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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빚진 자의 비유(용서)

마태복음 관리자............... 조회 수 2207 추천 수 0 2003.07.10 15: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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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8:21-3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두 빚진 자의 비유(용서)
마태복음18:21-35

하루는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성도님들 중에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분, 손들어 보세요." 하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목사는 다시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맨 뒤에 앉아 있던 나이가 가장 많은 할아버지가 손을 드는 것이었다. 놀란 목사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정말로 없으시단 말이지요?"
"옛날엔 나도 많았는데...이젠 다 죽어서 없어!"

옛날 중국 무술 영화를 보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오랫동안 무술을 연마하여 결국 원수를 갚는 스토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원수 갚는 것은 끝없는 살인만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남을 미워하거나, 원수를 갚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지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인격적인 공격, 악한 말들과 뒤에서 귓속말들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지를 생각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피해를 당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성도로서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그분을 따르는 생활을 한다면 어떠한 피해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야 되는 첫째 이유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고 영원히 지옥에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주님께서 십자가의 공로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천국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말씀하시고, 일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자기는 빚을 임금으로부터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해 주지 않아 결국 다시 옥졸에게 붙잡힌 비유의 말씀을 통해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어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과 같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으로는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무거운 죄 값을 다 갚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은 것입니다.(엡2:8),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딤전1:15).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죄가 없다고 나설 수 있습니까? 하루에도 우리들은 수없이 많은 죄를 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어떠한 죄라도 다 용서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러므로 주의 구원하심을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여야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가 용서함 받기 위해서입니다.(눅6:37)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그런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우리가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형제를 용서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마18:23-35)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레이 선생님이 길을 지나가다가 잘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웨슬레이가 잘 아는 친구와 사이가 나빠져서 서로 욕하고 저주하며 원수로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웨슬레이 선생은 그에게 "형제여, 아직도 그 친구를 미워합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럼요" 당연하듯 대답했습니다. "이제 웬만하면 용서하시지요"하고 화해를 권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를 갈면서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해도 그놈만은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고 욕을 하더랍니다. 그러자 웨슬레이는, "좋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은 절대로 죄 지으면 안됩니다." "왜요?" "그렇게 남을 용서하지 못하니 당신도 용서받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당신은 죄지으면 안됩니다."라고 따끔하게 일렀습니다. 그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 속에서 무엇인가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물론 죄를 지었습니다만 앞으로도 죄 지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아무리 맹세하고 결심해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죄 지을 생각을 조금 해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말은 용서받을 여유를 두라는 뜻입니다. 과거의 죄를 용서받을 때에도 내가 남의 죄를 용서해야 용서받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남의 죄를 많이 용서할 수 있어야 앞으로 내가 지을 죄도 용서받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내가 회개할 때에 그 속에 겸손의 윤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 안 하십니다. 다시 본문을 봅시다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 안 임금은 그의 빚을 무조건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을 만나자 갚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그 동관이 나중에 갚겠다고 했지만 그 종은 그를 가두었습니다. 이때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은 탕감해 준 것을 취소하고 그 종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엄청난 죄를 용서함 받고도 다른 사람의 조그만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 값을 도로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까? 성도는 남을 용서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용서는 성도들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으로서 꼭 실천해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14)

용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누리는 데 힘을 쓰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용서해 주셨으며(요8:1-11),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에게 용서를 베풀어 낙원의 축복을 허락하셨고(눅23:43), 정죄하고 핍박하는 유대인들을 용서하셨던 분이십니다.(눅23:34) 성도들이 추구해야 되는 목표가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자는 평화의 왕(사9:6) 그리스도를 닮을 수가 없습니다. 용서하기를 힘쓰는 자만이 주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온유와 겸손의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있을 때에 양식을 구하러 온 자기 형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종으로 팔아먹은 이복 형제이지만 그들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사랑과 용서를 베풀었고, 다윗도 죄 없이 자기를 여러 차례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오히려 죽일 기회가 있었어도 용서했고, 사울 왕이 죽었을 때 슬피 울며 장사지냈습니다. 스테반도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자를 위해 죽으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용서의 마음은 그리스도인이 꼭 간직해야 할 정신이요, 성품입니다. 얼마나 이 마음이 많은 가는 그리스도의 성품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는 가를 재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골3:12-14)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수를 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도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넷째, 기독교는 용서와 화해를 기초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유고의 초대작품인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선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 쟝발장이 등장합니다. 쟝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죄가 불어나 무려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만기 출감했으나 모두 전과자라고 외면하여 잠잘 곳이 없어 방황하다 사제관에서 뜻밖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은식기로 식사대접까지 받았으나 그 날밤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순경에게 붙잡혀 다시 사제관에 끌려옵니다. 그런데 이를 본 신부는 쟝발장에게 "은식기와 은촛대 모두 내가 준 것인데, 당신은 왜 은촛대는 안 가져갔습니까? 이 용서에 쟝발장은 감격하여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 선행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끊임없이 그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형사 자벨 경사가 있습니다. 쟝발장이 나중에 어느 소도시의 시장이 되었을 때 역시 쟈벨경사는 그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쟝발장의 뒤를 끈질기게 추적하면서 그가 과거 탈옥범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려 합니다. 그때 대 프랑스혁명이 발생했습니다. 쟝발장을 존경하는 청년대원들은 일평생동안 쟝발장을 과롭힌 악질 경사 자벨을 잡아옵니다. 세상이 뒤바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그 경사를 총살시키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쟝발장은 '그 사형을 중지하라'고 시킵니다. 그리고는 그를 풀어 주어 자유인이 되게 합니다. 그때 쟈벨 경사는 쟝발장을 향해 묻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나를 가장 죽이고 싶을 텐데 왜 살려 줍니까. 왜 입니까" 그때 쟝발장은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넓은 것이 많이 있소. 바다가 땅도다 넓고 하늘은 그 땅보다 더 넓소. 그러나 그보다 더 넓은 것은 바로 용서라는 관대한 마음이요"

이처럼 복수는 복수로써 끝나지만 용서는 남을 살리고 자신도 살리는 구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용서는 나의 것을 포기하고 서로 화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십자가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용서는 위하여 주는 것입니다. 탕감하여 주는 것이며, 위하여 기도해주는 것이며, 복을 빌어주는 것이며, 미움 대신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김 구 선생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실 때의 일입니다. 한번은 어느 한국 청년이 권총을 품고 들어가서, 김 구 선생을 암살하려다가 독립군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를 총살하기 전에 그 상황을 보고 들은 김 구 선생은 그 청년을 만나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이 김 구 선생 앞에 끌려올 때, 김 구 선생은 맨발로 뛰어나가서 그 청년을 부둥켜 안으면서, "내가 사랑하는 한국 청년 또 한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니 기쁘고 감사하구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향해 총을 겨누었던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납한 것입니다. 그 청년은 거기서 눈물을 쏟았고, 후에 김 구 선생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서로가 용납하는 삶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일을 하려는 일꾼들은 먼저 용납하는 삶부터 배워야 합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무슨 혐의가 있든지 형제의 부족함을 감당하는 사랑으로 용납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다섯 째,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인종차별이 심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미국신사가 자기 집 정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서있었습니다. 이때 남루하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한 인디언이 지나가다가 그 신사에게 빵을 좀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신사는 "너에게 줄 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 잔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으나 역시 거절당했습니다. 몹시도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난 인디언은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미국신사는 "너처럼 개 같은 인디언에게 줄 물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인디언은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 이 미국신사는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서 사냥개를 놓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방향감각도 없이 산 속에서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나가던 인디언이 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당장 구출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며 후히 대접했습니다. 그 신사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가만히 보니 자기를 구출한 인디언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박대했던 그 인디언이었습니다. 미국신사는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그런 미국신사에게 이 인디언은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감복하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25:21-22)

여섯 째, 복수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고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엡4:32)

동인도 제도에는 '복수하는 원숭이'란 이름의 원숭이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섬의 원숭이들이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그 지방의 원주민들은 원수를 갚아야 할 대상이 생기면 이 원숭이를 이용하여 복수를 갚게된 데서 연유했다고 합니다. 그 복수하는 방법은 장마가 시작될 때 복수할 집의 지붕 위에 미리 원숭이들이 잘 먹는 옥수수와 쌀 등을 뿌려 놓는 것입니다. 얼마 후 원숭이들이 그것들을 먹기 위해 이 집에 모이게 되고, 그 지붕 위를 다니면서 먹이를 찾기 위해 지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결국 그 집은 원숭이들에 의해 지붕이 엉망이 된 이후, 장마로 새는 비로 인해 집이 망가져서 큰 손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곳 주민들은 '복수하는 원숭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선 스스로는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의지와 상관이 없이 '복수의 이용물'이 되고 있는 원숭이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원숭이는 단지 자신의 먹이를 찾기 위해 이리 저리로 쫓아다니는 것뿐이지만 이러한 행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수의 이용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이 원숭이에게만 볼 수 있는 현상들이 아닙니다. 사람들 가운데서도 사탄의 이용물이 되어 복수하는 원숭이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과거공산주의자들의 폭력혁명을 지지하는 무리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복수하는 것은 주님의 뜻과 정반대가 되는 행위입니다.

일곱 째, 남을 용서해 주면 언젠가 그 은혜를 되돌려 받을 수 있고, 주님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하셨고,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눅6:27-28)하셨기 때문입니다.

옛날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에 초나라의 장왕이 커다란 잔치를 베풀고 장수들을 초대했습니다. 장왕은 애첩을 거느리고 술좌석에 앉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장수 중에 장웅이란 젊은 장군이 왕의 애첩을 보고 그만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춤과 노래가 어울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 주연장의 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습니다. 주위가 깜깜해지자 이 젊은 장군은 술김에 용기가 나서 왕의 애첩에게 접근하여 와락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놀란 애첩은 비명을 지르며 장웅 장수의 투구에 달린 금술을 잡아당겨 떼어 냈습니다. "나를 희롱한 자는 투구의 금술이 끊어져 있습니다."

왕의 애첩을 감히 희롱한 장수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목 베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은 불켜는 일을 중지시키고 초대된 모든 장수들에게 투구에 달린 금술을 모두 떼어 왕에게 바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불이 켜진 후 장수들을 보니 모두 금술이 없어서 애첩을 희롱한 장본인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장왕이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지에 빠졌습니다. 왕은 급히 피신하는데 부하장군들은 눈에 띄지 않고 적들이 뒤쫓아 올 때 유독 한 장군만이 충성스럽게 왕 곁에서 생명을 다해 임금을 보호하며 추적하는 적을 물리쳤습니다. 바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장수는 수 년전 왕의 애첩을 껴안았던 중죄를 왕이 너그럽게 용서하였던 바로 장웅이란 그 장수였던 것입니다. 자신을 너그러이 용서해 준 왕의 은덕을 갚을 기회를 얻어 용감히 적과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면 온전히 살아 남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내놓으셨고, 우리를 천국까지 데려가십니다. 이 큰 죄를 용서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덟 번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입니다.(고후2:8)

흑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반투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도들은 독일인 미망인 버뮤렌의 17세의 무남독녀를 사로잡아 도끼로 토막을 내 죽였습니다. 그 소녀를 구하려던 이웃 집 소년도 꼭 같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폭동 때 독일 개혁파 교회도 불타버렸습니다. 버뮤렌 부인의 마음에는 복수심이 일어났고 복수를 종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날 밤은 증오하는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투족이 그들의 교회를 재건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머니들은 종탑 헌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버뮤렌 부인도 종탑 헌금에 참여했습니다. 그 순간 버뮤렌 부인의 마음에는 그 반투족들을 증오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서 증오심을 없애 주셨음을 보여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반투 사람들의 교회 헌당의 날 그녀가 헌금한 돈으로 세워진 종탑에서 종이 올렸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종소리가 은은히 그 일대를 울렸을 때 그들의 마음을 녹아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11:25)하였습니다. 용서는 베풀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인간관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한 덕목입니다. 또한 사랑은 만사를 이기게 하며 사랑은 어떤 완고한 마음도 솜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아홉 번째,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잠25:21-22)

미국의 한 흑인이 백인의 집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백인은 이 흑인을 쫓아 보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흑인은 백인을 사랑으로 굴복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흑인의 소 한 마리가 백인의 초장에 들어갔습니다. 백인은 흑인에게서 많은 벌금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낮에는 백인의 여러 마리 소가 흑인의 농장에 들어갔습니다. 백인은 놀랬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불러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소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백인의 아들은 조금 후에 소와 그 돈을 도로 가지고 왔습니다. 백인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은 흑인이 돈을 안 받는 것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용서해 주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백인은 마루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흑인을 불러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마침내 백인은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두 크리스천은 평생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출23:4-5) 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웃을 향해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게로 끌어들이는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능력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까요? 그것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무조건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잘못한 이웃을 용서하는 마음이 곧 주님을 닮아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형제를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면 주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사실 우리는 입과 건성으로는 형제들의 허물과 잘못을 덮어 주기도 하고 위로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을 통해서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용서는 위선적이거나 겉으로 만의 화해가 아닌 온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에게 인사합시다. "우리 서로 사랑하고 용서합시다"

끝으로 성경말씀 함께 봉독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6:27-28)

* 기도: 죽을 수밖에 없는 나의 죄를 용서하신 주님! 저희를 무궁한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받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그 은혜를 깨닫고 이웃을 용서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저희 힘으로는 할 수 없사오니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에게 주의 복을 내려주시고 우리 이웃이 보다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옵소서. 나를 괴롭힌 이웃을 예수님 때문에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시고, 애통하고 회개하는 마음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일상생활 가운데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게 하시고 남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형제의 허물과 잘못을 주님의 말씀대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잇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교회가 주님께 칭찬 받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시고, 우리 중고등부가 날로 날로 성장 부흥하게 하시옵소서.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굳센 믿음과 용기를 주사 조국과 민족을 위해 크게 이바지하는 역군들로 삼아주시옵소서 용서와 사랑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새성광교회 중고등부 설교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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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9 고린도전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오며 고전15:35~58  길희성 형제  2010-06-06 2236
3578 이사야 너의 고통 앞에서 사52:13~53:12  신지니 전도사  2010-06-06 2283
3577 이사야 천지인 그리고 성령 사32:15~18  권진관 형제  2010-06-06 2327
3576 사사기 기억되는 역사, 기억되는 삶 삿11:37~40  최만자 자매  2010-06-06 2334
3575 빌립보서 아바타와 아이티, 그리고 구원신화 빌2:5~12  신동현 간사  2010-06-06 2054
3574 누가복음 인간의 한계와 찬양의 근거 눅5:1-8  서중석 교수  2010-06-06 2492
3573 미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미4:3-5  서광선 목사  2010-06-06 2653
3572 고린도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전12:31-13:3  한완상 형제  2010-06-06 1161
3571 고린도후 향기가 됩시다 고후2:12-17  우제돈 목사  2010-06-03 2857
3570 마태복음 잃은 양 찾아 마10:5-16  우제돈 목사  2010-06-03 2564
3569 마가복음 믿음 더욱 줍소서 막16:9-18  우제돈 목사  2010-06-03 2395
3568 누가복음 지옥 보내지 맙시다 눅16:19-31  우제돈 목사  2010-06-03 2628
3567 요한복음 믿음과 감사 요5:1-9  우제돈 목사  2010-06-03 2777
3566 데살로전 범사에 감사하시오 살전5:12-18  우제돈 목사  2010-06-03 2555
3565 사무엘상 사울, 왜 이럴까? 삼상15:14-23  우제돈 목사  2010-06-03 2560
3564 마가복음 해봅시다 막9:14-29  우제돈 목사  2010-06-03 2459
3563 마가복음 귀신들린 사람들 막5:1-15  우제돈 목사  2010-06-03 3296
3562 요엘 이제라도 욜2:12-14  우제돈 목사  2010-06-03 2733
3561 시편 회개하는 자의 축복 시32:1-11  우제돈 목사  2010-06-03 2741
3560 마태복음 요단강에 이르러 마3:13-17  우제돈 목사  2010-06-03 2174
3559 고린도후 영원토록 있는 것 고후9:6-11  우제돈 목사  2010-06-03 2075
3558 고린도후 수건 좀 벗으세요 고후3:12-18  우제돈 목사  2010-06-03 2199
3557 사도행전 용기를 주는 사람들 행18:1- 8  우제돈 목사  2010-06-03 2921
3556 마태복음 신앙으로 인한 환난 마10:34-36  강종수 목사  2010-05-30 2040
3555 열왕기상 혼이 돌아오게 하옵소서 왕상17:17-24  박노열 목사  2010-05-28 2536
3554 히브리서 그의 음성을 듣거든... 히3:7-19  박노열 목사  2010-05-28 2311
3553 민수기 쳐다본즉 살리라 민21:4-9  박노열 목사  2010-05-28 2869
3552 사무엘상 한나의 기도와 서원 삼상1:9-18  박노열 목사  2010-05-28 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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