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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군가?”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307 추천 수 0 2010.07.05 20:25:48
.........
성경본문 : 막4:35-4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270798 

emoticon 2009.7.5

폭풍제어와 축귀

 

복음서는 종종 예수님을 기적 행위자로 묘사합니다. 축귀나 치병, 또는 장애인을 고치는 이야기가 가장 많습니다. 흔하지는 않지만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기적도 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이나 물위를 걷는 일(막 6:51), 또는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은 사건도 있습니다.(막 11:20)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막 4:35-41절에 나오는 기적도 자연 기적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돌풍이 불어 배가 파선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는 헬몬 산의 찬 기류와 호수의 따뜻한 기류가 만나게 될 경우에 그런 돌풍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돌풍의 세력이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보통 바람이었다고 한다면 어부들이 많았던 제자들이 그렇게 겁을 먹지 않았을 테니까요. 예수님은 뱃머리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가 저물 무렵이라고 했으니, 그리고 바로 앞에서 말씀을 전했으니 피곤한 탓이었을까요? 그것보다는 예수님의 영혼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평안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상황이 위급하게 되었으니 선생님이라도 우선 안전하게 모시려고 깨운 것이 아니라 원망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죽게 되었는데 나 몰라라 하느냐 하고 말입니다.

 

잠에서 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뭐라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바람을 꾸짖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여기서 잠잠하라는 이 명령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칠 때 하신 명령과 똑같습니다. 막 1:21절 이하에 따르면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꾸짖으시면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고 합니다.

 

축귀 사건과 폭풍 제어 사건은 그 대상이 귀신과 폭풍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 내용은 똑같습니다. 이 두 이야기가 똑같은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대인들에게 귀신들림이나 난폭한 자연재해나 모두 악한 영에 의한 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보고 고대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 당시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악한 영의 작용으로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귀신들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세요. 미친 사람들일까요? 그래서 정신병원에 감금해야 할 그런 환자들인가요?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인간의 귀신들림은 인간이 어떻게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론적 깊이에서 벌어지는 인간 삶의 파괴현상입니다. 오늘도 그런 일들은 광범위하게 일어납니다. 지금 극한의 소유와 소비문명에 찌든 현대인 모두 귀신들린 사람들이라고 봐야겠지요. 우리 스스로 그런 시대정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그렇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고대인들이나 오늘 우리나 악한 영이 사로잡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여기서 제 정신을 차리려면 귀신을 쫓는 길밖에 없습니다. “잠잠하라.”는 말씀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자연을 통한 파괴현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의 궁극적인 깊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성서시대에 비해서 오늘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 아는 게 많습니다. 태풍, 지진, 가뭄도 어느 정도 예측합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전하면 자연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겠지요. 우리가 어느 정도를 알게 될까요? 지구의 중심까지 뚫고 들어가서 지구 자체를 완전히 해부하는 방식으로 알게 될까요? 태양계에는 원래 9개의 행성이 있었습니다. 가장 멀리 있는 행성을 명왕성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천문학자들이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지금은 8개의 행성만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명왕성보다 더 큰 행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서 행성의 개념이 달라진 겁니다. 지금 천문학자들이 가장 빠른 무인우주선을 명왕성으로 보냈습니다. 대략 7,8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 과학기기로 태양계와 우주 전체를 완전히 해명해내는 날이 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폭풍을 악한 영의 작용이라고 본 고대인들의 통찰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만이 다스리십니다. 아직 종말이 오기 이전의 과도기에 악한 영이 그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악한 영을 향해서 주님은 “잠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

 

축귀 사건과 폭풍제어 사건이 “잠잠하라.”는 명령에서 똑같은 이야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그 명령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것도 양쪽 모두 똑같이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먼저 폭풍 제어 사건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하면서 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막 4:41)

 

마가복음 기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요? 예수님이야말로 폭풍까지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초능력의 존재라는 것일까요? 신기한 초능력이 핵심일까요? 만약에 예수님이 초능력자였다면 십자가에 처형당할 까닭이 없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예수님이 가장 무기력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초능력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합니다. 예수님을 그런 초능력자로 보는 것은 불신앙이거나 착각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폭풍을 말씀으로 제압할 능력이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였던(호모 우시오스) 예수님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서기자의 관심은 그런 초능력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이 누군가 하는 질문에 있습니다.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 진 것은 예수님이 누군가를 말하려는 징표입니다.

 

그는 누굽니까? 폭풍 제압과 똑같은 사건이었던 축귀 사건에 그 대답이 있습니다. 앞에서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질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마가복음은 이미 축귀 사건에서 그 대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누굽니까?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만이 귀신과 폭풍에게 “잠잠하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분입니다. 그 명령에 귀신도 쫓겨나고 풍랑도 잔잔해졌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너무 뻔한 말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거 아니냐, 제자들도 그걸 믿고 예수님을 따른 것 아니냐 하고 말입니다. 아닙니다. 그 말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잘 알고 따른 게 아니었습니다. 복음서를 정확하게 읽는다면, 그들이 예수님을 오해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 모두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겠지요.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 예수님을 배신한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음서를 읽으면서 겪게 되는 혼란입니다. 복음서는 분명히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를 제공합니다. 귀신을 권능으로 쫓아내고, 돌풍을 제어하고, 많은 병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경험했다면 예수님의 정체를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것 아니냐 하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건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진리를 깨닫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을 것이며, 사흘만에 부활하리라는 사실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다른 말은 들어도 그냥 흘려버립니다. 둘째,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사실은 비밀이었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밖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정체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통치 자체가 바로 비밀입니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핵심 줄거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심판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배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출애굽과 광야횡단과 가나안 정복의 역사에서 큰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쉽게 망각하고 우상숭배에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게 이상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이 너무 없어 보이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통치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보이는 게 아닙니다. 그걸 뚫어보는 이들이 바로 예언자였습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화두, 그는 누군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라는 사실이 지금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중의 한 사람으로, 예언자 중의 한 사람으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 메시아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유대인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대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지만 이 세상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들과 달리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요? 그렇기만 하다면 좋겠지만 여기에 쉽게 “예”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전혀 다르게 바라본다는 게 그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를 대표하는 두 단체가 있습니다. KNCC(대한기독교교회 협의회)와 한기총입니다. 전자는 진보적인 단체이고, 후자는 보수적인 단체입니다. 기독교협의회는 주로 중소형 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 한기총은 대형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두 단체는 사회적 이슈가 나올 때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합니다. 예를 들어 군대체입법 문제에 대해서 한기총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만, 교회협의회는 찬성합니다.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면서 백악관에서 기도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어떤 기독교 단체는 그 전쟁을 반대하는 기도 모임을 가졌습니다.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로마가톨릭교회를 이단처럼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적인 차원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어떤 신자는 예수님을 믿고 세속적인 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복을 받기 위해서 헌금도 열심히 합니다. 어떤 신자는 예수님을 사회 혁명가로 생각합니다. 도덕군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이처럼 예수님에 대한 개개인들의 생각이 다릅니다. 형식적으로는 비슷해도 본질로 들어가면 타종교와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기독교 안에 있을지 모릅니다.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의 내용이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크게 영향을 받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오스틴 목사 같은 분들의 기독교는 제가 같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다릅니다. 왜 이렇게 생각이 다를까요? 그리고 누가 옳을까요?

 

그 답은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인가, 하는 질문이 아직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사도신경이 고백하고 있는 그대로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심판하러 다시 오실 분입니다. 문제는 “왜?”에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우리의 분명한 신앙고백이지만 왜 그런가 하는 질문은 끝날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은 우리의 신앙적 화두입니다. 그분이 재림할 때까지, 또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놓칠 수 없는 질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우리가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믿음과 질문을 대립되는 것으로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모든 걸 무조건 믿어야 하지 질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부활과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습니다. 아예 관심도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진리와 공명하는 건강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의 열정에 치우치는 광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되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대답을 준비해야 합니다.(벧전 3:15 참조)  그 준비는 “그는 누군가?”라는 질문을 우리 삶의 기초에 두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막 4:41) 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한 사람은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잘 생각해보십시오. 예수가 누구인지 실존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셨나요? 물론 처음 교회에 나오고 세례를 받을 때 그것에 대해서 공부했을 겁니다.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신앙고백이고 약속입니다. 그가 누군가 하는 질문이 그 순간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면 우리의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그런 질문이 우리의 영혼에서 끊임없이 솟구친다면 우리의 신앙은 살아 있는 겁니다. 이는 마치 작곡가가 음악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통해서 세월이 지나면서 더 깊은 음악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그는 누굽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그는 누굽니까? 이런 질문 앞에 홀로 진지하게 서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20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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