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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차이에 관한 예화 모음
▣ 돼지와 암소의 비교
돼지가 하루는 암소에게 평소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암소야, 너도 보다시피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해주니? 사람들은 내 고기로 햄과 베이컨을 만들어 먹잖아?
또 내 창자를 빼내 순대를 만들어 먹고 심지어는 발도 족발로 만들어 얼마나 맛있게 먹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고 너만 좋아할까?”
암소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죽어서만 좋은 일을 하고 살아있을 때는 너만 먹잖아!
그러나 나는 살아있을 때도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고 또 맛있는 우유도 주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너는 싫어한단다.”
우리가 가진 물질은 어차피 죽으면 남에게 다 주고 가야 합니다. 그러니 살아있을 동안에 남에게 많이 베풀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받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베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서도 비난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 스펄젼의 두편 설교 비교
챨스 스펼젼 목사가 한번은 형편없는 설교를 했다. 말하자면 완전히 죽을 쑨 것이다. 그는 참으로 마음이 겸손해져서 주께 기도했다.
"주 하나님, 당신은 무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형편없는 설교를 축복해 주십시요"
그는 한 주간 내내 주님을 의지하면서 이 기도을 했다.
한밤중에도 일어나 기도를 했다.
그 다음 주일은 지난 주의 엉터리 설교를 보상하려는 마음으로 멋진 설교을 했다. 사람들도 굉장히 칭찬했고 그 자신도 굉장히 흡족해 했다. 그 때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이 두 편의 설교의 결과을 한번 비교해 보아야 하겠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랄만큼 달랐습니다. 첫 번째의 엉터리 설교를 통해서는 41명이나 주님을 영접했지만, 두 번째의 그 멋진 설교를 통해서는 단 한 영혼도 구원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 비교의 재앙
장 집사는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아들은 지혜가 많아 우등생이었고 과기고에서도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아들로 인해 행복했다. 그러나 중학교 다니는 딸은 공부를 못해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장 집사 부인 이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딸에게 말했다. “오빠 반절만이라도 돼라. 너를 볼 때마다 엄마는 맘 아파 견딜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아들과 공부 못한 딸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가는 날 이 집사 가슴에는 못박히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입원 3개월 만에 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이 집사는 병원에서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받다 하늘로 떠났다.
비교급 인생은 안된다. 최상급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요 질서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안된다.
▣ 비교의식을 버리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칡덩굴을 거두려고 붙들었는데 그게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습니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거죠. 깜짝 놀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호랑이가 나무를 흔들었습니다. 나무꾼은 놀라서 그만 손을 놓았고 나무에서 추락했습니다.그런데 하필이면 떨어진 장소가 호랑이 등이었습니다. 이번엔 호랑이가 놀라 몸을 흔들었고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호랑이가 나무꾼을 떨어뜨리려고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았습니다.마침 한 농부가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 합니다. “나는 평생 땀흘려 일해도 사는 게 이 꼴인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아도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니 어디 살겠는가?”하고 팔자타령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이 농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만족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이웃과 비교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날 자기 교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니까 행복하지?”그러자 그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대학에 다니면 뭐해요. 지방대학교인데요”
목사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한 청년을 붙들고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면 뭐해요. S대도 아닌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S대에 다니는 청년을 붙들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S대에 다니는 청년은 “S대에 다니면 뭐해요. 학과가 좋지 않은데.”
얼마 후 그 목사님은 S대에서 좋은 학과를 다니는 청년을 만나 물었습니다. “넌 정말 행복하지?”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은 과에 있으면 뭐해요. 수석도 못하는데.”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교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상태에서 한 계단 올라가면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우리 위에 또 다른 계단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비교의식은 우리를 끝없는 경쟁으로 몰아넣고 쉴 새 없이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비교의식이 우리 가운데 너무 만연돼 있어 우리는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넓은 집, 큰 차, 학벌 등 우리는 남보다 조금 더 낫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결국 어떠한 사람도 비교의식 속에서는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면 우리보다 더 가진 사람을 항상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비교의식이야 말로 이 시대에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압사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습니다.
비교하면 모두가 불행해지지만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면 우리는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우리로 하여금 비교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복을 따라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비교의식을 버리자
마가렛 미첼 여사가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완성하고 있을 때, 하루는 누군가가 책을 한권 보내 왔는데, 그 당시 스테반 빈센트라는 사람이 남북 전쟁을 노래로 하여 쓴 "존 브라운의 시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미첼 여사는 그 작품의 훌륭함에 비하여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이 너무도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빠져, 쓰다만 자신의 원고를 옷장 안에 6개월 동안 쳐박아 두고 시름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사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듣고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드디어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저런, 이것은 당신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성공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잠재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진실로 측량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위에서 노력하시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름하기 전에, 남이 갖고 있는 능력만을 먼저 보고 그 때문에 쉽게 실망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조금 못하거나, 여러 가지 활동에서 부족함을 보이면 누구누구는 잘하는데 너는 못하니 하는 식으로 꾸지람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고무하기보다는 위축하게 하거나 용기를 잃게 하기 쉽습니다. 남으로부터 타산지석의 교훈뿐만 아니라 좋은 장점을 본받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남과 자신을 비교만 하는 것은 자신의 성공요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분명 자기 자신이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공은 참으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열심, 열심...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특별히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살리실 때에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고 산상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시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그는 12제자 중에서도 요한과 야고보와 더불어 더 드러나 보입니다. 참말 그는 예수님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포기) 열심으로 주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성찬에서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을 예언하시자 완강이 부인합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은근히 자신과 다른 제자들을 비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했던 베드로, 그는 어쩌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요?
또 베드로는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이며 동료인 요한을 보았을 때 슬며시 그와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다가 십자가에 팔을 벌리고 못박혀 순교할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여 이 사람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로 냉정합니다. 요한이 어찌되든 그것이 너 베드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너 베드로는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도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완수해야겠다고 열심을 다하여 뛰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며 베드로와 같이 엉뚱한 질문을 한 경험이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선한 일을 계획할 때 혹은 직분을 맡을 때,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는 더 낫다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다른 교인들 보다 더 권위를 가져야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실 때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주를 사랑합니다."하고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깨어진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가치를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구속하신 주의 자녀입니다. 기억합시다. 우리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비교하다가...
어느 부부가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다. 저녁도 같이 먹고 영화도 보고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부인 친구 얘기가 나왔다.
"내 친구는 복도 많아, 지난번 아파트를 사더니 또 60평짜리를 샀다네? 그리고 신랑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당신은 그 신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 후 신랑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설날에 처가댁에 인사를 갔다. 식사를 하고 덕담을 나눈 후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집안 얘기를 하다가 네 집안, 내 집안, 비교하며 깎아내리기를 하였다. 이런 것들이 빌미가 되어 결국은 이혼까지 이르고 말았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부모와 남의 부모를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아내와 남의 아내를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집안과 남의 집안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직업과 남의 직업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존재입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나와의 비교는 발전용에만 사용합시다.
▣ 비교
중세에 어떤 수도사가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다 불러모았다. 그는 하얀 종이의 한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선에 손을 대지 말고 이 선을 가늘고 짧게 만들어 보아라!”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 한 제자가 스승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는 붓을 들고서 스승이 그은 선 옆으로 더 굵고 더 긴 선을 여러 개 그었다. 그러다보니 스승이 그은 선은 상대적으로 가늘고도 짧아보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가 많다. 그럴 때 그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근심과 염려가 쌓이게 되고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자리 잡을 틈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한 경우에 그 문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 그럴수록 기도의 줄을 더욱 더 굵고도 길게 늘려라. 감사의 줄을 힘껏 그어라. 믿음의 줄, 헌신의 줄을 더욱더 힘차게 그려라. 그러면 내가 가진 문제는 어느덧 간곳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부둥켜안고 혼자 아무리 씨름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을 그 문제에서 떠나게 하고 그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줄을 계속 그어나갈 때, 그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 낮은 곳을 보라
페르시아의 사니아라는 시인의 이야기이다. 그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인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돈이 없어 신발을 사지 못하고 맨발로 걸어다니게 되자 그만 처음으로 불평했다.
"나는 왜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라 신발도 못 신고 다닐까" 그런데 그가 불평하며 걷는 그때 마침 다리가 없는 장애인을 만났다. 순간 그는 이렇게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하나님,감사합니다. 다리가 없는 사람에 비하면 신발이 없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 세기적으로 유명했던 전쟁 영웅 세 사람의 비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I세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과 워터루의 위대한 군인 웰링턴 장군의 비교가 참 재미있다.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전선에서 병사들이 쫒겨오면 “이 비겁한 놈들아 너희들은 영원히 살기나 할 것 같으냐?”하면서 전쟁터에서 부하 병졸들에게 심한 욕설을 하였고, 나폴레옹은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전우여! 너는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다 운이요 운명이야. 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아무리 깊고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할지라도 총알은 기어코 찾아갈 것이요, 만일 죽을 수 없는 운명이라면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쟁 마당일지라도 자네는 결코 피하여 버릴걸세”하였다.
나폴레옹을 워터루의 싸움에서 무찔렀던 영국의 위대한 군인 웰링턴은 무서워 떠는 병사들에게 격려에 격려를 더하고 용기를 더하게 하였는데 “친구여! 나도 전쟁 마당이 무섭고 겁이 난다. 도망가고 싶고 무서운 공포나 불안이 있다네. 그러나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 때문에 이 자리를 물러설 수 없다네.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용감하게 같이 싸워 이기세”라고 격려하였다는 것이다.
격려는 욕설보다도, 운명론보다도 더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입증하여 준 말이다.
▣ 자기 만의 길을 가라!
우리에게 이미 <헝거리 정신>으로 잘 알려진 영국 경제학자 찰스 핸디는 최근 그의 책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에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29명을 분석하고 그 결론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일등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남을 따라하지 말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 자신을 믿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아무도 가지 않은 자기만의 길을 가라"
'자기다움'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창조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설계되지 않은 집은 지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되어지는 인생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실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어려운 환경 가운데 시작한 신혼 살림 속에 유일한 낙은 아이를 데리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었다. 날로 성장하는 믿음 속에 잔잔한 평화를 누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여고동창과의 만남을 가졌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운이 좋게 시아버지께 물려받은 5층 빌딩의 소유자로 나를 반기며 각종 맛있는 요리를 가정부에게 만들어오게 했다. 늘 가정부 손에 해주는 밥이나 먹으며 헬스까지 다니는 친구가 어찌나 부러워 보이는지 집에 돌아온 나는 ‘나도 언제 친구처럼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편안한 신세가 되어보나’ 하는 불평을 남편 앞에 종종 터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열이 나고 기침이 계속 멎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 결국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 팔에 링거주사가 꽂혀 있는 썰렁한 병실에서 그날 저녁 보호자 밥이 내 앞에 나왔다. 수저를 드는 순간 스치는 깨달음. ‘그렇게 원했던 남이 해주는 밥을 이렇게 먹게 되는구나.’ 내 귀에 들리는 대로 행해주리라는 말씀이 병실을 감돌고 있었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더니…. 그날 이후 어떠한 상황에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기로 한 것이 하나님과 나의 은밀한 약속으로 되어 있다.
/ 서난숙
* 기도: 나의 삶을 친히 인도하시는 주님, 나의 삶의 자리가 힘들고 고달파 때로는 주님 앞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는 미련함을 고백합니다. 나의 생각을 주장하셔서 헛된 근심으로 삶을 소진하지 말게 하시며 주님으로 인한 소망의 말들이 내 입에 있게 하소서.
/생명의 삶
▣ 더 굵고 더 길게
중세에 어떤 수도사가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다 불러모았다. 그는 하얀 종이의 한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선에 손을 대지 말고 이 선을 가늘고 짧게 만들어 보아라!”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 한 제자가 스승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는 붓을 들고서 스승이 그은 선 옆으로 더 굵고 더 긴 선을 여러 개 그었다. 그러다보니 스승이 그은 선은 상대적으로 가늘고도 짧아보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가 많다. 그럴 때 그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근심과 염려가 쌓이게 되고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자리 잡을 틈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한 경우에 그 문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 그럴수록 기도의 줄을 더욱 더 굵고도 길게 늘려라. 감사의 줄을 힘껏 그어라. 믿음의 줄, 헌신의 줄을 더욱더 힘차게 그려라. 그러면 내가 가진 문제는 어느덧 간곳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부둥켜안고 혼자 아무리 씨름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을 그 문제에서 떠나게 하고 그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줄을 계속 그어나갈 때, 그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 박상훈 -
▣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길
수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보낸 후 남편을 잃은 부인이 있었다. 자녀도 없이 홀로 남은 그녀는 점점 더 자기 연민과 우울에 빠져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아무 버스나 타고 정신없이 가다가 종점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오르간 소리가 나는 교회 안에 들어갔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가 지난 후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 곁에는 초라한 옷을 걸친 두 어린아이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라고 물었다. 그 작은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부모님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과자와 선물을 사 주었고 그들과 말벗이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동안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에서 벗어나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던가를 기억하고는 감사하게 되었다.
▣ 스스로 찾는 행복
같은 회색이라도 검은 바탕에 있을 때가 흰 바탕에 있을 때보다 더 밝아 보이는 착시현상은 우리의 눈이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주변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전세를 살다가 내 집을 갖게 되면 더 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자가용을 처음 사서 행복해하다가도 더 좋은 차를 산 친구를 보면 만족감은 줄어듭니다. 마치 착시현상처럼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다른사람과 비교하여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여유가 있어도 작은 집에 만족하고, 유행이 지나가도 깨끗한 옷이면 족한 것으로 생각하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언제나 미소 짓고 있을 것입니다.
/김민식(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자상한 남편이 좋다
비교의식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여자에게는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여자들이다. 강남의 집값을 올린 공로자들도 여자들이다. 비교편차 의식이 삶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지만 자기비하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J장로. 그는 헌신된 사람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다. 나와는 여러 면에서 평생의 동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의 추진력에 있어 탁월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 처럼 깡촌 출신으로 투박한 모습에 세련미는 없다. 그는 아내에게 자상한 사람이다. 아내를 끔찍이 생각하고 소중히 여긴다. 얼마 전부터 아내를 위해 평생 설거지하기로 작정하고 실천하고 있다. 젊을 때 아내가 희생했으니 이제 아내를 위해 설거지 전담맨이라도 되겠다는 것이다. 가상한 일이다. 한 번은 외국 여행길에 그 부부와 나란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있었다. 식사시간에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포도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 하고 물어본다. “그건 포도야.” 또 딸기를 가리키며 “이건 뭐야?” 하니 “응,그건 딸기야.”라고 대답하니 집어 먹는다. 그러더니 또 한 번 “이건 뭐야?” “그건 토마토야.” 물어보는 것들이 누구도 알 수 있는 과일들이다. 유치원 아이들도 묻지 않을 것들이다. 너무도 자명한 것을 물어보는 순진한 아내.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대답해주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것을 바로 옆자리에서 내 아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부러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 아내도 내게 딸기를 가리키며 물어본다. “이게 뭐야?” 그래 나는 아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보면 몰라!”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실망했던지 또 한번 포도를 가리키며 아내가 묻는다. “이건 뭐야?” “아니 눈도 없어?” 그랬더니 나를 쥐어박는다. 그래서 서로 웃었다. 무뚝뚝한 것보다 자상한 것이 좋다. 그러나 내 남자,내 여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불만이 된다. 자족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 자기보다 좋아보이는 사람과 계속 비교하기 때문이다. 바로 비교 함정이다. 사람은 백인백색,모두 다르고 독특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광에 비해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 불행하다.
/두상달 장로(한국가정문화원 이사장)
▣ 사명이 있는 자와 없는자
부모있는 아이와 고아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부모있는 자식은 저녁이 되면 서둘러 엄마 아빠가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만, 고아는 돌아갈 곳이 없어 방황합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죽을 때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신자는 죽음을 앞두고 돌아갈 곳이 불분명하기에 불안하고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신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평안하게 주님 품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와 사명이 없는 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생활에 목표와 방향성이 분명한 사람은 사명이 있는 사람이요, 삶에서 날마다 회의와 방황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사명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 장명수 목사 설교中 -
▣ 대조되는 사랑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일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스물여섯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네 살 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습니다. 이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자신의 피를 어린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서 아기의 입에 물렸습니다. 이들 모녀는 매몰된 지 14일만에 극적으로 구출이 되었는데 어머니의 손가락은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조를 이루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딸이 전남 완도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가 54세 된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버스정류장 부근 도로에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 사망시 1억 5천 만원을 받을 수 있는 교통상해보험을 일곱 개나 가입하고 있었다 합니다.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 물과 기름
휘발유 값이 드디어 리터당 1500원으로 올랐습니다. 정말 기름 값이 너무 올라서 자가용을 운전하기가 겁나네요. 하나님은 왜 우리나라에 석유를 주시지 않아서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름값을 내게 하신 것일까요?
그러나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석유를 주시지 않은 대신에 '물'을 주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냥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뿐입니다. 산유국(産油國)보다 '깨끗한 물' 국가인 산수국(産水國)이 더 귀한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한 드럼의 물 값은 중동에서 기름 두드럼 값과 같습니다. 한때는 기름 다섯 드럼으로 물 한 드럼을 살 수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동에서 한국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유조선을 한 3년 탔던 선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중동으로 갈 때는 빈 배로 가게 되는데, 유조선을 개조해 물을 실어가서 기름과 맞바꿔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동의 '물'시장은 미국이 점령하고 있어서 한국이나 일본은 끼어들 틈이 없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 물을 수출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같은 분이 나타나서 우리나라를 물 수출 국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기름 값이 조금 내려갈까요? ⓒ최용우
▣ 일단 앉아서
축구경기를 유심히 보면 전반전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동양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쉬고, 서양 사람들은 벽에 기대거나 그냥 서서 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체구조상 동양 사람들은 상체가 무겁기 때문에 앉는게 안정적이고 서양 사람들은 하체가 길고 무겁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종교의 신의 형상을 보아도 서양 신은 서있는 입상이 많고 동양의 신은 앉아 있는 좌상이 많습니다. 동양 사람인 우리들은 앉아서 하는 일을 하면 효과적입니다. 앉아서 할 일이 뭐 있겠어요. 앉아서 기도하고 성경읽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고 성경읽고 찬송하고 묵상하고...
우리는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이어요. 서양 사람들 처럼 일어서서 지치도록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퍼질러 앉아서 기도하고 성경읽고 찬송하고 묵상하고... 한번 해 보세요. 서서 돌아다니며 해놓은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앉아서 할 수 있습니다.
/최용우
▣ 믿음과 유행
'오스기네스'라는 유대인이 구소련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당국에 의하여 정치법으로 15년 간 투옥되어 있었다.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은밀히 예수에 대한 복음이 전해졌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부터, 언젠가는 자신의 4살 난 아들을 보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5년을 견디어 냈다. 마침내 그가 석방이 되었을 때 가슴이 울렁거리는 흥분으로 자기 아들과의 재회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들을 만났다. 아들을 포옹하려는 순간 자신의 아들이 가슴에 십자가를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아버지는 너무나 감격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들이 지니고 있다니. 포옹을 풀고 그동안의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이제 19세가 된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뜻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니?"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말을 기대하면서 늠름하게 자라난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거 유행이예요."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희망이었다. 소망이었으며, 위로였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행이었던 것이다.
▣ 다른 사람은 뭐하나?
- 파바로티(Pavarotti)는 세계 최고의 테너입니다.
- 조수미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입니다.
- 타이거 우즈(Tiger woods)는 세계적인 골프 선수입니다.
-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은 세계적인 농구 선수이고,
박지성, 박주영, 이영표, 안정환, 차두리, 베컴(David Beckham)… 은 세계적인 축구선수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뭘 잘하나'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삽니다.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에 배 아파하며 자기도 그것을 하려고 합니다. 남이 수영복 입으면 자기도 입어야 하고… 해변에 가면 자기도 가야 할 것 같고…
남이 테니스 하면 자기도 해야 하고…
남이 새로 나온(유행하는) 옷을 입으면 자기도 입어야 하고…
뭐든지 남에게 신경쓰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를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르게 살게 하셨고,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형편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더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현실을 부인하면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 하나님과 황금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됐다. 한 사람은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다. 그는 영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정책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전자는 세실 로드(Cecil Rhodes),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가? 그것은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리빙스턴은 하나님(God)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다. 그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 콩나물과 콩나무
곡식 가운데 콩은 단백질과 지방이 많이 들어있어서 예로부터 사랑받는 식품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이 콩나물을 직접 키우는 것을 보았고, 콩씨앗을 밭에 뿌려서 싹이 나고 자라 열매맺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자랐다.
똑같은 콩 씨앗이지만 자라는 여건과 환경에 따라 콩나물이 되기도 하고 콩나무가 되기도 한다. 콩나물은 보자기로 덮여 햇빛이 차단된 채 어둠 속에서 고이 자라고, 콩나무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콩나물은 머리를 든 채 뿌려주는 물만 먹고 자라고, 콩나무는 씨앗이 죽어져 썩을 뿐 아니라 토양의 각종 영양분을 스스로 섭취하며 자란다. 결국 콩나물은 약하게 자라 일회용 콩나물 반찬으로 끝나지만 콩나무는 가지를 뻗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재생산의 기회를 만들어 놓는다.
성도들도 어느 교회에서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콩나물처럼 나약한 성도가 되기도 하고 콩나무처럼 단단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성도가 되기도 한다.
'콩나물 성도'는 교회에 살며시 들어와 목회자가 덮어주는 보자기에 덮혀서 배풀어 주는 은혜만 받을 뿐, 험한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답게 살지 못한다.
그러나 '콩나무 성도'는 교회에 등록하자마자 뿌리를 내리고 구역 예배, 새벽기도, 성경공부 등 신앙적 모임에 적극 참여하여 훈련을 받으며, 행여나 성도들간의 아픔이 있더라도 '연합은 성령의 역사요 분열은 사탄의 궤계'라는 영적 법칙을 알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내하며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헌신한다.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환난을 뜻하는 헬라어 들립시스는 알곡으로부터 겨를 분리시켜 내던 곡식 떠는 기구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밭에서 거둔 밀은 곡간에 보관하기 전에 탈곡기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신재국 목사 (부평갈보리교회)
▣ 양과 염소의 구분
성경: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양과 염소의 구분법을 아십니까?
양과 염소가 죽을때 보면 확연하게 구분이 됩니다. 양을 잡을 때는 먼저 비닐 같은 장판을 땅 바닥에 깝니다. 그 위에 양을 세웁니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양의 등에서부터 가죽을 찢습니다. 그 위에 양을 세웁니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양의 등에서부터 가죽을 찢습니다. 양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순순히 그리고 차분히 마지막을 맞습니다. 염소는 그 반대입니다. 네발을 꽁꽁 묶고 내려 누릅니다. 그런데도 난동을 치며 반항을 합니다. 괴성,고성을 다 지릅니다. 그래서 염소 잡는 것을 동네 사람이 죄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의 희생양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피공로로 우리는 죄 씻음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 씻음 없이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죽으러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오직 단하나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이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마음과 힘도 건강도 삶도 다 쏟읍시다. 내게 있는 아직도 염소 같은 기질은 무었입니까?
/강흥복 목사(상계 광림교회)
▣ 두 종류의 팬
"그라운드에는 두 팀이 있다. 그래서 팬도 두 종류가 있지.
한쪽 팬이 즐거우면 상대 쪽 팬은 화가 나는 법이다. 그 중 한 쪽은 언제나 네게 나쁜 소리를 하게 되어 있다. 거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거다. 그라운드에서 화를 내면 게임을 망친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 펠레의《펠레, 나의 인생과 아름다운 게임》중에서 -
* 야구장의 아쉬운 함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립니다.
인생의 운동장에도 두 종류의 팬이 있습니다. 언제나 나쁜 소리를 내는 사람과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 운동장에 선 선수의 진정한 응원자는 한결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며, 그런 응원자가 있을 때 오늘의 패자도 내일의 승자로 바뀝니다. 한국야구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자! 아자!
/고도원의 아침편지
▣ 이해를 위한 비교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셀 푸르니에가 1994년에 쓴 철학적 에세이집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에 보면 '어떤 한 개의 개념에는 반드시 그것과 쌍을 이루는 개념이 있다'라는 전제하에 100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가 말하는 것이 '남자'입니다. '남자'라고 하는 개념에는 '여자'라는 개념이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을 이해할 때에는 반드시 남자와 여자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이해하려면 여자를 생각하고 이해해야 하며, 여자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남자와 비교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두 개념을 서로 대조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 똑같은 상황, 달라진 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전까지 나는 늘 쫓기는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달라졌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는 엄청난 존재로 탈바꿈해 있는 것이다.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갈등에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난에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어려움 가운데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차이가 바로 신앙의 역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가난한 자 같으나 남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자신감」/ 유진소
▣ 최고의 신랑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을 다른 어떤 일과도 바꾸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신랑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랑입니다. 혹 당신은 부자 신랑을 원합니까? 부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비교할 자는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
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그분과 더불어 나눌 것입니다. 지혜로운 신랑을 원합니까? 지혜에 있어 그리스도와 견줄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지식은 무한해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악한 세대의 모든 공격에서 당신을 보호해 줄 힘 있는 신랑을 원합니까?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만 한 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착한 신랑을 원합니까? 그리스도처럼 선하신 분은 없습니다. 다른 신랑들도 착한 면을 갖지만, 그들의 착함이란 불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착함은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그분 안에는 악이 없습니다. 잘생긴 신랑을 원합니까? 그분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납니다. 그분의 외모와 사랑의 빛줄기는 눈부십니다. 당신을 사랑해 줄 신랑을 원합니까? 예수님처럼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값없이 베풀어지고 변덕도 없으며 영원무궁합니다.
/ 조지 휫필드
▣ 비교의 재앙
장 집사는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아들은 지혜가 많아 우등생이었고 과기고에서도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아들로 인해 행복했다. 그러나 중학교 다니는 딸은 공부를 못해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장 집사 부인 이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딸에게 말했다. “오빠 반절만이라도 돼라. 너를 볼 때마다 엄마는 맘 아파 견딜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아들과 공부 못한 딸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가는 날 이 집사 가슴에는 못박히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입원 3개월 만에 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이 집사는 병원에서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받다 하늘로 떠났다.
비교급 인생은 안된다. 최상급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요 질서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안된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목사>
▣ 자녀 바르게 키우기
여덟 살 때까지 열등아였던 아인슈타인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뉴턴이나 스피노자,데카르트의 책을 독파할 정도로 강한 지식욕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선생님들이 그에게 다른 사람과 똑같이 되기를 계속 강요했다면 지금의 아인슈타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모두 살리지만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모두 죽인다.” 유대인들은 단순한 지능의 비교는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 어머니들은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친다. 그들의 관심사는 아이의 지능이 아닌 개성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재능이 있다. 선한 일을 위해 아이의 개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높이 날아올라라
어떤 조류학자가 독수리 새끼를 병아리들과 함께 길러보았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마치 병아리처럼 행동했다. 시간이 흘러 몸이 커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류학자는 독수리 새끼에게 야성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실험하고 싶어 높이 던져 날려보았다. 그러나 그냥 날갯짓만 할 뿐 전혀 날지 못했다. 날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높은 산에서 날려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높은 산에서 하늘을 두리번거리던 독수리 새끼의 눈에 강력하게 바람을 차오르며 창공을 나는 독수리 몇 마리가 보였다. 그 다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독수리가 갑자기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을 향해 날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의 권력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우리는 세상에 묻혀 병아리 같이 행동할 자들이 아니라,하늘에 소망을 품고 높이 날아올라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종교비교
인간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알면 불교인입니다. 인간의 삶에 도리를 알면 유교인입니다. 은혜를 알면 기독교인입니다. 오직 은혜를,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신앙인입니다.
▣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본적인 차이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한 유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왜 당신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유대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라며 강한 어투로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의 대답을 통해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이 세상에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음을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 유대인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전세계에는 당신들이 믿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유대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잖아요? 기독교는 열심히 전도하니까 그렇게 믿는 수가 증가할 수밖에요. 그러나 우리는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만 믿으면 되지 다른 민족까지 믿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그때 저는 다시 한번 유대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그들만의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전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지체이며 한 가족인 사실을 외면하면서 배타적이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 짧은 이야기 긴 감동 / 이동원
▣ 유리와 거울의 차이
유리는 앞이 잘 보입니다. 상대방의 모습도,불평할 만한 현실의 모습도 잘 보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똑같은 유리인데도 뒤에 수은이 발라졌기 때문에 거울에는 내 모습만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그리스도인인데도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불평할 상황만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자신의 허물이 보이고 약점이 보이며 죄스런 모습만 보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 받는 모습,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한 몸에 입은 모습,하나님의 축복을 통째로 받은 모습만 보입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왜 이리 사랑해주신단 말인가? 왜 이리 은혜를 베풀어주신단 말인가?”
그래서 은혜받은 성도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감사만 합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유리 성도입니까? 아니면 거울 성도입니까?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 글자 한 자 차이
Wife는 Life가 될 수도 있고 Knife 가 되기도 한다.
Bed time이 Bad time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글자 한 두자 차이일 뿐이다.
Star(별)와 Scar(상처)도 글자 한 자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환경을 Curse하면 Scar만 남게 된다.
▣ 남자와 여자의 차이(유머)
여자가 짝사랑을 하면 보고도 못 본 척한다
남자가 짝사랑을 하면 목소리가 커진다
여자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찾아 나선다
남자는 방황하다 방황하다 정착하게 된다
여자는 몰라도 되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
남자는 꼭 알아야 할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여자는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한다.
남자는 그 옷을 어떻게 벗게 할까 고민한다.
여자는 애교와 주접을 혼돈한다.
남자는 터프와 괴팍을 혼돈한다.
▣ 99와 1의 차이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되어야 합니다. 0도의 물이건 99도의 물이건 끓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차이가 자그마치 99도나 되면서도 말입니다. 수증기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갈 수 있으려면 물이 100도를 넘어서 부터입니다. 그러나 99도에서 100도 까지의 차이는 불과 1도라는 사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99도까지 올라가고도 1을 더 하지 못해 포기한 일은 없으신지요? 1보다 더한 99를 노력하고도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끈기와 용기,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못 다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노력 끝에 기쁨이 오고 그 열매는 자신을 밝혀주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밝은 빛이 되어 줍니다. 언젠가 다시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친다면 지난 노력의 열매들은 당신의 자신감이 되어주고 어려움을 풀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의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항상 노력하십시요.
▣ 금덩이와 돌덩이의 차이
돈을 모으기만 할 뿐 쓸 줄 모르는 수전노가 있었습니다. 돈궤가 가득 차자 그 돈을 모조리 금덩이와 바꾸었습니다. 큼직한 금덩이를 보고 즐거워하던 이 사람은 문득 집에 도둑이 들어 금덩이를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담벼락 밑에 구덩이를 파고 몰래 금덩이를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금덩이가 밤새 무사한지 아침만 되면 뜰에 나가 담벼락 밑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든 사이에 도둑이 들어 담벼락 밑의 금덩이를 몽땅 가져가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안 수전노가 땅을 치며 통곡하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보게, 그렇게 슬퍼한다고 없어진 금덩이가 다시 돌아오겠는가? 그만 진정하게나. 대신 잘생긴 돌덩이를 묻어 놓고 금덩이라고 생각하게나. 금덩이든 돌덩이든 쓰지 않으면 별반 다를 게 없지 않겠나.”
▣ 생각 차이의 열매
어느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늦게 귀가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이 반갑게 맞아주길 바라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같은 심정이다. 어느 날 아내가 무척 힘들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먼저 귀가한 남편은 아내가 신발을 벗자마자 “여보,나 커피!”라고 말한 뒤 계속 TV만 보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힘들기는 서로 마찬가지인데 “힘들었지,밥은 먹었어?”라는 다정한 말은커녕 커피 심부름부터 시키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이런 생각을 주셨다고 한다. ‘아니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보니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고 싶었나 봐.’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아내의 기분이 좋아졌고 부부는 행복한 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만들어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중요하다. 왜냐 하면 우리는 그 결과에 따라 그 열매를 먹기 때문이다.
/김성혜 (한세대 총장)
▣ 죄와 실수의 차이
하나님이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를 우리가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죄는 그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행동과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불쾌하게 여기시는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만큼 주님과 당신 사이의 친밀도는 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죄를 지었을 때, 요한은 “만약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백한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이 ‘죄’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우리도 동의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죄를 약화시키거나 경시하지 말라. 하나님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하라. 실수라고 하지 말고. 간음을 그저 불륜이라고 하지 말고 ‘간음’이라고 하라. 하나님이 죄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도 죄라고 하라. 우리가 그렇게 죄를 자백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이다. 주님은 신실하시다.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 「서른한 번의 새아침」/ 래리 모이어
▣ 오만과 겸손의 차이
오만한 성품과 과음으로 군대에서 쫓겨난 젊은 장교가 있었다. 젊은이는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했으나 실패했으며
이어서 한 사업도 실패했다.그러나 전쟁을 맞은 젊은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반사병으로 입대, [새로운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대위가 됐고 소령이 됐으며 나중엔 부대 지휘관이 됐다. 그 뿐인가. 그의 겸손하고 성숙한 인품이 알려져 링컨 밑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내다 대통령까지 되었다.그가 바로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그란트장군이다.
▣ 겸손함과 비굴함의 차이
어느 시골에 겸손하고 부지런하여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좋아해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았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소년도 그를 무척 좋아하면서 그의 가난함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소년이 성년이 되어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달리 거만스러워졌고 별로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마을을 어슬렁거렸습니다. ‘나도 이제 남 못지않게 돈이 있다’는 교만한 모습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그 사람이 겸손했던 것은 참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굴함이었습니다. 그의 부지런함 역시 가난이 준 구차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절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바울이 이렇게 자족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독교인의 품성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임종수 목사/ 큰나무교회 -
▣ 게으름과 인내의 차이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헨리 워드 비처가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높은 바위에서 메말라 가는 바다 가재가 있습니다. 그 바다 가재에게는 바다로 되돌아가기에 충분한 힘은 있지만 지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만일 바닷물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 바다 가재는 그곳에서 말라 죽고 맙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한다면 바다 가재는 자신의 1미터 앞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도달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도 사람들을 ‘곤란한 지점’으로 몰아가는 파도가 있습니다. 그 파도는 바다 가재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처럼 사람들을 그곳에 그냥 남겨 둡니다. 만일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친 지점에 누워서 어떤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싣고 부드러운 물속으로 다시 인도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이 바라는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종종 인내로 오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듭니다. 한편 인내는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계속 일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선물」/ 어너 북스
▣ 비교, 차이에 관련한 성경 말씀
0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욥28:17)
0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욥28:19)
0 그 때, 너희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며, 나 주를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말3:18)
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29, 30)
0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 16)
0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25:33, 34)
0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2:18)
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요21:20- 23)
0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0, 21)
▣ 돼지와 암소의 비교
돼지가 하루는 암소에게 평소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암소야, 너도 보다시피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해주니? 사람들은 내 고기로 햄과 베이컨을 만들어 먹잖아?
또 내 창자를 빼내 순대를 만들어 먹고 심지어는 발도 족발로 만들어 얼마나 맛있게 먹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고 너만 좋아할까?”
암소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죽어서만 좋은 일을 하고 살아있을 때는 너만 먹잖아!
그러나 나는 살아있을 때도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고 또 맛있는 우유도 주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너는 싫어한단다.”
우리가 가진 물질은 어차피 죽으면 남에게 다 주고 가야 합니다. 그러니 살아있을 동안에 남에게 많이 베풀어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도 칭찬을 받고 하나님도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을 동안에 베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서도 비난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 스펄젼의 두편 설교 비교
챨스 스펼젼 목사가 한번은 형편없는 설교를 했다. 말하자면 완전히 죽을 쑨 것이다. 그는 참으로 마음이 겸손해져서 주께 기도했다.
"주 하나님, 당신은 무에서도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 형편없는 설교를 축복해 주십시요"
그는 한 주간 내내 주님을 의지하면서 이 기도을 했다.
한밤중에도 일어나 기도를 했다.
그 다음 주일은 지난 주의 엉터리 설교를 보상하려는 마음으로 멋진 설교을 했다. 사람들도 굉장히 칭찬했고 그 자신도 굉장히 흡족해 했다. 그 때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 이 두 편의 설교의 결과을 한번 비교해 보아야 하겠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랄만큼 달랐습니다. 첫 번째의 엉터리 설교를 통해서는 41명이나 주님을 영접했지만, 두 번째의 그 멋진 설교를 통해서는 단 한 영혼도 구원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 비교의 재앙
장 집사는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아들은 지혜가 많아 우등생이었고 과기고에서도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아들로 인해 행복했다. 그러나 중학교 다니는 딸은 공부를 못해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장 집사 부인 이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딸에게 말했다. “오빠 반절만이라도 돼라. 너를 볼 때마다 엄마는 맘 아파 견딜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아들과 공부 못한 딸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가는 날 이 집사 가슴에는 못박히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입원 3개월 만에 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이 집사는 병원에서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받다 하늘로 떠났다.
비교급 인생은 안된다. 최상급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요 질서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안된다.
▣ 비교의식을 버리자
나무꾼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칡덩굴을 거두려고 붙들었는데 그게 하필 그늘에서 자고 있던 호랑이 꼬리였습니다. 잠자는 호랑이를 건드린 거죠. 깜짝 놀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호랑이가 나무를 흔들었습니다. 나무꾼은 놀라서 그만 손을 놓았고 나무에서 추락했습니다.그런데 하필이면 떨어진 장소가 호랑이 등이었습니다. 이번엔 호랑이가 놀라 몸을 흔들었고 나무꾼은 호랑이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호랑이가 나무꾼을 떨어뜨리려고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꾼은 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호랑이 등을 더 꽉 껴안았습니다.마침 한 농부가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 밭에서 일하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불평을 합니다. “나는 평생 땀흘려 일해도 사는 게 이 꼴인데 어떤 놈은 팔자가 좋아서 빈둥빈둥 놀아도 호랑이 등만 타고 다니니 어디 살겠는가?”하고 팔자타령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호랑이 등을 붙들고 있는 나무꾼이 농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을 보면 다 행복해 보이고, 만족한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나를 이웃과 비교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날 자기 교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에 다니니까 행복하지?”그러자 그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대학에 다니면 뭐해요. 지방대학교인데요”
목사님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한 청년을 붙들고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 다니면 뭐해요. S대도 아닌데”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S대에 다니는 청년을 붙들고 똑같이 물었습니다. S대에 다니는 청년은 “S대에 다니면 뭐해요. 학과가 좋지 않은데.”
얼마 후 그 목사님은 S대에서 좋은 학과를 다니는 청년을 만나 물었습니다. “넌 정말 행복하지?” 그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은 과에 있으면 뭐해요. 수석도 못하는데.”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교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처한 상태에서 한 계단 올라가면 정말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우리 위에 또 다른 계단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비교의식은 우리를 끝없는 경쟁으로 몰아넣고 쉴 새 없이 우리를 피곤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비교의식이 우리 가운데 너무 만연돼 있어 우리는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조금 더 넓은 집, 큰 차, 학벌 등 우리는 남보다 조금 더 낫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러나 결국 어떠한 사람도 비교의식 속에서는 참된 만족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면 우리보다 더 가진 사람을 항상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비교의식이야 말로 이 시대에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압사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했습니다.
비교하면 모두가 불행해지지만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면 우리는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우리로 하여금 비교하지 말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복을 따라 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비교의식을 버리자
마가렛 미첼 여사가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완성하고 있을 때, 하루는 누군가가 책을 한권 보내 왔는데, 그 당시 스테반 빈센트라는 사람이 남북 전쟁을 노래로 하여 쓴 "존 브라운의 시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미첼 여사는 그 작품의 훌륭함에 비하여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이 너무도 보잘 것 없다는 생각에 빠져, 쓰다만 자신의 원고를 옷장 안에 6개월 동안 쳐박아 두고 시름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사는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듣고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드디어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저런, 이것은 당신 자신을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성공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잠재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진실로 측량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위에서 노력하시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갖고 있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름하기 전에, 남이 갖고 있는 능력만을 먼저 보고 그 때문에 쉽게 실망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조금 못하거나, 여러 가지 활동에서 부족함을 보이면 누구누구는 잘하는데 너는 못하니 하는 식으로 꾸지람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일들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고무하기보다는 위축하게 하거나 용기를 잃게 하기 쉽습니다. 남으로부터 타산지석의 교훈뿐만 아니라 좋은 장점을 본받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남과 자신을 비교만 하는 것은 자신의 성공요인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재능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은 분명 자기 자신이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성공은 참으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열심, 열심...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특별히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살리실 때에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고 산상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하시는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그는 12제자 중에서도 요한과 야고보와 더불어 더 드러나 보입니다. 참말 그는 예수님을 좇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포기) 열심으로 주를 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성찬에서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을 예언하시자 완강이 부인합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은근히 자신과 다른 제자들을 비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모든 것을 버리고 충성했던 베드로, 그는 어쩌면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요?
또 베드로는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이며 동료인 요한을 보았을 때 슬며시 그와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파하다가 십자가에 팔을 벌리고 못박혀 순교할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여 이 사람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로 냉정합니다. 요한이 어찌되든 그것이 너 베드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너 베드로는 그런 일에 신경쓰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혹시 우리도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잘 완수해야겠다고 열심을 다하여 뛰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주위를 돌아보며 베드로와 같이 엉뚱한 질문을 한 경험이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선한 일을 계획할 때 혹은 직분을 맡을 때,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는 더 낫다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다른 교인들 보다 더 권위를 가져야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실 때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주를 사랑합니다."하고 비교하거나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깨어진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을 느끼지 않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가치를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지 않으십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구속하신 주의 자녀입니다. 기억합시다. 우리의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비교하다가...
어느 부부가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다. 저녁도 같이 먹고 영화도 보고 즐거운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부인 친구 얘기가 나왔다.
"내 친구는 복도 많아, 지난번 아파트를 사더니 또 60평짜리를 샀다네? 그리고 신랑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당신은 그 신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 후 신랑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설날에 처가댁에 인사를 갔다. 식사를 하고 덕담을 나눈 후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집안 얘기를 하다가 네 집안, 내 집안, 비교하며 깎아내리기를 하였다. 이런 것들이 빌미가 되어 결국은 이혼까지 이르고 말았다. 비교하지 마십시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부모와 남의 부모를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아내와 남의 아내를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남편과 남의 남편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집안과 남의 집안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내 직업과 남의 직업을 비교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밖에 없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존재입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나와의 비교는 발전용에만 사용합시다.
▣ 비교
중세에 어떤 수도사가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다 불러모았다. 그는 하얀 종이의 한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선에 손을 대지 말고 이 선을 가늘고 짧게 만들어 보아라!”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 한 제자가 스승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는 붓을 들고서 스승이 그은 선 옆으로 더 굵고 더 긴 선을 여러 개 그었다. 그러다보니 스승이 그은 선은 상대적으로 가늘고도 짧아보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가 많다. 그럴 때 그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근심과 염려가 쌓이게 되고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자리 잡을 틈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한 경우에 그 문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 그럴수록 기도의 줄을 더욱 더 굵고도 길게 늘려라. 감사의 줄을 힘껏 그어라. 믿음의 줄, 헌신의 줄을 더욱더 힘차게 그려라. 그러면 내가 가진 문제는 어느덧 간곳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부둥켜안고 혼자 아무리 씨름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을 그 문제에서 떠나게 하고 그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줄을 계속 그어나갈 때, 그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 낮은 곳을 보라
페르시아의 사니아라는 시인의 이야기이다. 그는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시인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돈이 없어 신발을 사지 못하고 맨발로 걸어다니게 되자 그만 처음으로 불평했다.
"나는 왜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라 신발도 못 신고 다닐까" 그런데 그가 불평하며 걷는 그때 마침 다리가 없는 장애인을 만났다. 순간 그는 이렇게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하나님,감사합니다. 다리가 없는 사람에 비하면 신발이 없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니 참으로 행복합니다"
▣ 세기적으로 유명했던 전쟁 영웅 세 사람의 비교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I세와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과 워터루의 위대한 군인 웰링턴 장군의 비교가 참 재미있다.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전선에서 병사들이 쫒겨오면 “이 비겁한 놈들아 너희들은 영원히 살기나 할 것 같으냐?”하면서 전쟁터에서 부하 병졸들에게 심한 욕설을 하였고, 나폴레옹은 이와는 다른 방법으로 “전우여! 너는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다 운이요 운명이야. 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아무리 깊고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할지라도 총알은 기어코 찾아갈 것이요, 만일 죽을 수 없는 운명이라면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쟁 마당일지라도 자네는 결코 피하여 버릴걸세”하였다.
나폴레옹을 워터루의 싸움에서 무찔렀던 영국의 위대한 군인 웰링턴은 무서워 떠는 병사들에게 격려에 격려를 더하고 용기를 더하게 하였는데 “친구여! 나도 전쟁 마당이 무섭고 겁이 난다. 도망가고 싶고 무서운 공포나 불안이 있다네. 그러나 책임과 의무를 생각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 때문에 이 자리를 물러설 수 없다네. 돌아가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서 용감하게 같이 싸워 이기세”라고 격려하였다는 것이다.
격려는 욕설보다도, 운명론보다도 더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입증하여 준 말이다.
▣ 자기 만의 길을 가라!
우리에게 이미 <헝거리 정신>으로 잘 알려진 영국 경제학자 찰스 핸디는 최근 그의 책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에서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 29명을 분석하고 그 결론으로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일등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남을 따라하지 말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 자신을 믿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아무도 가지 않은 자기만의 길을 가라"
'자기다움'에 대한 인식의 문제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창조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설계되지 않은 집은 지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이 되어지는 인생은 아무리 잘 살아도 사실 자신의 인생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 내 귀에 들리는 대로
어려운 환경 가운데 시작한 신혼 살림 속에 유일한 낙은 아이를 데리고 주일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었다. 날로 성장하는 믿음 속에 잔잔한 평화를 누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여고동창과의 만남을 가졌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운이 좋게 시아버지께 물려받은 5층 빌딩의 소유자로 나를 반기며 각종 맛있는 요리를 가정부에게 만들어오게 했다. 늘 가정부 손에 해주는 밥이나 먹으며 헬스까지 다니는 친구가 어찌나 부러워 보이는지 집에 돌아온 나는 ‘나도 언제 친구처럼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편안한 신세가 되어보나’ 하는 불평을 남편 앞에 종종 터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열이 나고 기침이 계속 멎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 결국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 팔에 링거주사가 꽂혀 있는 썰렁한 병실에서 그날 저녁 보호자 밥이 내 앞에 나왔다. 수저를 드는 순간 스치는 깨달음. ‘그렇게 원했던 남이 해주는 밥을 이렇게 먹게 되는구나.’ 내 귀에 들리는 대로 행해주리라는 말씀이 병실을 감돌고 있었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더니…. 그날 이후 어떠한 상황에도 남과 비교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기로 한 것이 하나님과 나의 은밀한 약속으로 되어 있다.
/ 서난숙
* 기도: 나의 삶을 친히 인도하시는 주님, 나의 삶의 자리가 힘들고 고달파 때로는 주님 앞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놓는 미련함을 고백합니다. 나의 생각을 주장하셔서 헛된 근심으로 삶을 소진하지 말게 하시며 주님으로 인한 소망의 말들이 내 입에 있게 하소서.
/생명의 삶
▣ 더 굵고 더 길게
중세에 어떤 수도사가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다 불러모았다. 그는 하얀 종이의 한 가운데에 선을 그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선에 손을 대지 말고 이 선을 가늘고 짧게 만들어 보아라!”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를 풀 수가 없었다. 한참 뒤에 한 제자가 스승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그는 붓을 들고서 스승이 그은 선 옆으로 더 굵고 더 긴 선을 여러 개 그었다. 그러다보니 스승이 그은 선은 상대적으로 가늘고도 짧아보이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가 많다. 그럴 때 그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근심과 염려가 쌓이게 되고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자리 잡을 틈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한 경우에 그 문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 그럴수록 기도의 줄을 더욱 더 굵고도 길게 늘려라. 감사의 줄을 힘껏 그어라. 믿음의 줄, 헌신의 줄을 더욱더 힘차게 그려라. 그러면 내가 가진 문제는 어느덧 간곳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부둥켜안고 혼자 아무리 씨름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내 마음을 그 문제에서 떠나게 하고 그 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줄을 계속 그어나갈 때, 그 문제가 절로 해결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 박상훈 -
▣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는 길
수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보낸 후 남편을 잃은 부인이 있었다. 자녀도 없이 홀로 남은 그녀는 점점 더 자기 연민과 우울에 빠져들게 되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아무 버스나 타고 정신없이 가다가 종점에서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오르간 소리가 나는 교회 안에 들어갔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가 지난 후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녀 곁에는 초라한 옷을 걸친 두 어린아이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라고 물었다. 그 작은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부모님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과자와 선물을 사 주었고 그들과 말벗이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는 동안 놀랍게도 그녀는 자신의 우울증에서 벗어나 자기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던가를 기억하고는 감사하게 되었다.
▣ 스스로 찾는 행복
같은 회색이라도 검은 바탕에 있을 때가 흰 바탕에 있을 때보다 더 밝아 보이는 착시현상은 우리의 눈이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고 주변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전세를 살다가 내 집을 갖게 되면 더 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자가용을 처음 사서 행복해하다가도 더 좋은 차를 산 친구를 보면 만족감은 줄어듭니다. 마치 착시현상처럼 우리는 자신의 처지를 다른사람과 비교하여 불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여유가 있어도 작은 집에 만족하고, 유행이 지나가도 깨끗한 옷이면 족한 것으로 생각하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언제나 미소 짓고 있을 것입니다.
/김민식(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자상한 남편이 좋다
비교의식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여자에게는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여자들이다. 강남의 집값을 올린 공로자들도 여자들이다. 비교편차 의식이 삶의 지평을 넓히기도 하지만 자기비하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J장로. 그는 헌신된 사람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다. 나와는 여러 면에서 평생의 동역자이기도 하다. 그는 일의 추진력에 있어 탁월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 처럼 깡촌 출신으로 투박한 모습에 세련미는 없다. 그는 아내에게 자상한 사람이다. 아내를 끔찍이 생각하고 소중히 여긴다. 얼마 전부터 아내를 위해 평생 설거지하기로 작정하고 실천하고 있다. 젊을 때 아내가 희생했으니 이제 아내를 위해 설거지 전담맨이라도 되겠다는 것이다. 가상한 일이다. 한 번은 외국 여행길에 그 부부와 나란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있었다. 식사시간에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포도를 가리키며 “이게 뭐야?” 하고 물어본다. “그건 포도야.” 또 딸기를 가리키며 “이건 뭐야?” 하니 “응,그건 딸기야.”라고 대답하니 집어 먹는다. 그러더니 또 한 번 “이건 뭐야?” “그건 토마토야.” 물어보는 것들이 누구도 알 수 있는 과일들이다. 유치원 아이들도 묻지 않을 것들이다. 너무도 자명한 것을 물어보는 순진한 아내.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것을 천연덕스럽게 대답해주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그것을 바로 옆자리에서 내 아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부러운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내 아내도 내게 딸기를 가리키며 물어본다. “이게 뭐야?” 그래 나는 아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보면 몰라!”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실망했던지 또 한번 포도를 가리키며 아내가 묻는다. “이건 뭐야?” “아니 눈도 없어?” 그랬더니 나를 쥐어박는다. 그래서 서로 웃었다. 무뚝뚝한 것보다 자상한 것이 좋다. 그러나 내 남자,내 여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불만이 된다. 자족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 자기보다 좋아보이는 사람과 계속 비교하기 때문이다. 바로 비교 함정이다. 사람은 백인백색,모두 다르고 독특하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광에 비해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때 불행하다.
/두상달 장로(한국가정문화원 이사장)
▣ 사명이 있는 자와 없는자
부모있는 아이와 고아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부모있는 자식은 저녁이 되면 서둘러 엄마 아빠가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만, 고아는 돌아갈 곳이 없어 방황합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죽을 때에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불신자는 죽음을 앞두고 돌아갈 곳이 불분명하기에 불안하고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신자는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평안하게 주님 품안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와 사명이 없는 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생활에 목표와 방향성이 분명한 사람은 사명이 있는 사람이요, 삶에서 날마다 회의와 방황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사명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 장명수 목사 설교中 -
▣ 대조되는 사랑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일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스물여섯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네 살 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습니다. 이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자신의 피를 어린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서 아기의 입에 물렸습니다. 이들 모녀는 매몰된 지 14일만에 극적으로 구출이 되었는데 어머니의 손가락은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조를 이루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딸이 전남 완도에 있는 고향집에 내려가 54세 된 아버지를 살해하고 시신을 버스정류장 부근 도로에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 사망시 1억 5천 만원을 받을 수 있는 교통상해보험을 일곱 개나 가입하고 있었다 합니다.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 물과 기름
휘발유 값이 드디어 리터당 1500원으로 올랐습니다. 정말 기름 값이 너무 올라서 자가용을 운전하기가 겁나네요. 하나님은 왜 우리나라에 석유를 주시지 않아서 이렇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름값을 내게 하신 것일까요?
그러나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석유를 주시지 않은 대신에 '물'을 주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냥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있는 나라는 미국, 일본, 한국뿐입니다. 산유국(産油國)보다 '깨끗한 물' 국가인 산수국(産水國)이 더 귀한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한 드럼의 물 값은 중동에서 기름 두드럼 값과 같습니다. 한때는 기름 다섯 드럼으로 물 한 드럼을 살 수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동에서 한국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유조선을 한 3년 탔던 선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중동으로 갈 때는 빈 배로 가게 되는데, 유조선을 개조해 물을 실어가서 기름과 맞바꿔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중동의 '물'시장은 미국이 점령하고 있어서 한국이나 일본은 끼어들 틈이 없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 물을 수출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대동강물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 같은 분이 나타나서 우리나라를 물 수출 국가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기름 값이 조금 내려갈까요? ⓒ최용우
▣ 일단 앉아서
축구경기를 유심히 보면 전반전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동양 사람들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쉬고, 서양 사람들은 벽에 기대거나 그냥 서서 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체구조상 동양 사람들은 상체가 무겁기 때문에 앉는게 안정적이고 서양 사람들은 하체가 길고 무겁기 때문에 서 있는 것이 안정적입니다. 종교의 신의 형상을 보아도 서양 신은 서있는 입상이 많고 동양의 신은 앉아 있는 좌상이 많습니다. 동양 사람인 우리들은 앉아서 하는 일을 하면 효과적입니다. 앉아서 할 일이 뭐 있겠어요. 앉아서 기도하고 성경읽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고 성경읽고 찬송하고 묵상하고...
우리는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이어요. 서양 사람들 처럼 일어서서 지치도록 여기저기 싸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퍼질러 앉아서 기도하고 성경읽고 찬송하고 묵상하고... 한번 해 보세요. 서서 돌아다니며 해놓은 일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앉아서 할 수 있습니다.
/최용우
▣ 믿음과 유행
'오스기네스'라는 유대인이 구소련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당국에 의하여 정치법으로 15년 간 투옥되어 있었다.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하면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은밀히 예수에 대한 복음이 전해졌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믿음을 가지고부터, 언젠가는 자신의 4살 난 아들을 보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15년을 견디어 냈다. 마침내 그가 석방이 되었을 때 가슴이 울렁거리는 흥분으로 자기 아들과의 재회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들을 만났다. 아들을 포옹하려는 순간 자신의 아들이 가슴에 십자가를 지니고 있음을 보았다. 아버지는 너무나 감격했다.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서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들이 지니고 있다니. 포옹을 풀고 그동안의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 이제 19세가 된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뜻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니?"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의 말을 기대하면서 늠름하게 자라난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들의 대답을 듣는 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거 유행이예요."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희망이었다. 소망이었으며, 위로였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이었다. 그러나 아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행이었던 것이다.
▣ 다른 사람은 뭐하나?
- 파바로티(Pavarotti)는 세계 최고의 테너입니다.
- 조수미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입니다.
- 타이거 우즈(Tiger woods)는 세계적인 골프 선수입니다.
-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은 세계적인 농구 선수이고,
박지성, 박주영, 이영표, 안정환, 차두리, 베컴(David Beckham)… 은 세계적인 축구선수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은 뭘 잘하나'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잘 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다른 사람을 의식하며 삽니다. 다른 사람이 잘 하는 것에 배 아파하며 자기도 그것을 하려고 합니다. 남이 수영복 입으면 자기도 입어야 하고… 해변에 가면 자기도 가야 할 것 같고…
남이 테니스 하면 자기도 해야 하고…
남이 새로 나온(유행하는) 옷을 입으면 자기도 입어야 하고…
뭐든지 남에게 신경쓰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를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기 다르게 살게 하셨고,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형편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더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현실을 부인하면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 하나님과 황금
영국이 아프리카를 탐험할 때 두 영국인의 행동이 크게 대비됐다. 한 사람은 황금전쟁을 일으켜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하고 엄청난 금과 다이아몬드를 영국에 들여왔다. 그는 영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이며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영국의 침략정책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그는 영국인들로부터 반역자요 배신자로 비난받았다. 전자는 세실 로드(Cecil Rhodes), 후자는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로드의 무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영국 국립묘지에 안장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이 왜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가? 그것은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리빙스턴은 하나님(God)을 믿었고 로드는 황금(Gold)을 믿었다. 그 믿음이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 콩나물과 콩나무
곡식 가운데 콩은 단백질과 지방이 많이 들어있어서 예로부터 사랑받는 식품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모님이 콩나물을 직접 키우는 것을 보았고, 콩씨앗을 밭에 뿌려서 싹이 나고 자라 열매맺는 과정을 지켜 보면서 자랐다.
똑같은 콩 씨앗이지만 자라는 여건과 환경에 따라 콩나물이 되기도 하고 콩나무가 되기도 한다. 콩나물은 보자기로 덮여 햇빛이 차단된 채 어둠 속에서 고이 자라고, 콩나무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 모진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콩나물은 머리를 든 채 뿌려주는 물만 먹고 자라고, 콩나무는 씨앗이 죽어져 썩을 뿐 아니라 토양의 각종 영양분을 스스로 섭취하며 자란다. 결국 콩나물은 약하게 자라 일회용 콩나물 반찬으로 끝나지만 콩나무는 가지를 뻗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재생산의 기회를 만들어 놓는다.
성도들도 어느 교회에서 어떻게 자라느냐에 따라 콩나물처럼 나약한 성도가 되기도 하고 콩나무처럼 단단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성도가 되기도 한다.
'콩나물 성도'는 교회에 살며시 들어와 목회자가 덮어주는 보자기에 덮혀서 배풀어 주는 은혜만 받을 뿐, 험한 세상에서 예수의 증인답게 살지 못한다.
그러나 '콩나무 성도'는 교회에 등록하자마자 뿌리를 내리고 구역 예배, 새벽기도, 성경공부 등 신앙적 모임에 적극 참여하여 훈련을 받으며, 행여나 성도들간의 아픔이 있더라도 '연합은 성령의 역사요 분열은 사탄의 궤계'라는 영적 법칙을 알기 때문에 믿음으로 인내하며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헌신한다.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환난을 뜻하는 헬라어 들립시스는 알곡으로부터 겨를 분리시켜 내던 곡식 떠는 기구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밭에서 거둔 밀은 곡간에 보관하기 전에 탈곡기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
/신재국 목사 (부평갈보리교회)
▣ 양과 염소의 구분
성경: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양과 염소의 구분법을 아십니까?
양과 염소가 죽을때 보면 확연하게 구분이 됩니다. 양을 잡을 때는 먼저 비닐 같은 장판을 땅 바닥에 깝니다. 그 위에 양을 세웁니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양의 등에서부터 가죽을 찢습니다. 그 위에 양을 세웁니다. 그리고 예리한 칼로 양의 등에서부터 가죽을 찢습니다. 양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순순히 그리고 차분히 마지막을 맞습니다. 염소는 그 반대입니다. 네발을 꽁꽁 묶고 내려 누릅니다. 그런데도 난동을 치며 반항을 합니다. 괴성,고성을 다 지릅니다. 그래서 염소 잡는 것을 동네 사람이 죄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의 희생양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 피공로로 우리는 죄 씻음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 씻음 없이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죽으러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은 오직 단하나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은 이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일에 마음과 힘도 건강도 삶도 다 쏟읍시다. 내게 있는 아직도 염소 같은 기질은 무었입니까?
/강흥복 목사(상계 광림교회)
▣ 두 종류의 팬
"그라운드에는 두 팀이 있다. 그래서 팬도 두 종류가 있지.
한쪽 팬이 즐거우면 상대 쪽 팬은 화가 나는 법이다. 그 중 한 쪽은 언제나 네게 나쁜 소리를 하게 되어 있다. 거기에 익숙해져야 하는 거다. 그라운드에서 화를 내면 게임을 망친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 펠레의《펠레, 나의 인생과 아름다운 게임》중에서 -
* 야구장의 아쉬운 함성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게 울립니다.
인생의 운동장에도 두 종류의 팬이 있습니다. 언제나 나쁜 소리를 내는 사람과 끝까지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 운동장에 선 선수의 진정한 응원자는 한결같은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이며, 그런 응원자가 있을 때 오늘의 패자도 내일의 승자로 바뀝니다. 한국야구팀,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아자! 아자!
/고도원의 아침편지
▣ 이해를 위한 비교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셀 푸르니에가 1994년에 쓴 철학적 에세이집 "상상력을 자극하는 110가지 개념"에 보면 '어떤 한 개의 개념에는 반드시 그것과 쌍을 이루는 개념이 있다'라는 전제하에 100가지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그가 말하는 것이 '남자'입니다. '남자'라고 하는 개념에는 '여자'라는 개념이 쌍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을 이해할 때에는 반드시 남자와 여자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를 이해하려면 여자를 생각하고 이해해야 하며, 여자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남자와 비교해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두 개념을 서로 대조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 똑같은 상황, 달라진 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전까지 나는 늘 쫓기는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안에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은 달라졌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는 똑같아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는 엄청난 존재로 탈바꿈해 있는 것이다.
갈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갈등에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난에 쫓기는 사람이 아니라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 되었다. 어려움 가운데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차이가 바로 신앙의 역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가난한 자 같으나 남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들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자신감」/ 유진소
▣ 최고의 신랑감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을 다른 어떤 일과도 바꾸지 마십시오. 예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신랑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랑입니다. 혹 당신은 부자 신랑을 원합니까? 부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비교할 자는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모
든 것이 그분께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그분과 더불어 나눌 것입니다. 지혜로운 신랑을 원합니까? 지혜에 있어 그리스도와 견줄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지식은 무한해 모든 것을 통달합니다. 당신이 그분의 신부가 된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악한 세대의 모든 공격에서 당신을 보호해 줄 힘 있는 신랑을 원합니까? 능력에 있어서 그리스도만 한 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착한 신랑을 원합니까? 그리스도처럼 선하신 분은 없습니다. 다른 신랑들도 착한 면을 갖지만, 그들의 착함이란 불완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착함은 완전하고 완벽합니다. 그분 안에는 악이 없습니다. 잘생긴 신랑을 원합니까? 그분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납니다. 그분의 외모와 사랑의 빛줄기는 눈부십니다. 당신을 사랑해 줄 신랑을 원합니까? 예수님처럼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값없이 베풀어지고 변덕도 없으며 영원무궁합니다.
/ 조지 휫필드
▣ 비교의 재앙
장 집사는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아들은 지혜가 많아 우등생이었고 과기고에서도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아들로 인해 행복했다. 그러나 중학교 다니는 딸은 공부를 못해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장 집사 부인 이 집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딸에게 말했다. “오빠 반절만이라도 돼라. 너를 볼 때마다 엄마는 맘 아파 견딜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아들과 공부 못한 딸을 비교하며 괴로워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딸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가는 날 이 집사 가슴에는 못박히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입원 3개월 만에 딸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이 집사는 병원에서 폐암 선고를 받고 치료받다 하늘로 떠났다.
비교급 인생은 안된다. 최상급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창조의 원리요 질서다. 사람과 사람을 비교하면 안된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목사>
▣ 자녀 바르게 키우기
여덟 살 때까지 열등아였던 아인슈타인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뉴턴이나 스피노자,데카르트의 책을 독파할 정도로 강한 지식욕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선생님들이 그에게 다른 사람과 똑같이 되기를 계속 강요했다면 지금의 아인슈타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형제의 개성을 비교하면 모두 살리지만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모두 죽인다.” 유대인들은 단순한 지능의 비교는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 어머니들은 ‘남보다 뛰어나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가르친다. 그들의 관심사는 아이의 지능이 아닌 개성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타고난 재능이 있다. 선한 일을 위해 아이의 개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이 잘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높이 날아올라라
어떤 조류학자가 독수리 새끼를 병아리들과 함께 길러보았다. 그런데 이 독수리는 마치 병아리처럼 행동했다. 시간이 흘러 몸이 커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류학자는 독수리 새끼에게 야성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실험하고 싶어 높이 던져 날려보았다. 그러나 그냥 날갯짓만 할 뿐 전혀 날지 못했다. 날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높은 산에서 날려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높은 산에서 하늘을 두리번거리던 독수리 새끼의 눈에 강력하게 바람을 차오르며 창공을 나는 독수리 몇 마리가 보였다. 그 다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독수리가 갑자기 날개를 펼치더니 하늘을 향해 날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의 권력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우리는 세상에 묻혀 병아리 같이 행동할 자들이 아니라,하늘에 소망을 품고 높이 날아올라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장학일 목사<예수마을교회>
▣ 종교비교
인간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알면 불교인입니다. 인간의 삶에 도리를 알면 유교인입니다. 은혜를 알면 기독교인입니다. 오직 은혜를, 모든 것이 은혜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신앙인입니다.
▣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본적인 차이
제가 이스라엘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한 유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왜 당신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유대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라며 강한 어투로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의 대답을 통해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이 세상에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음을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 유대인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전세계에는 당신들이 믿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유대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잖아요? 기독교는 열심히 전도하니까 그렇게 믿는 수가 증가할 수밖에요. 그러나 우리는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만 믿으면 되지 다른 민족까지 믿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그때 저는 다시 한번 유대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그들만의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전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지체이며 한 가족인 사실을 외면하면서 배타적이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 짧은 이야기 긴 감동 / 이동원
▣ 유리와 거울의 차이
유리는 앞이 잘 보입니다. 상대방의 모습도,불평할 만한 현실의 모습도 잘 보입니다. 그러나 거울은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똑같은 유리인데도 뒤에 수은이 발라졌기 때문에 거울에는 내 모습만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그리스도인인데도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불평할 상황만 보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모습만 보입니다. 자신의 허물이 보이고 약점이 보이며 죄스런 모습만 보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 받는 모습,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한 몸에 입은 모습,하나님의 축복을 통째로 받은 모습만 보입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나를 왜 이리 사랑해주신단 말인가? 왜 이리 은혜를 베풀어주신단 말인가?”
그래서 은혜받은 성도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감사만 합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유리 성도입니까? 아니면 거울 성도입니까?
/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 글자 한 자 차이
Wife는 Life가 될 수도 있고 Knife 가 되기도 한다.
Bed time이 Bad time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글자 한 두자 차이일 뿐이다.
Star(별)와 Scar(상처)도 글자 한 자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환경을 Curse하면 Scar만 남게 된다.
▣ 남자와 여자의 차이(유머)
여자가 짝사랑을 하면 보고도 못 본 척한다
남자가 짝사랑을 하면 목소리가 커진다
여자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찾아 나선다
남자는 방황하다 방황하다 정착하게 된다
여자는 몰라도 되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보인다.
남자는 꼭 알아야 할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여자는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한다.
남자는 그 옷을 어떻게 벗게 할까 고민한다.
여자는 애교와 주접을 혼돈한다.
남자는 터프와 괴팍을 혼돈한다.
▣ 99와 1의 차이
물이 수증기가 되려면 100도가 되어야 합니다. 0도의 물이건 99도의 물이건 끓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차이가 자그마치 99도나 되면서도 말입니다. 수증기가 되어 자유로이 날아갈 수 있으려면 물이 100도를 넘어서 부터입니다. 그러나 99도에서 100도 까지의 차이는 불과 1도라는 사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99도까지 올라가고도 1을 더 하지 못해 포기한 일은 없으신지요? 1보다 더한 99를 노력하고도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끈기와 용기, 그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못 다할 일은 없는 것입니다.
노력 끝에 기쁨이 오고 그 열매는 자신을 밝혀주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밝은 빛이 되어 줍니다. 언젠가 다시 그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친다면 지난 노력의 열매들은 당신의 자신감이 되어주고 어려움을 풀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의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언제든지 자신을 밝힐 수 있게 항상 노력하십시요.
▣ 금덩이와 돌덩이의 차이
돈을 모으기만 할 뿐 쓸 줄 모르는 수전노가 있었습니다. 돈궤가 가득 차자 그 돈을 모조리 금덩이와 바꾸었습니다. 큼직한 금덩이를 보고 즐거워하던 이 사람은 문득 집에 도둑이 들어 금덩이를 훔쳐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담벼락 밑에 구덩이를 파고 몰래 금덩이를 숨겨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금덩이가 밤새 무사한지 아침만 되면 뜰에 나가 담벼락 밑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든 사이에 도둑이 들어 담벼락 밑의 금덩이를 몽땅 가져가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안 수전노가 땅을 치며 통곡하자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여보게, 그렇게 슬퍼한다고 없어진 금덩이가 다시 돌아오겠는가? 그만 진정하게나. 대신 잘생긴 돌덩이를 묻어 놓고 금덩이라고 생각하게나. 금덩이든 돌덩이든 쓰지 않으면 별반 다를 게 없지 않겠나.”
▣ 생각 차이의 열매
어느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늦게 귀가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가족이 반갑게 맞아주길 바라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나 같은 심정이다. 어느 날 아내가 무척 힘들게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먼저 귀가한 남편은 아내가 신발을 벗자마자 “여보,나 커피!”라고 말한 뒤 계속 TV만 보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내는 슬그머니 화가 났다. 힘들기는 서로 마찬가지인데 “힘들었지,밥은 먹었어?”라는 다정한 말은커녕 커피 심부름부터 시키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러나 섭섭한 마음이 드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이런 생각을 주셨다고 한다. ‘아니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보니 커피 한 잔을 함께 마시고 싶었나 봐.’ 그렇게 생각을 바꾸자 아내의 기분이 좋아졌고 부부는 행복한 커피 타임을 가질 수 있었다. 생각의 차이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만들어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중요하다. 왜냐 하면 우리는 그 결과에 따라 그 열매를 먹기 때문이다.
/김성혜 (한세대 총장)
▣ 죄와 실수의 차이
하나님이 죄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를 우리가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죄는 그분을 거역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행동과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불쾌하게 여기시는지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만큼 주님과 당신 사이의 친밀도는 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죄를 지었을 때, 요한은 “만약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자백한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이 ‘죄’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우리도 동의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이다. 죄를 약화시키거나 경시하지 말라. 하나님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하라. 실수라고 하지 말고. 간음을 그저 불륜이라고 하지 말고 ‘간음’이라고 하라. 하나님이 죄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도 죄라고 하라. 우리가 그렇게 죄를 자백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신 분이다. 주님은 신실하시다.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시기 위해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 「서른한 번의 새아침」/ 래리 모이어
▣ 오만과 겸손의 차이
오만한 성품과 과음으로 군대에서 쫓겨난 젊은 장교가 있었다. 젊은이는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했으나 실패했으며
이어서 한 사업도 실패했다.그러나 전쟁을 맞은 젊은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일반사병으로 입대, [새로운 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대위가 됐고 소령이 됐으며 나중엔 부대 지휘관이 됐다. 그 뿐인가. 그의 겸손하고 성숙한 인품이 알려져 링컨 밑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내다 대통령까지 되었다.그가 바로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그란트장군이다.
▣ 겸손함과 비굴함의 차이
어느 시골에 겸손하고 부지런하여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좋아해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았습니다. 그 마을에 사는 한 소년도 그를 무척 좋아하면서 그의 가난함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이 소년이 성년이 되어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태도는 예전과 달리 거만스러워졌고 별로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마을을 어슬렁거렸습니다. ‘나도 이제 남 못지않게 돈이 있다’는 교만한 모습이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그 사람이 겸손했던 것은 참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비굴함이었습니다. 그의 부지런함 역시 가난이 준 구차한 몸부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절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바울이 이렇게 자족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독교인의 품성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임종수 목사/ 큰나무교회 -
▣ 게으름과 인내의 차이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설교자 중 한 사람인 헨리 워드 비처가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높은 바위에서 메말라 가는 바다 가재가 있습니다. 그 바다 가재에게는 바다로 되돌아가기에 충분한 힘은 있지만 지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닷물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만일 바닷물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그 바다 가재는 그곳에서 말라 죽고 맙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한다면 바다 가재는 자신의 1미터 앞에서 넘실대는 파도에 도달해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에도 사람들을 ‘곤란한 지점’으로 몰아가는 파도가 있습니다. 그 파도는 바다 가재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처럼 사람들을 그곳에 그냥 남겨 둡니다. 만일 사람들이 파도가 밀어닥친 지점에 누워서 어떤 거대한 파도가 그들을 싣고 부드러운 물속으로 다시 인도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이 바라는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종종 인내로 오해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듭니다. 한편 인내는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반드시 실현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며,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계속 일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선물」/ 어너 북스
▣ 비교, 차이에 관련한 성경 말씀
0 황금이나 수정이라도 비교할 수 없고 정금 장식품으로도 바꿀 수 없으며(욥28:17)
0 구스의 황옥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순금으로도 그 값을 헤아리지 못하리라(욥28:19)
0 그 때, 너희가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며, 나 주를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말3:18)
0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13:29, 30)
0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 16)
0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25:33, 34)
0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막2:18)
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요21:20- 23)
0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2: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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