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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 그리고 성령

이사야 권진관 형제............... 조회 수 2327 추천 수 0 2010.06.06 09: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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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32:15~18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10.3.7 주일설교 

sgsermon.jpg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천지인 그리고 성령”

[이사야 32 : 15 ~ 18]

 

“인간만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맘몬에 갇혀 있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영을 느끼고, 받아들이며, 모시고 있는 인간들에 의하여.”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는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좋은 천지가 왜 이렇게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무엄한 생각이 듭니다. 혹시 창조주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닌가? 창조주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는 그러한 것에 대해 명확한 대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에는 이러한 재앙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섭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가?

성서의 한 구석에 있는 욥기에서 이러한 주류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습니다. 욥은 요즘말로하면 지진과 쓰나미로 모든 재산을 잃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식구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이러한 재앙은 욥이 과거에 잘못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지, 잘못이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은 인과응보로 재앙을 가져오실 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하나님도 그러한 욥의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재지변의 재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우리는 이것에 대해 옹색한 대답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율권을 주셨듯이 이 천지 피조물에게도 자율권을 주셨다고.

그런데 성서에서 보다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천재지변의 악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서만 가지고는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은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른 종교 전통과의 대화, intertextual (복수의 텍스트 상호간)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자는 그의 도덕경에서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라는 말을 썼다. 천지불인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해석 하면 자연은 인자하거나 어질지 않다는 것입니다. 천지 즉 이 자연세계는 인간의 가치판단을 넘어서는 원리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자가 어린 양을 잡아먹는 것에 어디 어진 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바로 이것이 천지 피조계의 원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천지가 어질지 않으면 우리는 이 천지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이티의 경우와 칠레의 경우가 공통적으로 대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는데 그런데, 칠레의 지진의 경우는 아이티의 경우보다 500배 이상으로 큰 것이었지만, 사상자가 805명으로 발표했다가 다시 279명으로 공식 집계되었다고 하니 확실한 숫자는 아직 모르겠는데, 그러나 이 숫자는 아이티의 사망자수 27만내지 30만 명 보다는 훨씬 적은 것에 눈길이 갑니다. 0.1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왜 리히터 규모가 훨씬 컸던 칠레에서 오히려 죽은 사람의 숫자가 작은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칠레는 1960년에 큰 지진을 당한 후 상당한 기간 동안 이러한 자연재해를 대비했었습니다. 건물을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지었던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재지변의 자연현상도 극복해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최근에 지구 종말의 시간이 핵무기와 기후변화 위험지수에서 좀더 낮아진 것으로 판단, 지구 종말 시계 분침을 1분 뒤로 늦춰져서 종말 5분전에서 6분전으로 현재 11시 54분이라고 돌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인간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인자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대비하는 사람들은 그 거친 자연의 해악도 어느 정도는 피해갈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그것을 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의 약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약함과 한계 속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평화롭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저는 저의 일상을 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지지난 주 이일영 형제님께서 댁 근처에 있는 국립묘지를 산책하면서 만나는 역사적 묘들과 유적들에 대해서 설명하여 주시고 그것에 얽힌 역사와 신앙에 대해서 말씀해 주셔서 많은 감동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자주 자전거로 다니는 안양천변 길과 또 목동에서 봉천동까지 이어지는 대림천변 길에 얽힌 얘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자전거를 탄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겨울철에도 되도록 자전거를 탔습니다. 주로 봉천동에 있는 노인 요양병원에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물론 눈이 온 날은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미끄러져 위험하니까요. 비가 오는 날도 잘 안 탑니다. 봄․여름철에는 우비를 쓰고 타기도 하지만, 겨울에는 눈비가 오면 극히 위험합니다. 눈이 오거나 하면 자전거를 타지 않고 그 대신 걷습니다. 도림천 천변 길을 따라 걸어서 가면 신도림까지 약 25분 걸립니다. 그러면 신도림역에서 2호선을 타고 봉천역으로 가게 되면 역 앞에 요양병원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도합 40분이 걸립니다. 집 앞 전철역에서 타고 가면 30분 정도 걸리는데 걸으면 10분 정도 더 걸립니다. 그런데 걸으면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우선 천천히 천변을 걸으면서, 안양천에서 노닐고 있는 천둥오리들을 보게 됩니다. 요즘에는 왜가리, 황새도 가끔 봅니다. 날씨가 좋고 더운 계절에는 큰 고기들이 노니는 것도 잘 보입니다. 안양천은 넓은데 도림천은 좀 좁은 천이라서 고기나 새들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까 도림천은 안양천의 지류로, 서울특별시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서울대학교를 지나 관악구·동작구·영등포구·구로구를 거쳐 안양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2년 전 자전거를 처음 타고 다닐 때에 도림천이나 안양천은 역겨운 냄새가 나는 하천이었고,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 죽은 하천이었습니다. 가끔 물고기가 죽어 허연 배를 드러내는 하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작년부터인가 상당히 깨끗해지더니, 지금은 물고기와 새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도림천도 매우 더러웠는데 요즘에는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도림천변 생태환경이 좀 좋아졌습니다. 요즘 도림천은 옛날 청계천 모습이 떠오르는 좀 작지만, 정이 가는 시내로 변했습니다. 도림천이 청계천과 다른 점은 청계천은 인왕산, 북악산에서 흐르는 물이 시내를 통과하는 도심 안의 작은 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량이 적다고 하여 한강물을 모터로 끌어올려 콸콸 흐르게 하고 있습니다. 천변과 바닥을 모두 콘크리트로 도배해 놓아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잘도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천천히 흐르지도 않는 이 물에 녹조가 생겨서 생물이 죽고, 악취가 나는데 그래서 한 달 에 두 번 사람들이 들어가서 강바닥을 닦아 낸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제가 다니고 있는 도림천은 그렇게 복원하지 않았습니다. 맨 하천 바닥으로 물이 흐르게 하고 있습니다. 생활 하숫물도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하수물이 들어올 때 정화시설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적인 강바닥에 정화를 맡기고 있어서, 청계천의 모습보다는 훨씬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도림천도 한강물을 끌어서 쓰고 있기는 하지만, 그 양이 작고 청계천처럼 완전히 인공적이지 않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도림천의 작지만 그러나 자연스러운 물 흐름을 보면서 4대강 사업을 청계천 사업처럼 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얘기가 나왔습니다마는 앞으로 인류가 많이 타야 할 것은 자전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인도 뉴델리에 갔는데, 경제가 발전해서 자동차는 넘쳐나는데, 도로가 없었습니다. 꽉 막힌 도로에 매연이 너무나 심했습니다. 원래 인도인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녔는데, 이제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물질문명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류의 삶의 지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해가 일어나고, 마실 물이 귀해졌고, 각종 질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안양천을 지나 도림천으로 꺾어 들어가서 봉천동에 있는 요양병원을 향해 갔습니다. 자전거로 도림천을 거쳐 보라매공원을 거쳐서 요양병원을 갑니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보고 다시 돌아옵니다. 벌써 1년 이상을 그곳에서 누워계신 94세의 어머니를 보면 인간의 한계와 연약함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말씀도 잘 하지 못하고 약하게 누워계신 모습을 보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마는 이제는 이것도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때 도심 속에서의 자연을 다시 즐기며, 또한 햇볕도 쬐면서 패달을 밟습니다. 숨이 가쁘고 근육에 힘을 주게 됩니다. 다시 도림 천변으로 돌아오면 안전하다는 생각에 두 손을 핸들에서 놓고 달리기도 합니다. 도림천변을 달리고 다시 안양천으로 들어오면 저 멀리 다시 도시가 보입니다. 안양천을 사이에 두고 영등포와 목동의 아파트들이 눈앞에 보입니다. 안양천을 넘는 작은 다리를 넘어가면 6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들도 눈에 나타납니다. 도림천, 안양천과 함께 했던 자연이 이제 끝나고 물질문명 인간세상으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안양천을 뒤로 하고 자동차 길로 올라가면 냄새가 달라집니다. 저는 이 순간 자연과 인간세계가 만나는 경계선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뒤에는 자연세계가 있는데 내 앞에는 자동차 아파트, 다양한 구조물과 건물들, 소음과 매연이 나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 양쪽, 자연과 인간의 물질문명이 있는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연과 인간의 문명 사이를 화해시켜야만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 열린 평화포럼에서 동학과 천도교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그 발표회에서도 강조된 것이 천지인(天地人) 사상입니다. 천지인 사상의 핵심에는 이 세상에는 천지인 삼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셋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과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영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땅은 피조세계를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인은 인간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이 삼재들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셋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인류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동학에서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하늘은 인간을 요구합니다. 인간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일 때에 자연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땅은 파괴되고 멸망을 가져올 것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하늘의 영을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모신다는 뜻의 시천주 사상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할 때, 인간은 物敬(피조세계를 공경)하는 삶, 즉 땅과 더불어 땅을 존중하면서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동학에서는 지기금지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 시천주(侍天主)조화정(造化定)이라는 주문이 있는데, 이런 뜻이다. 지극한 기운(영)이 지금 오시니 바라옵기는 크게 강림하기 바랍니다. 하늘을 모시면 모든 것이 형성되나니 여기에 마음을 모으라. 뭐, 이러한 뜻이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동학의 이러한 사상적 모티브를 보다 더 선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높은 곳에서부터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은 황무지를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 주는 영입니다. 아무 것도 열매 맺지 못하고 돌과 자갈과 모래만 있는, 생명이 없는 광야를 비옥한 곡창지대이 바꾸어 놓는 이 생명의 영은, 동시에 인간 세계에 공평과 정의를 이루어 놓는 영입니다. 이 영은 자연과 인간 세계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영의 삼중작용을 보게 됩니다.


영은 1) 자연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면서 동시에 2) 인간 세계에 평화와 정의를 일으키는 일으키며, 또 동시에 3) 자연과 인간 세계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켜 주는 영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러한 영적인 현실을 모르고 지냅니다.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정신없이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개발, 경쟁, 성공 드라이브와 신화에 눈과 귀가 어두워져서 자연을 잊고 삽니다. 그리고 자연을 인간의 욕심대로 마구 남용하고 있습니다. 물질적 인간은 더 이상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영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의 “Who She Is"(여성적 신)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시가 소개되어 있다.

“나는 철로를 따라 걸었다. 바람결에 비가 올 것임을 느끼면서. 곧 비가 왔다. 비는 나의 왼쪽의 철로길을 따라서 세차게 내렸다. 그 억수같은 비는 철로 왼쪽 끝에 멈춰서 철로를 넘지 않았다. 나는 비가 내리는 끝에서 걷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곳과 내리지 않는 곳 사이를 똑바로 걸었다. ... 이 은혜는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정확한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를 모두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또한 공간세계인 자연의 영역과 인간세계인 물질문명의 영역을 모두 경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쪽을 잊고 있습니다. 물질문명에 눈이 어두워 자연을 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파괴된 자연은 우리에게 천재지변의 재해로 역습해 올 것입니다.

 

오늘 23주년을 맞이하는 새길 교회에도 하나님의 성령이 위로부터 내려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생명 살림의 소통이 일어나고, 경직된 것이 부드럽게 되고,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화해시켜 주시는 생명의 영입니다. 그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삶이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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