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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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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trinity)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비록 이 삼위일체의 교리가 구약성경에는 암시적으로 나타나 있고, 신약성경에는 명백히 나타나 있다고 얘기되기 도 하지만, 사실상 신약성경에도 명백하게 나타나 있는 교리는 아닙니다. '명백한(explicit)' 이라는 형용사가 '충분하고 뚜렷한 표현에 의해 특징 지워진(characterized by full, clear _expression)'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사실상 이 형용사는 이 삼위일체의 교리에는 적 용하기 힘든 형용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리는 성경을 통해서 확립되어 나온 교리이기 때문에, 이 교리가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한 교리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삼위일체 교리를 얘기할 때 세 분이 동등하게 같고, 동등하게 영원한 분임을 잘 표 현하기 위해 '인격(person, 위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비록 그 단어가 가장 최선의 단어는 아닐지라도, 그 단어는 양태론(modalism)의 이단사상으로부터 삼위일체 교리를 보 호해주는 핵심적 단어입니다.
그리고 '본체상(혹은 본질상)으로는 같은(of the same substance)'이라는 구절은 삼신론(tritheism)이라는 이단사상으로부터 삼위일체 교리를 보 호해 주는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눌 수 없는 통전적 본질(the whole undivided essence of God)'은 세분의 인격 각각에 동등하게 소유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나오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는 구절은 '인격의 다양성 (the diversity of the Persons)'과 '본질의 단일성(the unity of the essence)' 사이에서의 균형을 적절하게 잘 표현한 구절입니다. '나와 아버지'라는 구절은 두 개의 인격을 분명히 구분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사도 복수형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분 명히 "우리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라는 단어는 중성명사로서 자연상 혹은 본질상 하나라는 말이지, '하나의 인격(one Person)'이라는 말은 아닙니다(그 렇다면 남성명사를 사용했어야 합니다). 이처럼 주님은 그분 자신을 아버지와 구분 지었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와의 단일성과 동등성을 주장하셨습니다.
삼위일체와 관련하여 우리가 시도하는 모든 논의와 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삼위일체는 신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관한 자 료들이 우리들의 이해의 영역에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자료들을 진리로 받아들 여야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실례(ILLUSTRATION OF THE TRINITY)
어떤 실례로도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계시를 정확하게 다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사례들이 기껏해야 '하나 안에 셋(three-in-one)'이라는 개념과 유사한 개념들 일 뿐입니다.
물은 '하나 안에 셋(three-in-one)'의 예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은 화학적 활 동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의 상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얼음, 수증기, 물이 평형상태 로 공존할 수 있는 상태인 '물의 삼중점(a triple point for water)'도 있습니다. 모두 다 물 이지만, 각각의 상태는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태양, 태양의 빛, 태양의 힘도 삼위일체의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성부를 보지 못한 것처럼 어떤 사람도 사실상 태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양의 빛 에 대해 공부함으로서 태양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의 광채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히 1:3)를 통해서 성부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씨, 나무, 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통해서 태양의 힘을 보게 됩니다. 무엇이 식물들을 자라게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는 태양이 식물들을 자라게 한다고 대답합니다. 성령은 태 양의 힘과 같고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관한 실례들이 어떤 유용성 혹은 한계성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삼위 일체는 언제나 신비에 쌓인 것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교리사 고찰(A SURVEY OF THE HISTORY OF THE DOCTRINE)
A. 단일신론(Monarchianism, 단일체론)
초대 교부들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어떤 뚜렷한 진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교부들은 말씀(the Logos)에 대해서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고, 대부분의 교부들은 신자의 삶에 있어 서의 성령의 사역을 제외하고는 성령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프랙서스 (Praxeus)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터툴리안(Tertullian, 주후 165-220)은 삼위일체라 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삼위성(threeness)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견해는 종속설(subordinationism, 성자종속설)의 경향을 띄고 있어서, 삼위 일체에 대한 완전하고도 정확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터툴리안은 당시 삼위성(trinitarianism)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단일성을 채택했던 단일신 론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단일신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했습니 다.
1.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 역동적 단일체론) 혹은 채택설 (Adoptionism, 양자론). 이 이론은 주후
210년경 비잔티움의 떼오도투스(Theodotus of Byzantium)에 의해 처음으로 설명된 이론으로서, 예수님을 그분의 세례 시에 성령의 특별 한 능력이 주어진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2.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 양태론적 단일체론). 이 이론은 보다 영향력이 있었던 이론으로서, 하나님의 단일성을 주장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성부가 성 자 안에서 성육신했음을 주장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을 주장하려고 했습니다. 서 방교회에서는 이 이론이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성육신 한 성부도 또한 성자 안에서 함께 고난 당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이론이 사벨리안주의(Sabellianism)로 알려져 있는데, 이 명칭은 신격 안에 있는 각 인격들 (Persons)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현시하신 양태들(modes)이라고 가르쳤던 당시의 가장 유명한 신학자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이름을 딴 명칭입니다.
B. 아리안주의(Arianism)
알렉산드리아에서 반삼신론적 입장을 견지했던 장로인 아리우스(주후 250-336)는 한 분 의 영원한 하나님을 성자와 구분시켰는데, 그 이유로 성자는 성부에 의해 생성되어서 '시작(a beginning)'이 있었던 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아리우스는 모든 만물이 성자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성령께서도 아들에 의해 창조된 첫 번째 대상이라고 가르 쳤습니다. 그는 성자를 성부보다 열등한 분으로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 그의 견해를 성경적으로 뒷받침하려고 했습니다(마 28:18; 막 13:32; 고전 15:28).
아리우스의 견해는 하나님의 단일성을 견지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세분의 본질적인 특성 들을 구분 짓고 또한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체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던 아다나시우스 (Athanasius, 주후 296-373)에 의해 반박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ea)가 소집되었을때, 아다나시우스와 그의 제자들은 성부와 성자가 동일 본체(omoousios)라고 선언되기를 원했지만, 대부분의 많은 온건론자들은 유사 본체(omoiousios)라는 단어로 대체하자고 제 의했습니다. 극단적인 아리우스주의자들(thorough-going Arians)은 성자는 다른 본체 (heteroousios)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콘스탄틴 황제는 아다나시우스와 그 의 제자들의 주장에 기울었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일 본체(omoousios)를 가지고 있었다는 뚜렷한 선언문인 니케아 신조(the Nicene Creed)가 발표되기에 이르렀습 니다.
성령에 대해서 니케아 신조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언급했습니다. "나는 성령을 믿는다." 그렇지만 아다나시우스 자신은 그의 가르침에서 성자와 마찬가지로 성령도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니케아 회의 이후로 4세기 경 많은 문서들이 돌아다녔고, 아리우스파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콘스탄틴 황제의 계승자로 영향력이 컸던 콘스탄티우스(Constantius)가 아리우스의 견해를 선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4세기 후반에 들어와 소아시아 동쪽 갑바도기아 지역에서 온 세명의 신학자가 삼위일체교리에 대한 결정적인 밑그림을 제공하여 아리우스주의를 패배시켰습니다. 그 세 사람은 가이사랴의 바실(Basil of Caesarea), 그의 형제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그리고 바실의 친한 친구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였습니다.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개의 본질적인 특성을 가졌다는 점에 대한 그들의 강조는 온건론자들의 눈에니케아 신조를 사벨리우스주의로 보는 의심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령 도 마찬가지로 동일 본체(the omoousis)라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C. 콘스탄티노플회의(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주후 381)
주후 373년, '반 성령파들(Pneumatomachians)'이라고 불리는 유스타쓰(Eustath)를 중심 으로 한 일단의 그룹들은 성자와 성령을 모두 성부와 동일 본체라고 여겼습니다(몇몇 온건론자들은 성자의 동일본질설(consubstantiality)을 확고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이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어 결국 데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동방교회를 대표한 150명의 정교회 주교 들로 구성된 콘스탄티노플 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의 인도 아래 그 회의에서는 성령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성령을 믿는데,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현해 나오시고, 성부 및 성자와 함께 영광 받으셔야 하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분이다." 비록 이 신조가 니케아 신조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한 것과 같은 '동일 본체를 가진(of the same substance)'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신조는 창조된 존재에 대해서는 쓰여질 수 없는 용어로 성령의 사역을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성령의 동일 본체(omoousios)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두 인격(성부 및 성자)과 성령의 관계성을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만족할만한 선언을 제시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성령의 신성의 문제를 잠잠하게 만들었습니다.
D. 어거스틴(Augustine, 354-430)
1.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서방 교회에서의 삼위일체에 관한 선언은 어거스틴에 의해서 최종적인 정형이 확립되었습니다. 이 '삼위일체론'에 관한 논문에서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안에 있는 세분의 인격들(Persons)은 각각 온전한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세분의 인격은 모두 다른 인격과 독립적인 상태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비록 그는 세분의 본질적인 성향을 나타내기 위해 '인격들(Persons)'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 불만족스럽게 생각했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in order not to be silent)' 그 단어 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또한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함께 발현되어 나온다고 가르쳤습니다.
2. 펠라기안 논쟁(The Pelagian Controversy). 어거스틴은 또한 성령의 사역으로서 '은혜의 지속성(efficacious grace)'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이 주장은 인간과 죄에 관한 그의 교리에서뿐만 아니라 성령에 관한 그의 교리에서도 심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 톨레도 공회(The Synod of Toledo)
서방교회 신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성부와 성자 모두로부터 성령이 발현되어 나온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이 주장은 톨레도 공회에서 '콘스탄티노플 신조(the Constantinople Creed)'에 필리오케(filioque, 그리고 성자로부터)라는 구절이 첨가되기 전까지는 공식화되지 못했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이단이라고 천명하면서 이 주장을 결코 받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유로 오늘날까지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갈라진 상태로 존재 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교부이자 로마의 교황 니콜라스의 대적자인 포티우스(Photius)는 '통괄적인 대주교(universal bishop)'라고 주장하는 니콜라스 교황의 주장을 배척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필리오케(filioque)라는 구절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필리오케(filioque)가 거룩한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그릇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교리적 갱신을 요구함으로서 서방 교회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F. 삼위일체에 대한 개혁신앙의 가르침(Reformation Teaching on the Trinity)
개혁주의자들과 모든 개혁주의 신앙고백은 초대교회에 공식화된 정통주의에 입각해서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를 펴고 있습니다. 루터는 믿음으로만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서 삼위일체를 가르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삼위일체에 대한 정통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옥스버그 신앙고백(The Augsburg
Confession, 1530)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선언한다. "하나님이라 불려지고 존재하는 한분의 신적 본질 이 있고.... 그러나 같은 본질과 능력을 가지고 또한 동등하게 영원한 세분의 인격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있다."(III. 7). 마찬가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1647)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신격의 단일성 안에 하나의 본질과 능력, 그리고 영원성을 가진 세분의 인격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있다. 성부는 어떤 분에도 속해있지 않고 생성되지도 않고 발현되지도 않으시며, 성자는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생성되셨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히 발현되어 나오신다."(II. 3).
소시니안주의(Socinianism)는 16세기에 성자를 '오직 한 사람(only a man)'으로 취급함으로 성자의 선재성(preexistence)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분의 인격(only one Person)'을 가지고 있는 오직 하나의 신적 본질만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견해는 영국의 '일신론(Unitarianism)'과 영국의 '이신론(Deism, 자연신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일신론자들은 이신론자들이 아니었지만 모든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일신론적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단적인 사상은 아리안주의(Arianism)에서 소시니안주의 (Socinianism)로, 소시니안주의(Socinianism)에서 일신론(Unitarianism)으로, 일신론 (Unitarianism)에서 이신론(Deism)으로 계보를 형성하며 내려왔습니다. '미국의 일신론 (American Unitarianism)'은 '영국의 일신론(English Unitarianism)'의 직접적인 산물이었습
니다.
G. 현대의 견해(Modern Wiews)
삼위일체에 대한 정통적인 견해는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수용되었고 지금도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삼위일체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칸트 (Kant)와 헤겔(Hegel)은 삼위일체에 대한 정통 교리를 반대했고, 채택설(adoptionism, 양자론) 혹은 비인격적인 범신론(impersonal pantheism)을 받아들였습니다. 스위든보그
(Swedenborg)와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는 사벨리아니즘(Sabellianism)을 주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발트(Barth)의 개념이 양태론적 개념이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Leonard Hudgson, The Doctrine of the Trinity [London: Nisbet, 1955], p. 229). 다른 많은 사람들은 발트가 사벨리아니즘을 거절하고 각 인격들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하나님 안에 있는 '존재하심의 형태들(modes of being)'이라는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통주의자라고 그를 옹호합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삼위일체에 대한 교리가 인간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틸리히는 사실상 신격 안에 한 분의 인격이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고, 세분의 인격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Jehovah's Witnesses)은 성자의 영원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함으로 '아리안주의자와 같은 기독론(Arian-like Christology)'을 받아들입니다. 아리우스처럼 그들은 말씀(the Logos)을 창조자와 창조물 사이의 '중간적 존재(an intermediate being)'로 보고 있습니다. ⓒ 이한규목사 번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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