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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3: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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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사람의 유형을 나눔의 차원에서 본다면 언제나 남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 도움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 사람, 준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사람, 될 수 있으면 도움을 베풀려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분류는 고정된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이런 유형 혹은 저런 유형으로 변화될 수 있겠으나 그 사람의 전체적 경향에 따라 판단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주로 어떤 류형인가요?
성경은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방향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심지어,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그리하면 몇날이 못되어 후이 되어 돌아오리라 >고 까지 하십니다.
2. 본문 이야기 /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핌프레미적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 성전 美門 앞에 앉아 구걸하는 한 앉은뱅이 거지를 만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거지를 보고 불쌍히 여겨 주목하여 봅니다. 거지는 자신을 주목하여 보는 두 사도를 보고 무엇인가 큰 돈을 주려나보다 하는 기대를 가집니다. 앉은뱅이 거지는 돈을 원하였지만 사도들은 생명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가로되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사도들과 함게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 하였습니다. 거지는 최선의 것은 이미 포기하고 차선의 것이나마 도움 받기를 원하였으나 사도는 예수의 능력으로 차선의 것이 아닌 최선의 것을 주었습니다.
3. 본문에 대한 조명 /
본문 중심 포인트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따라 말씀의 방향과 이해가 다를 수 있으나 오늘은 특별히 < 내게 돈은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겠노라 >는 베드로 사도의 주면서 사는 베드로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기독교 영성 생활의 귀한 부분이 바로 이 베풀고, 나누고, 주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재물이 있든, 지식이 있든, 신령한 치유의 능력이 있든, 그 무엇이 있더라도 베풀고, 나누고, 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감동도 기적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 나는 나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막10:45 >라고 하십니다. 여기 보십시오! <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주려고 오셨다 >고 하십니다. 사도들의 이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그 마음입니다.
4. 본문이 주는 메시지
하나. 주목하여 보라!
영성이 충만하면 감수성이 예민해집니다. 모래알 한알에서 우주를 보며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합니다. 작은 일에서 시대의 징조를 읽고 겉 모습에서 그 속을 꿰뚫어 봅니다. 성전 앞에 앉은뱅이 거지를 누구나 심상하게 지나칩니다. 힐긋 바라만 보고 가는 사람, 혹 일, 이천원 적선하는 사람, 등으로 그냥 그렇게 지나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이 거지를 유심히 주목하여 봅니다. 언젠가 여리고 소경 거지를 보았을 때 자신들은 저 소경 거지가 누구의 죄로 저 지경이 되었는고? 갑론을박 하였으나 주님은 저 소경 거지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말씀하시고 그 소경 거지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요9:1 이하 ). 예수님은 소경 거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 하시고 그 근본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지금 사도들의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그 마음이 되었습니다.
둘레를 한번 돌아 보세요! 건성으로 보지 마시고 마음을 담고 주목 하여 보세요. 그러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혼돈하며 살고 있는 것과 저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약 달라!는 사람에게 근본적인 것은 마약이 아니라 마약 퇴치 치료 입니다. 오줌싸개 아이에게 근본적인 것은 약이 아니라 안정된 가정 분위기입니다. 노처녀에게서 발생하는 히스테리 증상에 근본적인 것은 약이 아니라 한 남자의 사랑입니다. 앉은방이에게 근본적인 것은 돈이 아니라 일어남입니다.
우리 교회, 가정, 친구, 이웃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의 눈으로 주목하여 보세요. 그러면 컽으로 드러난 요구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이 보입니다. 그 근본적인 것은 대부분 돈이 아니라 믿음, 사랑, 인정, 칭찬, 자연...등입니다.
하나. 네게 있는 것을 주라!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 하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차피 베풀것도 도울 것도 나눌 것도 없는 주제인데 관심은 가져서 무엇하는가?라는 체념이 우리를 이처럼 무관심하고 냉냉한 사람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은 < 돈 아니면 안된다! >는 악마적 주술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보다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십시오. 가장 기쁘고 감사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사랑의 고백, 득남 혹은 득녀,고상한 우정, 칭찬, 고질병으로부터의 완쾌, 유레카 곧 깨달음의 순간, 山海萬里를 굽어보는 장쾌함, 거대한 바위틈새에 난 파란 잎, 감옥 창살에 비친 가느다란 햇빛, 일곱 송이 수선화, 님의 미소, 자상한 격려의 말씀... 아 얼마나 풍성한가!
돈 아닌 것으로 내가 무한히 기뻣던 것처럼 다른이들도 돈 아닌 그런 것으로 무한히 기뻐합니다. 내게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칭찬, 격려, 인정, 사랑, 미소, 자연을 함께 누릴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주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유형을 나눔의 차원에서 본다면 언제나 남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 도움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 사람, 준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는 사람, 될 수 있으면 도움을 베풀려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분류는 고정된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이런 유형 혹은 저런 유형으로 변화될 수 있겠으나 그 사람의 전체적 경향에 따라 판단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주로 어떤 류형인가요?
성경은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방향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 지리라. 심지어,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그리하면 몇날이 못되어 후이 되어 돌아오리라 >고 까지 하십니다.
2. 본문 이야기 /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핌프레미적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 성전 美門 앞에 앉아 구걸하는 한 앉은뱅이 거지를 만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거지를 보고 불쌍히 여겨 주목하여 봅니다. 거지는 자신을 주목하여 보는 두 사도를 보고 무엇인가 큰 돈을 주려나보다 하는 기대를 가집니다. 앉은뱅이 거지는 돈을 원하였지만 사도들은 생명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가 가로되 <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사도들과 함게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 하였습니다. 거지는 최선의 것은 이미 포기하고 차선의 것이나마 도움 받기를 원하였으나 사도는 예수의 능력으로 차선의 것이 아닌 최선의 것을 주었습니다.
3. 본문에 대한 조명 /
본문 중심 포인트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따라 말씀의 방향과 이해가 다를 수 있으나 오늘은 특별히 < 내게 돈은 없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겠노라 >는 베드로 사도의 주면서 사는 베드로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기독교 영성 생활의 귀한 부분이 바로 이 베풀고, 나누고, 주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재물이 있든, 지식이 있든, 신령한 치유의 능력이 있든, 그 무엇이 있더라도 베풀고, 나누고, 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감동도 기적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 나는 나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 막10:45 >라고 하십니다. 여기 보십시오! <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주려고 오셨다 >고 하십니다. 사도들의 이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그 마음입니다.
4. 본문이 주는 메시지
하나. 주목하여 보라!
영성이 충만하면 감수성이 예민해집니다. 모래알 한알에서 우주를 보며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합니다. 작은 일에서 시대의 징조를 읽고 겉 모습에서 그 속을 꿰뚫어 봅니다. 성전 앞에 앉은뱅이 거지를 누구나 심상하게 지나칩니다. 힐긋 바라만 보고 가는 사람, 혹 일, 이천원 적선하는 사람, 등으로 그냥 그렇게 지나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이 거지를 유심히 주목하여 봅니다. 언젠가 여리고 소경 거지를 보았을 때 자신들은 저 소경 거지가 누구의 죄로 저 지경이 되었는고? 갑론을박 하였으나 주님은 저 소경 거지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말씀하시고 그 소경 거지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요9:1 이하 ). 예수님은 소경 거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 하시고 그 근본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지금 사도들의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그 마음이 되었습니다.
둘레를 한번 돌아 보세요! 건성으로 보지 마시고 마음을 담고 주목 하여 보세요. 그러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인 것과 지엽적인 것을 혼돈하며 살고 있는 것과 저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약 달라!는 사람에게 근본적인 것은 마약이 아니라 마약 퇴치 치료 입니다. 오줌싸개 아이에게 근본적인 것은 약이 아니라 안정된 가정 분위기입니다. 노처녀에게서 발생하는 히스테리 증상에 근본적인 것은 약이 아니라 한 남자의 사랑입니다. 앉은방이에게 근본적인 것은 돈이 아니라 일어남입니다.
우리 교회, 가정, 친구, 이웃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의 눈으로 주목하여 보세요. 그러면 컽으로 드러난 요구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것이 보입니다. 그 근본적인 것은 대부분 돈이 아니라 믿음, 사랑, 인정, 칭찬, 자연...등입니다.
하나. 네게 있는 것을 주라!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무관심 하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차피 베풀것도 도울 것도 나눌 것도 없는 주제인데 관심은 가져서 무엇하는가?라는 체념이 우리를 이처럼 무관심하고 냉냉한 사람들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은 < 돈 아니면 안된다! >는 악마적 주술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보다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십시오. 가장 기쁘고 감사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사랑의 고백, 득남 혹은 득녀,고상한 우정, 칭찬, 고질병으로부터의 완쾌, 유레카 곧 깨달음의 순간, 山海萬里를 굽어보는 장쾌함, 거대한 바위틈새에 난 파란 잎, 감옥 창살에 비친 가느다란 햇빛, 일곱 송이 수선화, 님의 미소, 자상한 격려의 말씀... 아 얼마나 풍성한가!
돈 아닌 것으로 내가 무한히 기뻣던 것처럼 다른이들도 돈 아닌 그런 것으로 무한히 기뻐합니다. 내게 돈은 없습니다. 그러나 칭찬, 격려, 인정, 사랑, 미소, 자연을 함께 누릴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주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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