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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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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슥1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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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작은 목자 >
스가랴 11장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때 인간이 어떤 모습이 될지를 묘사합니다. 특히 목자들이 무섭게 타락하여 양떼를 잡는 목자가 된다(4-17절). 왜 예수님이 성도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했습니까? 양떼를 잡아먹지 않고 양떼를 위해 잡혀 먹히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주들은 살이 피둥피둥 찐 채 애굽의 바로처럼 앉아서 “헌금 가져와라! 더 일해라”라고 강요하는 목자는 진정한 목자가 아닙니다.
힘과 재력을 과시하는 다른 교주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생각하면 힘과 재력은 생각나지 않고 그저 눈물만 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설교나 심방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참된 목회는 잡혀 먹혀야 이뤄집니다. 그처럼 목자의 길은 눈물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고 눈물과 죽음이 없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반대로 성도들도 스스로 잡혀 먹혀서 목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도 결국 작은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작은 목회의 길을 따라 목사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예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못 들어가면 그저 ‘교인’이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비로소 ‘성도’가 됩니다.
그처럼 모두가 참된 목자인 예수님을 따라 작은 목자가 되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처럼 순교자의 경지에 들어간 신앙생활은 오늘도 가능합니다. 얼굴에 웃음과 미소를 띠면서도 얼마든지 순교자처럼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눈물의 헌신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최고로 헌신하면서 최소로 나타내는 성도가 진짜 순교자입니다.
< 자기를 죽이십시오 >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고생하며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때는 대부분 어머니의 젖을 먹였기에 부모님이 자녀의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부모를 애틋하게 생각합니까? 반면에 요즘 자녀들은 우유병을 빨면서 자랐기에 부모에게 그런 애틋한 마음이 적습니다. 또한 부모님을 생각할 때 ‘희생하는 삶’이 아닌 ‘닦달하는 삶’이 떠오르니까 부모님이 ‘감사의 대상’이 아닌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부모가 죽어서 자녀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새 아이들은 ‘부모의 소원성취의 도구’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말합니다. “얘야! 공부 좀 잘해서 내 체면 좀 살려주라.” 그처럼 자기 인생을 자녀들에게 투사(投射)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자녀를 인물로 만들려면 자기를 자녀에게 투사하지 말고 자기를 죽여 자녀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순교자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순교 얘기를 못 꺼내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커지려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별을 단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도 별을 못다는 사람은 10명 중의 9명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다 눈물과 원망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모두 울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그 마음에 임하면 됩니다.
순교란 신앙 때문에 핍박받아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순교의 더욱 큰 의미는 누가 죽이고 안 죽이고를 떠나서 이미 자기 죽음을 스스로 선언하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를 죽일 때 살아계신 예수님이 그를 덮치게 됩니다. 그때 누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저 원수 놈!”이라는 말 대신에 “주님!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말이 나오면서 변화는 시작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잡아먹는 사람’이 되기보다 차라리 ‘잡혀 먹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마음이 소통되게 하소서! 능력을 말하기 전에 십자가를 말하고 축복을 바라기 전에 순교자의 영성을 갖추게 하소서!” 그런 순교자의 영성과 기도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환경 속으로 들어가고, 가정 속으로 들어감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복된 리더의 꿈을 꾸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스가랴 11장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실 때 인간이 어떤 모습이 될지를 묘사합니다. 특히 목자들이 무섭게 타락하여 양떼를 잡는 목자가 된다(4-17절). 왜 예수님이 성도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했습니까? 양떼를 잡아먹지 않고 양떼를 위해 잡혀 먹히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주들은 살이 피둥피둥 찐 채 애굽의 바로처럼 앉아서 “헌금 가져와라! 더 일해라”라고 강요하는 목자는 진정한 목자가 아닙니다.
힘과 재력을 과시하는 다른 교주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생각하면 힘과 재력은 생각나지 않고 그저 눈물만 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입니다. 설교나 심방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참된 목회는 잡혀 먹혀야 이뤄집니다. 그처럼 목자의 길은 눈물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이고 눈물과 죽음이 없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반대로 성도들도 스스로 잡혀 먹혀서 목자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도 결국 작은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작은 목회의 길을 따라 목사의 마음속에 들어가고 예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 못 들어가면 그저 ‘교인’이지만 예수님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비로소 ‘성도’가 됩니다.
그처럼 모두가 참된 목자인 예수님을 따라 작은 목자가 되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처럼 순교자의 경지에 들어간 신앙생활은 오늘도 가능합니다. 얼굴에 웃음과 미소를 띠면서도 얼마든지 순교자처럼 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눈물의 헌신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최고로 헌신하면서 최소로 나타내는 성도가 진짜 순교자입니다.
< 자기를 죽이십시오 >
옛날에는 부모님들이 고생하며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때는 대부분 어머니의 젖을 먹였기에 부모님이 자녀의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부모를 애틋하게 생각합니까? 반면에 요즘 자녀들은 우유병을 빨면서 자랐기에 부모에게 그런 애틋한 마음이 적습니다. 또한 부모님을 생각할 때 ‘희생하는 삶’이 아닌 ‘닦달하는 삶’이 떠오르니까 부모님이 ‘감사의 대상’이 아닌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부모가 죽어서 자녀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새 아이들은 ‘부모의 소원성취의 도구’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말합니다. “얘야! 공부 좀 잘해서 내 체면 좀 살려주라.” 그처럼 자기 인생을 자녀들에게 투사(投射)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자녀를 인물로 만들려면 자기를 자녀에게 투사하지 말고 자기를 죽여 자녀의 마음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순교자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새는 순교 얘기를 못 꺼내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커지려면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 별을 단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도 별을 못다는 사람은 10명 중의 9명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다 눈물과 원망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모두 울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그 마음에 임하면 됩니다.
순교란 신앙 때문에 핍박받아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순교의 더욱 큰 의미는 누가 죽이고 안 죽이고를 떠나서 이미 자기 죽음을 스스로 선언하고 예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를 죽일 때 살아계신 예수님이 그를 덮치게 됩니다. 그때 누가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저 원수 놈!”이라는 말 대신에 “주님! 저들을 용서하소서!”라는 말이 나오면서 변화는 시작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잡아먹는 사람’이 되기보다 차라리 ‘잡혀 먹히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마음이 소통되게 하소서! 능력을 말하기 전에 십자가를 말하고 축복을 바라기 전에 순교자의 영성을 갖추게 하소서!” 그런 순교자의 영성과 기도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환경 속으로 들어가고, 가정 속으로 들어감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복된 리더의 꿈을 꾸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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