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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5: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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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1. 들어가는 이야기 /
요즈음 공포 체험, 귀곡 산장, 괴기 소설과 여고 괴담 같은 공포 귀신 영화 그리고 T.V. 토요 미스테리, 이야기 속으로 등의 공포, 괴기, 귀신 등의 이야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신이 진짜 있느냐? 없느냐? 귀신이 있다, 없다. 사후 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문제로 분분(紛紛)합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경은 귀신도 있고, 사후 세계도 있고, 심판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탄은 마귀, 데몬, 디아블로, 데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옛뱀, 악령, 귀신, 바알세불, 베리알, 꼬불꼬불한 뱀,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귀먹고 벙어리되게 하며, 간질하게 하며, 거짓말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음란한 마음을 일으키고, 배반케 하는 등등 각가지 모양으로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귀신, 점성술, 무당, 강신술, 부적, 이단 사술 등등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은밀히 사람 가운데 숨어들어 나태, 좌절, 주눅, 무의미, 절망, 신경성 각종 질병, 소외, 불안, 외로움, 변태, 타락, 악한 음란 산업, 마약, 등등 현대적 방법으로 사람을 사로잡아 옴짝 달싹 못하도록 꼬부라져 말라 죽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그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 주님과 사탄의 관계를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와 거라사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
예수께서 공생애 첫 아침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첫 능력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신 사건(막1:21-28)인데, 이제 갈릴리 바다 건너 이방인의 땅 거라사에서의 첫 능력도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 이라는 데는 큰 의미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그 잎이 싱싱하고, 줄기를 마음껏 푸른 하늘로 뻗으며,마침내는 향기로운 열매를 맺듯, 사람도 막힌 데 없이 자유롭게, 청청하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귀신들은 근심, 걱정, 신경증, 분노, 갈등, 질투, 전쟁, 등등 각가지 수단 방법으로 사람을 옭아매서 사람답게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신 그 본래의 뜻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탄 귀신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못살게 하고 있음을 보시고 이 귀신 사탄을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거라사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자 마자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못된 귀신들아 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너희들이 그 사람 안에서 둥지를 틀고 앉았는게냐! 썩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과 오늘 우리는 얼마나 닮은 꼴인가!
귀신 들린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횡설수설, 질서 없고, 씻지 않고, 웃었다 울었다 하며 기괴한 소리를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고, 침을 흘리고, 부끄럼을 모르고, 간교하고 간살스러워 남의 동정을 유발시키고, 어둡고 습한 곳으로 숨고,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제 스스로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그 속에 귀신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도 그러하였으니 어떻게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는 물론이요, 가족과 형제들이 강제로 고랑과 쇠사슬로 채워 제어하려 하였지만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니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합니다. 홀로 삽니다. 무덥에서 삽니다. 때때로 제 정신이 들면 자신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절망과 비탄으로 울부짖고, 제 손으로 자기 몸을 찢고 부딪칩니다. 더럽게 삽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 정도로 심한 증상은 아닐는지 몰라도 그 비슷한 증상이 보이지 않는가요? 예를 들자면, 사람 만나기가 싫다든가, 자기 삶에 아무 낙이 없다고 느끼거나, 이런 짓은 해서는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질질 끌려다니며 후회와 자괴감 속에서도 자꾸만 그 짓을 계속하고 있다거나,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이래?하며 스스로 자기를 자책하면서도 과감히 자기 정리를 하지 못한다거나, 난 이제 틀렸어, 하는 등등의 증상들 말입니다.
이런 증상은 지금 귀신들이 그 사람 속에 이제 막 둥지를 틀고 아예 들어 앉으려고 강력하게 공작을 꾸미고 있는 것인줄 깨달아야 합니다.
4.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도다!
귀신들은 멀리서도 예수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릅을 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빛이 오면 어둠이 쫓겨나고, 진리가 오면 거짓이 소멸하고, 더러운 때가 맑은 물에 씻겨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더럽고 기괴한 증상들은 예수 앞에 나오면 모두 쫓겨가고, 소멸하고, 씻겨지는 것입니다.
음란했던 수가성 여인, 탐욕스럽던 삭개오, 진리에 목말라 비틀거리던 니고데모, 18년 동안 꼬부라져 있던 여인, 등등 귀신에 사로 잡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시들고, 주눅 들고, 버림 받았던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와서 그 보혈의 공로와 그 능력과 그 사랑으로 새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5. 마치는 이야기 /
귀신들이 자꾸만 우리 속에 들어 앉으려고 발광을 합니다.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나는 예외야! 나는 괜찮아! 뭘 별일 있을라구! 하며 방심 하는 동안 낙심, 섭섭, 원망, 신경증, 게으름, 좌절, 케세라 세라 같은 귀신들이 내 속에 들어와 잔치를 벌립니다. 지금 곧 자기 속을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혹 그런 귀신이 한 놈이라도 들어왔거든 속히 예수님 앞으로 나가십시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나가십시오. 그리하면 이 더러운 귀신아 썩 물러 가거라!는 주님의 호통과 함께 쫓겨가는 귀신들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즈음 공포 체험, 귀곡 산장, 괴기 소설과 여고 괴담 같은 공포 귀신 영화 그리고 T.V. 토요 미스테리, 이야기 속으로 등의 공포, 괴기, 귀신 등의 이야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신이 진짜 있느냐? 없느냐? 귀신이 있다, 없다. 사후 세계가 있느냐? 없느냐? 문제로 분분(紛紛)합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경은 귀신도 있고, 사후 세계도 있고, 심판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탄은 마귀, 데몬, 디아블로, 데블,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옛뱀, 악령, 귀신, 바알세불, 베리알, 꼬불꼬불한 뱀,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귀먹고 벙어리되게 하며, 간질하게 하며, 거짓말하게 하고, 두렵게 하고, 음란한 마음을 일으키고, 배반케 하는 등등 각가지 모양으로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귀신, 점성술, 무당, 강신술, 부적, 이단 사술 등등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은밀히 사람 가운데 숨어들어 나태, 좌절, 주눅, 무의미, 절망, 신경성 각종 질병, 소외, 불안, 외로움, 변태, 타락, 악한 음란 산업, 마약, 등등 현대적 방법으로 사람을 사로잡아 옴짝 달싹 못하도록 꼬부라져 말라 죽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그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 주님과 사탄의 관계를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와 거라사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의 운명적 만남
예수께서 공생애 첫 아침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첫 능력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내신 사건(막1:21-28)인데, 이제 갈릴리 바다 건너 이방인의 땅 거라사에서의 첫 능력도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 이라는 데는 큰 의미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그 잎이 싱싱하고, 줄기를 마음껏 푸른 하늘로 뻗으며,마침내는 향기로운 열매를 맺듯, 사람도 막힌 데 없이 자유롭게, 청청하게, 의미 있게 살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귀신들은 근심, 걱정, 신경증, 분노, 갈등, 질투, 전쟁, 등등 각가지 수단 방법으로 사람을 옭아매서 사람답게 살 수 없도록 만듭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신 그 본래의 뜻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탄 귀신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못살게 하고 있음을 보시고 이 귀신 사탄을 쫓아내시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거라사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자 마자 예수님은 귀신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못된 귀신들아 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지 못하도록 너희들이 그 사람 안에서 둥지를 틀고 앉았는게냐! 썩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3.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과 오늘 우리는 얼마나 닮은 꼴인가!
귀신 들린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횡설수설, 질서 없고, 씻지 않고, 웃었다 울었다 하며 기괴한 소리를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고, 침을 흘리고, 부끄럼을 모르고, 간교하고 간살스러워 남의 동정을 유발시키고, 어둡고 습한 곳으로 숨고, 이랬다 저랬다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제 스스로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그것은 그 속에 귀신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도 그러하였으니 어떻게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스스로는 물론이요, 가족과 형제들이 강제로 고랑과 쇠사슬로 채워 제어하려 하였지만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니 그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합니다. 홀로 삽니다. 무덥에서 삽니다. 때때로 제 정신이 들면 자신의 처참한 상황을 보고 절망과 비탄으로 울부짖고, 제 손으로 자기 몸을 찢고 부딪칩니다. 더럽게 삽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본문의 귀신 들린 사람 정도로 심한 증상은 아닐는지 몰라도 그 비슷한 증상이 보이지 않는가요? 예를 들자면, 사람 만나기가 싫다든가, 자기 삶에 아무 낙이 없다고 느끼거나, 이런 짓은 해서는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질질 끌려다니며 후회와 자괴감 속에서도 자꾸만 그 짓을 계속하고 있다거나,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이래?하며 스스로 자기를 자책하면서도 과감히 자기 정리를 하지 못한다거나, 난 이제 틀렸어, 하는 등등의 증상들 말입니다.
이런 증상은 지금 귀신들이 그 사람 속에 이제 막 둥지를 틀고 아예 들어 앉으려고 강력하게 공작을 꾸미고 있는 것인줄 깨달아야 합니다.
4.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도다!
귀신들은 멀리서도 예수를 알아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릅을 꿇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빛이 오면 어둠이 쫓겨나고, 진리가 오면 거짓이 소멸하고, 더러운 때가 맑은 물에 씻겨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더럽고 기괴한 증상들은 예수 앞에 나오면 모두 쫓겨가고, 소멸하고, 씻겨지는 것입니다.
음란했던 수가성 여인, 탐욕스럽던 삭개오, 진리에 목말라 비틀거리던 니고데모, 18년 동안 꼬부라져 있던 여인, 등등 귀신에 사로 잡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시들고, 주눅 들고, 버림 받았던 사람들이 예수 앞에 나와서 그 보혈의 공로와 그 능력과 그 사랑으로 새 사람이 되어 사람답게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5. 마치는 이야기 /
귀신들이 자꾸만 우리 속에 들어 앉으려고 발광을 합니다.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나는 예외야! 나는 괜찮아! 뭘 별일 있을라구! 하며 방심 하는 동안 낙심, 섭섭, 원망, 신경증, 게으름, 좌절, 케세라 세라 같은 귀신들이 내 속에 들어와 잔치를 벌립니다. 지금 곧 자기 속을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혹 그런 귀신이 한 놈이라도 들어왔거든 속히 예수님 앞으로 나가십시오.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나가십시오. 그리하면 이 더러운 귀신아 썩 물러 가거라!는 주님의 호통과 함께 쫓겨가는 귀신들을 직접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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