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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되는 길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934 추천 수 0 2010.06.19 22: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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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5:11-2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십시오 >

 요새 자살이 많아집니다. 왜 자살할까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모르고 실망하고 비관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청년들은 죽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애인이라도 생기면 그런 소리가 없어집니다. 게다가 결혼해 아이까지 생기면 그런 소리가 더 없어지고 오히려 “아이를 버려두고 어떻게 죽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60억이 넘는 인류 중에 자기 아이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키워줄 유일한 사람은 자기 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 말씀을 보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고귀한 가치를 깨달으십시오. 어떤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심각한 자기 모독입니다. 어떤 성도는 기도할 때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기도합니다. 왜 벌레만도 못합니까? 겸손도 지나치면 실례가 됩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 스스로 “죽일 놈!”으로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맞이합니까? 크게 기뻐하며 소리칩니다. “얘들아! 빨리 소를 잡으라. 그리고 아들을 목욕시키고 가락지를 끼우고 잔치를 베풀라.” 자신이 자신을 보는 관점과 아버지의 관점이 얼마나 다릅니까? 그처럼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천하보다 값지게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살기 힘드니까 항변합니다. “하나님! 왜 제게 복을 주지 않습니까? 저는 가치 없는 존재입니까?” 그러나 그 질문에는 대답이 필요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속에 이미 자신의 복과 가치가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을 함부로 굴리거나 함부로 평가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소중하게 보십시오. 성경은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끈질기게 살고 끈질기게 도전해서 자신 앞에 준비된 멋진 축복을 취하십시오.

< 인물이 되는 길 >

 지난주에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실질적인 축복을 얻어 예수 믿고 인물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믿고 인물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온전한 순종

 왜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삶이 비참해졌습니까? 결국 아버지에 대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축복의 원리 중에서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덕목이 무엇입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왜 순종해야 합니까? 성경은 간단하게 “이것이 옳으니라!”고 했습니다(엡 6:1). 인물이 되려면 순종을 체질화시켜야 합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리더십의 공백은 가장 큰 문제이기에 부모는 권위를 세워 사려 깊게 자녀들에게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면 본인도 좋고 사회에도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순종을 가르치지 않으면 나중에 본인도 힘들어지고 가정과 사회도 힘들어집니다. 순종을 모르는 자녀는 대개 남에게 어려움을 끼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 많은 부모들이 가정 내에서 권위와 리더십을 잃고 있습니다.

 어느 날, 6살 된 아이가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그런데 잘 시간이 되어 엄마가 말합니다. “얘야! 이제 자라!” 그런데 아이는 엄마 말을 들은 척도 안 합니다. 그때 엄마는 잘못을 고쳐주기보다 살살 달랩니다. “이제 자야지! 엄마도 조금 쉬자.” 그런 인간적인 호소가 게임에 빠진 아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다시 뇌물로 달랩니다. “지금 자면 내일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래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엄마는 점점 화가 납니다. “이제 마지막 말이야!” 그래도 듣지 않고 아이는 엄마와 아슬아슬한 권력다툼을 합니다. 그래도 안 듣자 엄마는 조금 전에 한 말을 또 합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야!” 조금 전에 마지막이라고 하고 또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점점 엄마의 말은 권위를 잃습니다. 그래도 안 듣자 불필요한 질문까지 합니다. “너 왜 말을 안 듣니?” 그 질문은 합리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없는 불필요한 질문입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조금 위협합니다. “정말 매를 들어야 하겠니?” 그래도 계속 말을 안 들으면 소리를 높여 위협합니다. “너 정말 매 맞을래?” 그때서야 아이는 협상을 제의합니다. “알았어요. 이번 게임만 끝내고 잠자러 갈게요.” 그러면 엄마도 피곤하고 힘드니까 갈등을 피하려고 자녀가 제시한 협상안을 받아들입니다.

 요새 각 가정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러면 가정의 권위가 사라지고 결국 본인도 힘들어지고 나중에도 사회 전체도 힘들어집니다. 사실 기쁘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일차 기관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기쁘게 순종하는 삶을 가르치고 자신도 기쁘게 순종하는 법을 훈련하십시오. 순종으로 리더를 기쁘게 해주면 자신은 물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에게까지 리더가 되는 길이 순탄해집니다.

2. 하나님 사랑

 본문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오자 아무 공로도 없는 그를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며 맞이합니까? 그처럼 하나님은 다른 어떤 공로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자체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결국 행복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원한을 가지고 원수만 바라보면 삶이 진짜 ‘원수 같은 삶’이 됩니다. 그러나 시선을 하나님께 두면 시야도 넓어지고 축복의 문도 열리고 문제들도 적게 느껴집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머리에 큰 상처가 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몇 바늘 꿰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수술 바늘을 보자 바늘이 엄청나게 크게 보였고, 그 바늘로 자기 머리를 꿰맨다고 생각하자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엄마도 크게 두려워하는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그 부모님의 눈빛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불안이 사라졌고 비로소 의사선생님의 바늘도 조금 전만큼 크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삶에 고통의 바늘이 있습니까? 그때 바늘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야 그 바늘이 작게 보이고 세상 것에 매여 행복을 저울질하지 않게 됩니다. 행복은 돈과 명예와 권력에서 오지 않습니다.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잘 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공허함을 느낍니까? 보이는 사람 사랑에만 관심이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은 보이는 이웃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도 중요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행복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통도 있어야 행복이 깊어집니다. 오늘날 실용주의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면서 하나님도 계신하며 사랑합니다. 그러나 계산하면 진짜 복된 사랑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로마에 가면 성당 전체가 거대한 예술품인 바티칸 성당이 있습니다. 실용적인 관점으로 보면 건축에 쓴 돈과 노력에 비해 성당의 실용성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래서 “꼭 저렇게 크고 화려하게 지어야 했나?” 하는 비판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판하는 사람들이 당시 성당 건축에 헌신한 사람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요즘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의 질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지나치게 화려한 건물을 실용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큰 낭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로 한 사랑의 낭비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3백 데나리온(3천만 원가량)의 향유를 주님께 부었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는 “왜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지 않느냐?”고 비난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꼭 그런 식으로 돈을 낭비하며 사랑을 표현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언뜻 들으면 매우 정의감이 넘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헌신과 사랑이 없는 정의로운 말은 주의해야 합니다. 후세 사람들은 모두 가룟 유다가 나쁘다고 하지 마리아가 나쁘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헌신은 주님을 사랑해서 나온 ‘사랑의 낭비’로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은 ‘하나님 사랑’이란 명목으로 무리하게 교회 건축을 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실용적인 사고로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 질식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사랑은 계산을 초월해야 가능합니다. 결국 현대 성도들의 가장 큰 과제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회복입니다. 신앙과 축복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최고로 송축(blessing)하면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blessing)을 받습니다.

3. 감사의 고백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찬양과 경배와 감사입니다. 회개한 둘째 아들은 자기를 기쁘게 받아주는 아버지에게 감격해서 그 감격을 표현합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이 고백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고백입니다.

 위대한 찬양과 경배는 화려한 음악과 멘트가 있는 곳에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위대한 찬양과 경배는 깊은 감사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감사고백이 넘치는 사람이 진짜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지만 풍성한 축복까지 맛보려면 이런 고백을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 뜻대로 하세요. 가난해도 좋고 수치를 당해도 좋고 죽어도 좋습니다. 그저 하나님 한분이면 만족합니다.” 그런 고백이 하나님 귀에 들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이런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아무개야! 나도 네 마음의 소원을 알고 있단다. 네 사업의 문제, 네 자녀의 문제, 네 물질의 문제로 다 내게 맡겨라.”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맡아주실 때 최상의 길을 열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제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끊임없이 해보십시오. 하루에 10번씩 꼭 해보십시오. 그리고 주문처럼 고백만 하지 말고 정말 그렇게 여기고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무수한 하나님의 축복이 덧입혀지는 체험을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와서 겸손한 고백까지 하자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래서 아들을 최고로 환대하고 기념잔치까지 벌여주고 제일 좋은 것을 줍니다(22-23절). 그처럼 감사하는 입술의 고백만 잘해도 하나님의 최고의 환대를 받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깊은 영성은 범사에 감사하는 영성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고 역풍을 순풍으로 돌리는 가장 위대한 도구는 범사에 감사하는 입술입니다.  

4. 믿음의 시각

 살면서 어려움을 당하면 실망도 되지만 나중에 보면 그 길이 제일 좋은 길입니다. 때로는 죽음 속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불량품을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의 필요를 더 잘 아시고 가장 복된 것을 주시려고 합니다. 그처럼 최상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사람은 잘해야 사랑하지만 하나님은 못해도 사랑합니다. 세상은 잘나고 인물 좋고 건강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더 잘 대해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못난 사람도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버리고 어디에서 행복을 찾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실망스러운 일을 겪어도 헌신생활을 후퇴시키지 마십시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없어도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일전에 새벽기도에 나오는 한 분이 딸의 의대 편입시험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매일 눈물로 기도했지만 그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진실한 믿음과 기도는 실패 후에 판명될 때가 많습니다. 그때 그분은 실망되었겠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실망될 때 실망하지 않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셔서 그 딸이 외국계 회사의 500명 중에 1명을 뽑는 자리에 5차 면접까지 통과해 합격했습니다.

 최고연봉을 받는 자리를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직했다면 그런 은혜는 실력이나 재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자리에 그 딸이 필요했기에 하나님이 그 자리로 보내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본인이 원하는 길을 막고 그 딸에게 맞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신뢰하십시오. 헌신해도 구체적인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의 더욱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항상 믿음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고 결코 패배의식에 젖어 살지 마십시오. 만약 둘째 아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귀가 후에도 “아버지! 그래도 저는 죽일 놈입니다.”라고 탄식하면 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지난날이야 어땠든 오늘 아버지가 아들로 맞아주셨다면 그때부터 그는 누구보다 소중한 아들입니다. 누구에게나 탕자의 악몽이 있습니다. 그 악몽을 벗고 당당하게 현재의 시간에서 새롭게 출발하십시오. 그래야 복된 미래가 펼쳐집니다.

 ‘돌아온 탕자 속편’이란 희화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온 탕자가 결심했습니다. “이제 효자가 되자!” 그리고 얼마간은 잘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몇 달이 지나자 점차 일이 싫어지고 감사한 마음도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옛날에 신나게 돈을 쓰며 살던 일이 기억나면서 끊임없이 유혹의 손길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시장에 가서 소 두 마리를 팔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장에서 소를 팔고 돌아올 때 돈을 만지자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딱 한 잔만 하자고 술집을 들렸습니다. 그런데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계속 마시다가 결국 3차까지 가서 소 판 돈을 다 썼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다고 또 집을 나갔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아버지는 계속 탕자의 귀가를 기다린다는 얘기입니다.

 비록 꾸며낸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선하게 살려고 하지만 또 죄의 자리에 설 때가 많습니다. 그때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에 좌절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때로는 절망적인 시련을 통해 그를 돌아오게 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어떤 경우에도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자신을 비하시키지 마십시오.

< 하나님께 마음을 여십시오 >
 
 항상 자신을 소중하게 보십시오. 겸손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의 무가치성을 깨닫는 것은 좋지만 진짜 가치가 하나도 없는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겸손함도 너무 지나치면 ‘봐달라는 겸손함’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시각으로 자신을 보십시오. 자신을 위대하게 보라는 말이 아니라 아들의 원래 위치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위치를 찾는 것입니다. 위치를 잘 찾고 지키는 문제에 합격해야 위치가 높아지는 은혜도 주어집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엄청난 축복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미 얻을 것을 다 얻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나가십시오.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처럼 우리 앞에 펼쳐질 미지의 축복의 세계로 떠나십시오. 그런 축복의 길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사십시오. 순종이 없는 축복의 길은 없습니다.

 어느 날, 한 신학대학 부총장이 수련회 강사로 초빙 받았습니다. 비행장에서 내려 수련회장으로 갈 때 그를 태워준 스태프가 매년 수련회에 참석하는 한 여성에 대해 귀띔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상처도 많고 성가신 사람이니까 조심하라는 얘기였습니다. 첫째 집회가 끝났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찾아와 잠시 얘기를 나눌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스태프가 말한 그 여인임을 알았지만 회피할 수 없어서 다음날 점심에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도랑에 감자튀김을 담은 용기와 냅킨과 컵이 버려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 쓰레기를 주워라.” 그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신학대학 부총장으로서 수련회 강사로 왔는데 어떻게 저 쓰레기를 줍습니까? 누가 보면 권위가 떨어져 말씀에 은혜가 안 될 겁니다.” 그때 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도 주워라.” 그는 계속 항변했습니다. “하나님! 저건 환경 친화적 제품이니까 비만 내리면 다 녹아내려요.” 그때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주워라.”

 할 수 없이 그는 도랑으로 내려가 쓰레기를 줍고 근처의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그 일을 시켰나요?” 그런데 산책할 때 들렸던 또렷한 음성이 그때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침 집회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날 점심에 그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몇 마디 나누다가 그녀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아침에 산책길에서 우연히 목사님의 뒤를 따라 걷는데 그때 목사님이 도랑에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어요.” 결국 그의 순종은 상처로 인해 신음하던 여인의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고, 그 대화를 통해 여인에게 놀라운 치유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하나님이 선한 일에 대한 감동과 음성을 주십니다. 그때 그 음성에 순종하고 헌신해보십시오. 그때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고, 선교와 구제의 큰손도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연줄과 배경과 후원자가 없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가장 위대한 연줄과 후원자이신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향해 나감으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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