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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2:5-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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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는가? - 그 셋
본문/ 빌2:5-11
1. 들어가는 이야기 / 우리는 하루에 수도 없이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이 마음의 문제로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삽니다. 우리 사장은 마음이 좋은 사람이다. 마음대로 하여라. 저 사람 마음이 변했어. 마음을 독하게 먹어라. 내 마음 나도 몰라. 이 쟘바 참 마음에 든다. 사실은 이게 진짜 내 마음이라구....이렇게 마음이란 말은 우리 언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뿌리 박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이란 말은 곧 우리 인간의 근본 존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인가를 지칭하는 그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형체도 없고, 빛깔도 없고, 크기도 없고, 무게도 없습니다. 무엇이라 또렷이 집어서 말 할 수는 없어도 마음이 있기는 분명히 있습니다. 있을 뿐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이 품고 있는 그 마음이 어떻한 마음이냐에 따라 그 사람 됨의 무게와 가치가 결정됩니다. 이 마음의 문제가 곧 종교의 문제이며, 구원의 문제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의 문제입니다.
2. 마음의 문제 / 우리 보통 사람들은 어떤 근본적인 마음의 원칙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 마음이 수시로 변하고, 환경에 따라 변하고, 기분에 따라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원숭이 같다고 하였습니다. 도무지 종 잡을 수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니까 항상 불안하고, 떳떳치 못하고, 기쁨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모를 존재의 불안과 존재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묻고, 삶의 근본을 밝히려는 사람은동서고금을 무론하고 이 마음의 문제를 붙들고 몸부림칩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 구도의 순례를 떠납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엘리야도, 베드로도,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바울 사도께서도 그 길을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그 모든 순례자들이 찾은 진리의 표현은 각각 다릅니다마는 그들이 받은 진리는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는 곧 그리스도 예수 이십니다.
3. 마음의 문제를 풀 실마리 /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 마음의 문제 곧 존재의 의미, 삶의 참된 가치의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께서 받은 진리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설명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마음은 어떻한 마음인가?를 설명하여 주신 본문 빌2:6-11은 원래 초대 교회에서 신앙고백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를 찬양하고 감사한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 詩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은 이 부분도 마치 서술문인 것 처럼 되어있지만 원문은 서술문이 아니고 詩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이야기 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서술문이 아니라 詩를 사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서술문으로 설명 할 수 없으셨기에 그 개달음을 詩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이거늘 어떻게 손바닥으로 다 가릴 수 있겠습니까.
ㅅ ㅛ
4. 그리스도께서 품은 마음은 어떤 마음이신가?
마음 하나 품어 태도가 변하고, 태도가 계속되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그 몸에 붙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도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살으셨습니다. 그 분의 행동이 그렇게 밖으로 드러난 것은 그 분의 속 마음이 어떻하였나를 드러내신 증거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소경 거지를 보았을 때, 안식일에 18년 동안 고통 받고 있는 여인을 보았을 때, 거기에 나타난 제자나 회당장이나 예수님의 행동들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한 마음이었는가를 드러낸 증거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께서는 그런 행동이 나타나게 된 예수님의 그 속 마음이 어떻한 마음이셨는가를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수준의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신 마음이셨습니다.
둘째,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가진 곧 제약 받는 한계적 존재인 사람이 되셨고, 더욱이 사람 가운데서도 지극히 낮은 자로 오셨습니다. 섬기는 종으로 오셔서 대접 받으신 것이 아니라 대접 하시며 사는 마음이셨습니다.
셋째,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죄를 대속키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와 고난을 받으시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피로 우리 모두가 새 생명을 얻고, 단말마의 비명이 처절하게 터져나오던 우리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우리는 나를 앞세우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우십니다. 우리는 대접 받기를 좋아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섬기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조금이라도 손해 볼 수 없는데 예수님은 자기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겸손? 사랑? 헌신? 그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께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서술형이 아니라 응축된 의미를 전달하는 간곡한 詩로서 예수의 마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5. 예수님의 그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 받는 축복
그런 마음을 품고 살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결코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天. 地. 人. 곧 하늘과 땅과 모든 사람 위에 높이 들어 영광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영광 스럽게 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곧 존재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이며, 삶의 진정한 의미이며, 참 구원을 얻는 진리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존재의 불안에서 풀려나는 길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본문/ 빌2:5-11
1. 들어가는 이야기 / 우리는 하루에 수도 없이 마음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이 마음의 문제로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삽니다. 우리 사장은 마음이 좋은 사람이다. 마음대로 하여라. 저 사람 마음이 변했어. 마음을 독하게 먹어라. 내 마음 나도 몰라. 이 쟘바 참 마음에 든다. 사실은 이게 진짜 내 마음이라구....이렇게 마음이란 말은 우리 언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뿌리 박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이란 말은 곧 우리 인간의 근본 존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그 무엇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인가를 지칭하는 그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형체도 없고, 빛깔도 없고, 크기도 없고, 무게도 없습니다. 무엇이라 또렷이 집어서 말 할 수는 없어도 마음이 있기는 분명히 있습니다. 있을 뿐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이 품고 있는 그 마음이 어떻한 마음이냐에 따라 그 사람 됨의 무게와 가치가 결정됩니다. 이 마음의 문제가 곧 종교의 문제이며, 구원의 문제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의 문제입니다.
2. 마음의 문제 / 우리 보통 사람들은 어떤 근본적인 마음의 원칙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 마음이 수시로 변하고, 환경에 따라 변하고, 기분에 따라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원숭이 같다고 하였습니다. 도무지 종 잡을 수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니까 항상 불안하고, 떳떳치 못하고, 기쁨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무엇인가모를 존재의 불안과 존재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자기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묻고, 삶의 근본을 밝히려는 사람은동서고금을 무론하고 이 마음의 문제를 붙들고 몸부림칩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 구도의 순례를 떠납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엘리야도, 베드로도,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바울 사도께서도 그 길을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그 모든 순례자들이 찾은 진리의 표현은 각각 다릅니다마는 그들이 받은 진리는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는 곧 그리스도 예수 이십니다.
3. 마음의 문제를 풀 실마리 / 바울 사도께서는 우리 마음의 문제 곧 존재의 의미, 삶의 참된 가치의 문제,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바울 사도께서 받은 진리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설명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마음은 어떻한 마음인가?를 설명하여 주신 본문 빌2:6-11은 원래 초대 교회에서 신앙고백적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공로를 찬양하고 감사한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 詩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은 이 부분도 마치 서술문인 것 처럼 되어있지만 원문은 서술문이 아니고 詩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이야기 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서술문이 아니라 詩를 사용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서술문으로 설명 할 수 없으셨기에 그 개달음을 詩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마음은 하늘이거늘 어떻게 손바닥으로 다 가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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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스도께서 품은 마음은 어떤 마음이신가?
마음 하나 품어 태도가 변하고, 태도가 계속되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그 몸에 붙으면 그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예수님도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도 어떤 생각과 마음을 품고 살으셨습니다. 그 분의 행동이 그렇게 밖으로 드러난 것은 그 분의 속 마음이 어떻하였나를 드러내신 증거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소경 거지를 보았을 때, 안식일에 18년 동안 고통 받고 있는 여인을 보았을 때, 거기에 나타난 제자나 회당장이나 예수님의 행동들은 곧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한 마음이었는가를 드러낸 증거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께서는 그런 행동이 나타나게 된 예수님의 그 속 마음이 어떻한 마음이셨는가를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동등하신 수준의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앞세우신 마음이셨습니다.
둘째,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가진 곧 제약 받는 한계적 존재인 사람이 되셨고, 더욱이 사람 가운데서도 지극히 낮은 자로 오셨습니다. 섬기는 종으로 오셔서 대접 받으신 것이 아니라 대접 하시며 사는 마음이셨습니다.
셋째,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죄를 대속키 위하여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와 고난을 받으시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피로 우리 모두가 새 생명을 얻고, 단말마의 비명이 처절하게 터져나오던 우리 입에서 찬송이 흘러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우리는 나를 앞세우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앞세우십니다. 우리는 대접 받기를 좋아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섬기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조금이라도 손해 볼 수 없는데 예수님은 자기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마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겸손? 사랑? 헌신? 그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께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서술형이 아니라 응축된 의미를 전달하는 간곡한 詩로서 예수의 마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5. 예수님의 그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 받는 축복
그런 마음을 품고 살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결코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天. 地. 人. 곧 하늘과 땅과 모든 사람 위에 높이 들어 영광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영광 스럽게 하셨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곧 존재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이며, 삶의 진정한 의미이며, 참 구원을 얻는 진리임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존재의 불안에서 풀려나는 길입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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