고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이것을 고백하기 전에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은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게 빈빈히 나타났던 주님의 기적의 능력을 오늘 우리는 왜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갖고 있는 힘이 너무 크게 보여 주님의 능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요구와 외침이 너무 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복음서에서 베드로는 달랐다.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주님의 능력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었다. 기적은 바로 그럴 때 일어났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찬양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너무도 초라하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내 욕심이 너무 중요하면 하나님은 덜 중요하게 보이게 마련이다. 내 기준이 가장 정당하고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면, 하나님은 눈에서 사라지게 된다. 내가 확대되면 하나님은 축소된다. 반대로 하나님이 확대되면 내가 축소된다.
로마서 11장 33절에서 사도 바울은 신앙이 지침이 될 만한 고백을 하고 있다. “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분께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하고 외친 베드로의 고백과 그 깊이에 있어서 일치한다. 바울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강조하고, 베드로는 맨 밑바닥에 놓여진 인간의 한계를 강조한다. 둘은 한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한계를 절감하고, 주님의 절대 주권을 찬양함으로써, 기적을 나날이 체험해가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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